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여자로 살면서 평생 당하지 않아야 할 일

여자로 살면서 평생 당하지 않아야 할 일
오마이뉴스..

오창경(och0290) 기자

펄펄 끓는 물을 끼얹은 것 같은 더위가 초록빛이 짙은 시골 마을도 예외 없이 점령해 버렸다. 더위에 지쳐서 얌체 피서를 하러 에어컨이 있는 옆집에 갔더니 우리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서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느라 진지한 얼굴들이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줄만 알았던 사건이 우리 동네에서 일어났다.

보름 전 비가 부슬부슬 오는 저녁 무렵 술에 취한 50대 여성을 40대 남자가 그의 차에 태웠다. 두 사람은 한 동네에 살면서 같은 양계업에 종사하며, 부부끼리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당연히 집에 데려다 주는 줄 알고 차에 탄 여성은 술기운 때문에 잠이 들었다. 잠시 후 여성은 남자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제 너는 독 안에 든 쥐야. 소리 질러도 소용없어.”

불빛은 한 자락도 보이지 않고, 인적도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 나무들의 형상마저 무섭게 보이는 산 밑에 차를 세운 남자는 여자를 덮쳤다. 평소에 시동생처럼 여겼던 남자가 흑심을 드러내자 여자는 강력하게 저항을 했고, 그 와중에 남자에게 주먹으로 폭행을 당했다. 잠시 기절한 여자를 보고 당황한 남자는 여자의 뺨을 때리며 깨웠고, 다행히 여자는 정신을 차렸다. 남자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여자에게 애원하며 접촉을 시도했고, 여자는 무서웠지만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여자의 반항이 완강하자, 남자는 좋은 데로 가자며 도로로 나왔다. 도로에 차들이 다니고 불빛이 보이게 되자, 여자는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지나가는 차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다른 이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었고, 여자는 구조되었다.

그 후 평소에 '형수'라고 부르던 여자를 성폭행하려던 남자는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이고, 마땅한 결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사건은 지금부터다.

전통적으로 이런 일은 피해자인 여성이 보호받기보다는 더 비난을 당해왔다. 그 때문에 여자 쪽에서는 소문을 내지 않으려 쉬쉬하기 마련이고, 남자 쪽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여자의 평소행실을 탓하며 '여자가 먼저 꼬리치며 달려들었다'고 소문을 낸다. 또한 무리하게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여자는 공황장애로 폭행당했던 장소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그 치욕스럽던 공포의 순간을 자세히 서술하지 못하는 폭력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골 마을의 토박이인 남자 쪽 입장에서만 소문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재혼을 해서 살고 있고 평소에 술을 좋아했던 여자의 성향이 약점이 되어 동네 사람들까지 자초지종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여자를 비난하게 됐다. 특히 같은 여자들이 더 피해 여성을 감싸주기보다는 힐난을 해서 정신적 충격과 폭력 후유증으로 누워있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한편으로 남자의 측근들은 피해자에게 합의할 것을 종용하며 변호사를 고용했다. 경찰에서 일부 성폭행을 시인했던 남자는 검찰 대질 신문으로 능글거리며 자신의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미국의 여배우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피고인>이라는 영화내용과 너무 흡사하다. 십여 년도 전에 개봉되었던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조디 포스터가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녀를 오히려 벌레보듯이 대하는 배심원들과 동네 여자들과 가해 남자들의 뻔뻔스러움으로 인해 피해자인 그녀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흔히 기혼녀이거나 성매매를 하는 여성을 성폭행한 남자들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에게 넘어갔다거나 같이 즐긴 것이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만약 이 사건에서 가해자의 강압과 위협에 피해 여성이 굴복을 해서 성폭행을 당하고 신고를 하지 못했더라면 가해 남자는 계속해서 피해자에게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을 하며 몸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호시탐탐 제2, 3의 피해 여성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잡힌 연쇄 살인범의 경우도 첫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많아진 것이 아닌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성폭행 사실을 신고 한 그 여성에게 우리는 박수와 격려를 해주고 가해 남성을 향해서는 사회적인 질타가 있어야한다.

남성들의 지배 구조에 익숙한 우리 잘못된 통념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여성들이 피해 여성을 감싸야하고 성폭행을 하고도 떳떳한 남자들에게는 뜨끔한 징계의 맛을 보여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여자로 살면서 이런 일은 평생 당하지 않아야 할 일이지만 만에 하나 운수가 사나워서 당했을 경우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하고 주위의 시선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해져야 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앞장서서 피해 여성들을 이해하고 보호해줘야 유사한 사건이 방지될 것이다.

2004/08/04 오후 5:13
ⓒ 2004 OhmyNews

오창경 기자는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 살면서 전원생활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있는 주부입니다. 아기자기 하고 재미있는 동네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