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원이 알고 싶다④] 그렇게까지 성매매를 말하는 사람

[회원 인터뷰 사업_그 회원이 알고 싶다④]

 
그렇게까지 성매매를 말하는 사람
 
 
인터뷰이 : 이현정
인터뷰어 :        별
 
 

 

2015년 성매매 상담원 양성교육에서 만난 이현정 씨. 내가 이룸 소속이라 하자 그녀는 이룸 회원이고 이룸의 사업들을 좋아한다 했다. 파랗게 머리를 물들이고선 강사에게 질문하는 모습이 눈에 띄던 현정 씨가 이룸의 팬이기까지 하다니! 마냥 서로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딱 1년이 흐른 지금, 본인의 현장에서 「프리즘」, 「예술로 반성」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사회에서 작동하는 예술’ 을 모색 중인 현정 씨를 다시 만났다.   
 

아직 운동이 필요한 현장, 성매매

 
현정 씨가 “어쩌다 보니 청년 예술가에서 반성매매 활동가가 되어있었다”고 웃으며 시작한 이야기는 우리네 일상이 성매매와 맞닿아있는 경로를 되짚어 흘러갔다.
 
청소년기 가족 지원 없이 방을 얻어 살면서 다방, 노래방 도우미 일로 세를 벌던 친구들의 모습, 등하교길 맥양주집이 즐비한 풍경, 하루 절반은 미대생으로 예술의 쓸모를 논하고 절반은 알바생으로 서러움을 겪는 낙차로 다가오는 계급과 가난, 사회적 자원의 분배와 공적 논의의 장에서 배제된 청년 예술가·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 길러온 연대의식, 관계에서 성적으로 지불되어야 하는 순간마다 넘나 들어온 경계이자, 10대에서 70대까지, 평생토록 경제적 위기의 순간에 선택지로 떠오르는 성매매라는 현실. 한줄 요약하자면 동시대의 한국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으리라 짐작 가는 그런 이야기이다. 
 
 
“하루를 쪼개서 오전 일찍부턴 아르바이트 하고, 오후 즈음부턴 ‘철학하는예술가협동조합’에서 활동을 했어요. 한 3년 하니까 몸도 망가지고 돈 버는 데 쓰는 예닐곱 시간이 너무 가치가 없게 느껴지고, 자존감이 계속 무너졌어요. 어차피 알바이고 푼돈이면 가치라도 있게 벌고 싶다 할 때쯤 반성매매 기관에 TO가 나서 들어가게 된 거죠. 예술로 사회에 이바지 하는 건 꿈꾸면서도 사회복지사는 싫었는데(웃음). 그래도 호감을 갖고 흥미롭게 시작할 수 있는 키워드가 성매매였던 것 같아요. 아직 운동이 필요한 영역이잖아요. 모두가 성매매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거에, 복지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 나 포함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어내야 하잖아요. 나와 내 주위와 긴밀한 문제이니 그만큼 몰입할 수 있기도 하고요. 여자고 사람으로서 ‘그런 경험은 기분 드러운 경험이야’ 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현정 씨는 그렇게 성매매 현장을 알아갈 참고 자료를 찾던 중 이룸과 만났다. “이거 좀 괜찮다 싶으면 이룸이야!” 「네이버 지식in 온라인 아웃리치」와 「경찰서 아웃리치」, 「루머 종결자들」, 「화톡」, 「별별신문」, 「월간 비범죄화」까지, 이룸 사업들이 사회적 작용과 파장을 만들어내는 감각, 통상 관에서 잘 시도하지 않는 부분을 건드리는 적극성, 주장을 전달하겠다는 열의에서 발굴한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공공 미술 스러웠다고 한다. 인터뷰이는 예술과 운동 사이에 윤리적 채널을 이어내려 하는 사람의 안목으로 이룸을 높이 사 주었다.

 
“내가 어딘가 한군데 후원을 한다면 여기는 꼭 해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미대에서 기발하고 쌈박하고 센스있고 이러고 싶었거든요. 뻥을 쳐서라도 어떻게 한건 터트려서 유명해지고 싶고 막. 근데 막상 듣는 평가는 진정성이었어요. 싫었어요. 능력없음, 재능없음, 끼없음으로 들렸거든요. 지금은 제가 어릴 때 했던 작업들을 좋아해요. 예술이든 운동이든 뭔가 전달하려는 거잖아요. 중요한건 마음의 울림인데 그 힘이 진정성에서 오는 것 같아요. 이룸을 보면 그 진정성이 창의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진짜로 간절하게 고민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기발함. 그런 흔적들이 이룸에서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룸이 재밌다는 현정 씨. 「월간 비범죄화」 를 발간한 ‘성판매여성 비범죄화 추진연합’ 연대단체 중 하나인 ‘성구매 안하는 한줌의 남성 모임’을 되살려내 응용한 캠페인도 진행했다. ’갑질하는 갑‘이 되려는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무엇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거냐는 고민을 품고.
 

“영화 [내부자들]에서 슈퍼갑 권력자들을 본 남성들, ‘저 나쁜 놈처럼 하지 말아야지’ 가 아니라 ‘아! 갑들은 저렇게 노는구나. 내가 갑이 되면 해봐야지’ 로 나아가죠. 워너비의 모양 이 달라요. 그런 면에서 [내부자들]은 사실 고발을 빙자하며 폭력을 재생산 하는 영화죠. 유흥업소들의 간판 네이밍을 보면 럭셔리, 황제, 비즈니스 클럽 등 권력 지향적인 이름이 많더라구요. 여성을 사고파는 문화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윤리가 제동장치가 될 수 없다면, ‘한줌’ 캠페인을 통해 성구매를 희화화 하고 성구매 안하는 걸 간지로 만들어볼까 했어요. 성구매는 찌질해…이렇게. 자칫 성매매 안하는 멋쟁이! 이렇게 갈 뻔하긴 했단 생각도 들지만요(웃음).” 
 

함께 사유할 사람들을 모으는 활동의 가치
 
 
이렇게 욕망과 권력은 무엇이 간지냐, 에 달려있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인터뷰이는 언론과 예술이 ‘진보’라는 일종의 간지 나는 이름을 달고, ‘폭력/피해자’는 구닥다리, ‘노동/노동자’는 급진 좌파, 이원화해서 프레이밍 하는 데에서 오는 답답함과 짜증이 있다고 했다. 인터뷰이의 눈에 비치는 언론과 일부 학계는 지금 당장 일을 그만 둘 수 없을 당사자 인터뷰 한 방에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예술 역시 당사자를 타자화하고 혐오하는 뻔한 결과물을 예술가의 상상과 표현의 자유라며 내어 놓는다. 너무 싸고, 쉽다. 
 
“직관과 게으름은 다르잖아요.” 현정 씨는 진실을 듣는 데는 그만큼의 투자가, 본질을 직관하고 통찰하기까지는 그만큼의 정당한 사유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여겨 현장에 있다. “우리가 생산하는 이미지도 의도와 다르게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 하고서 실제에 기꺼이 다가가 실패를 감수하고자 한다.「예술로 반성」(매매) 하는 과정이다.
 
 
“성매매 구조는 앞뒤 양옆에 뭐가 있었는지, 맥락을 짚어가며 왜 이렇게 왔을까를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연예인들의 성폭행사건만 봐도 ‘여자가 빚이 삼천이라던데? 삼천만원, 7개 업소, 구속, 그러니까 꽃뱀, 사기꾼’ 단순하게 도출해요. 선불금 이라는 게 빌려준 흔적은 있지만 갚아나간 흔적도 없고, 어떻게 진 빚인지 알 수 없는데도 말이에요. 표면으로 드러나는 편집된 ‘사실’의 이면을 보기 위해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도 훈련을 하는데… 그렇게까지 성매매를 말하는 사람은 잘 없는 거죠.” 

 
“현장에 와서 느낀 건 인식 싸움을 하기 에는 너무 버겁다는 거예요. 상담과 지원만으로도 일이 많으니까. 일일히 대꾸할 여력이 없는 거잖아요 현장에서는. 근데 사람들은 내가 봤던 글, 이미지를 가지고 ‘그렇다던데? 그런 것 같애,’ 결론을 낸 게 모여서 거대한 여론이 되잖아요.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현장을 경험하고 현장에서 출발한 예술인, 언론인, 연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ㅡ 반성매매가 아닌 다른 결론을 도출하더라도… 성매매 문제의 구조와 맥락을 짚어갈 수 있는, 그런 사유가 가능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한 프로젝트가 「프리즘」이에요. 지역시민과 예술가들이 모여 공부하고, 활동가들과 현장 아웃리치를 나가요. 보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고 작품 기획회의를 해요. 콘텐츠를 제작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로 이지만, 콘텐츠보다 귀한 사람도 남죠.”

 


▲프리즘의 작업물들
 

▲프리즘의 특강

세 명이 모이면 할 수 있다는 용기


 
이런 뜻을 지니고 다양한 작가, 강사진들과 함께하며 여성 단체와 지자체에서부터 문화예술계 까지 뻗어나가고 있는 현정 씨.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힘겨움은 없는지 물었다.

 
“뜻으로 모여도, 여러 사람 사이엔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친숙하지 않은 문서와의 전쟁도 만만치 않아요. 두 번 다시 안할란다, 내가 작업하고 말지 투덜대기도 하지만 끝나고 나면 이 좋은 사람들과 더 제대로 된 기획을 하고 싶고, 또 다른 작가들을 만나고 싶어져요. 혼자보단 둘이 할 때 용기가 나고. 셋이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둘은 그냥 깨질 수도 있는 관곈데 빈 테이블에서도 셋이 모이면 돼요. 이룸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 아닌가요?”

 


▲프리즘 뒷풀이에서 작가들이 그린 인터뷰이
 
 
현정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 함께 NGO틱함과 예술감과 유우머를 짬뽕하여, 성매매 구조의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꺼리를 생산해, 사람들과 더불어 움직여보자는 용기가 났다. 모두들 각자의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를 성장시키고 충족시키는 조직과 활동의 방식을 찾으며, 버티고 또 바톤터치를 해 삶을 꾸려 나가보자는, 우리 그냥 헛다리 짚은 거 아니라며 등을 떠밀어주는 울림을 느꼈다. 

 
“언젠가 이룸하고 뭔가 같이 해보고 싶어요!” 그래요 우리!

 
§ 올해 현정 씨의 책장 엿보기
 
①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연대기
② 정희진처럼 읽기
③ 젠더무법자
④ 우리안의 남성
⑤ 타인의 고통
⑥ 젠더트러블
⑦ 젠더 허물기
⑧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⑨ 페미니즘의 도전
⑩ 원더박스
활동이야기

[그 회원이 알고싶다②]이야기하기 위해서_견과류

[회원 인터뷰_그 회원이 알고싶다]

이야기하기 위해서
 
 

인터뷰이_견과류
인터뷰어_완  두 

 

지난 5월 강남역 주변 남녀공용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 의해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화장실에서 기다리던 피의자가 6명의 남성을 보낸 후 최초로 들어온 여성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었다. 

회원인터뷰를 목적으로 견과류를 만난 건 사건이 있고 이틀이 지난 후였다. 우린 늦은 저녁, 카페의 딱딱한 의자에 기대 앉아 잠시 서로를 마주보며 멋쩍게 웃었다. 

“책을 읽으려는데 손에 잘 안 잡히는 날이야…. 마음이 안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 나의 일, 나의 문제잖아. 사실 전부터 늘 있어왔던 사건들이지. 그때마다 매번 이런 기분들이 올라왔다 사라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다시 사라지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참담한 기분이 올라오는 동시에 거기에 먹히지도 말자. 그런 생각 말이야. 먹혀버리면 뭔가 할 수 없으니까….”

 
 
견과류의 동생까지 우리가 함께 산지 5개월. 새삼스레 안부를 묻는 나에게 견과류 입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말은 ‘강남역 사건’이었다. 나는 준비해온 질문지를 덮었다. 그리고 꽤나 긴 시간 강남역 사건을 겪어내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인 견과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날 우리가 만난 이유를 잊게 할 만큼 강남역 사건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 전부를 압도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견과류는 답답할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뱉듯 말했다. 평소 그녀의 신중한 성격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1. 직업이 생길 줄 알았는데….

 
견과류는 이룸의 회원이자 여성단체에서 성폭력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시에 일주일에 한 번 장애여성학교 한글반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고, 웹진 무구 편집진이자 필진이며, 2012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준비한 모 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덜컥 등단까지 해버린 작가이기도 하다. 사실 이 중 견과류가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즉, ‘돈이 되는 일’은 1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과류는 이 모든 일을 곁에서 보기에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또 즐겁게 해내고 있었다. 상담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시간 있어서”라고 여유롭게 답하는 그녀가 먹히지 않기 위해 그간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다. 

 
“내 직업은 사실 특정하기가 어려워. 계속 바뀌거든(껄껄껄).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처음 한 일은 모 문화예술단체 활동가로 있으면서 강의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거였어. 2년간 했지. 다음으로 인터넷서점에서 신간도서 리뷰를 쓰거나 저자들 인터뷰도 하고 책에 관련된 컨텐츠 만드는 일을 또 2년 했어. 그다음이 언론사 콜센터였어. 최근 3월까지는 인문학강의를 개설하는 단체에서 데스크 업무를 봤어.”
 
 
콜센터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던 견과류는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무작정 퇴사한 후 수중에 있던 돈으로 여성단체에서 진행하는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이수했다. 면허를 따기에도 역부족이었던 돈으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교육을 받고 나면 직업이 생기는 줄 알았다"는 견과류는 100시간 수업을 마칠 때쯤엔 직업 대신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성폭력상담원 견과류의 책장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 여성주의를 접했어. 대학 다닐 때도 여성학 강의를 들어본 적 없고, 문학을 공부하면서 관심을 가질 법도 했는데 그동안은 계기가 없었던 것 같아. 있었어도 지나쳤을 것 같고. 여성주의로 100시간 빵빵 채운 강의를 듣다보니까 이걸 이론으로만 갖고 있고 싶지가 않고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싶더라고. 근데 직업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어. 사업에 치였던 삶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격무에 시달리면서 활동을 하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활동을 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작년 여름 교육이 끝난 후 10월부터 성폭력상담원으로 활동 하게 됐어.

 
문제는 먹고 살아야 하잖아. 월세도 내야 되고. 그런데 주5일제 회사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다양한 형태의 직업을 경험하면서 주5일제로 일해도 가난하고 알바를 해도 가난하다면 시간이라도 있는 방식의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 돈이 없으면 시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책이라도 읽을 것 아냐. 돈 드는 건 못해도… 솔직히 그런 생각은 들어.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게 나라가 그렇게 생겨먹었잖아(발끈!).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거든. 콜센터… 정말 무지 힘들었어. 소소한 곳에 다 지원했는데 다 떨어져서. 내가 나이가 딱 서른이 되가지고 너무나 불리한 나이고 나 스스로 커트라인을 낮춘 거지….”

#2. 듣는다는 것은 의지를 가지는 일 

 

견과류가 촉촉한 눈으로 문장 끝에 “10알….”을 보탤 쯤, 나는 최근 눈에 띄게 살이 쪽쪽 빠질 정도로 온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한글반 강사 활동에 대해 물었다. 견과류는 두근거렸던 한글반 개강식 날을 떠올렸다.


 
“4월부터 2~30대 발달장애여성 7명과 주1회 한글 공부를 하고 있어. 첫 수업 앞두고 긴장을 많이 했어. 장애여성을 처음 만나는 거였고 난 실수하고 싶지 않았거든. 사실,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에게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되고 그냥 그렇게 알아 가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상담을 할 때도 한글반에 갈 때도 성폭력피해자나 발달장애여성에 대한 정해진 상을 가지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 같아. 나의 긴장은 거기서 온 거지. 그런데 문득 내가 평소 다른 관계는 어떻게 맺고 있나 생각해 봤는데 그렇게 안하고 있거든. 내가 너무 과도하게 조심하고 과도하게 경직 되어있었구나… 그래서 한글반 첫 날 ‘저도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는데 저를 처음 만나는 건 여러분도 같으니까 출발점이 같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는 걸 목표로 한글반 잘 해보자’라고 인사를 했지."

 

▲ 한글반 참여자분의 노트
 
견과류는 한글반 활동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집중하는 법을 새로이 배워가고 있다고 한다. 한글반 참여자분들과의 관계 맺기는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상대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긴장감이 아닌, 타인을 관찰하고 경험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감각을 키워준다면서 말이다. 견과류는 이런 집중은 특별히 누군가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닌 모든 관계에서 가져야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이분들한테 집중해서 알게 된 것이 생길수록 내 주변 관계들에 대해 놓친 것들이 있었겠다 싶은 게 있는 거지. 이야기를 듣는 작업이라는 게 쉬운 것처럼 느껴지잖아. 그런데 듣는 건 고도의 집중력과 시시각각을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그냥 들리는 거랑 다를 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해. 듣는다는 것은 의지를 가지는 일이라는 것을 한글반 하면서 좀 더 실감하게 된 거 같아.”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견과류는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이야기를 듣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이야기하다’라는 동사에는 나만 있어서는 성립이 안 돼. 혼자 있는 방에서 말하는 것을 독백한다고 하지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잖아. 이야기를 한다는 건 결국 쌍방의 연결, 소통, 그런 것들을 말하는 거고 그건 이야기를 듣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

 
견과류는 의식하지 않으면 금방 혼자 떠드는 사람이 되고 그런 ‘고인 물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며 예로 그분을 꼽기도 했다.
 
 
“너무 벽을 치고 혼자 있는 것 같잖아. 나는 그 사람의 말을 해독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분의 스피치에 대해 이를테면 새해인사나 연설 등이 조롱거리로 돌아다니는 건 그 사람이 혼잣말하기 때문인 것 같아. 언어능력은 대화를 통해 성장 하는 건데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퇴행을 하고 있다고… 고이지 조차 못하고”
 
 
나는 견과류에게 지금까지 이야기해준 것들과 강남역 사건을 경험하는 견과류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처음 견과류가 말한 먹혀버리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뭔가’는 어떤 것일지 얘기해 달라고 했다.
 
 
“전에 이런 기사들 봤을 때를 생각해보면 특수한 사건처럼 느껴졌어. 그런데 지금 이건 이거라서가 아니라 내가 관점이 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에 나의 삶 다른 여성들의 삶과도 연결 되어있다는 걸 알아서 가슴이 더 아픈 것 같아. 전에는 그런 연결성에 둔하고 못 봤다고나 할까."

 


▲ 웹진 '무구'(mugu.kr)에서 연재중인 견과류의 <우리·말> 
"일단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 나의 이야기로부터 행동하고 출발하는, ‘그런 일이 있었대’가 아니라 ‘나는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것. 그런 말들이 쌓이는 만큼 움직여지기도 하는 것 같아. 나는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고 어려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자각했어. 이제까지 내가 써온 글들은 내 이야기를 전하는 매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 지기 위한 글쓰기였던 것 같아. 나는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타인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대할 때도 타자화 하기 더 쉬워진다고 생각해. 이런 것들을 글쓰는 공부를 열심히 할 때는 계속 놓치고 있었어. 그게 나의 한계였던 것 같아. 새로운 한계들은 여전히 있지만 이제는 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 나는 여성이고 나는 30대고 나는 성소수자잖아 그런 것에서 출발하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 된 것 같아.”

 

#3. 낙관의 힘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

 

견과류는 이룸을 포함해 5곳을 더 후원하고 있다.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 후원하고 싶은 곳이 더 있다며 하나씩 읊어주기도 했다. 견과류에게 후원은 한 마디로 “대신 잘해주십쇼!”다.

 
“말했지만 활동은 인생을 거의 투신하다시피 해야 하는 일이고 나는 그런 그릇은 아닌 거 같아.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쥐뿔도 없지만 쌈짓돈이라도 보태고 싶어. 여러 가지 참여할 수 있는 자원활동이나 모임들이 있지만 돈을 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게 가장 쉬운 일이니까. 많이는 안하고 있어. 다 오천원씩 하고 있어. 많이 하기도 했었는데 경제적으로 후달리면서 다 소액으로 줄였어. 마음 같아선 많이 하고 싶지만.”

 


▲ "아이럽 리베카 솔닛!"

 

회원 인터뷰를 하면서 이루머 각자는 인터뷰에 응해준 회원에게 주고 싶은 것을 고민하여 선물하고 있다. 나는 견과류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사전에 물어보았고 견과류는 리베카 솔닛 의 <멀고도 가까운>(2016)이라는 책을 골랐다. 견과류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5)를 통해 리베카 솔닛을 알았고 이후 <예술가의 항해술>(화이트 리뷰 저, 유어마인드, 2015)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그녀가 더욱 좋아졌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느낀 솔닛의 낙관이 특히 와 닿았단다. 
 
 
“부조리한 문제들에 분개하고 공분하는 건 나를 태우는 일이잖아.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의 끝에 피로감만 남고 변하는 건 더디고…. 하지만 바로 그 과정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이니까 더더욱 솔닛과 같은 낙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폐허를 응시하라>(2012) 라는 책에서 911테러나 자연재해 같은 재난상황에서 있어 왔던 이타적인 인간과 공동체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 하거든. 세상은 그런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나아진다는 메시지가 이상주의자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난 솔닛이야말로 굉장히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해.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낙관은 허황된 이상이 아니라 동력이라고 느껴져.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누구보다도 어려운 현장에 있는 이루머들도 사실은 그런 낙관을 가지고 있어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고 바꾸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인 거잖아. 그래서 이루머들은 부정할지 몰라도 그런 낙관을 가진 분들 같아. 그래서 나도 꼭 어떤 단체나 어디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어도 내 삶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내 삶에 활동가로서 솔닛처럼 이런 낙관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 그래서 이 책을 갖고 싶었어. 왜냐면 살 돈이 없었거든 그래서 인터뷰에 응했어. 인터뷰에 응하면 책을 줄 거라는 낙관이 있었기에! 히히”
 
 
강남역 사건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2000개가 넘는 포스트잇이 붙었다. 그곳으로 자신을 이끌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은 피해자에 대한 추모와 동시에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아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꽃으로, 펜으로, 마이크로, 거울로 이제까지는 살아남았지만 앞으로는 살아가고 싶다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 후로도 헤아려지지 못했던 고립된 고통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분노와 슬픔, 두려움이 한 데 뒤엉킨 목소리들은 그 경험을 함께 껴안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씩을 내보이며 때때로 희망을 점치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가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을 확인하는 공간, 그것을 실감하는 공간은 강남역 10번 출구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언제 어디에서나 도사리는 우리를 침묵하게 하고 위협하는 힘, 그 힘보다 더 큰 저항의 공간이 우리 각자에게 충분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에게 인터뷰는 그런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나와 우리, 서로를 지지하는 존재를 확인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그런 공간을 내 주변에서부터 꾸미고 세계로 넓혀 변화의 시작이 되게 하는 일 말이다. 이것은 견과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믿고 싶은 낙관이다.
 
이룸이 가진 낙관은 무엇일까? 
우리가 가진 낙관은 무엇일까?
언제, 어디에 있든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견과류는 인터뷰가 끝나고 내내 상심한 얼굴이었다. 서로 잘 말하지 못한 것 같다고, 잘 듣지 못한 것 같다고 자책하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 다다랐을 때 쯤 우린 서로에게 잘 했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난 만남 보러 가기
 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결하는 자, '승짱'을 만나다 (승짱-달래) 

활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