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써야할 돈, 쓸 수 있는 돈, 벌 수 있는 돈 : 영혼을 갉아먹는 돈과의 삼각관계

 


써야 할 돈, 쓸 수 있는 돈, 벌 수 있는 돈


|영혼을 갉아먹는 돈과의 삼각관계


 



 


2000년대 이후부터 20대 여성들의 과소비 행태를 지칭하는 된장녀논란이 있어왔다. 그 이미지는 명품백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든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언론 및 누리꾼들의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러한 여성의 과소비에 대한 고발에 묻혀 남성들의 씀씀이는 잘 거론되지 않지만, 비즈니스라고 포장된 남성들의 유흥비·접대비의 과소비 규모가 더 크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반론이 가능한 이유는 이를테면 골프장과 룸살롱 출입을 하는 남성들의 수와 소비규모는 어마어마해서, 강남의 룸살롱 거리가 강남 지역 상권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된장녀에 대한 비난은 여성 혹은 여성 소비에 대한 혐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별별신문은 이 글에서 여성/남성으로 나누어 누가 더 과소비 하는가를 가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녀노소 혹은 경제적 계층을 떠나, 노동하는 현대인들의 소비규모와 욕구가 자신의 경제적 능력치를 벗어나 심지어 고통스러운 삶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사실 모든 소비는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생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욕망을 얼마나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을까?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벌 수 있는 돈과 우리가 갖고 싶고 소비하고 싶어 하는 돈의 규모는 일치할까? 욕망이 채워지는 만큼 우리는 행복할까? 그 욕망은 어떤 욕망이고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에 대해 독립계재무상담사인 최문희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행복을 공식으로 표현하면 소유 ÷ 욕망으로 나타낼 수 있다. 공식대로라면 바라는 마음은 100인데 가진 것이 80일 때 행복은 20점이 부족한 80점이 된다. 행복점수를 100점으로 만들고 싶다면, 가진 것을 100으로 늘리는 방법과 바라는 마음을 80으로 줄이는 방법이 있다. 어떤 방법이 더 쉬울까? 애써 소유를 늘리는 것 보다는 욕망을 줄이는 것이 훨씬 쉽게 보이지만 현실은 거꾸로 되는 경우가 많다. 욕망이라는 마음을 다루기가 여간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소유에 대한 욕망을 집요하게 부채질 하는 소비사회다. 타인으로부터의 소외경쟁평가에 노출될 때 욕망의 꿈틀거림은 시작된다. 이에 압도돼 욕망에 굴복하면 삶은 피곤해진다.


 


 


타인의 시선에 의한 욕망만이 소비의 굴레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사치스러운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은 생계의 무거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의 생활비, 수술비, 카드빚 등 각종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설사 타인의 시선에 의한 욕망에서 일을 시작했다 할지라도, 이미 형성된 성산업의 경제구조는 온갖 채무관계를 만들어내서 여성들이 과중한 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방해한다.


 


 


 


 


몇 년 동안 룸살롱에서 선수로 일한 여성 T씨가 일을 시작한 이유가 가난은 아니었지만, 한 번 일을 시작하니 일을 그만둘 수 없을 정도로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졌다. 술과 담배연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밤에 잠을 못 자고 남성들의 분탕질과 손찌검에 시달리는 것에 대해 누구는 즐긴다고도 하고 혹자는 쉽게 돈 버는 일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그 어떤 노동보다 멘탈 붕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많다. 이런 사정을 가진 여성들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과연 단순한 과소비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과연 현대의 소비사회에서 특히 유흥 시장 안에서 내 경제의 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생계의 부담이나 소비에 대한 사회의 부추김이 너무 과하다 못해, 나의 능력 밖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서부터 자유로움은 시작되지 않을까? 흔한 예는 아니지만 이태원 업소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일하고 있는 여성 L씨는 예전에는 몰랐는데, 적은 돈으로 조금씩 쓸 데에만 쓰는 지금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수급자로서 살아가는 데에 큰 불편을 못 느낀다고 한다. 모두가 이 여성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개인 경제의 문제가 내 탓만은 아니다라는 위로와 함께, ‘내가 내 욕망의 주체가 되어 소비를 통제하려는 부단한 노력에도 응원을 보낸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가난한 우리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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