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락 강요... 빨리 출동해달라" 경찰, 구조요청 두 차례 외면했다
[오마이뉴스 2005-03-30 19:00]
'미아리 화재참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경찰의 부실 수사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화재로 중상을 입은 피해자 송모(29)씨의 신고가 경찰에 의해 사실상 한차례 더 묵살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송씨는 지난 27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어난 화재사건 전날인 26일 "무섭다, 이모(업주) 때문에 전화하지 못한다, 긴급 출동 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경찰에 보냈다. 경찰은 새벽까지 조사를 하고도 업주를 불구속 입건하고 피해 여성을 업소로 되돌려보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더욱이 송씨는 언어장애 등이 있는 '정신지체 3급' 장애인으로 알려져 경찰 수사에 거센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송씨는 그 전날(25일)에도 경찰에 구조를 요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송씨는 화재사건이 일어나기 이틀 전, 112로 전화를 걸어 "미아리 00정 0-00번지, 업주가 윤락행위를 강요한다, 전화하지 말고 경찰 빨리 출동해 달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의 구조를 요청했다.
이같은 신고내역은 서울지방경찰청에 남아 있지만, 해당서인 종암경찰서는 확인을 거부해 은폐 의혹까지 낳고 있다. 이와 관련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경찰기록에 따르면, 종암서 해당 지구대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이미 산회하고 혐의가 없어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유가족과 여성계가 주장하는 업주-경찰 간 유착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같은 업소에 대한 3차례 신고, 수사는 단 한번
▲ 27일 낮 화재가 발생해 잠을 자던 여성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태에 빠졌던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미아리 집창촌 한 업소.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화재가 일어난 업소에 대한 신고는 더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20일 새벽 112 신고를 통해 "동생이 감금상태에 있다"며 같은 업소에 대한 전화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가 확인됐다. 이에 대해 종암서측은 "감금사실이 없어 오인신고로 처리했다"며 신고자의 동생이 송씨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업소에 대한 신고가 연거푸 3차례나 접수되었음에도 수사는 단 한차례 밖에 이뤄지지 않은 데다, 그 역시 불구속으로 처리돼 부실 수사가 화재 참사를 낳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한편 열린우리당은 30일 오후 미아리 화재사건과 관련 긴급 당정협의를 갖고 이번 사건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다.
조배숙 의원(제6정조위)은 이날 당정협의 내용을 브리핑하며 "송씨의 경찰 진술서를 확인해 보니 성매매행위를 했는데 강요를 받지 않았다고 쓰여 있더라"며 "신빙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경찰 수사에 강한 의혹을 드러냈다.
또한 조 의원은 "업주인 고모씨의 전과가 24범이고 그중 윤락행위에 의한 전과가 19범인데 성매매를 알선하고 장소를 제공한 혐의가 있는 사람에 대해 불구속 입건 후 귀가 조치했다"며 "겉치레 수사"라고 주장했다.
경찰 "전면 재조사"... 여성부 "단계적으로 집창촌 폐쇄"
이날 회의에 참석한 허준영 경찰청장은 "재수사를 통해 성매매 강요 여부, 감금 여부, 업주와 공무원의 유착 여부 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성매매방지법에 따라 유사·신종업소를 단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장하진 여성부 장관은 "올 연말까지 전국적으로 성매매 집결지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집창촌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이를 위한 법 제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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