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를 보는 사회적 시선 ..언니네

성매매를 보는 사회적 시선
글. 땐싸(indisec@yahoo.com) / 언니네운영진

누구의 시선으로 문제를 보는가?

지난 봄 모 시사 주간지에서 제 3세계 여성과 한국 남성과의 국제결혼이 다루어진 적이 있다. 물론 그 특집에는 이를 '국제적 성매매'의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서, '팔려오는' 여성들의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기사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특집글 중에는 '브로커의 속임에 넘어가지 않고 제대로 여자를 사오는 법'에 대한 기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의식은 문제의식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건가..? 이것을 '성매매'에 비교해본다면 '성매매의 문제점'과 '화대 사기 당하지 않는 법'이 같이 묶여있는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누구의 시선으로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일까?
2003년 2월 여성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남성 중 20%가 성을 사고 있다고 한다. 꼭 통계자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많은 경우 성매매를 '제어할 수 없는 남성 성욕이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차선책'이라거나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매매행위'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결국 '성을 사는 자'의 입장이다. 이러한 시각은 성매매에 대한 문제를 '사는 자'의 시각으로 고정시켜 어느 순간 모두가 '이것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아닐까?'라고 느끼게 한다. 나 스스로도 그런 시선의 함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선에서나마 이 시선에 대한 비판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매매를 오락으로 다루는 시선

스포츠 신문이나 주간 어쩌구 하는 매체들에서 빠지지 않는 기사들이 있으니 성매매와 관련된 것들이다. 특히 '여대생의 충격 매춘 체험'이라거나 '여고생 원조교재'에 대한 기사들은 옆에 배치된 여성나체사진과 함께 실로 눈으로 보는 듯한 생생함을 살려 실린다. 마치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냥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상 '이색 성체험'이나 '변태섹스그룹소개'와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지는 이 기사들은 포르노 소설에 다름 아니다. 더불어 어떤 기사들은 '~~~~ 하여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라는 인사치례상의 문구 한두줄을 빼고 나면 성매매의 새로운 방법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을 정도이다. '충격 르포'의 의미는 '인권유린의 현장에 대한 충격'이 아니라 '이렇게 재미있는 곳도 있다는 데에 대한 충격'이다. 뭐 스포츠 신문이라는게 원래 그렇고 그런거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시선은 일간지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단지 차이라면 좀 덜 노골적이라는 것일 뿐 여전히 성매매를 '약간 부도덕한 성행위'정도로 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모 경제지에는 지난 달 '욕망의 거리 돈은 yes, 사랑은 no'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인즉 요즘 성매매의 현황으로 '사창가의 호객 풍경'으로 시작하여 정확한 화대를 알려주더니 '선수'들의 체험담을 통해 돈 뜯어내는 악녀에 대한 언급을 하더니 인터넷에서 벌어진다는 '섹스소비자 운동'에 대한 소개까지 잊지 않는다. 이 기사는 돈을 지불해도 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남자들에게 환상을 갖고 성매매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언론의 음모에 대한 혐의 - 무엇이 기사화되고 있는가?

일간지에서 성매매가 다루어지는 것은 '신종수법'이나 '미성년', '감금과 인신매매가 동반된 경우' 혹은 '꽃뱀이나 업소의 선불금을 떼먹는 사기'와 같이 '기존 성매매질서에 어긋나는 일'들이다. '신종수법'에 대한 기사는 말할 것도 없이 스포츠 신문과 같은 관음증적 홍보, 소개적 효과를 강하게 갖는다. '미성년'이나 '감금, 인신매매'에 대한 기사들은 '미성년만 아니고 감금이나 인신매매가 아니면' 성매매라는 것이 별 문제가 아니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왜냐하면 이 기사들의 초점에서 '성매매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꽃뱀이나 업소의 선불금을 떼먹는 사기'에 대한 기사들이다. 속칭 '꽃뱀'에 대한 기사는 오래 전부터 간간히 나오곤 했는데, '성매매는 여성들이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고 '오히려 남자들이 당하고 있다.'라며 호들갑을 떤다. 왜 이들은 그 수많은 성매매 여성들의 피해들에 대해 침묵하면서 이런 한두 사례에 대해 열광하냔 말이다. 나는 이것이 '성매매'문제가 갖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은폐하려는 시도임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최근 급증하고 있는 '업소의 선불금을 떼먹는 사기'에 대한 기사들은 이 혐의를 더욱 굳게 만들고 있다. 이 기사들에 따르면 김강자 (당시) 총경의 미아리 텍사스 단속 때에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졌던 '선불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법'을 이용하여 업주들이 사기를 당한 사건들이 있는 듯 하다. (젠장, 여기서는 정말 욕이 나오려고 한다.) 내 개인적으로도 알음알음으로 전해듣고 있는 '그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불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일들 따위는 신문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일들이 경찰서에 가지 않아서 기자들이 몰라서일까? 단언하건데 그럴 일은 없다!!

남자들, 아 남자들의 시선이란...

언론에서 드러나는 '사는 자'의 시선이 단편적이고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면, 인터넷에서 오가는 논쟁들에서는 그들의 논리를 좀 더 적나라하게 접할 수 있다. 관련된 논쟁이 시작되었다 하면 정형화된 패턴들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첫째, '남성의 성욕은 주체할 수 없다.'는 전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근거를 갖고 오랜 기간 공방이 계속되어왔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그럴려면 왜 비아그라를 못 먹어서 안달이냐고 묻고 싶다. 오히려 '남성성'의 일환으로서 성욕은 '주체할 수 없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그렇다 아니다에 대한 판단은 정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할 때, 문제는 이런 말을 반복하는 것의 효과이다. 이런 주장의 반복은 ‘성매매’를 근절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강화시킨다. 둘째, '성매매는 거래이고 공정하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얘기도 잠시, 어마무시한 실증적 증거들이 '공정한 성매매 거래'란 현실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증거들이 제시되고 그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이는 곧 '공창제'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성들도 적절한 환경에서 충분한 급여를 받고, 남성들도 깨끗하고 안전하게 성을 살 수 있는' 바로 그 '공창제'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들 한다. '현실적', 그래 '현실적 대안'이라고들 한다. 아직까지 극소수를 제외한 그 어떤 여성들이 '적절한 환경에서 충분한 급여'를 받고 있는가?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국가, 이 사회가 여성에게 실로 '공정한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곳인가? 차라리 '남성들이 깨끗하고 안전하게 성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충분한 여성관리와 죽어나가지 않을 정도의 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이러한 나의 개인적 확신과 분노에 대해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또 다시 이 '공창제' 주장이 어떤 효과를 갖는가 이다. 이 주장은 '성매매'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 즉 '왜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건너뛰는 효과를 낳는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양쪽 다 만족할만한 조건이 안 된다는게 문제 아니냐?'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유'에 있다. 그 '이유'안에 성매매 문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 ‘이유’ 안에 ‘양쪽 다 만족할만한 조건’이라는 것이 왜 성립될 수 없는지가 이미 담겨있다.

글을 마치며

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하고 많은 논쟁들이 있다. 복잡한 현실문제에 대한 입장들은 각자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혹은 누구라도 성매매 문제를 누구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듯 싶다. 누구의 시선이냐에 따라 이미 전혀 다른 사건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