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한꼭지] 퇴사의 비법

 

퇴사의 비법 _기용

 

작년 초 불량언니 작업장 레몬청을 두 번째 담그던 날이었습니다. 두 번째이긴 하지만 첫 번째는 소량이었고 그렇게 많은 양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죠. 그 날은 정말… 혼란과 혼돈의 도가니였고 저는 진지하게 퇴사를 생각했습니다.

퇴사사유 : 레몬청 (여러분 레몬청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저는 당시 前 이룸 활동가이자 아주 근래에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백수가 되신 분을 찾아갔습니다. 이룸이 거의 첫 직장이나 마찬가지인 저는 퇴사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퇴사의 이유와 비법을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만남의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어도 그 분은 마치 다 알고 계시다는 듯 퇴사 전 다니던 회사에서 말 그대로 ‘매일을 울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그래… 나는 레몬청 때문이지 매일 울지는 않으니까… 레몬청을 매일 담진 않으니까… 아직 그만둘 때는 아닌가보다… 힝..

시무룩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퇴사를 고민할 때는 여기 있는 게 나을지, 나가는 게 나을지를 재보게 되잖아요. 어차피 일은 계속 해야 하는데, 다른 곳에 갔더니 더 열악하다면 여기 있는 게 나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은, 아 내가 지금 이렇게 괴로운데 이 정도의 괴로움이면 나가서 어떤 괴로움이 있든 그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있다가는 정말 이룸이랑 척짓고 싶어질 것 같았거든요. 이때구나 싶었습니다. 턱 밑까지 물이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이미 좀 헐떡거리고 있던 상태이기도 했고, 이 상태로 꼬르락 꼴깍하면서 몇 년 더 다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태로 이 곳에 있는 게 나나 이룸에게나 뭐 좋은 일이겠나 싶었어요. 그렇게 저는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퇴사를 마음먹기 전, 그 결정을 입 밖에 내기 전까지는 너무 괴로운데 입 밖에 내고 난 뒤부터는 엄청 개운하다고. 제가 요즘 딱 그래요…………………………………..^^ 퇴사 의사를 밝히던 날에는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기분이 요상했는데 요즘은 너무 쌍쾌합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상반기 계획워크샵 내내 밝은 표정을 숨길수가 없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제 꼴이 진짜 얄미웠을 것 같은데… 착한 이루머들은 그냥 귀엽게 봐주고 말더라고요.

여러분 감사합니다. 진심이예요. 나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에도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가는 사람은 말이 없게 마련이죠.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주절주절 글까지 쓰고 있네요. 그 동안 함께 지내온 동료들과 유관기관 선생님들, 그리고 이룸을 지지해주시는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해야하는데… 아니 그런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솔직히 그런 거보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름다운 퇴사는 없다!’거든요. (그리고 이 말을 나가고 나서 하는 게 아니라 이룸에 있을 때 말할 수 있어서 좋고요.) 제가 이룸에 좀 오래 있었던지라 사람을 참 많이 보내봤는데요. 새벽까지 같이 술 먹고 울고불고 했던 경우와 어색하게 억지로 송별점심을 먹은 경우까지 참 다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아주 오랜만에 좋게(!) 퇴사하는 경우더라고요. 좋게와 안 좋게를 가르는 것은 후원을 지속하느냐의 여부인 것 같아요. 그렇게 보니까 대충 답이 나옵디다. (사실 저도… 이룸 지긋지긋해! 나가면 후원도 끊을 꺼야! 하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요. 퇴사를 입 밖에 내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퇴사를 결정하고 보니 이룸에서 비교적 좋게 나갔다고 기억되는 사람들도 나가는 마음이, 보내는 마음이 뭐 그리 ‘좋은’것이었겠나 싶더라고요. 퇴직희망자가 말하는 퇴사의 이유는 우아하게 마련이잖아요. 저도 퇴사의 이유가 백가지 정도가 있어서 물어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할 수 있거든요. 다 이유인건 맞으니까요. 어쨌든 이 곳을 나가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것까지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내가 이 곳에 있었던 시간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아름답게 마무리하려 애쓴 마음들이었겠지요.

 

퇴사를 결정하고 이룸에서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활동이고 나발이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저 사람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나 관계 중심적 인간이었나? 새삼스러울 정도로요. 그 동안 이룸에서 지내오면서 크게 고꾸라졌던 몇 가지 일들을 떠올리니 왜 진작 그만두지 않았는지, 왜 그것들을 꾸역꾸역 참으며 견디며 다녔는지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내가 나를 방치한 것 같아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제가 한번 씩 좀 이럴 때가 있습니다;;;) 아직 ‘몰라몰라 힘들었엉’ 외에 다른 평가는 못 했습니다. 현재로서는 백수에 대한 기대(+불안) 뿐^^ 이룸에서 보냈던 시간이 짧지 않으니 이룸이 저에겐 큰 의미일 수밖에 없는데요. 이에 대한 정리와 평가는 또 살면서 차차 해나가지 싶습니다.

 

퇴사 결정을 하니 퇴사자들이 막 궁금하더라고요. 전 활동가로 이룸을 만나는 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입장이 조금은 달라지니까요. 올해도 이룸은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룸답게 잘 헤쳐 나갈 겁니다. 여러분도 저랑 같이 이룸을 응원합시다!!!

 

이상 퇴사애송이의 퇴사인사였습니다. 그 동안 이룸에서 저를 만난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