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한꼭지]활동가의무기력_고진달래

활동가의 무기력
고진달래

이십대 난 활동가라면 완벽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자기 관리에서부터 활동량, 도덕성까지 그 높은 수준을 상정해놓고 나에게 또는 동료 활동가에게 참으로 엄격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은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과 부딪치게 되는데 그럴 때도 이게 현실적인 한계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쩔수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 그것은 나의 무엇을 자극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죄의식과 수치심이였다. 그녀들에 비해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내겐 늘 죄의식이 밑바탕에 있었고, 할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 같은 내 능력에 대한 수치심이였다. 이 강한 감정들이 밑바탕에 깔려있었으니 내 활동은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활동가들의 삶이 그런것 같다. 내가 더 움직이면 뭔가 더 변할것 같은,  찬 바닥에 있으면서도 얼음물로 들어가야할 것 같은, 내가 쉬면 내가 웃으면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무슨 물건을 살라치면 이 돈이면 00는 지금 농성중인데 싶은..나의 욕구는 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파닥거리면서 생동감있게 살고 싶은  자유에 대한 갈망 뒤에 함께 따라붙는 묵직한 죄책감은 20대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것 같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과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이 크나큰 괴리때문에 활동가들은 이중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괴리만큼 그래서 마음의 병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곳저곳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다는 활동가들의 소식들이 들려온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등은 자신을 향한 분노라면 난 밖으로 타인을 향해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이들 또한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올 3월에 복귀를 했으니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요즘 만난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난 우리가 왜 이렇게 정신적으로 지치고 피곤한지를 생각해봤다.

철거를 앞두고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는 어수선하다. 진작에 다른 곳으로 떠난 이들도 있고 남아 있는 여성들 중에는 끝까지 악으로 싸우겠다는 이들이 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보상도 없을 뿐더러 강제철거를 당할 불안을 안고 일을 할수 없다며 끝까지 남겠다는 이들을 위해, 철거 관련해서 무엇을 할수 있을까 몇 단체에게 문의를 해보았다.  여성들의 억울함과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만히 있을수 없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현실적으로  할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다른 철거 투쟁과정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여성들에게 실질적으로 할수 있는 일은 다른 철거투쟁의 과정들을 알려주고 실질적인 정보를 줄 뿐이다.  함께 싸우려고 동지동맹을 맺고 있는 업주와 여성들의 사이에 어떤 결과를 주게 될지 알수 없지만 여성들에게 해줄수 있는 ‘그만큼’을 인정하는게 힘이 빠졌다.

정신분열을 안고 있는 중년 성판매 여성의 경우, 업소를 나와 거리 생활을 하면서도 쉼터 입소나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우리가 제안할수 있는 대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차례 쉼터를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병원을 거부한다고 하면 우린 무엇을 할수 있을까, 이 복지 시스템 안에서 실제로 우리가 건넬수 있는 패는 없다. 그게 답답하다.

성매매 업소 안에서 일어날수 있는 성폭력 사건들이, (경찰/검찰)조사가 진행되면서 성매매 사건으로 되면서 여성들이 겪은 폭력은 어느 순간 없어지는 일들을 피해받은 여성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 것일까. 성매매를 전제했어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상황을 왜 성폭력이라고 주장하는게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법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가 증명해내야하는 일들은 일상통념과의 싸움이다.

이번주에만도 이 몇건의 사건들을 통해서 이룸 활동가들은 우리가 할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들로 혼동스러워했다. 한숨을 쉬면서 지랄같은 현실을 개탄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 것일까 한탄하면서..

이건 무기력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앵간하게 단단하지 않고서는 버틸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지쳐가면서 아프든지 아니면 내면의 버거움을 억압한채 무장을 한다. 둘다 위험한 방식이다. 다들 어떻게 버티면서 활동가의 존심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을까?

언제 각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 한번 만나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