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성판매자 처벌을 옹호하는 헌재 결정에 반대한다!


 

성판매자 처벌을 옹호하는 헌재 결정에 반대한다!

2016년 3월 3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성매매를 한 자를 형사처벌 하도록 한 성매매 특별법 제21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성판매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현장 단체이며 누구보다 가까이서 성매매 현장을 목격하고 체험해 온 단체의 하나로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판매자 처벌을 옹호하는 이번 헌재 결정에 반대한다.

성매매는 성풍속과 성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성적 통제력의 상품화 문제이다.

헌재 다수의견은 ‘성매매는 그 자체로 폭력적, 착취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경제적 약자인 성판매자의 신체와 인격을 지배하는 형태를 띠므로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자유로운 거래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하면서도 성판매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하는 자가당착적 논리를 펼치고 있다. ‘건전한 성풍속’과 ‘성도덕’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성판매자에 대한 처벌을 정당화하는 헌재의 논리를 보면 성매매의 폭력적, 착취적 성격에 대한 헌재의 언급이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성에 대한 보수적 사회통념과 궤를 같이 하는 ‘성풍속’이나 ‘성도덕’의 문제로 성매매를 접근하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을뿐더러, 사회구조적 문제인 성매매를 개인의 도덕 관념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게 할 수 있다. 성매매는 돈을 매개로 타인에 대한 성적 통제력을 사는 것으로, 그 본질상 자유로운 두 개인 간의 거래일 수가 없으며,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는 권력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성매매에 반대하는 이유는 성매매가 필연적으로 성별, 계층, 인종 등의 권력 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불평등한 성별•경제적 구조를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이지 성풍속이나 성도덕의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다.
자발적 성매매, 또는 성판매자의 ‘자율적 판단’이라는 개념은 허구이다.

헌재는 ‘성판매자의 자율적 판단이 완전히 박탈될 정도가 아닌 이상 이들에게 비난 가능성이나 책임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성판매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성매매 처벌법 상의 ‘성매매 피해자’ 개념이 폭넓게 인정되니, 과도한 형사처벌의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성판매자들 중에 ‘성매매 피해자’의 법적 규정 내에 포섭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피해자 개념의 범위가 매우 좁으며, 입증도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판매자 중 성매매 행위자와 피해자를 인위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우리가 상담한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설명해 보겠다.

성판매 여성 A(현재 50대)는 십대일 때 성매매 업소로 팔려와 온갖 폭력을 당하며 삼십 년 동안 성매매 일을 하여 선불금 빚을 갚았다. 현재는 빚이 없고 성매매를 강요하는 사람도 없지만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고 건강도 좋지 못하여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성매매 업소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성판매 여성B(현재 20대)는 어린 시절 부모의 정신적•신체적 학대로 인해 집을 나와서 조건만남을 하다가 성매매 업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경찰의 단속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 후 상담을 통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폭력이 자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성매매에 노출되도록 하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성판매 여성C(현재 30대)는 선불금 빚을 지고 유흥주점에서 접대부로 일하고 있다. 빚이 있으니 당연히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일을 그만두면 업주가 집에 찾아가 알릴 거라는 두려움에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하고 있다.

성매매 특별법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모두 성매매 행위자로 처벌 대상이다. A는 현재 위계, 위력에 의해 성매매를 하고 있지 않으며 B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당한 일들이 이 여성들을 성매매에 남아 있게 만들고 있지만 이런 사정들은 형사 절차에서 법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는 선불금 빚이 있지만 폭행, 협박을 당하지 않아 ‘강요’를 입증할 수 없으며 업소를 나가겠다는 의사표시를 업주에게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의사에 반하여 이탈을 제지’ 받은 적이 없다. 이런 여성들을 형사 입건하여 벌금을 내게 하고 성매매 전과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정당한가?

어떤 성판매자가 ‘자율적 판단’으로 성매매를 한다고 할 때, 그 판단 주체는 누구인가? 작년에 국제 앰네스티는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성매매를 하는 경우는 그 ‘개인적 행위성’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하며 성판매를 처벌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헌재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율적 판단’을 이야기하지만, 이 때문에 성판매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반대의 결론에 도달한다. 앰네스티는 성판매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다고 하면 그 자발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고, 헌재는 성판매자가 ‘자율적 판단’으로 성매매를 한 것인지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판매에서 자율성의 판단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내가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성판매 여성이 있을 때, 이 말을 문자 그대로만 듣는 것은 당사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당사자를 진정 배려하는 태도도 아니다. 많은 성판매자들이 성매매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에게 그 일을 정당화시켜야만 하고, 성매매를 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선택을 둘러싼 사회구조적 맥락(빈곤, 성차별적인 노동시장, 사회에 만연한 성상품화 등)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인 것처럼 “나는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를 벗어난 후에 자신의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며 다른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성판매자의 이야기를 들을 땐, 이러한 사회구조적 맥락과 함께 입체적으로 들으면서 당사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느 누가 성판매를 ‘자율적 판단’으로 한 것인지 단선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허구이다.

성판매자에 대한 성매매의 해악성은 성판매자의 ‘자율성’과 상관없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성매매의 처벌 여부를 당사자의 자율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매매가 그 자체로 ‘성판매자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성판매자를 처벌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초점은 성매매의 본질과 그 구조이지, 당사자의 자율성이 되어선 안 된다.

게다가 성판매자들 상당수가 성매매 일로 인해 이미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우리가 상담하는 여성들 중 상당수가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는 경우들이 많다. 또한 사회로 복귀할 때 ‘창녀’라는 낙인 때문에 극복해야 하는 두려움, 위축감이 있다. 구매자 또는 알선자로부터 당하는 욕설과 모욕, 폭행도 한 번 이상은 다들 겪는 일이다. 형사적 ‘폭행’, ‘협박’으로 취급될 수 없는 다양한 심리적 억압과 통제가 작동하는 곳이 성매매 공간이다.
성판매자 처벌은 성매매 근절에 해가 되고 있다.

또한 성판매자에 대한 처벌은 성산업 축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성매매로의 유입에는 불법/합법과 상관없는 이유들이 존재하며, 성매매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성매매로 처벌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판매 여성들 중 상당수가 선불금 빚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형사•민사를 통해 이를 법적으로 확인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성매매를 했다는 것을 진술해야 하는데,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우리 사회는 성매매가 그 본질상 당사자 간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성판매자에게 심리적•신체적 위해를 가하므로 성매매에 반대하고 성산업을 축소해 나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룸’은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합헌이지만 성판매자에 대한 처벌은 위헌이라는 일부 위헌 의견에 찬성한다. 효과도 정당성도 없는 성판매자 처벌 대신, 성구매자와 성매매 알선자에 대한 실제적인 처벌을 통해 성구매 수요와 공급의 기회를 줄여나가야 하며, 우리 사회는 성매매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해야 한다. ‘이룸’은 이 사회가 이러한 의지를 밝히고 이를 법제화하는 날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6년 4월 1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