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단체 대표랍니다"(시민운동리더쉽)..1

“내가 단체 대표랍니다”
새내기 활동가들이 말하는 ‘시민운동 리더십’
[창간 11주년 특집] 시민운동리더십

작성날짜: 2004/06/02
특별취재팀기자 (시민의신문)

“사람이 운동에 매몰되지 않게 조직을 이끄는 게 진정한 리더십이다.” 시민단체 새내기 활동가들은 시민운동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또 그들은 장차 어떤 노하우를 갖고 리더십을 키우고 있을까. 어떤이는 삶과 운동의 일치를 강조하고 어떤이는 비전을 제시하고 민주적 조직운영이 리더십 조건이라며 자신들도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민의신문은 창립 11주년을 맞아 특집기획으로 ‘시민운동 리더십’이라는 소중한 꽃씨를 시민사회에 뿌리기 위해 애쓰는 청년시민운동가들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모두가 대표랍니다”
배경내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모두가 대표인 체제.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생활’이다. 활동가 16명이 모두 ‘상임활동가’란 직책을 갖고 대표성을 띠는 인권운동사랑방은 이같은 운영구조를 도입한 게 올해로 3년째. “서준식 선생님이 2001년 대표직을 사임하시면서 누구를 대표로 할 것인가 논의가 있었죠. 격론 끝에 우리 모두가 책임지는 구조를 한번 실험해보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어요.”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당시 ‘경험있는 선배활동가가 후배를 이끌어주면서 원칙을 관철해 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결정도 못 내릴 땐 누가 총대 메고 ‘가자’하는 것도 필요해요. 이게 대표체제의 장점이겠죠. 반면 다른 성원들이 대표에게 기대게 되고 내 한 표가 중요하다기보다 결정에 따르는 쪽으로, 자기 스스로의 지도력을 개발하지 않게 되는 단점도 있어요. 모두가 대표를 하면 책임성과 지도력을 앞서서 고민하게 되죠. 우리는 후자의 길을 실험해보자고 결정한 거고요.”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들은 각각 맡은 일에 있어 외부적 대표성을 띤다. 다른 직책을 부여해 대표성을 띠는 게 아니라 실제 그 활동을 책임지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표가 되는 것이다. 언론에서 취재요청이 들어와도 내용에 대해 물어본 뒤 관련 활동가를 연결해주는데, 직책이 있는 사람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던 언론도 이젠 인권운동사랑방의 운영시스템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배경내 활동가는 “언론을 보면 항상 그 사람(사무처장, 총장급)만 일하는 것 같고, 밑에서 박박 기며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늘에 가려진다”며 “운동이 한사람, 명망가에 집중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활동가인데 활동가 내부의 위계로 인해 그들이 마치 대표급 인사의 비서처럼 비춰질 때 활동가로서의 자존감이 약화되는 느낌”이라는 것. 이어 “실제 움직이는 이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데 소위 ‘윗선’에서는 그런 고민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고 언급한 뒤 “그러나 기자회견 할 때는 그들이 앉아있고 가끔 다른 소리를 하기도 해 낯뜨거운 일도 벌어진다”고 일침을 놓았다.

배경내 활동가는 특히 “얼굴있는 사람들이 실제적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체 내부에서부터 민주적 리더십이 중요”하며 “발언에 대해서도 책임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결정이 나오기까지의 고민 과정에 평 활동가 못지 않게 함께 하고 실질적 활동 속에서 발언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얼굴이 아니라 발도 될 수 있는 내용성을 갖춘 얼굴이 돼야 한다”는 배경내 활동가의 말을 우리 시민사회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팀별로 나뉜 활동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회의가 기본이 돼 전체회의에 상정되는 형식으로 운영되는 인권운동사랑방은 신임활동가도 활동가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받아들인다. “직급이란 것은 역할을 나누는 거지 상하를 나누는 게 아니다”고 설명한 배경내 활동가는 “앞으로 운동사회 내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들이 좀더 많이 활성화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조은성 기자 missing@ngotimes.net

"실천하는 리더, 좋잖아요"

함은혜 녹색연합 새내기 간사

"환경운동을 하겠다고 처음 녹색연합의 문을 두드릴 때 가졌던 마음을 간직한 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운동하는 그런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지난 1월 녹색연합 정책실에서 환경운동가로의 첫 발을 내딛은 함은혜 간사는 새내기 활동가답게 현장을 가슴에 담고 배워가며 환경문제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십여 년 후 리더로서 조직을 어떻게 이끌지 묻는 것은 다소 이른감이 있는 일. 현재 선두에서 녹색연합을 이끄는 선배들에 관한 얘기로 조직의 리더상을 얘기하기로 했다.

"녹색연합에 들어와서 놀랐던 일 중의 하나가 십 년 이상 운동을 하고 계신 선배들이 환경운동을 이제 막 시작하는 저보다 더 많은 열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제 자리에서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법도 한데 연륜만큼 넓은 시각과 열정·비전을 가슴에 품고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현장을 누비는 선배들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저도 그런 선배이자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함 간사가 생활 속에서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체득한 리더의 조건은 '첫 마음을 간직한 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운동하는 활동가'였다.

함 간사는 환경파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었고 지금 정책실에서 추진하는 만원계 사업이 자신의 지향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실을 선택하기 전에 선배들이 조직의 필요만이 아니라 후배 활동가의 지향과 앞날을 먼저 고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운동에 사람이 매몰되지 않게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함 간사는 또 '삶과 운동의 일치'를 언급했다. 매주 월요일 다함께 모여 사무실을 청소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 때 재활용 가능한 이면지가 쓰레기 속에 파묻혀 있는 모습을 때때로 볼 수 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누구나 녹색연합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이들이 말로만 환경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작은 부분까지 자신들의 말을 책임지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많은 선배들과 함께 고민하는 문제이긴 한데 제가 조직을 이끄는 선배가 됐을 때 운동을 위한 운동이 아닌 대안까지 함께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활동가이고 싶어요. 그 날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공부해야겠죠." 늘 처음 같은 마음으로 삶과 운동을 일치시키는 열정적인 선배이자 전문성을 갖춰 대안까지 고민하고 조직에 앞서 사람을 남기는 운동을 실천하는 리더로 성장할 함 간사의 다부진 각오다.

세옥 기자 kso@ngotimes.net

"시민 주체로 세우는 리더십을"

꾸나 문화연대 시민자치센터 활동가

"시민단체들이 보통 '시민의 이름으로' 싸운다고 말하잖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시민의 요구를 받아 안는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도 종종 보이거든요. 시민단체가 '시민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서는 리더십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4개월 째인 신입간사, 꾸나씨가 바라본 시민운동 리더십에 대한 진단이다. 꾸나씨는 "시민운동이 시민 앞에 나서서 싸우기보다는 시민의 자발적 토론과 기획력을 뒷받침해주는 풀뿌리 단체들이 많이 생겨나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보다 지속가능한 시민운동을 위해서는 시민단체 내부적으로는 활동가들의 전문성을 기를 시스템을 구조화해야하고, 전문가 그룹과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들의 책임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90년대 중반 지역에서 노동야학 운동과 진보정당 활동을 하다가 결혼과 육아로 잠시 공백기간을 거쳤던 꾸나씨는 "예전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조직의 논리를 따라야 했다면, 현재 운동은 네트워크 중심으로 활동가 자신의 자발성과 기획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며 "이는 분명 긍정적인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활동가들의 전문성 담보나 재생산ㆍ교육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문화연대도 위원회 중심으로 실무자와 전문가 그룹의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사무처와 정책실이 이들을 지원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죠. 제가 일하는 곳도 그렇지만, 운동연구나 성과는 많은데 그걸 활동가 교육이나 재생산을 통해 자원활동가나 신입활동가들의 인력 풀로 연결시키는 구조가 부족한 것 같아요. 이러한 재생산 시스템을 통해 개별 활동가들은 운동에 대한 자기확신을 가지고 운동을 지속시켜 갈 수 있죠."

꾸나씨는 또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이 긴밀한 구조 속에서 소통과 책임성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보고하고 보고 받는 식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서로 생각이 다를 경우 상시적으로 만나고 소통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에 '이름 걸고 식'이 아닌 서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성을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죠."

육아 전선에 있는 주부이기도 한 꾸나씨는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 활동가의 경우 구조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시민운동 내에서부터 저 같은 활동가가 일하는 경험들을 선례로 남고 이것을 축적해서 생활 속의 운동 활동상을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문주 기자 cmjoo@ngotimes.net

“전문성ㆍ현장성 겸비해야”

한기선 참여연대 정책실 간사

“시민사회 리더십이라 하면 안팎을 두루 살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ㆍ비전을 혼자서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조직원 전체와 대화ㆍ소통하는 가운데서 만들어 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리더그룹이 된다면 내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우선 신경을 쓸 거 같습니다.”

1년차 새내기 활동가인 한기선 참여연대 정책실 간사(28)는 “시민사회 리더라고 해서 ‘고상’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책상에서, 술자리에서, 옥상에서, 길거리에서 정열적으로 토론ㆍ대화하는 속에서 진정한 시민사회 리더십이 발현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배들과의 대화ㆍ토론을 즐길 줄 아는 활동가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입 활동가에서부터 중견간부, 그리고 최고의 리더자리까지 두루 경험했기 때문에 조직원 모두의 고민을 읽을 수 있잖아요. 권위ㆍ카리스마형 리더십이 가지는 장점이 있겠지만, 일방적인 지시ㆍ전달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작용을 낳지요. 사회, 특히 시민사회 지형이 변화하고 있는데, 다소 느리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리더십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겁니다.”

한 간사는 시민사회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전문성ㆍ현장성을 꼽았다. 17대 총선이후 진보정당의 원내진입으로 시민사회 역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며, 전문성이 강화된 운동에 대한 요구가 어느때보다 높다고 지적한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벌이는 시민운동이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들 속에서, 그들을 위한 운동을 펼치지 않는다면 의미가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슴에는 시민, 머리에는 이상을 품겠다는 한 간사의 다부진 다짐이다.

“첫 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선배들에게 배울점이 많은 신입간사이기 때문에 바람도 큰가봐요. 선배 헌신적 노력, 신념, 열정은 감히 흉내도 낼 수 없어요.”

장현주 기자 endtow@ngotimes.net

"민주적 조직운영이 핵심"
조영수 민언련 상근활동가

“리더십이라…. 내부에서 얼마나 민주적으로 운영되는가가 핵심 아니겠어요?”

민언련에서 일한지 4개월. 그야말로 ‘새내기 간사’라는 타이틀이 딱 맞는 조영수씨는 ‘리더십’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민언련은 작은 단체지만 그래도 간사가 10명 정도 된다”는 그는 “총장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맞는데 의견수렴 과정이 일상적으로 이뤄져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진 못했다”고 했다. “총장님이 밖에서 회의하시는 내용에 대해 잘 모르긴 해요. 하지만 굳이 회의란 틀이 아니어도 궁금한 것은 물어보고 하니까 별문제는 없어요. 최근 주한미군 문제로 언론에서 난리가 났잖아요. 이 문제에 ‘언론보도 분석이 필요하지 않겠냐’ 이렇게 간사들 간에 얘길 나누면서 토론회 기획을 내와요. 사무처 내에 일종의 정책이 함께 가는 거죠.”

조영수씨는 한총련 대의원 활동으로 수배생활을 하다 지난 1월 대학을 졸업하고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마침 선배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던 게 연이 돼 민언련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큰 단체에선 사무처장 중심으로만 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래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모르겠지만 평간사 선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도 꼭 물어봐야 한다는 건 문제인 것 같다”고 짚었다. “지난 총선 때 총선미디어감시국민연대 활동을 하면서 보니 큰 단체의 경우 결재절차가 긴 것 같더라고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단체 활동에서 효율성도 담보돼야 하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부적으로 한사람에게 (권한이) 몰려서 그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는 또 “오히려 외부에서 이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야 유명한 큰 단체만 알지, 작은 단체를 어디서 접하겠어요. 언론에선 큰 단체, 명망가 중심으로 보도하고, 어느어느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죠. 사람들도 ‘저 사람이 지금 어디 있구나’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그래서 언론은 그렇게 보도하는 거겠죠.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같은 관행이 작은 조직을 굴러가기 어렵게 하는 것 같아요. 구조적으로 그렇게 돼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은성 기자 missing@ngotimes.net

"단체 내 리더십 근간은 비전제시"

서희경 경실련 간사

"급변하는 다원화 사회속에 요구받는 시민운동의 리더십은 무엇보다 변화의 흐름을 잘 읽고 능동적이지만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구성원들과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라고 봅니다."

시민운동 경력 5년차 서희경 경실련 간사가 말하는 시민운동 리더십의 최우선 조건이다. 경실련 뿐만 아니라 전체 시민운동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은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조직외적으로 사회문제를 발견하면 그것을 대중적으로 의미있게 간파해 개선 목표를 만들고 이를 이루기 위해 돌진하는 것"이란 '모범답안'이 나왔다. 보다 내밀한 요구가 없을까. 답변은 한참 뒤에 나왔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은 이제 지나간 이야기 아닐까요. 조직원들의 리더십, 다시 말해 장점을 살려주고 적재적소에 배치해 역량을 발휘토록 하면 조직의 리더십이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서 간사는 내부의 변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정보와 성과를 혼자 독점하고 책임은 부하에게 지우는 리더야말로 최악이며 이를 반대로 구현하는 이가 모든 조직원들이 바라는 리더의 상"이라고 밝힌다.

말문이 트인 서 간사가 드디어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시민운동의 리더십은 바로 '비전제시'에서 나온다는 지적이었다. "기본적으로 내부 리더십의 근간은 활동가들이 일을 하면서도 한구석에 불안한 마음이 있도록 해선 안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 운동가들이 후배들에게 운동의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의 자리에 올랐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고 싶냐고 물었다. "제가 모든 것 챙기기 보다 상근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뒷받침해주는 지원형이 돼야하지 않겠냐"며 웃는다.

최근 총선에 출마한 경실련 대표급 관계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상근활동가와 그분들의 멤버십은 상당한 차이가 있잖아요. 이들에게 과다한 윤리강령을 요구할 순 없겠지만 향후에도 이같은 경우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습니다." 화나고 억울한 일이어서 상근자 모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한 서 간사는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적어도 단체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할 것이며, 개인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단체 리더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인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재환 기자 y2kljh@ngotimes.net

현장체험 | 송지영 평화박물관 추진위 상근활동가
리더십, 그 애매모호함

사무실 막내여서가 아니라 우편물 정리는 자원활동가 때부터 내가 즐겨하던 일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단체뿐만 아니라 옆 단체 우편물도 정리한다. 포스터는 적당한 장소에 붙이고 초대장은 사무국장에게 2개 이상 온 자료는 정리해서 맘에 드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우편물을 정리하던 어느 날 어느 대학 리더십 센터가 보낸 서류봉투를 열었다. 내용인즉슨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리더십 센터에서 공부를 하면 장학금 혜택을 준다는 거였다.

리더십? 활동가들과 리더십이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다시 원고청탁을 받았다. 새내기 활동가로서 느끼는 시민사회단체 리더십의 문제에 대해 원고지 10매를 채우라고 한다. 리더십이란 좀 권위적이고 군사적이고 다소 정치적인 냄새가 나는지라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느꼈는데… 내가 커다란 착각 속에 빠져 있었나보다. 리더십이 내게도 해당되는 단어라니.

문제를 풀기 위해서 습관적으로 사전부터 찾아봤다. 영어사전과 국어사전에는 지도자의 지위나 임무라고 적혀 있다. 백과사전에는 집단의 목표나 내부 구조의 유지를 위해 성원이 자발적으로 집단 활동에 참여하여 이를 달성하도록 하는 것을 리더십이라 부른다고 적혀있다.

지도자들의 것. 그렇다면 내가 일하는 단체의 대표나 사무처장이 갖고 보여 줘야할 것들이 리더십이란 말인가? 아침에 사무처장한테 받은 메일 한 통이 생각났다. 서울을 하루 떠나 고향으로 가는 그가 내게 남긴 메일의 요지는 나의 일정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그는 날마다 이메일과 전화로 사람들에게 일을 요구하고 메일로 전달한다. 운영비에 위기가 오면 사람들을 종용해서 돈을 걷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일을 적절히 나눠주고 챙기는 것이 리더십인가? 이미 나의 업무목록에 올라있는 일들을 챙기는 그의 일이 리더십일까? 그의 리더십은 우리를 채근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종종 그 리더십은 새내기 간사에게는 적절하게 통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선배격인 비상근 위원들에게는 포용과 이해로 넘어갈 경우가 종종 있다.

다시 리더십의 사전적 의미로 넘어가서 나는 ‘자발적’ 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꽂혔다. 그리고 생각했다. 상임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일을 시작한지 10개월째. 새내기 활동가인 내가 꿈꾸던 활동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그 속으로 뛰어 들어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맹세컨대 내가 리더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그런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다른 활동가들의 모습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활동가들에게는 단체의 목표를 위해 시민들이 단체에 참여하여 이를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 사회단체 활동가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것이 리더십인가?

리더십은 주체가 타자를 끌어줘야만 한다는 전제 하에 성립한다. 그렇다면 활동가들은 시민들을 선도해 나가는 역할을 하나? 나는 내가 시민들보다 사회를 보는 눈이 뛰어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더 뛰어나다는 오만방자한 착각에 빠졌음을 알았다.

활동가들은 ‘시민들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알면서 외면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 보다 우리가 알려줘야만 하는 것만 신경 쓴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하고 그 영향으로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대받는다.

리더십. 여전히 애매하고 모호하다. 사회조직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보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권력관계가 여전히 드러나는, 누구나 요구하거나 요구받지만 리더십 밑에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리더십이 뭐라 하기에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어쩌면 사회에서 리더십은 없는 것이 아닐까? 소수의 의견도 존중받고 함께 나란히 가야할 사회에서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것, 따라서 존재할 수 없는 게 바로 리더십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