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이상한 성매매 나라의 경제 이야기: ‘자유로운’ ‘파산불가능한’ 여성들

이상한 성매매 나라의 경제 이야기: "자유로운" "파산불가능한" 여성들 
토론회 후기 
 

12월 3일 오후 네 시, 이룸은 김주희 님의 논문 "한국 성매매 산업의 금융화와 여성 몸의 ‘담보화’ 과정에 대한 연구(2015)" 발표 및 토론회를 열었다. 장소는 홍대 인근의, 비혼여성 일인가구를 위한 카페 겸 강의실이 있는 ‘어슬렁 정거장’이었다. 눈 소식이 예정된 궂은 날씨에도 성매매피해지원시설 상담원, 이룸 후원회원, 성인지교육자, 페미니즘/퀴어 연구자들과 활동가들, 학생들, 예술가, 번역가, 대안사회활동가, 기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이룸에서는 세미나와 토론문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청중들과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지 그려왔기에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으로 토론회의 문을 열었다. 

 
토론회에서 중점을 두고 나눈 내용은 논문의 4장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일상적 재생산의 금융화와 '자유로운' '파산불가능한' 여성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짧은 버전 원고를 함께 보았다. '자유로운' '파산불가능한' 이라는 이질적인 두 단어를 나란히 배치하는 힘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거의 한 시간에 걸쳐 속도감 있는 발표가 이어졌다.
 
저자는 발표의 서두를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열었다. 저자는 현장 활동에서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하고 여성들 스스로도 그렇게 얘기하는데, 실제로는 왜 가난한 것일까?   
 
이제껏 반성매매 운동은 이 질문의 답으로 포주에 의한 착취를 제시하였다. 포주와 아가씨 간의 인격화된 관계를 따라 여성들은 착취를 착취로, 피해를 피해로 구성해나갔다. 구체적인 누군가를 폭로하고 고소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심화 속에서 정치경제적 지형이 변화하고 있고 그 안의 성매매 역시 마찬가지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재판 진행 중인 ‘조양은 사건’을 소개하면서, 강남의 대형 룸살롱 출현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성매매로 얻어질 수익을 전제로 한 차용증 다발에서 비롯한 신용을 토대로 형성된 이 공간들의 발생은 성산업 전반을 재조직화 하는 사건이었다. 이 공간들을 어떠한 경로로든 거쳐 가는 여성들을 저마다 이중 삼중의 대출을 끼고 이윤을 낳는 주체로 탄생하게 만드는 변모의 공간이 바로 이러한 성매매 업소들이다. 그럼에도 조양은 사건의 재판이 선불금 차용증이 위조되었다는 사실만을 두고 다투고 있다는 점은 현재의 법제도가 이 신용대출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여성들은 비인격화된 대출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계획을 세워 성매매 업소에 진입하고 머무르면서, 더욱 자발적이고 효율적으로 아가씨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일 경험을 재해석하는 과정은 이전과는 다른 질문들에 도전받게 된다. 내가 빌려서 내가 쓴 돈을 내가 갚는 과정, 나와 금융 사이에 아무것도 끼지 않은 공정하고 합법적인 계약을 이행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미 맺어진 계약을 뒤로한 미래의 노동은 얼마나 어떻게 착취하든 관계없이 과거의 채무에 대한 지불로서 수용이 되고 있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왜 '가난'한가? 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저자가 만난 사례들을 통해 가난하다는 것은 노동을 멈출 수 없다는 의미임이 드러난다. 금융 피라미드의 말단에서 자유롭지만 파산불가능한 상태로 노동하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가난일지 모른다. 풀옵션원룸이나 성형 등 여성전용대출, 아가씨 대출은 여성채무자들의 원죄가 아니라 착시효과를 만들어 몸을 저당 잡으려는 덫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밀도 높은 발표가 끝나고 이룸의 토론문 및 참여자들의 질문에 대한 저자와의 대화가 이어졌다. 성산업을 거쳐 간 여성들의 몸을, 금융 자본주의의 밑바닥을 가장 적나라하게 현상하는 몸으로서 재구성하려는 논문의 시도를 둘러싸고 이야기 하였다. 부채를 섣부르게 정상화하면서 이미 성매매 안팎이 모호해져버린 사회 안으로 여성들을 끼워 넣기보다 이 몸의 존재, 몸의 현상 그 자체를 정치적으로 응시하고 설득하며 진짜 ‘적’에게 한방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나누었다. 여성들이 탈성매매 자활의 프레임 속에서 끊임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결핍 때문만이 아니라 가장 정확하게 가부장적 자본의 회로를 따라 움직이는데 성공한 육체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육체는 젠더폭력이나 빈곤, 사회적 차별과 배제 어느 하나로도 환원할 수 없는 사회적인 트라우마 그 자체로도 읽힌다. 그리고 성경제를 살아가는 모두의 육체와 이어져있다. 폭력과 고통은 마냥 부정되고 치유되어 없애버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지혜와 통찰을 주는 성격의 것이기에, 이 몸들로부터 하나의 제안, 당사자성, 연대의 지점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성산업보다, 대출상품보다 ‘매력적인’, 진실한 이야기를 생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던져보았다.
 
한편 이런 큰 얘기를 다루고 쓰면서 무력할 때는 없었는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는지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성의 거래는 점점 전면화 되고 있고, 성적인 타자들을 향한 억압 역시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적 죽음이 만연하다. ‘여성운동’의 의제들과 정책들이 이 현실을 쫓아가기가 쉽지 않고, 이 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범위의 일이기는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독자들을 떠올리면서 동력을 찾을 수 있었다고 답변하였다. 적대와 환대를 선명하게 할 필요가 있음을, 정의와 부정의의 변증법은 단순한 흑백논리가 아님을 이야기하였다. 저자의 이런 집요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토론회에 함께한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논문을 곱씹고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만큼, 또 시공간의 제약 상 아쉬운 토론을 마무리하였다. 앞으로 논문이 많이 읽히고 언급되면서 비판과 논쟁이 활발히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이룸에서는 내년 한해 알찬 활동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