[그 회원이 알고싶다 ⑥] 동지 따라 어디라도 갈 것 같은_ 유결

[그 회원이 알고싶다 ⑥]

 

동지 따라 어디라도 갈 것 같은_ 유결
인터뷰어 :유나
인터뷰이 :유결

 
2013년 1월, 나는 ‘나는 단체 상근자에 걸맞지 않은 것 같다.’ 는 생각으로 활동보조인교육을 신청하고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유결은 이룸에 지원해보고 안 되면 정말 상근활동과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자고 제안했었다.
 
이룸을 어떻게 처음 알았어?
“좀 명확하게 기억에 남은 건 2011년 트위터에서 어떤 활동가를 팔로우하면서부터. 트위터에서 그 분이 종종 올리는 글을 통해 이룸이 뭐하는지 봤었어. 그 무렵 성노동이란 단어를 내가 접했고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하던 때였어. 당시 주변에 성노동 담론을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진영 상관없이 성매매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반성매매 담론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던 이룸을 좀 주의 깊게 보게 되었지.”
 
유결은 비민주적인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연장근무수당 한 번 받지 못한 채 긴 시간의 임금노동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쉬는 날을 쪼개가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의 사업에 참여한다. 최근에는 주변 지인들과 지역을 넘나들며 온라인으로 여성주의 세미나를 꾸리기도 했다.
 
유결이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승리의 경험은 뭐가 있어?
“2011년 학생인권조례가 나에겐 가장 강한 승리의 기억이라고 떠올리는데 내가 온전히 그 이슈에 투입해서 투쟁했던 건이어서 일거야. 그 때 회사를 막 그만둔 때였거든. 늘 회사와 활동을 병행하다가 그 땐 회사도 관뒀겠다 거의 점거농성장에 상주했었지. 하지만 그것만 말하기엔 너무 뭐가 많아. 육우당 사건 이듬해에 청소년보호법에서 동성애조항이 삭제되었을 때도 심정 복잡했었고(동성애자인권연대의 청소년 활동가이자 독실한 카톨릭신자였던 육우당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동성애차별조항 개정 운동을 했다. 2003년 4월 25일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겨두고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 매 숨졌다.), 언젠가의 메이데이에 롯데호텔 앞을 지나는데 방송차에서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_행성인의 전이름)을 연대체로 처음으로 불러줘서 감동했던 기억도 있고. 종로의 기적(게이의 일생과 커밍아웃, 인권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 보인 사람들의 반응도 그랬고, 희망버스 때 김지도(한진중공업 투쟁 당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지도위원)가 우리 이름 불러줬을 때도 그랬고, 작년 아이다호(국제 아이다호 데이_1990년 5월 17일 세계 보건 기구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때 쌍용차 노래패랑 지보이스 (G_Voice_한국아마추어 게이코러스)가 같이 노래 부를 때도 울컥했고 뭐.. 끝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예전에 유결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었다. HIV/AIDS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지지하게 된 것도, 청소년 성소수자의 권리를 외치게 된 것도 모두 함께 활동하며 그것이 삶이던 동지들 때문/덕분이라 했었다.

 
<맥주와 무지개가 함께라면~ 행복한 유결 Photo ⓒ 윤진>

너한테 성매매이슈는 왜 중요해? 너한테 성매매는 뭐니?
“내가 2003년 초에 행성인의 전신인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에 들어갔어. 그 때 나는 가난한 취업준비생이었지. 그 시절에 동인련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어. 본인을 게이와 트랜스젠더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고 청소년들도 많았어. 근데 탈가정한 청소년 게이라거나 티지(트랜스젠더)들이 많이 선택하고 있는 일이 성매매였어. 물론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특히나 탈가정한 청소년 게이들은 필요한 만큼의 돈을 아르바이트로 벌 순 없으니 성매매를 했고,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술만 마신 기억이 많아. ‘잘 데 없어서 어디 -성매매 하는 곳- 가야겠다.’라고 말하는데 엄청 무력감이 들었어. 또 트랜스젠더들은 수술비용 마련을 위해 돈을 버는데 그게 만만한 금액이 아니니 외국에 가서 성매매산업에 종사하며 돈을 번 경우가 꽤 많아. 외국에서 성매매로 돈을 벌다가 … (유결은 잠시 침묵했고, 눈물이 차올랐다.)…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어… (침묵) 해외에서 살인을 당한 거였지만 한국 대사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 (울음)
또,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돈이 수술비용만큼 벌리지 않으니 이태원업소에서 일을 하며 가슴수술을 했고, 이후에는 외형과 법적성별이 달라 취직해서 일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결국 외국에서 수술비용을 벌어 와서 수술한 친구도 있고. 하지만 그동안 시간이 너무 흘러서 그 전의 경력으로 일을 하기엔 나이가 많기도 하니 결국 수술 후에도 업소에서 일을 더 해서 장사할 밑천을 모으더라고. 사실 나도 대학진학 이후로 혼자 살아가면서 금전적인 부분으로 고생을 많이 했고 종종 정말 가면 빚 갚고 돌아올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한 적 있고 여자인 친구들끼리는 아르바이트 끊어지고 월세 밀리고 그런 상황 되면 다방 가서 티켓이라도 팔아야 되나 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았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기억들이 더해져서 낙인을 무릅쓰고 사회적 약자가 내몰리는 곳이란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 거지. 내 경험으로 일반화 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사실인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성매매 역시 유결에게 사람들로, 그 존재들의 이야기들로 새겨졌다.
 
이룸을 알게 되고 변한 게 있어?
“음.. 나에게 있어 이룸을 만난 후의 가장 큰 변화는 이 이슈가 나왔을 때 마냥 피해버리는 태도를 덜 취하게 되었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듣고 어떻게 다른지 좀 더 고민하게 됐어. 논쟁 등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아예 외면하지 않고, 서로 잘 모르지만 같이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그러는 편이야. 그러다보니까 오히려 잘 몰라서 가만히 있던 예전의 나 같은 사람들이 훨씬 주변에 많다는 생각도 하고. 얼마 전 친구랑 만나서 얘기하다가 떠들기 대회 건 얘기가 나왔는데 ‘다들 토론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입 다물고 있는 느낌이다.’ 라고 하더라. 제대로 토론하지 않았다고 본 것 같아.”(2016 여성성소수자 떠들기 대회_성노동자 연사의 발언내용 및 섭외의도 등에 대한 이룸의 문제제기와 주최 측의 답변이 오갔다.)

토론하는 게 피곤하지. 성노동이냐, 반성매매냐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제일 답답한 게 뭐냐면 나는 처음에 성노동을 들었을 때 그 판매자들이 낙인찍히는 게 정말 싫었기 때문에 성노동자라고 말하는 걸 지지했어. 그 마음은 여전해. 그런데 그 이후에 내가 반성매매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반성매매라고 하면 성노동자를 낙인찍는다고 생각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그게 답답해. 낙인에 반대하는 나와 성판매자만 비범죄화가 되길 바라는 내가 갖는 생각의 기초는 같거든. 젠더권력차로 발생한 산업, 빈곤에 몰리는 사회적 약자가 선택하게 되는 막다른 골목이기도 한 성판매이기 때문에 그걸 선택한 사람들에게 잘못을 따져서는 안 되고, 그 구조를 날이 갈수록 고착화시키는 사회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 거잖아. 낙인도 마찬가지야. 여성에게만 찍는 낙인이야. 성판매자들은 친구들에게도 사실을 잘 밝히지 못하지만 성구매자들은 훈장처럼 떠벌리지 않나.”
 
엠네스티에서 성매매전면비범죄화를 내걸기도 했잖아. 그 때 이후로 나도 정말 예민해지더라.
“나는 일단 성산업에서 젠더권력차를 빼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고 봐. 성산업의 역사를 봐도 그렇고. 젠더권력차로 만들어진 산업에서 구매자와 판매자는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구매자와 판매자를 동등한 위치에 두고 전면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것은 방향이 어긋났다고 생각해. 아니 범죄라고 해도 남초커뮤니티에서 그렇게나 당연한 성구매가 합법화가 된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양성화 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 불법인 지금도 구매했던 경험은 무용담이고, 판매한 경험은 치부잖아.
업주로 넘어가서 이야길 하면 업주는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업주와 판매자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자본은 단가를 낮추고 수익을 높이려고 임금을 줄이려는 갖은 방법을 쓰는데, 하물며 낙인이 제거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업주야 말해 뭐할까 싶다. 뭐 물론 좋은 업주도 있겠지. 그래 우리도 종종 좋은 사장 만난다. 그래도 회사가 얼마의 수익을 얻었다고 N빵은 커녕 퍼센테이지 분배도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대기업도 그냥 보너스로 퉁치지. 그 좋은 사장들은 시간 외 수당 없는 야근하면 정말 잘해줘, 그 뿐이야. 결국 성산업에서 최약자는 성판매자다, 분명한 권력관계가 있는데 왜 성산업 종사자라는 이유로 동일선상에 두나. 업주가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번다고 부끄러워하는 것과 (부끄러워할지조차 의문이지만) 성판매여성이 절대적으로 숨기고픈 비밀인 것과의 차이도 마찬가지. 여기 각각의 무게가 다른데 동일선상에서 모두 비범죄화라니. 말이 안 돼.“

 

<인터뷰 시작과 끝.. 녹초가 되었다.>

이룸이 하면 좋을 것 같은 사업 있어?
“회원사업.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회원사업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같이 논의하고 얘기하고 토론하면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힘이 날거고. 강의도 괜찮고 회원들끼리의 가벼운 토론자리도 좋고 이슈나 관련 영화, 책을 보고 얘기하는 자리도 좋고. 그렇지만 전제가 있어. 내가 이룸을 진짜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리하지 않고 단체를 유지하려는 노력인데 회원사업은 상황을 만들어놓지 않고 벌리면 활동가들이 죽어나가거든. 저녁에 회원모임을 하면 대체휴무 쓰는 방식으로 잘 준비해서 하면 좋겠지.”
 
이룸에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담활동을 지지하면서도.. 상담을 하는 활동가들을 케어하는 프로그램 같은 걸 제발 세금 받는 데에서 주도했으면 좋겠어. 네가 힘들어하는 것도 많이 봤는데, 뭐 어떤 내용이 되었든 활동가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성매매를 접하고 싸운다는 것 자체가, 뭔가 있잖아,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 싸운다고 하면 ‘아 그렇구나.’ 그런 게 있잖아. 그런데 (성매매 쪽은) 뭔가 달라. 그냥 이룸이 안 흔들리고 버텨왔듯이 앞으로도 버텨줬으면 좋겠어. 이룸은 양쪽에서 치이는 것 같은데,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충분히 잘 버텨왔고. 내 생각을 갖고 외로이 버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거든. 겪었던 적도 있고. 그렇지만 이룸이 버팀으로 인해 힘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
 

최근 유결의 가장 큰 관심은 활동가의 건강이다. 주변 활동가들이 박봉에 그냥 직장일보다 더한 스트레스들과 격무에 시달리고 피폐해지는 현실을 고민하더니 아예 그 쪽으로 전직을 해볼까도 생각 중이라고 한다.
 
“이게 재작년부터 해온 말인데, 활동가들의 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아. 활동가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두 달 후면 이 직종에서 일한지 15년이 돼. 몇 년 전에 실비보험을 백세시대에 맞춰 백세보장보험으로 바꾸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갑자기 앞이 깜깜하고 무서워졌어. 앞으로 살날이 그렇게 많이 남은 거야? 그런데 아직도 난 정말 내가 뭘 바라는지를 내가 모른다는 게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알아가기 위해서 상담도 해보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 참여도 해왔어. 처음에는 마음이 머리만큼 따라주지 않아 힘들어서 중간에 쉬기도 했는데 다시 좀 더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면서 좀 더 맘에 드는 걸 찾았고 지금은 흥미롭게 진행하고 있어.”
 
인터뷰를 마친 뒤 유결은 넋이 나갔다. 둘이 같이 울고 웃고 토론하는 밀도 높은 인터뷰다 보니 힘이 들었는지 담배를 찾고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유결은 머리에서 녹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라며 힘들어하더니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져 새로운 일에 대한 계획을 노래하듯 이야기했다. 사람으로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세상은 변한다고, 느리지만 우리의 활동은 사회를 좋게 바꾸고 있다고 반짝거리며 말하는 유결이 이룸의 동지라 생각하니 글을 쓰는 지금도 웃음이 나고 든든하다.
 
 
 
 
 
 

활동이야기

[그 회원이 알고싶다⓹]삶은 행복하게 활동은 치열하게_이선미

[그 회원이 알고싶다⓹]

삶은 행복하게 활동은 치열하게

 

인터뷰어 : 기용
인터뷰이 : 이선미

 
이선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5년 전, 내가 인턴으로 있었던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에서였다. 당시 센터에서 성매매예방교육을 만들고자 했고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전북 전주에 있는 반성매매운동단체) 활동가였던 이선미가 참여했었다. 그 때 이선미는 전북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유학을 갈 예정이었다. 예방교육 작업이 완료 된 뒤 이선미는 프랑스로 떠났고 그 곳에서 5년을 지내다 작년 말,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다시함께상담센터의 활동가가 되었고 현재 영등포의 성매매 집결지 현장지원센터 나비에서 일하며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5년 전, 프랑스에 가기 전 내가 보았던 이선미는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녀는 여전히 긍정적 에너지가 넘쳤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먼저 가볍게 안부로 시작하자. 요즘 신상에 별일 없는가.
시국이 이리하여. 잘 지내는 것도 사치인 듯한 느낌이 든다.(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사망하자 경찰이 부검을 주장하고 시신탈취를 시도하던 때였다.) 내 안부는 괜찮다.
 
 
한국에 돌아온지 이제 10개월 쯤 된 건가? 아까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한국 돌아와서 만나게 된 사람인가
그렇다. 사귄지 5개월 됐다. 열심히 찾아다닌 결과다. 만나는 사람마다 소개팅해달라고 했었다.(웃음) 예전에는 나는 왜 이성애자인가 진짜 고민 많이 했다. 왜냐면 한국남자 중에 찾기가 정말 힘들다. 빠리 가기 전에 만났던 남자들과 돌아와서 만난 남자들이 또 다르다. 나이가 서른 중후반을 넘어가고 직책이 어느 정도 되다보니 너무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거다. 그나마 안 그런 사람으로 소개시켜준 것일 텐데도 그렇더라. 그래서 나는 왜 이성애자일까 고민했는데 여전히 남자가 좋다. 결혼 생각도 있다. 빠리 있을 때 베이비시팅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아기를 좋아하지만 육아에 대한 공포는 있었는데 그게 싹 해소됐다.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하루에 눈, 코, 입 가릴 것 없이 뽀뽀 백번씩 하고 그랬다.
 


<알리스 피에르와 파리에서 마지막 날>

 
아이와의 관계는 마약 같은 게 있다. 준만큼 돌아온다. 일반적인 관계는 안 그렇잖나. 아이들이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라서 그런 거다. 근데 내 마음이 불편하거나 짜증이 올라온다면 그건 내 문제인 거다. 그리고 내가 불교 신자다. 마음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첫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꿈이 작가였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 아이랑 얘기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아이들은 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니까. 고정관념도 없고. 그렇게 내가 돌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애를 낳고 싶다는 확신이 들더라. 아빠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너무 힘들 것 같고 결혼을 해야겠다 싶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그래서 난자를 보관해야하나 생각 중이다.(웃음) 난자보관이 생각보다 돈이 많이 안 드는 것 같더라.
 
 
사범대를 졸업했고 임용고시를 준비했었다고 했다. 교사라는 직업이 적성에도 맞고 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어쩌다 반성매매활동가가 되었나
원래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선배 언니가 여자 후배들을 데리고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게 있어? 눈이 확 뜨인 거다. 그 동안의 남자선배들이랑 있었던 갈등이나 불편했던 것들이 설명이 되고 해소가 되었다. 그 다음 해에 총여학생회 나갔는데 떨어졌다. 선거 떨어지니 할 게 없어서 바람꽃이라는 여성주의 동아리를 만들고 반성폭력 운동을 했다. 비대위, 상담소 같이 여학우가 와서 얘기하면 우리가 대리인 역할하고 그랬다. 그리고 졸업하고 임용고시 공부를 했는데 잘 안 됐고. 그때 동아리 같이 했던 후배 한명이 전주(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를 말함)에서 일하고 있었다. ‘언니 뭘 공부를 해. 빨리와~’ 그래서 가게 된 거다.
 
성매매에 관심을 갖게 된 게, 군산 화재사건 때문이었다. 2000년은 어렸고 관심도 없고 해서 지나갔는데 2002년은 알게 된 거다. 그때 죽음이 사실 처참했지 않나. 내 또래인 피해자들이 감금을 당해서 죽었다는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선미촌(전주의 성매매집결지)에 자원활동을 가기도 했었다. 그렇게 반성매매 운동을 알게 됐고 성매매 흐름을 알게 됐다. 2002년 당시에도 성노동과 반성매매 입장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학내 사회에서는 성노동에 훨씬 기울어져 있었다. 우린 노동운동 하는 데니까. 근데 나는 왠지 반성매매에 마음이 끌렸다. 당시 여성들의 현실이 처참했으니까. 성노동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주에서 일을 하다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유학은 왜 가게 된 건가.
전주센터에서 3년을 일하다 보니 아무래도 많이 치이고 소진됐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가다가는 평생 이쪽 일을 안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겨우니까. 서른이 되니 그동안 운동을 쭉 해왔는데 이걸 정리하고 나를 되돌아보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지더라.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호주와 68혁명의 프랑스를 놓고 고민하다가 목수정의 책(‘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을 읽었고 프랑스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 언니의 삶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거든. 그리고 프랑스가 유학생한테 혜택이 많다. 학비가 1년에 45만원이다. 그나마 석사라서 비싼 거였고 학부는 35만원 수준이다. 거의 무료인 셈이다. 그리고 혼자서 방세 내는 사람은 주택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집에 따라 다른데 15-20만원 정도다. 사실 공부가 주 목적이었다기 보다 외국에 살고 싶은 게 더 컸다. 6개월, 1년도 싫고 2-3년은 살고 싶었다. 근데 그러려면 비자가 학생비자 밖에 없다. 학생 비자는 학교를 등록해야지만 주니까. 언어교육 2년 정도 받고 사회학부 안에 있는 젠더학과 대학원을 들어갔다. 이름이 좀 긴데 편하게 젠더학과라 부른다. 내가 학부는 사회학 쪽이 아니었는데 센터에서 일한 경험 3년으로 소장님이 추천서 써주고 해서 경력으로 붙은 거다. 학교 가서는 많이 못 알아들었다. (웃음) 학생 중에 외국인이 많았는데 어떤 외국인이 내용을 못 따라가겠다고 토로하니까 프랑스 애들이 ‘우리도 못 알아들어 괜찮아’ 그랬다.

 

<영등포역 근처의 까페에서 만났다>
 
 
반성매매 활동가가 프랑스를 갔으니 프랑스 성매매 상황을 주의 깊게 봤을 것 같다. 프랑스는 성매매는 규모나 특징 등이 어떠한가. 최근에 성구매자를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됐는데.
프랑스는 대부분 거리성매매 위주고 규모가 참 작다. 규모로는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성매매로 유명한 몇몇 거리들이 있다. 성매매하는 여성들의 90퍼센트가 외국인이다. 현지 프랑스 여성은 거의 없다. 원래 업주만 처벌했었는데 올해부터 성구매자를 처벌하는 노르딕 모델이 통과됐다. 여성은 처벌받지 않는다. 벨빌거리가 물가가 좀 싸고 맛있는게 많아서 자주 갔었는데 여성들이 아침부터 쭉 서있다. 누구 기다리는 것처럼. 혼자 있으니까 언니가 개인적으로 파는 것 같지만 뒤에 브로커들, 인신매매 조직이 있다. 그 여성들이 무슨 돈으로 어떻게 왔겠나. 비행기 값이며 체류비용이며 다 해주는 거다. 프랑스가 워낙 자유주의가 강한 나라여서 성구매자 처벌하는 법안에 대해 반대도 만만찮았다.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거지. 보수적인 상원은 계속 반대했는데 하원이 밀어붙여서 통과된 거다. 몇 년 걸렸다.
 
프랑스도 반성매매와 성노동으로 갈려져 있다. 아무래도 성노동이 쿨하게 느껴지니까 젊은 층이나 운동하는 친구들은 성노동에 훨씬 관심이 많다. 과거 성노동 쪽에서 하는 얘기 중에 일정 정도 이해가는 부분이 있긴 했었다. 그들이 하는 주장을 우리 언어로 어떻게 해석하고 바꿀까 고민이 든다. 우리가 가지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를 고민하고 언어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지. 성노동의 주장에 동의하진 않는다. 심각한 판타지다. 현실의 성매매와 동떨어져 있고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룸 활동에서 인상적이었거나 재밌어 보였던 게 있는지.
이룸은 어쨌든 고민을 많이 하는게 보여서 좋다. 이 활동을 하다보면 타성에 젖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고민을 안 하게 되잖나. ‘활동하고 있으니까’에 만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보이고 그 고민의 과정이 보이더라. 시의적절한 성명서나 의견을 내주니 때론 고마울 때도 있다. 특히 언니들에 대한 고민을 좀 다양하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양쪽에서 욕을 먹는 것 같고.(웃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함께 지하철 영등포역으로 가는 길에도 반성매매 운동에 대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이룸은 종종 성노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를 사곤 한다. 이에 대해 이선미는 반성매매를 잘 말하려다 보니 그런 것 같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정말 그러하다고 격하게 동의했다. 그리고 이렇게 알아주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이룸은 참 고민을 많이 한다. 선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 보자면 답답하고 의아해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룸은 계속 반성매매를 잘 말하려고 고민할 예정이다.

●그 회원이 알고싶다 시리즈



1.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결하는 자, '승짱'을 만나다_달래

2. 이야기하기 위해서_견과류X완두

3. 재미있게! 똘끼를 간직하며 혁명을 위한 변화를 향해 전진하는 그녀! 젤리_고진달래
4. 그렇게까지 성매매를 말하는 사람 이현정_별

활동이야기

[그 회원이 알고 싶다④] 그렇게까지 성매매를 말하는 사람

[회원 인터뷰 사업_그 회원이 알고 싶다④]

 
그렇게까지 성매매를 말하는 사람
 
 
인터뷰이 : 이현정
인터뷰어 :        별
 
 

 

2015년 성매매 상담원 양성교육에서 만난 이현정 씨. 내가 이룸 소속이라 하자 그녀는 이룸 회원이고 이룸의 사업들을 좋아한다 했다. 파랗게 머리를 물들이고선 강사에게 질문하는 모습이 눈에 띄던 현정 씨가 이룸의 팬이기까지 하다니! 마냥 서로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딱 1년이 흐른 지금, 본인의 현장에서 「프리즘」, 「예술로 반성」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사회에서 작동하는 예술’ 을 모색 중인 현정 씨를 다시 만났다.   
 

아직 운동이 필요한 현장, 성매매

 
현정 씨가 “어쩌다 보니 청년 예술가에서 반성매매 활동가가 되어있었다”고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는 우리네 일상이 성매매와 맞닿아있는 경로를 되짚어 흘러갔다.
 
청소년기 가족 지원 없이 방을 얻어 살면서 다방, 노래방 도우미 일로 세를 벌던 친구들의 모습, 등하교길 맥양주집이 즐비한 풍경, 하루 절반은 미대생으로 예술의 쓸모를 논하고 절반은 알바생으로 서러움을 겪는 낙차로 다가오는 계급과 가난, 사회적 자원의 분배와 공적 논의의 장에서 배제된 청년 예술가·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 길러온 연대의식, 관계에서 성적으로 지불되어야 하는 순간마다 넘나 들어온 경계이자, 10대에서 70대까지, 평생토록 경제적 위기의 순간에 선택지로 떠오르는 성매매라는 현실. 한줄 요약하자면 동시대의 한국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으리라 짐작 가는 그런 이야기이다. 
 
 
“하루를 쪼개서 오전 일찍부턴 아르바이트 하고, 오후 즈음부턴 ‘철학하는예술가협동조합’에서 활동을 했어요. 한 3년 하니까 몸도 망가지고 돈 버는 데 쓰는 예닐곱 시간이 너무 가치가 없게 느껴지고, 자존감이 계속 무너졌어요. 어차피 알바이고 푼돈이면 가치라도 있게 벌고 싶다 할 때쯤 반성매매 기관에 TO가 나서 들어가게 된 거죠. 예술로 사회에 이바지 하는 건 꿈꾸면서도 사회복지사는 싫었는데(웃음). 그래도 호감을 갖고 흥미롭게 시작할 수 있는 키워드가 성매매였던 것 같아요. 아직 운동이 필요한 영역이잖아요. 모두가 성매매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거에, 복지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 나 포함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어내야 하잖아요. 나와 내 주위와 긴밀한 문제이니 그만큼 몰입할 수 있기도 하고요. 여자고 사람으로서 ‘그런 경험은 기분 드러운 경험이야’ 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현정 씨는 그렇게 성매매 현장을 알아갈 참고 자료를 찾던 중 이룸과 만났다. “이거 좀 괜찮다 싶으면 이룸이야!” 「네이버 지식in 온라인 아웃리치」와 「경찰서 아웃리치」, 「루머 종결자들」, 「화톡」, 「별별신문」, 「월간 비범죄화」까지, 이룸 사업들이 사회적 작용과 파장을 만들어내는 감각, 통상 관에서 잘 시도하지 않는 부분을 건드리는 적극성, 주장을 전달하겠다는 열의에서 발굴한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공공 미술 스러웠다고 한다. 인터뷰이는 예술과 운동 사이에 윤리적 채널을 이어내려 하는 사람의 안목으로 이룸을 높이 사 주었다.

 
“내가 어딘가 한군데 후원을 한다면 여기는 꼭 해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미대에서 기발하고 쌈박하고 센스있고 이러고 싶었거든요. 뻥을 쳐서라도 어떻게 한건 터트려서 유명해지고 싶고 막. 근데 막상 듣는 평가는 진정성이었어요. 싫었어요. 능력없음, 재능없음, 끼없음으로 들렸거든요. 지금은 제가 어릴 때 했던 작업들을 좋아해요. 예술이든 운동이든 뭔가 전달하려는 거잖아요. 중요한건 마음의 울림인데 그 힘이 진정성에서 오는 것 같아요. 이룸을 보면 그 진정성이 창의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진짜로 간절하게 고민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기발함. 그런 흔적들이 이룸에서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룸이 재밌다는 현정 씨. 「월간 비범죄화」 를 발간한 ‘성판매여성 비범죄화 추진연합’ 연대단체 중 하나인 ‘성구매 안하는 한줌의 남성 모임’을 되살려내 응용한 캠페인도 진행했다. ’갑질하는 갑‘이 되려는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무엇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거냐는 고민을 품고.
 

“영화 [내부자들]에서 슈퍼갑 권력자들을 본 남성들, ‘저 나쁜 놈처럼 하지 말아야지’ 가 아니라 ‘아! 갑들은 저렇게 노는구나. 내가 갑이 되면 해봐야지’ 로 나아가죠. 워너비의 모양 이 달라요. 그런 면에서 [내부자들]은 사실 고발을 빙자하며 폭력을 재생산 하는 영화죠. 유흥업소들의 간판 네이밍을 보면 럭셔리, 황제, 비즈니스 클럽 등 권력 지향적인 이름이 많더라구요. 여성을 사고파는 문화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윤리가 제동장치가 될 수 없다면, ‘한줌’ 캠페인을 통해 성구매를 희화화 하고 성구매 안하는 걸 간지로 만들어볼까 했어요. 성구매는 찌질해…이렇게. 자칫 성매매 안하는 멋쟁이! 이렇게 갈 뻔하긴 했단 생각도 들지만요(웃음).” 
 

함께 사유할 사람들을 모으는 활동의 가치
 
 
이렇게 욕망과 권력은 무엇이 간지냐, 에 달려있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인터뷰이는 언론과 예술이 ‘진보’라는 일종의 간지 나는 이름을 달고, ‘폭력/피해자’는 구닥다리, ‘노동/노동자’는 급진 좌파, 이원화해서 프레이밍 하는 데에서 오는 답답함과 짜증이 있다고 했다. 인터뷰이의 눈에 비치는 언론과 일부 학계는 지금 당장 일을 그만 둘 수 없을 당사자 인터뷰 한 방에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예술 역시 당사자를 타자화하고 혐오하는 뻔한 결과물을 예술가의 상상과 표현의 자유라며 내어 놓는다. 너무 싸고, 쉽다. 
 
“직관과 게으름은 다르잖아요.” 현정 씨는 진실을 듣는 데는 그만큼의 투자가, 본질을 직관하고 통찰하기까지는 그만큼의 정당한 사유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여겨 현장에 있다. “우리가 생산하는 이미지도 의도와 다르게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 하고서 실제에 기꺼이 다가가 실패를 감수하고자 한다.「예술로 반성」(매매) 하는 과정이다.
 
 
“성매매 구조는 앞뒤 양옆에 뭐가 있었는지, 맥락을 짚어가며 왜 이렇게 왔을까를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연예인들의 성폭행사건만 봐도 ‘여자가 빚이 삼천이라던데? 삼천만원, 7개 업소, 구속, 그러니까 꽃뱀, 사기꾼’ 단순하게 도출해요. 선불금 이라는 게 빌려준 흔적은 있지만 갚아나간 흔적도 없고, 어떻게 진 빚인지 알 수 없는데도 말이에요. 표면으로 드러나는 편집된 ‘사실’의 이면을 보기 위해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도 훈련을 하는데… 그렇게까지 성매매를 말하는 사람은 잘 없는 거죠.” 

 
“현장에 와서 느낀 건 인식 싸움을 하기 에는 너무 버겁다는 거예요. 상담과 지원만으로도 일이 많으니까. 일일히 대꾸할 여력이 없는 거잖아요 현장에서는. 근데 사람들은 내가 봤던 글, 이미지를 가지고 ‘그렇다던데? 그런 것 같애,’ 결론을 낸 게 모여서 거대한 여론이 되잖아요.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현장을 경험하고 현장에서 출발한 예술인, 언론인, 연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ㅡ 반성매매가 아닌 다른 결론을 도출하더라도… 성매매 문제의 구조와 맥락을 짚어갈 수 있는, 그런 사유가 가능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한 프로젝트가 「프리즘」이에요. 지역시민과 예술가들이 모여 공부하고, 활동가들과 현장 아웃리치를 나가요. 보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고 작품 기획회의를 해요. 콘텐츠를 제작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로 이지만, 콘텐츠보다 귀한 사람도 남죠.”

 


▲프리즘의 작업물들
 

▲프리즘의 특강

세 명이 모이면 할 수 있다는 용기


 
이런 뜻을 지니고 다양한 작가, 강사진들과 함께하며 여성 단체와 지자체에서부터 문화예술계 까지 뻗어나가고 있는 현정 씨.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힘겨움은 없는지 물었다.

 
“뜻으로 모여도, 여러 사람 사이엔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친숙하지 않은 문서와의 전쟁도 만만치 않아요. 두 번 다시 안할란다, 내가 작업하고 말지 투덜대기도 하지만 끝나고 나면 이 좋은 사람들과 더 제대로 된 기획을 하고 싶고, 또 다른 작가들을 만나고 싶어져요. 혼자보단 둘이 할 때 용기가 나고. 셋이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둘은 그냥 깨질 수도 있는 관곈데 빈 테이블에서도 셋이 모이면 돼요. 이룸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 아닌가요?”

 


▲프리즘 뒷풀이에서 작가들이 그린 인터뷰이
 
 
현정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 함께 NGO틱함과 예술감과 유우머를 짬뽕하여, 성매매 구조의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꺼리를 생산해, 사람들과 더불어 움직여보자는 용기가 났다. 모두들 각자의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를 성장시키고 충족시키는 조직과 활동의 방식을 찾으며, 버티고 또 바톤터치를 해 삶을 꾸려 나가보자는, 우리 그냥 헛다리 짚은 거 아니라며 등을 떠밀어주는 울림을 느꼈다. 

 
“언젠가 이룸하고 뭔가 같이 해보고 싶어요!” 그래요 우리!

 
§ 올해 현정 씨의 책장 엿보기
 
①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연대기
② 정희진처럼 읽기
③ 젠더무법자
④ 우리안의 남성
⑤ 타인의 고통
⑥ 젠더트러블
⑦ 젠더 허물기
⑧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⑨ 페미니즘의 도전
⑩ 원더박스
활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