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기준이 도대체 뭐야”.. 우먼타임스

“악녀의 기준이 도대체 뭐야”

[영화의 재발견] 열정의 집시여인‘카르멘’이 세상에 묻는다

1845년 발표된 프랑스의 작가 P.메리메의 중편소설 ‘카르멘’은 뮤지컬, 오페라, 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장르로 거듭 다뤄져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작품은 ‘카르멘’이라는 여성을 남자를 파멸로 몰아가는 악녀의 틀 안에서만 그려내는 경우가 많았다. 9월24일 개봉하는 영화 ‘카르멘’은 그 틀을 벗어나 현대여성에게 욕망과 자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스페인의 거장 비센테 아란다 감독은 “카르멘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통제 당하는 것을 거부한 여성으로 현대여성들에게 자유에 대한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한다. 어떤 메시지일까.
영화는 카르멘이라는 여성에게만 시선을 집중하지 않는다. 카르멘이 살았던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그 이야기 속에 카르멘이 ‘악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맥락을 담아낸다.
19세기 스페인은 종교재판이 부활되고 자유주의 주창자들이 교살형을 당하는 등 억압, 통제, 혼란의 시대였다. 가진 것 없는 여성들은 돈벌이와 억압된 욕망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성매매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카르멘 또한 남자들을 유혹한다. 담배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난 뒤, 술집에서 남자를 유혹해 몸을 섞고 돈을 번다. 그런 카르멘을 사람들은 ‘마녀’라고 부른다. 담배공장을 관리하는 군인들과 어떻게든 몸을 섞어 돈을 벌고 싶어하는 여자들조차 카르멘을 ‘창녀’라고 욕하며 등을 돌린다.
영화는 관객에게 카르멘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흠 없이 군대생활을 해온” 호세라는 ‘착한’ 남자와의 치명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카르멘은 호세를 유혹하고 근무태만으로 영창까지 가게 만든다. 심지어 호세의 질투심을 자극해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고, 반정부적인 약탈꾼까지 되게 만든다.
그래서 카르멘은 호세를 파멸로 몰아넣는 ‘악녀’인가. 영화는 그들의 관계가 사랑의 다양한 양상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이야기구조 속에 숨겨 놓는다. 호세는 카르멘을 사랑하고, 사랑하니까 소유하고 싶다. 카르멘 또한 호세를 사랑했지만 호세의 소유욕은 거부한다. 카르멘은 거듭 호세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바라는 게 없다”고. 가까이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카르멘. 호세는 조금씩 미쳐간다. 소유하기 위해 집착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른다. 호세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카르멘은 영원한 사랑 따위를 믿지 않는다. 창녀와 살인자 사이에서 태어난 뒤 14세에 남자에게 팔려갔던 카르멘이 어찌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카르멘은 그 어떤 남자에게도 소유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호세는 그 모든 것을 앗아가려 했다. 카르멘은 호세의 눈 먼 욕망마저 긍정하며 “정 그렇다면 나를 죽여 나를 가지라”고 말한다. 결국, 호세는 카르멘을 죽인다. “다시 착한 군인으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호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이 영화는 카르멘이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맥락을 보여줌과 동시에, 소유를 통해 사랑을 완성하려는 남성에게 얽매이지 않으려는 카르멘의 자유로운 영혼을 담아내면서 ‘악녀’의 기준은 무엇이고, ‘악녀’의 틀은 누가 덧씌우는지 묻는다.
그 기준과 틀 밖으로 뛰쳐나온 카르멘이 속삭이듯 반문하는 듯하다. “집착, 질투, 격정, 욕망 등 복잡다단한 내면의 결을 치열하게 더듬어본 자만이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얻는 것 아닌가?”라고.
최희영 기자 chy@iwoam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