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일다

부시의 음모와 직면하게 되는 영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김윤은미 기자
2004-07-25 23:26:01
<화씨 9/11>은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제목 ‘화씨 9/11’은 ‘진실이 불타는 온도’라는 뜻. 이 영화는 부시 미 대통령 낙선을 목표로 하는, 좀 거칠게 말하면 대 부시용 프로파간다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감독 마이클 무어는 그의 장기를 훌륭히 발휘해 부시와 미 행정부 장관들, 상원위원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보여줬다. 요즘 같은 시대에 <화씨 9/11>은 ‘필요한’ 영화이기에, 영화적 미학과는 별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칸까지 황금종려상을 안겨줬다.

전쟁의 이면, 권력의 횡포를 폭로

<로저와 나>, <볼링 포 콜롬바인>에 이어 <화씨 9/11>에서도 마이클 무어는 ‘높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군다. 그는 의원들을 쫓아다니면서 자식을 이라크에 보내보라고 신청서를 들이민다. 머리에 침을 발라가며 TV출연을 준비하는 장관들이나, 열심히 골프채를 휘두르는 부시의 모습과 그들이 실제로는 테러방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이 밝혀지는 청문회 장면이 나란히 제시되면 속이 시원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방식은 좌파적 마인드의 감독이 선정적인 황색저널리즘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는 부분이다.

<화씨 9/11>은 미국 밖에서 일어난 전쟁을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스토리가 미국에서 시작해서 미국으로 끝난다. 영화는 9.11 참사의 비명 소리에서 시작해서 그 비극이 현재 이라크 전쟁에서 죽어가는 미군병사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이며 군인가족임을 당당하게 밝힌 한 여인이 이라크에서 아들을 잃고 난 뒤 오열하고, 전쟁에 반대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는 데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라크에 간 미군병사들 역시 처음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라크 시가지를 마구 공격하고 신이 난다고 말하지만, 전쟁이 진행될수록 사람을 죽이면서 자신의 영혼 역시 부서지는 것 같다고 고백하는 등 괴로워한다. 현명하게도 마이클 무어는 고통을 토로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비출 때는, 뒤로 사라지며 그들의 감정을 존중한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희화하지 않으며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그려낸다.

이 영화를 더욱 묵직하게 만드는 것은 미국인들의 고통 이상으로 전쟁이 일어난 이라크 현지의 고통스러운 장면들이다. 자기 마을에서 상을 다섯 번이나 치렀다고 말하는 여인, 그녀의 뒤에는 황폐해진 마을이 있다. 피를 흘리는 부상자들은 짐짝처럼 차에 실려 가고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음악을 들으면서 전쟁을 해댄 미국병사들조차 말도 안 되는 전쟁임을 깨달을 정도로, 이라크 전쟁은 민간인들의 삶을 파괴했던 것이다.

<화씨 9/11>을 통해 드러난 이라크의 참상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자극한다. 수잔 손탁이 <타인의 고통>에서 지적한 대로 이미지 정치학의 한계는 있지만, 이 영화와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면 부시가 저지른 전쟁이 말도 안 되는 희극이자 비극임을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화씨 9/11>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이클 무어는 전쟁에 실제로 참여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높은’ 사람들을 대비시킴으로써 ‘착하고 애국적인’ 미국시민들이 ‘돈만 밝히는’ 부시와 거대기업들로 인해 속고 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미국인들은 대통령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3국으로서, 게다가 부시가 호시탐탐 눈에 거슬려 하는 북한 바로 아래 땅에 살고 있는 한국관객의 입장에서, 우리의 고민은 <화씨 9/11>의 내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화씨 9/11>은 9.11 참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이라크가 부시 및 장관들이 반복한 몇 마디의 말-“사담과 알카에다는 보이지 않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로 인해 전쟁의 참사를 입었음을 보여줌으로써, 한국관객들에게 전쟁공포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이라크의 참사가 언제 이 곳에서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만일 부시가 이라크와 북한이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되나? 물론 이라크 침공은 석유사업을 둘러싼 이익관계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을 가정해보면, 적어도 영화가 보여준 장면들을 고려할 경우 부시의 말 몇 마디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화씨 9/11>이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한 문제들-빈 라덴과 부시의 유착관계나 협박에 불과한 대 테러 관련 안보정책 등-은 원작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한겨레 출판사)에서 조금 더 상세히 소개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묵직하게 만드는 이라크인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며 보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영화에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한다면, 미국의 동맹국으로 등장한 나라들이 지뢰 찾기 용으로 원숭이 2천 마리를 지원했다고 소개된 모로코를 비롯해서 다분히 선정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점이다. 반면 왜 그들이 미국의 동맹국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평범하고 소박한 미국인들에 대한 희망만큼 그는 관대한 것 같다. 또한 전쟁에서 죽어간 미군병사들은 구조적 희생자이지만 한편으로 가해자이기도 한데 양쪽을 성찰할 수 있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도 미국인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온건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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