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참여자 후기 1탄 by 현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과거 영국의 지주들이 경작지에서 농민을 몰아내고 양을 기른 것을 빗대어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말했다면, 한국에서는 재개발이 사람들을 집어 삼키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미명 아래 극소수의 지주와 투기자본만이 이득을 보고 대부분의 주민과 세입자는 삶의 공간을 잃은 채 이전만 못한 곳을 전전하게 되는 것이 현실의 재개발이다.

 

집결지 재개발, 그리고 생존권

 

국가의 묵인과 암묵적인 관리 속에 만들어진 성산업 집결지 역시 이런 재개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청량리 뿐만 아니라 미아리, 이태원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편 이런 집결지 재개발 현장에서는 어제까지 성산업을 운영하던 포주가 어느 순간 철거민이 되어 성판매 여성의 생존권을 주장하는가 하면 또다른 포주는 성판매 여성들에게 불법이란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몰아낸다.

 

피아의 구분이 없는 지난한 싸움 중에 성판매 여성들의 생존권은 유명무실해지고 미처 건설업자로 탈바꿈하지 못한 성산업의 착취자들은 적지 않은 보상금을 받아 다른 지역에 새 업소를 차린다. 여성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빈곤과 폭력은 새로운 건물과 각종 개발에 묻혀 비가시화된다. 자본과 권력으로 구조화된 폭력의 재생산에 비해 피착취자들의 저항은 힘에 부치기만 하다.

 

대구 자갈마당과 제2, 3의 청량리

 

실제로 모든 것을 이윤의 대상으로 삼는 자본주의에서 집결지의 여성과 공간은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수는 퇴거와 철거를 막고 생존권을 확보하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 공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적 변화와 개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대구 자갈마당의 자활사업 조례 역시 지역의 수많은 단체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대라는, 어찌 보면 비어있고 별 힘이 없어 보이는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그 공간에서 억압받고 착취받은 이들의 기억과 삶, 역사 그 자체다. 성판매 여성으로 자갈마당에서 삶을 살아가게 한 이 사회와 구조를 지켜봐온 피억압자의 기억이 역으로 그들의 생존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개입을 가능케 했다.

 

물론 청량리와 자갈마당은 다르다. 공무원과 지역 조폭이자 포주가 합심하여 수십억대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기소까지 된 것이 청량리 재개발이었다. 제2, 제3의 청량리가 될 서울 내 집결지 역시 각기 상황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현실에서 집결지 폐쇄 또는 성매매 합법화 같은 양자택일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재개발에 대한 접근만으로 또는 성산업에 대한 판단만으로 집결지 재개발을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룸의 딜레마, 자본주의의 딜레마

 

집결지 재개발에 대한 이룸의 딜레마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상품화하면서도 억압과 불평등에 고통받아야 하는 자본주의의 딜레마와 닮아 있다. 특히 상품되기를 포기하는 것이 삶의 포기와 맞닿아 있는 사회에서 상품되기 말기와 같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러한 선택이 강제되는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하듯이 집결지 재개발과 성산업 사이의 딜레마를 드러내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이번 토론회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만큼이나 문제를 명료히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이번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토론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하고 또 이어질 것이다. 그 이름이 토론회가 아닐 지라도 대부업과 성형대출의 연결고리를 폭로했던 것처럼 성산업의 문제와 재개발의 문제가 사회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저변에 깔려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짧은 토론회 시간 동안 방대한 고민을 정리해서 발제하신 별님과 복잡다단한 내용들을 함께 정리하느라 고생하신 이룸 활동가들에게 고마움과 응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이 가는 길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지혜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시에 듣는 이가 책임을 나눠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여러모로 활동력이 부족한 회원이라 매번 토론회에만 참석하게 되는 것 같지만 덕분에 항상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하게 된다는 점,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후기 아닌 후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