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한꼭지]우리들의, ‘소진’_고진달래

[상담한꼭지] 우리들의, ‘소진’_ 고진달래

어느 순간, 갑작스레 활동가로서 자긍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활동에 대한 열정은 활활 태워져 허공을 떠돌고, 여성주의자를 지탱시켰던 에너지는 바닥을 칠 때가 온다. 한때는 나를 살아있게 했다고 믿었던 공간은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어지고, 나에게 삶을 드러내는 여성들의 사연들이 지겨워질 때, 활동가로서의 수명은 다 했다고  느껴진, 7년 전  난 그렇게 이룸을 떠났다.

어느 순간 모든게 지겨워졌었다.

그때 난 뭐에 그렇게 지쳐있었을까.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때 난 성판매경험 여성들의 삶에 많이 짓눌려 있었다.

집결지에 있는 여성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25살에 처음 시작한 이 일은, 그때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들로 내 가슴을 한 가득 메웠다. 버겁지 않은 척하며 애써 담담하게 그녀들의 사연들을 들었고, 그 처연함과 슬픔이 늘 나를 지배했다. 순간순간 이유없이 복받치는 눈물로 난 당황해했다. 아마 그 눈물들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싸인이였던거 같다.  

집안을 돕기 위해 악착같이 손님을 받으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수줍음 많은 내 또래의 그녀, 전전하면서 집결지, 안마, 집결지, 안마를 돌고 도는 떠돌이 친구 그녀, 약을 먹고 정신줄을 놓은 그녀, 죽겠다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던 그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한 그녀, 정신지체로 아저씨가 억지로 시킨 일을 사랑이라고 믿던 그녀, 아이를 데리고 옆방에서 남자를 받아야했던 그녀, 젊은 시절부터 성매매 집결지를 떠나지 못하던 내 엄마 또래의 그녀… 그녀들과 오랜 시간을 만나왔기 때문에 난 어쩌면 그녀들의 삶에  빠져있었다. 그녀와 비교되던 내 삶을 미워하고 자책하면서… 내가 그녀들에게 남긴 말들에 상처 되는 것들은 없는지 반성하면서…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한계들을 떠안고 있으면서 그게 내 능력의 탓인양 늘 나를 들들 볶았다. 그리고 더 잘 만나야한다고 몰아부쳤던거 같다.

지금 시간이 지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난 나를 자학하듯 대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을 몰랐었다. 나를 탓하지 않고도 나를 괴롭히지 않고도 그녀들의 삶을 마주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웃으면서 서로를 토닥여 줄 방법을 몰랐던거 같다. 그랬던 난 같이 일하는 이루머들에게도 참으로 박했던거 같다.

지금의 난 조금은 가벼워지고 싶다. 마음의 공간 하나는 남겨두면서 여유롭고 싶다.

우리가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아남았을 때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찾아오는 그녀들 또한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싶다. 비록 어느 실수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자책할 일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의 것들은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일이였음을 인정하고 싶다. 그 일로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울면서 자책하지 않고 싶다.

그리고 난 그녀들과 슬픔과 고통으로만 연결된 것이 아님을, 그녀들에게 웃음과 기쁨과 유머를 주고 싶다. 우리의 삶이라는 건, 슬픔이 승화되어 결국은 이 곳이 살만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런 웃음과 유머는  늘 준비해두고 싶다.

상담한꼭지, 의 주제로 뭐가 좋을까 했을 때 딱 ‘소진’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글은 아마 활동으로 건강하게 살아남고 싶은 나의 다짐이지 않을까.

그렇게,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