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칼럼]질환의 기억_유나

질환의 기억
 
날이 쌀쌀해질 무렵 허브찜질팩을 마련했다. 발을 전체적으로 둥글게, 발목까지 감싸주는 찜질팩을 차고 누우면 이불 안에 온기가 가득 찬다. 작은 찜질팩 하나는 배 위에 얹고 종종 저린 왼 팔목을 그 위에 얹는다. 뜨끈한 팩 기운에 몸을 맡기고 꾸벅꾸벅 졸다 보면 나를 다녀간 손님들이 떠오른다.
 
이룸 사무실에 처음 출근 하던 2년 전 비염과 먼지 알러지님이 내 코에 머물렀다. 콧속이 간질간질하여 재채기를 하다보면 콧물이 흐르고 흐르는 콧물을 닦다보면 코가 벌겋게 트는 악순환을 유지했다. 집에서 잘 때면 물을 떠다 놓고 잤고 사무실에 작은 가습기도 틀어보았으나 봄이 지나도 계속 되어 곤혹스러웠던 기억.
 
작년까지 속쓰림, 식체, 소화불량님도 주기적으로 방문했었다. 건강 챙기겠다고 매일 먹던 사과 반 알과 요거트가 원인일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과일과 요거트 등 산이 들어간 음식 섭취를 끊었다. 그래도 식체는 자주 찾아왔고 밤에 저녁을 먹고 나면 거북한 트림만 할 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잠을 청했던 기억도 난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장기 거주하시던 어깨 통증님은 어깨 내리는 연습과 스트레칭 뒤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오래 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발목과 손목 저림님이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비싼 한약도 먹고 뜸도 꾸준히 뜨고 무척이나 아파 맞고 나면 움직이기가 힘들던 약침도 맞아봤지만 여전히 내 몸이 마음에 드는지 떠날 생각을 안하는 발목 손목 저림에 울적했던 것이 올해 여름의 기억이다.
 
약침을 버틴 덕인지, 빠르고 많이 걷던 습관을 바꾼 덕인지, 냉온욕을 해서인지 ……. 발목 손목 저림을 손님으로 맞은 뒤 손님맞이를 워낙 열성적으로 했던 터라 정확한 이유 하나를 꼽을 수는 없지만 발목 손목 저림도 가을 무렵부터 어디론가 떠난 듯 했다. 그리고 쌀쌀해지는 요즘 다시 방문하시려기에 허브찜질팩을 샀다. 뜨끈하니 발을 덥혀주는 팩 덕분에 요즘 저림이라는 손님은 자주 다른 곳으로 출타중이시다.
 
지금도 머물거나, 다른 곳에 갔다가도 종종 다시 방문하는 나의 다양한 질환 손님들. 다행히 소화불량님, 어깨통증님은 아직도 출타중이시다. 가시는 길 편안하고 즐거워 뒤돌아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내 몸에 머무는 생리통님, 저림님도 자알 대접하다 언제 가셨는지 모르게 평안히 보내드리고 싶다. 꼭 보내드리고 싶다. 꼭! 

 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