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한꼭지]성판매 여성이 성폭력을 이야기할 때_별

 성판매 여성이 성폭력을 이야기할 때_

 

1. 단순 성매매

 

박유천 사건 봤죠? 무고로 된 거. 이 사건도 그렇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이 말을 들은 건 조건만남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몰카 유포 협박)의 가해자를 특정하려고 수사를 받던 도중이었다. 내담자는 가해자가 이런 수법에 능숙해 보였다고 했다. 지금까지 수차례 해봤을 것 같고 앞으로도 할 사람일게 너무 예상이 되는.

 

진술서 작성을 마친 수사관은 주위에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CCTV 상에 찍힌 모습이 평범한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며 강제성 입증이 희박해 성폭력이 아닌 단순 성매매로 처리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어쨌든 행위자 처벌을 감수하고 신고한 점도 있고 하니 자기는 피해자를 믿고 싶다, 대신 대질조사에서 강하게 어필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 말끝에박유천 사건 무고를 덧붙였던 것. 조사동행 나가기 전 사무실에서박유천 사건 무고되면 앞으로 언니들이 더 불리해질텐데라는 얘기를 나눈 게 스쳐지나갔다.

 

2. 말이 안 되니까 불리하다

 

분명 일련의 무고 사건들의 쟁점은 여성들의 거짓 진술 여부가 아니라 여성들의 진술에 대한 사법 기관의 해석에 놓여있다. 성매매 공간에서 발생한 법률 사건에 여성주의로 개입하여동의 아닌 강제를 입증하는 일, 여성 개개인이 아닌 다른 장소에다 사건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일은 어떤 부당한 인식과 부딪치는가.

 

성별 권력관계가 문제인 사건을 이야기할 때, 여성의 위치에 놓였던 사람이 당시 그렇게 행위 한 이유나 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통상말이 되는인과의 나열은 피상적이고 빈약하여 실제와는 맞지 않는다. 이해의 공백, ‘말이 안 되는것들의 목록이 가부장제 사회의 내용이자 반증으로서 남녀 관계의 회로 구석구석을 순환하고 있다. 사건의 객관을 벌충하거나 진위 여부를 따져본들 여성은 자주 불리하다. 애초에 저울의 한쪽이 크게 기울어진 협상 아닌 협상이었다는 걸 입증하기에 통상의 언어는 무디어 좋은 도구가 되어주질 못한다. 잘해봐야 본전을 못 뽑는 협상을 엎어버리고 협상 자체를 문제 삼는 여성들에게 사회는 어디가 모자라다거나 아니면 대가를 바란다는 혐의를 덧씌워 말할 자격을, 말의 의미를 차단한다.

 

웃는 것, 순순히 응하는 것, 정보를 제공하는 것, 다시 만나는 것, 따라가는 것, 술을 먹거나 옷을 벗는 것, 성관계를 하는 것, 애교를 부리거나 친근하게 부르는 것, 부탁을 들어주는 것, 신뢰하는 것 등 여성에게는 치열한 줄다리기의 언어였던 행위들이 막상 수사의 심사대에 오르면 전부 동의의 사인으로 퉁쳐진다. 실제로는 이러한 행동들과 동의의 의사를 매끈하게 연결 짓는 상상, 정말 원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행동이 가능했을 거라는 상상 자체가 굉장히 편협한 것인데도 그렇게 된다. 여성의 몸으로 관계 맺는 행동들은 조밀하게, 그의 삶이 가능했던 한계 내에서의 감정과 판단, 줄곧 여성이어야 했던 경험의 영향을 수반한다. 그 몸이 놓인 성매매 공간이라는 배경과, 이 관계에 약속된 대가는 가부장제의 면피로서의 여성의 동의라는 가설을 더욱 강화하고 정당화해주기에 수사를 받는 성판매 여성들은 한층 더 불리하다.

 

3. 여성의 권리, 여성이 아닐 권리

 

여기선 여성을 특정해서 칼로 찔러도 여성혐오가 아니고, 성판매의 자발성이라는 관념이 여성의 법적 책임과 처벌의 근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선 여성으로서의 인간이 주로 불리하다. 여성의 인권과 시민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을 새겨 넣는 과정이다. 여성의 권리는 잘 짜인 법의 실행으로서가 아니라 법에 들어맞지 않는 여성이라는 이질이 만들어내는 잡음 속에서 그나마 그 형체를 가늠할 수 있는 어떤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의와 강제, 그러니까 성폭력과 성매매의 경계 따위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남성에게 여성의 동의는 당연하고, 여성의 거절은 불가능할 뿐, 여성은 섹스에 동의하거나 화대를 받을 수 있을 뿐 섹스를 거절할 역량이나 권리를 지닌 몸이 아니었을 거다. 여성의 몸은 그런 기능이나 역할을 할당받지 못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성으로 된다. 그렇기에 그 여성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가 남성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되어 무고’ '명예훼손' 아님 '성매매 행위자' 라는 처벌을 받는 거다. 나와 섹스해주지 않는 여성, 섹스 해놓고 딴소리하는 여성에 대한 불만과 비난은 말이 되는 소리로 인정이 되고 여성에게 있어서 섹스가 함의하는 근본적인 비대칭성은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애초에 법이 남성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닐 진데 성폭력과 성매매의 경계를 깔끔하게 읽어내어 여기까진 성매매, 저기까진 성폭력으로 분류, 처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언가 에러가 생길 것이고 성판매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으로 의미화하고자 할 때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야말로 가부장제가 여성에 덧씌우고 있는 편견을 드러내는 과정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매매와 성폭력을 함께 이야기 할 때 성범죄율 같은 걸로 연관 짓는 게 아니라 성매매 공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동의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의 경계에 주목할 때, 이 여성의 몸이 넘어가는 경계에 대한 가부장제의 평가와 시선을 드러낼 때 무언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성판매 여성의 성폭력을 이야기 할 때, 성매매 과정에서 동의할 수 있는 것의 분기점으로서의 성폭력을 분리해 내는 것을 넘어서 그 경계가 법적, 통념적으로만 존재하면서 여성을 불리하게 만들 뿐 실제 권리로는 기능하지 않음을 설명해 내어야 한다. 성판매자들은 성매매의 연장선상에서 성폭력을 경험하고, 성폭력의 연장선상에서 성매매를 경험한다. 화대를 받지 않아서 성폭력이 되기도 하고, 화대를 받았기 때문에 성매매가 되기도 하는데, 근데 법적으로는 모두 단순/자발적 성매매, 동의한 성관계가 되나, 이 동의를 결정한 것,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여성일 수 없다. “시키는 대로 하면 대가를 줄게(=중간에 그만두면 넌 이 대가를 못 받아.)”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수치스럽지 않은, 과도하지 않은, 모욕적이지 않은, 할 만한 서비스를 결정할 협상력, 권리를 부여받은 '여성', 현행 법의 강제성 기준을 만족시킬만큼 저항할 수 있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