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럼] ‘빈곤의 여성화’ 부추기는 FTA
[경향신문 2007-04-22 20:33]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지도 벌써 20일이 지났다. 격렬한 반대시위와 논란 속에 타결되었을 뿐 아니라 향후 우리 국민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칠 사안임에도 후속작업에 대한 움직임이 잘 들리지 않는다. 미국은 협상이 타결된 직후 의회와 민간 전문가 700명이 협상 전문을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객관적인 자료와 정밀한 분석 결과를 공개하기보다는 국민들에 대한 홍보와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회가 요구하는 협정문 공개도 성실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저임금·고용불안 강요 가능성-
협정문을 검증하고 비준해야 할 국회 역시 이를 분석할 최소한의 시스템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국회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행정부 감시라는 입법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살려서, 사실상 양해각서(MOU) 수준인 이 협상안을 비준할 것인지 여부를 국회가 엄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한·미 FTA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성계도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세계화 이후 ‘빈곤의 여성화’가 가속화되는 현실 속에서, 빈곤층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여성에게 한·미 FTA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계 역시 절대적인 정보 부족 상태에 있으니, 에둘러서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투자자-국가제소제도를 통해서 정부의 정책 자율성이나 국민의 경제주권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고, 시민사회가 요구해온 경제의 공공성이 더욱 약화될 소지가 크다.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 여성이 담당해온 육아나 간병 등의 돌봄노동이 사회화되지 않고서는 일과 가정의 병행이 어려운 현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각종 사회 서비스의 공공성 제고가 요구되는 현실 속에서 한·미 FTA는 이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압박하지 않겠는가?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 시민사회 일각에서 한·미 FTA보다는 한·유럽 FTA를 먼저 체결할 것을 요구했던 것은 유럽의 경우 공공성이 높은 사회 시스템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전반적인 공공성 약화에 대한 우려 외에도, 한·미 FTA는 농업분야의 생산 감소로 농업노동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여성농민의 노동 강도를 강화하거나 퇴출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여성농민의 삶이 열악해질수록, 농촌은 다시 외국인 이주여성으로 채워지면서, 이들에 대한 다양한 인권침해가 일어날 우려도 없지 않다. 또한 여성이 담당해온 사회 서비스는 더욱 저임금과 고용불안 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염려는 이미 FTA가 체결된 타국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공공성 약화’ 대응방안 시급-
이미 NAFTA를 체결한 캐나다의 경우 정부기관 ? 병원 ? 학교에 근무하던 여성은 전체 여성노동자의 4분의 1을 점하였으나, 이제 그 숫자는 대폭 감소하여 다수가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로 전락하였다. 물론 이가 FTA란 단 하나의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방의 압력은 공공성을 약화시키지 그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태국의 경우에도 미·태국 FTA로 국내에서 생산되던 에이즈 치료제는 더 이상 사용될 수 없게 되었고, 비싼 약품가격으로 인해 가난한 성매매 여성이나 감염자의 건강권은 더욱 위협받게 되었다.
이제라도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내용 전체를 국민에게 솔직히 공개하고, 이것이 초래할 긍정적,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보다 치밀한 분석 및 대응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당연히 여성에게 끼칠 결과를 분석하는 성별 영향 평가도 신속히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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