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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원미혜가 진보적 여성운동에 도움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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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연대 날짜작성일 : 2007-09-29 23:37 조회 : 3,94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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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2007·09·29]

[칼럼]여성학자 원미혜가 진보적 여성운동에 도움 안 되는 이유

최덕효 (대표 겸 기자)

최근 버마의 유혈사태를 접하면서 문득 1987년 6월항쟁이 떠올랐다. 당시 필자는 국민운동본부 경기남부 사무국장으로 시위대 전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시위대의 주력은 수원시내 성빈센트 병원 앞에서 경찰 병력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치 중이었는데, 이 병원 의사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시위대 선두와 경찰 방패 사이에 끼어 들어 싸움을 말리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는 물리적인 충돌은 안 된다면서 양측간의 대화를 종용했지만 시위대와 경찰병력의 함성에 이내 묻혀버리고 말았다.

2004 년 10월경 대한민국에서는 세 가지 ''특별한'' 단식이 진행 중이었다. 청와대 앞 무궁화 동산에서 이라크 파병반대를 내걸고 장기단식 중인 김재복 수사, 같은 곳 바로 옆자리에서 천성산을 살리기(터널공사 반대)를 위한 장기단식으로 생명이 위험해진 지율 스님. 두 사람 모두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분명한 명분으로 시민사회단체의 지지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나름대로 여론화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국회 앞. 후일 성노동자로 명명된 전국의 집창촌 여성들이 천막을 치고 단식에 돌입했다. 그녀들은 9.23 성매매 특별법 시행에 맞서 생존권 투쟁에 나선 것이었다. 바로 길 건너편 국민은행 앞에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단체들의 천막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필자는 애초부터 성특법을 주류여성계의 정치적 요구에 부응한 제 권력의 야합물로 보고 그 점에 주목했다. 집창촌 여성들에게 허울 좋은 성매매 피해여성이라는 이름을 선물하는 대신 그녀들의 생존권을 몰수하고 이 땅의 성인들 모두를 예비 성범죄자로 규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제도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주류여성계의 정치적 발판인 유일무이한 ''성주류화 전략''의 첨병이 되어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관변 여성계의 급성장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성특법의 왜곡된 정치적 성격을 말해준다. 놀라운 사실은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대다수 시민사회단체들까지도 주류여성계에 가세하거나 기껏해야 입장을 유보한다는 점이었다.

상황은 긴박했다. 필자는 반전운동에서 성담론 활동가로 중심축을 옮겨 집창촌 여성들을 만나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일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성노동자''란 용어가 좋겠다고 화답했다. 이런 반응은 대다수 집창촌 여성들에게 대동소이하게 나타났다. ''성노동자''란 용어에는 이미 자발성이 내포된 성인 간의 필요에 따른 단순한 성적 거래를 함의하며 당연히 극소수의 인신매매를 논외로 한다. 그러나 이를 가로막은 것은 다름아닌 ''성매매 피해여성''이란 보호법익 논리였다. 주류여성계는 이 논리를 방어하기 위해 단순한 성적 거래를 ''장기밀매''(후일 ''장기대여''란 용어도 등장한다)와 같은 억지 예로 일반화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필자는 여기서 ''성매매여성''이란 용어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궁금했다. 매춘이 매매춘이 되고 성매매로 급조되는 최단기간의 용어 변천사를 단순히 국어학계의 노력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이런 용어는 판별하기 힘든 성도덕적 가치를 배제하면 어법상 모순이기도 했다. 매춘여성은 성적 서비스의 주체가 봄(성)을 파는 여성이므로 이치에 맞다. 그러나 매매춘여성은 봄을 사고 파는 여성이므로 구매 및 서비스의 주체가 되어 뭔가 이상하다. 성매매여성은 성을 상품화해서 사고 파는 여성을 지칭하므로 역시 이상하지만 ''상품화''를 강조함으로써 주류여성계의 의도와 다르게 마치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듯한 이미지를 준다. 어쨌든 이같이 괴이한 정치적 용어는 여성학계의 성과물(?)로써 국민들에게 모순된 언어를 강제했다.

'' 성매매''란 용어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원미혜(여성학자)였다. 그는 지난시기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원 재임 중 "우리는 왜 성매매를 반대해야 하는가" 제하의 논문에서 "매매춘이라는 용어는 기존의 언어 습관 때문에 ''성을 사고 파는'' 의미보다는 성을 파는 의미, 즉 매춘(賣春)의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다"면서 "''성매매''라는 용어는 아동 매매, 인신매매 등과 같이 ''거래''되는 측면을 강조하여 담을 수 있는 용어"이므로 "적극 권하고 싶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원미혜가 말한 ''성매매''는 prostitution(매춘)의 자의적인 번역에 지나지 않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trafficking(인신매매)을 이 범주에 넣었다는 점이다. 또 그는 또 "여성의 인권을 좀 먹는 성매매, 그 가부장제의 비곗덩이가 우리의 몸 속에 누적되어 숨통을 막게 될지, 우리 인식의 구석구석을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자신의 성매매 금지주의 지론을 강도 높게 펼쳤었다.

그러나 최근 원미혜(막달레나공동체 부설 용감한여성 연구소장)는 활동가들과 함께 <경계의 차이 사이 틈새-성매매 공간의 다면성과 삶의 권리>란 책을 펴냈는데 취지가 당혹스럽다. 그는 "성매매를 둘러싼 합법·불법 논쟁을 떠나, 논쟁에 가리기 쉬운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삶의 다면성을 보자"며 "집결지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심지어 집결지가 사회를 오염시키는 주범인 것처럼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다가 다른 한편으로 "성매매 자활사업이 지나치게 수치화된 척도로 평가받고 있는 점도 문제"라며 주류여성계를 두둔하기도 한다. 좌우지간 그는 지금 "언제나 답은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며 실용적인 현실주의자로 변모했다.

강력한 성매매 금지주의자인 원미혜가 이렇듯 오락가락하는 양줄타기(혹은 양비론)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성특법 시행직후 불붙은 성노동자들의 시위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그는 김강자(전 종암경찰서장)가 미아리에서 매춘단속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정밀한 현지 실태파악을 하게 되고 그것이 후일 공창제 주장의 배경으로 작용한 경우처럼, 원미혜와 집창촌 성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통한 교류가 그의 금지주의 골간을 방법론상으로나마 흔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건 주류여성계가 2007년까지 전국의 집창촌 폐쇄를 목표로 분주한 오늘에 와서야 원미혜가 ''현실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그동안 성노동자 운동과 관련하여 필자가 만난 여성계 후학들은 한결같이 성특법에 대해 "혼란스러워요!"라고 말하곤 했다. 성특법의 주효한 이론가인 원미혜가 이렇게 어중간한 입장이니 그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세례를 받은 많은 여성계 인사들이 혼란스러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 성매매여성 자활예산이라며 지난 3년간 580억원이나 집행한 바 있는 주류여성계 입장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움을 토로하는 집창촌 현장 활동가들에게 "힘들게 예산 따다가 상담소와 쉼터를 마련해 기껏 취직시켜 놓았더니 성매매여성들하고 가까이해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게 아니냐"며 볼멘 목소리로 항의라도 할 것 같다.

'' 혼란''을 정리하는 건 마음만 비우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지금도 지난시기 원미혜의 글들을 보며 성매매 금지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여성계 후학들이 있는 만큼, 그가 자신의 오류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기존의 논리를 철회하는 한편 성노동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로 배웠을 실효성 있는 ''현실론''을 제시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원미혜에게서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성노동자들이 ''성노동자''란 용어를 자연스레 사용하고 있는 지금 그가 "성매매 문제는 법으로 쉽게 근절될 것도, ''노동''으로 인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는 양비론을 고수하는 한 그리고 "여성주의자들도 ''성노동자'' 주장에 불편함만 가질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듣고 논쟁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작 자신은 논의에서 빠지려는 듯한 정치적 비겁함 때문이다. 여튼 원미혜의 이런 눈치보기 자세는 진보적 여성운동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성매매 특별법은 <성담론>의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진 후에 입법 여부가 가려져야 할 법률이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시민들은 성특법 시행 이후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만 성특법에 적극 반대했을 뿐 평소 정치판에서는 주류여성계의 전횡을 그대로 방치했던 까닭에 변변찮은 공청회 한번 없이 성특법이 일사천리로 입법되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파쇼적 입법과정을 보노라면 오늘 성특법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시민들은 주류여성계를 비롯해 입법과정에 개입한 기회주의적 정치꾼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어쩌면 주권자로서의 권리 행사를 게을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연전에 ''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행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의 성특법 비판은 오늘 한국사회에서 ''빈곤''과 ''여성''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말이다.

" 한국의 여성단체들, 너무 과잉세력화되어 있다고 본다. 시민단체들이 이번 성매매처벌법에 100% 힘을 실어줬다. 왜? 안 그러면 ''악의 축''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상식이 있는 남성들은 성매매 문제에 관해 ''원초적 약점''이 있어서 끽소리도 못한다. 그러나 정책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이게 ''깜짝쇼''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난다. 한계계층 여성들이 추운 겨울날 길거리로 내몰렸다. 빈곤영향평가라든지, 법 시행 이전에 최소한 수행되어야할 조치들은 전혀 없었다. 중산층 이상 여성들의 복지를 위해 한계계층 여성들의 복지를 희생한 것이다." (월간말 2004년 223호)

필자가 이 글에서 원미혜를 집중 거론한 것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유형의 학자들이나 정치꾼들이 책상에서 관념적인 정치게임에 몰두하면서 무책임하게 입법 활동을 하는 이면에는 기층민들의 생사가 걸려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성특법 아래 집창촌도 단지 그런 경우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불행하게도 ''성매매''용어의 제안자이며 금지주의자인 원미혜는 성특법과 성노동자 사이에 계속 그런 어정쩡한 모양으로 존재할 수 없다. 지난 2005년 성노동자운동에 연대하는 세계여성행진이 대학로에서, 성노동자운동 반대진영의 세계여성행진이 시청 앞에서 각기 대회를 열렸을 때 우리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했듯 원미혜도 선택해야 한다. 실효성도 없는 580억원 혈세를 마구 살포하는 주류여성계 권력과 생존이 급급한 기층민 성노동자들은 어차피 삶의 궤적이 다르니 분명하게 당파성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한 성노동자는 필자에게 성특법 시행 직후 대화차 만난 주류여성계의 어떤 여성관료로부터 "너희같은 X들은 다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다며 분노를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주류여성계 표현으로 탈성매매여성이지만 당시 분노를 거름으로 삼아 지금 성노동자운동에 투신해 성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주거권 그리고 건강권 쟁취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우리 모두 6월항쟁 당시 그 의사처럼 어중간한 자세로 양쪽에게 무조건 대화하라는 건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구조를 전혀 모르거나 모른 채 하고 그냥 허공에다 외치는 무모한 짓일 것이다. 그런 열정이 있으면 약자들 편에서 그들과 함께하면 된다. 결론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한다. 성특법을 폐지(혹은 대폭개정)할 것인가 유지 강화시킬 것인가. 휴먼 라이츠 워치가 ''국가보안법 철폐''와 ''자발적인 성노동자 등의 권리 보호''등을 한국정부에 권고했는데 진보진영이 유독 후자에만 침묵하는 건 도리가 아니잖는가. [한국인권뉴스]

[자료제공]
한국양성평등연대 (평등연대)
http://cafe.daum.net/gendersolida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