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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 이대로 좋은가
피해여성 범죄자 취급 등 한계 많아
최이윤정 기자
2004-03-15
지난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이하 ‘성매매방지법’) 제정에 대해 환영의 목소리 일색이다.
성매매관련법 제정으로 윤락행위등방지법이 폐기되면서 여성만을 죄악시해 온 '윤락'이라는 용어가 '성매매'로 바뀌고, 성매매 알선 행위자에 대한 법안을 따로 두어 처벌을 강화한 것은 중요한 변화다. 그러나 환영하기엔 문제가 많다. 여성계가 요구했던 성매매방지법안이 국회 통과 과정을 거치며 결정적인 부분이 삭제되거나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성매매 피해자’ 정의 대폭 축소
이번에 통과된 법의 가장 큰 한계는 성매매 된 여성들을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는 여성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법에 따르면 “성매매피해자”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위계, 위력 등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자, 마약등에 중독된 자, 장애가 있는 자, 청소년, 그리고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다.
2002년 조배숙 의원등이 발의한 ‘성매매방지법안’에서 규정하고 있던 ‘선불금 등 채무의 이용에 의하여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 부분은 빠져있다. 대부분 성매매 된 여성들이 ‘선불금’과 같은 채무관계에 묶여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조항은 ‘성매매피해자’의 정의 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규정이다.
또한 “성매매피해자”의 법적 구성요건 중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 규정에서 ‘동의’ 여부가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 법안을 보면 2002년 성매매방지법안에서 규정하고 있던 “본인 또는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받은 것을 불문하고” 부분이 탈락됐다.
이에 대해 조국 교수(서울대 법학과)는 “우리 정부가 1962년에 가입한 국제협약 중 ‘인신매매 금지 및 타인의 성매매 착취 금지에 관한 협약’(제1조)에는, 여성의 동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여성을 성매매 목적으로 매매하는 것은 처벌돼야 한다고 돼있다”며, “우리 나라 관련 법규정들은 여성의 동의가 있다면 ‘인신매매’ 범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자발적인가 여부 중요하지 않다
여성단체들은 성매매 된 여성은 동의를 불문하고 모두 ‘피해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센터 ‘새움터’ 서윤미 사무국장은 “자발적이건 아니건 간에 거기 들어간 것 자체가 여성들이 좋아서 들어간 게 아니므로 모두 다 비범죄화 돼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성매매 피해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의 여부, 자발이냐 비자발이냐를 구분해 ‘피해자’를 정의하기는 모호한 상황이다. 새움터 김현선 대표는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목숨 걸고 도망치거나, 억압을 받으면서 성매매 여성으로 낙인 찍히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협조하는 것까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현선 대표는 또 “실제 70% 이상의 여성 포주들만 보더라도, 이전에 인신매매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김 대표는 이를 과연 ‘자발’적 성매매 또는 인신매매로 봐야 하는지, 그렇다면 이 여성들을 ‘범죄자’로 봐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한 여성들도 모두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보호규정 필요, 법안의 ‘적극적’ 해석 절실
한편,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는 성매매 피해여성이 확보해야 할 권리, 인권지침이나 보호규정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윤미 사무국장은 “성폭력 피의자가 기관에서 교육받는 것과 동일하게 피해여성을 교육시키는 방식에서 탈피해야”하며, “본인의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피해여성을 감호 처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새움터는 법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안에서 관련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살펴볼 계획이다.
조국 교수도 “이번 법이 성착취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성매매피해자’와 구별되는) ‘단순성매매’ 여성의 신체와 재산을 즉각적으로 보호하는 규정이 누락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성매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바로 이 순간 성매매 된 여성들이 현장에서 자신의 몸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유럽의 성매매관련법에서 규정된 성매매시 콘돔 사용의 의무화, 성매매에 기초한 법적 청구권의 인정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련 단체들은 성매매 피해여성의 인권침해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 자체의 존재만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법 집행’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은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 경찰의 법 해석과 집행 노력이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조국 교수는 일례로 “국내인이 성매매가 합법인 나라에 가서 성매매를 하거나, 이러한 관광을 알선하는 경우 국내법으로 처벌 가능하다”는 해석이 가능함을 시사했다. 우리 형법에 따르면, 외국에 가서 성매매를 하는 등 처벌법상의 범죄행위를 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섹스관광’ 알선업자는 ‘성매매알선 등의 행위’로 처벌되고, ‘섹스관광’ 참여자 역시 성매매처벌법 조항에 적용된다.
성매매 근절과 피해여성 인권에 전향적인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법안의 적극적인 해석 의지와 노력이 필요할 때다. 또한 한계로 지적되고 있는 ‘성매매 피해자’ 규정에 대해서도, 선불금 등 채무관계로 인해 성매매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을 감안해 이들을 모두 ‘피해자’로 볼 수 있도록 경찰, 검찰, 법원의 법 집행과정에 있어서의 탄력적인 대응 또한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