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원이 알고싶다 ⑥] 동지 따라 어디라도 갈 것 같은_ 유결

[그 회원이 알고싶다 ⑥]

 

동지 따라 어디라도 갈 것 같은_ 유결
인터뷰어 :유나
인터뷰이 :유결

 
2013년 1월, 나는 ‘나는 단체 상근자에 걸맞지 않은 것 같다.’ 는 생각으로 활동보조인교육을 신청하고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유결은 이룸에 지원해보고 안 되면 정말 상근활동과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자고 제안했었다.
 
이룸을 어떻게 처음 알았어?
“좀 명확하게 기억에 남은 건 2011년 트위터에서 어떤 활동가를 팔로우하면서부터. 트위터에서 그 분이 종종 올리는 글을 통해 이룸이 뭐하는지 봤었어. 그 무렵 성노동이란 단어를 내가 접했고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하던 때였어. 당시 주변에 성노동 담론을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진영 상관없이 성매매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반성매매 담론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던 이룸을 좀 주의 깊게 보게 되었지.”
 
유결은 비민주적인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연장근무수당 한 번 받지 못한 채 긴 시간의 임금노동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쉬는 날을 쪼개가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의 사업에 참여한다. 최근에는 주변 지인들과 지역을 넘나들며 온라인으로 여성주의 세미나를 꾸리기도 했다.
 
유결이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승리의 경험은 뭐가 있어?
“2011년 학생인권조례가 나에겐 가장 강한 승리의 기억이라고 떠올리는데 내가 온전히 그 이슈에 투입해서 투쟁했던 건이어서 일거야. 그 때 회사를 막 그만둔 때였거든. 늘 회사와 활동을 병행하다가 그 땐 회사도 관뒀겠다 거의 점거농성장에 상주했었지. 하지만 그것만 말하기엔 너무 뭐가 많아. 육우당 사건 이듬해에 청소년보호법에서 동성애조항이 삭제되었을 때도 심정 복잡했었고(동성애자인권연대의 청소년 활동가이자 독실한 카톨릭신자였던 육우당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동성애차별조항 개정 운동을 했다. 2003년 4월 25일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겨두고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 매 숨졌다.), 언젠가의 메이데이에 롯데호텔 앞을 지나는데 방송차에서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_행성인의 전이름)을 연대체로 처음으로 불러줘서 감동했던 기억도 있고. 종로의 기적(게이의 일생과 커밍아웃, 인권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 보인 사람들의 반응도 그랬고, 희망버스 때 김지도(한진중공업 투쟁 당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지도위원)가 우리 이름 불러줬을 때도 그랬고, 작년 아이다호(국제 아이다호 데이_1990년 5월 17일 세계 보건 기구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때 쌍용차 노래패랑 지보이스 (G_Voice_한국아마추어 게이코러스)가 같이 노래 부를 때도 울컥했고 뭐.. 끝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예전에 유결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었다. HIV/AIDS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지지하게 된 것도, 청소년 성소수자의 권리를 외치게 된 것도 모두 함께 활동하며 그것이 삶이던 동지들 때문/덕분이라 했었다.

 
<맥주와 무지개가 함께라면~ 행복한 유결 Photo ⓒ 윤진>

너한테 성매매이슈는 왜 중요해? 너한테 성매매는 뭐니?
“내가 2003년 초에 행성인의 전신인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에 들어갔어. 그 때 나는 가난한 취업준비생이었지. 그 시절에 동인련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어. 본인을 게이와 트랜스젠더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고 청소년들도 많았어. 근데 탈가정한 청소년 게이라거나 티지(트랜스젠더)들이 많이 선택하고 있는 일이 성매매였어. 물론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특히나 탈가정한 청소년 게이들은 필요한 만큼의 돈을 아르바이트로 벌 순 없으니 성매매를 했고,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술만 마신 기억이 많아. ‘잘 데 없어서 어디 -성매매 하는 곳- 가야겠다.’라고 말하는데 엄청 무력감이 들었어. 또 트랜스젠더들은 수술비용 마련을 위해 돈을 버는데 그게 만만한 금액이 아니니 외국에 가서 성매매산업에 종사하며 돈을 번 경우가 꽤 많아. 외국에서 성매매로 돈을 벌다가 … (유결은 잠시 침묵했고, 눈물이 차올랐다.)…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어… (침묵) 해외에서 살인을 당한 거였지만 한국 대사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 (울음)
또,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돈이 수술비용만큼 벌리지 않으니 이태원업소에서 일을 하며 가슴수술을 했고, 이후에는 외형과 법적성별이 달라 취직해서 일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결국 외국에서 수술비용을 벌어 와서 수술한 친구도 있고. 하지만 그동안 시간이 너무 흘러서 그 전의 경력으로 일을 하기엔 나이가 많기도 하니 결국 수술 후에도 업소에서 일을 더 해서 장사할 밑천을 모으더라고. 사실 나도 대학진학 이후로 혼자 살아가면서 금전적인 부분으로 고생을 많이 했고 종종 정말 가면 빚 갚고 돌아올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한 적 있고 여자인 친구들끼리는 아르바이트 끊어지고 월세 밀리고 그런 상황 되면 다방 가서 티켓이라도 팔아야 되나 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았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기억들이 더해져서 낙인을 무릅쓰고 사회적 약자가 내몰리는 곳이란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 거지. 내 경험으로 일반화 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사실인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성매매 역시 유결에게 사람들로, 그 존재들의 이야기들로 새겨졌다.
 
이룸을 알게 되고 변한 게 있어?
“음.. 나에게 있어 이룸을 만난 후의 가장 큰 변화는 이 이슈가 나왔을 때 마냥 피해버리는 태도를 덜 취하게 되었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듣고 어떻게 다른지 좀 더 고민하게 됐어. 논쟁 등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아예 외면하지 않고, 서로 잘 모르지만 같이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그러는 편이야. 그러다보니까 오히려 잘 몰라서 가만히 있던 예전의 나 같은 사람들이 훨씬 주변에 많다는 생각도 하고. 얼마 전 친구랑 만나서 얘기하다가 떠들기 대회 건 얘기가 나왔는데 ‘다들 토론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입 다물고 있는 느낌이다.’ 라고 하더라. 제대로 토론하지 않았다고 본 것 같아.”(2016 여성성소수자 떠들기 대회_성노동자 연사의 발언내용 및 섭외의도 등에 대한 이룸의 문제제기와 주최 측의 답변이 오갔다.)

토론하는 게 피곤하지. 성노동이냐, 반성매매냐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제일 답답한 게 뭐냐면 나는 처음에 성노동을 들었을 때 그 판매자들이 낙인찍히는 게 정말 싫었기 때문에 성노동자라고 말하는 걸 지지했어. 그 마음은 여전해. 그런데 그 이후에 내가 반성매매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반성매매라고 하면 성노동자를 낙인찍는다고 생각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그게 답답해. 낙인에 반대하는 나와 성판매자만 비범죄화가 되길 바라는 내가 갖는 생각의 기초는 같거든. 젠더권력차로 발생한 산업, 빈곤에 몰리는 사회적 약자가 선택하게 되는 막다른 골목이기도 한 성판매이기 때문에 그걸 선택한 사람들에게 잘못을 따져서는 안 되고, 그 구조를 날이 갈수록 고착화시키는 사회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 거잖아. 낙인도 마찬가지야. 여성에게만 찍는 낙인이야. 성판매자들은 친구들에게도 사실을 잘 밝히지 못하지만 성구매자들은 훈장처럼 떠벌리지 않나.”
 
엠네스티에서 성매매전면비범죄화를 내걸기도 했잖아. 그 때 이후로 나도 정말 예민해지더라.
“나는 일단 성산업에서 젠더권력차를 빼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고 봐. 성산업의 역사를 봐도 그렇고. 젠더권력차로 만들어진 산업에서 구매자와 판매자는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구매자와 판매자를 동등한 위치에 두고 전면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것은 방향이 어긋났다고 생각해. 아니 범죄라고 해도 남초커뮤니티에서 그렇게나 당연한 성구매가 합법화가 된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양성화 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 불법인 지금도 구매했던 경험은 무용담이고, 판매한 경험은 치부잖아.
업주로 넘어가서 이야길 하면 업주는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업주와 판매자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자본은 단가를 낮추고 수익을 높이려고 임금을 줄이려는 갖은 방법을 쓰는데, 하물며 낙인이 제거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업주야 말해 뭐할까 싶다. 뭐 물론 좋은 업주도 있겠지. 그래 우리도 종종 좋은 사장 만난다. 그래도 회사가 얼마의 수익을 얻었다고 N빵은 커녕 퍼센테이지 분배도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대기업도 그냥 보너스로 퉁치지. 그 좋은 사장들은 시간 외 수당 없는 야근하면 정말 잘해줘, 그 뿐이야. 결국 성산업에서 최약자는 성판매자다, 분명한 권력관계가 있는데 왜 성산업 종사자라는 이유로 동일선상에 두나. 업주가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번다고 부끄러워하는 것과 (부끄러워할지조차 의문이지만) 성판매여성이 절대적으로 숨기고픈 비밀인 것과의 차이도 마찬가지. 여기 각각의 무게가 다른데 동일선상에서 모두 비범죄화라니. 말이 안 돼.“

 

<인터뷰 시작과 끝.. 녹초가 되었다.>

이룸이 하면 좋을 것 같은 사업 있어?
“회원사업.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회원사업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같이 논의하고 얘기하고 토론하면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힘이 날거고. 강의도 괜찮고 회원들끼리의 가벼운 토론자리도 좋고 이슈나 관련 영화, 책을 보고 얘기하는 자리도 좋고. 그렇지만 전제가 있어. 내가 이룸을 진짜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무리하지 않고 단체를 유지하려는 노력인데 회원사업은 상황을 만들어놓지 않고 벌리면 활동가들이 죽어나가거든. 저녁에 회원모임을 하면 대체휴무 쓰는 방식으로 잘 준비해서 하면 좋겠지.”
 
이룸에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상담활동을 지지하면서도.. 상담을 하는 활동가들을 케어하는 프로그램 같은 걸 제발 세금 받는 데에서 주도했으면 좋겠어. 네가 힘들어하는 것도 많이 봤는데, 뭐 어떤 내용이 되었든 활동가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성매매를 접하고 싸운다는 것 자체가, 뭔가 있잖아, 노동자가 자본에 맞서 싸운다고 하면 ‘아 그렇구나.’ 그런 게 있잖아. 그런데 (성매매 쪽은) 뭔가 달라. 그냥 이룸이 안 흔들리고 버텨왔듯이 앞으로도 버텨줬으면 좋겠어. 이룸은 양쪽에서 치이는 것 같은데,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충분히 잘 버텨왔고. 내 생각을 갖고 외로이 버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거든. 겪었던 적도 있고. 그렇지만 이룸이 버팀으로 인해 힘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
 

최근 유결의 가장 큰 관심은 활동가의 건강이다. 주변 활동가들이 박봉에 그냥 직장일보다 더한 스트레스들과 격무에 시달리고 피폐해지는 현실을 고민하더니 아예 그 쪽으로 전직을 해볼까도 생각 중이라고 한다.
 
“이게 재작년부터 해온 말인데, 활동가들의 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아. 활동가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두 달 후면 이 직종에서 일한지 15년이 돼. 몇 년 전에 실비보험을 백세시대에 맞춰 백세보장보험으로 바꾸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갑자기 앞이 깜깜하고 무서워졌어. 앞으로 살날이 그렇게 많이 남은 거야? 그런데 아직도 난 정말 내가 뭘 바라는지를 내가 모른다는 게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알아가기 위해서 상담도 해보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 참여도 해왔어. 처음에는 마음이 머리만큼 따라주지 않아 힘들어서 중간에 쉬기도 했는데 다시 좀 더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면서 좀 더 맘에 드는 걸 찾았고 지금은 흥미롭게 진행하고 있어.”
 
인터뷰를 마친 뒤 유결은 넋이 나갔다. 둘이 같이 울고 웃고 토론하는 밀도 높은 인터뷰다 보니 힘이 들었는지 담배를 찾고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유결은 머리에서 녹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라며 힘들어하더니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져 새로운 일에 대한 계획을 노래하듯 이야기했다. 사람으로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세상은 변한다고, 느리지만 우리의 활동은 사회를 좋게 바꾸고 있다고 반짝거리며 말하는 유결이 이룸의 동지라 생각하니 글을 쓰는 지금도 웃음이 나고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