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평론]‘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운동기조를 비판한다

[인권평론]‘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운동기조를 비판한다 2010·05·14 10:16

최덕효(대표겸기자)

‘아래로부터의’ 요구 배제한 성노동운동은 상층부 운동에 불과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持志, GG)’가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GG는 단체소개를 통해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지하고 성노동자를 서포트(support)할 것 △성노동자운동의 뜻을 보존하고 지킬 것 △성노동자들을 피해자로만 보는 관점을 전환해 이들의 생존력과 주체적인 삶에 주목하고 그 모습을 드러내 사회적 낙인을 함께 넘어설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세 가지 행동계획으로 성노동자들의 운동 지원, 성노동 비범죄화 운동 전개, 그리고 이 둘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이론적 실천 및 성노동자 권리 지원을 위한 현장투쟁·문화투쟁·담론투쟁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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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는 지난해 9월 21일 성매매 특별법(성특법) 시행 5년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있은  ‘성노동자의 권리 지원과 성노동 비범죄화를 위한 토론(낙인이 아니라 권리를!)회를 주최한 ’성노동자 지원활동 준비모임‘이 발전한 단체로, 이전의 성노동운동네트워크 여성활동가들이 주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인권뉴스 대표겸기자로서 그동안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을 중심으로 한 성노동자운동과 사회단체들의 성노동운동에 직간접으로 연대활동을 해왔던 까닭에, 만약 GG의 운동기조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운동의 발전을 위해 해야 할 마땅한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성노동자운동의 뜻을 보존하고 지킬 것”이라는 GG의 존재이유와 “성노동 비범죄화 운동 전개”라는 GG의 행동계획은 상호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GG의 뿌리인 성노동운동네트워크는 국내 유일의 성노동자 법외노조인 민성노련과의 공조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GG의 이러한 행동계획은 당시 민성노련의 뜻과 주장에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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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노련은 수차례에 걸쳐 비범죄화와 합법화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요구했었는데 이는 문제가 많은 성특법을 민주적인 여론 수렴의 과정을 거쳐 돌파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견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GG는 공론화 제안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비범죄화’ 기조를 결정했다. 민성노련이 주장한 ‘사회적 공론화’ 제안 중 가까운 사례 두 가지만 보도록 하자.

민성노련 이희영 위원장은 2008년 10월 24일 이화여대 정지영 교수의 여성학 수업시간에 행한 발언에서 합법화와 비범죄화에 대한 연구 및 제시민사회단체가 담보하는 과도기적인 자율관리시스템을 이렇게 제안했다.

"..합법화 못지않게 비범죄화에 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음성적인 분야를 포함하면 전국에는 적게는 35만에서 150만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종사자들이 성적 서비스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비범죄화는 이들 모두를 범법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심스러운 것은 비범죄화란 방식이 강고한 성특법을 돌파하기에 여론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민성노련은 과도기적으로 특정지역 선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정지역이란 일종의 관용지역으로써 민주적 단체를 구성한 성노동자들이 사측에 해당하는 업주인 성산업인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지역을 운영하는 자율적 관리시스템을 뜻합니다. 이 제도는 자율관리의 건강성을 담보하기 위해 제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함으로써 3자가 협업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특정지역은 기업형을 반대하고 ‘생계형 성거래’에 국한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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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에는 성노동자의 날 4주년을 맞아 민성노련 현장에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사회진보연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노점노동조합연대, 독립프로덕션 빨간눈사람, 한국인권뉴스 등 단체 인사들과 대만의 COSWAS 활동가들이 함께 한 가운데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민성노련 이희영 위원장은 “성노동자 운동과 최근 정세, 전망에 대하여”란 제하의 발언에서도 ‘사회적 공론화’를 언급했다.

“..향후 성거래 정책이 선진화되려면 반드시 성특법은 전면적인 개정이나 폐지되어야만 한다. 이 법이 존재하는 한 이 땅의 성노동자들은 항상 불법이란 낙인이 찍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범죄화건 합법화건 사회적으로 충분한 토론을 통해 조속히 합리적인 정책이 채택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만, 성거래 형태에 있어 생계형과 기업형에 대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며 따라서 이 부분도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성노동자운동은 사실 이제부터다. 집창촌 성노동자들이 성특법에 저항해 일어난 자연발생적인 움직임이 1기 운동이었다면, 2기 운동은 내용에서 보다 정교해지고 풍성해져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성노동자들은 주체로서 역량이 취약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민성노련의 작은 경험처럼 사회적으로 문이 열리고 시민사회단체와 신뢰 있는 소통을 하다보면 성노동자들도 꾸준히 한 걸음씩 발걸음을 넓혀나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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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GG는 ‘사회적 공론화’를 요구하는 성노동자운동의 뜻과 성노동 현장주체들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비범죄화’ 기조를 굳이 왜 추진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지만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다만, 급진적 여성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들의 이념적 지형을 감안할 때 합법화 논의를 기피할 수밖에 없는  GG의 속내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해 볼 따름이다.

첫 번째는 GG가 급진적 여성주의를 고려했을 때의 입장이다. 만약 ‘합법화’ 논쟁이 시작되면 성을 구매하는 사람들(특히 남성)들의 욕구를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논의가 자연스레 대두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것이다.

참고로, 성노동자운동을 계기로 국내 여성계가 양분된 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 행사에서 성매매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이 행사 조직위 소속 광주민중행동,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문화연대, 노동자의힘 여성활동가모임, 세계화반대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인천사회진보연대, 장애여성공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학생연대회의 등 단체들은 성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에 반발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등은 별도의 행사를 치르게 된 것이었다. 주류여성계인 여연은 성매매 금지주의 입장으로 실제 성특법 입법 추진에 주도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므로, 성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단체들과는 애초 함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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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오늘 성노동자운동을 지원하려는 GG는 비주류여성계로서 외면상으로는 법제 및 이를 추동하는 여연 등 주류여성계와 전선을 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주류여성계의 정체성이랄 수 있는 성분리주의인 급진적 여성주의 정서를 상당부분 공유한 비적대적 관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합법화 논의를 테이블에 올릴 경우 성구매에 대한 법적 인정 논의로 받아야 할 엄청난 부담을 감안하면 아예 배제하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명분론이다. 즉, 음성적인 부문을 포함하여 전국에 소재한 다양한 형태의 모든 성노동자의 권리를 지지·지원한다는 취지에서 ‘비범죄화’를 추진했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GG는 운동의 공평성과 관련하여 상당한 명분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GG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간 성특법을 상대로 투쟁해온 집창촌이라는 현장 거점을 서둘러 떠나고 있다는 이미지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대두된다. 집창촌 성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성특법이라는 저들의 구체적인 집창촌 폐쇄전략 앞에서 GG가 전국을 포괄하는 선언적인 운동으로 돌아선 것에 대한 거리감으로 연대운동이 어려워지고, 그 결과 GG는 현장 기반이 없는 이론적인 운동에 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더욱이 비범죄화는 전국 방방곳곳을 사창가로 만들 것이라고 인식하기 쉬운 일반 여론과 충돌해 외려 성특법을 존속시키자는 역풍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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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는 대만의 성노동 ‘합법화’ 법안 통과 기사를 ‘비범죄화’로 잘못된 제목을 올려놓았다.(‘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홈페이지 캡처)

그러면 비범죄화(비범죄주의: de-criminalization)와 합법화(합법적 규제주의: regulamentarism)는 각기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개념정리를 간단히 짚어 보자.

비범죄주의는 단순 성매매행위 쌍방을 처벌하지도 않고 합법화하여 관리․통제하지도 않으며, 다만 이를 조장․착취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입장으로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등이 적용하고 있다.
합법적 규제주의는 단순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며, 등록증과 의료감시체계를 의무화하거나 특정지역 지정을 통해 성매매를 규제하는 입장으로 이 제도에서 성매매는 일종의 ‘직업’으로, 성매매 여성은 ‘노동자’로 관념되고 이들은 노동법적․사회보장법적 지원을 받게 되는데 미국 네바다주,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캐나다 등이 여기 해당된다.
(*조국 교수 논문 ‘성매매에 대한 시각과 법적 대책’ 중에서)

최근 대만은 그간의 매춘금지주의를 청산하고 합법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 중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2009년 6월 대만 대법원은 매춘 여성을 처벌하는 현재의 규제가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며 따라서 2년 안에 무효화할 것을 판결한 것이다. 이에 따라사 성노동자의 처벌 ․ 규제를 내용으로 하는 사회질서유호법(社會秩序維護法) 80조는 조만간 폐지될 전망이다. 대만에서는 그간 COSWAS 소속 성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의 투쟁에 힘입어 인권보호와 증진위원회(Human Rights Protection and Promotion Committee)가 성노동을 불법화한 현행법이 성노동자들을 비롯해 성인 간의 합의된 성에 미치는 사회적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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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GG의 성노동운동 기조가 ‘비범죄화’로 결정되는 과정에 성노동자운동 단체인 민성노련이나 여타 성노동자들의 견해가 반영되었다는 어떤 소식도 접한 바 없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성노동자들이 볼 때 운동이 수단으로 자신들을 이용하고 무책임하게 떠났다는 불신의 증폭이다. 이 점은 아마도 GG 운동이 집창촌은 물론 조직화가 필요한 현장사업에서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필자의 판단에서 앞으로 검증되리라 본다.

다시 말해, 성특법이라는 모럴테러리즘 앞에서 비범죄화건 합법화건 ‘사회적 공론화’ 라는 민주적 여론수렴 과정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려 했던 민성노련 성노동자들의 운동기조는 매우 적합한 것이었음에도 GG가 이를 간단히 외면한 것은 큰 오류였다. 이제 최초의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조차 배제된 GG의 상층부 운동이 갈 곳은 어디인지.. 운동의 철저한 자기성찰이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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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