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22 이룸공부방 1기 1회차 후기 ‘당신은 이룸 다락방에 가 본 적 있나요?’ by. 파니

지난 5월 22일, 이룸회원공부방 첫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모임에서는 다함께 이룸의 청량리집결지관련 자료를 읽고 모였는데요.  발제는 현우님이, 후기는 파니님이 도맡아주셨어요!

8쪽에 다다르는 정성스런 발제문에 이어 사랑이 느껴지는 후기를 받아보니 마음이 따땃-합니다. 이 따뜻함을 같이 나누렵니다.

 

이룸 공부방 1기 1회차 후기

 

당신은 이룸 다락방에 가 본 적 있나요?

 2018. 6. 27. 파니

 

 

모임 장소가 이룸 사무실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가장 기대한 건 다락방이었습니다. 제가 이룸에 다락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최근의 일인데, 그 후엔 이루머를 만날 때마다 넌지시 그곳의 세목에 대해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별과 차차가 다락에 있던 물건을 옮겨서 빈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빈 공간에 도달하려면 사다리를 타야 한다는 사실, 그곳을 누가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언젠가는 다락의 벽 한 면이 빔 프로젝터 화면으로 변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려면 벽을 하얗게 칠해둬야 할 텐데 그때 저에게도 페인트 붓을 들 기회가 생길까요?

이룸은 뭘 해도 이룸 같습니다. 해결하지 못한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 성매매 집결지를 주제로 포럼을 열어버리고, 포럼에 갔더니 서로 다른 식감을 가진 비스켓과 사탕을 엮어서 만든 간식주머니를 나눠주고, 사무실에 갔더니 여행자가 선물한 차를 끓여서 처음 보는 사람 앞에 놓아줍니다. 이룸 공부방을 이룸 사무실에서 하게 된 과정도 참 이룸 같았어요. 공부방 참가자들은 이루머들이 공휴일에 추가 노동을 할까봐 염려되어서 다른 곳에서 공부하겠다고 하고, 이루머들은 이미 수없이 보았을 텍스트를 여기서 또 한 번 같이 읽어보자고 하고, 못이기는 척 이룸 사무실에 갔더니 커다란 탁자 위가 이미 여러 나라의 음식으로 꽉 채워져 있어서 조금만 챙겨갔던 마들렌조차 놓을 자리가 부족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인물과 늘 궁금했던 인물과 처음 봤지만 반가운 인물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이 건네는 예의를 갖춘 친밀함도 제겐 이룸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뻐져서, 평소보다 자주 웃고 안하던 농담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룸 사무실에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데, 그건 아마도 이룸이 노동하고 관계 맺고 생활하는 방식이 그 공간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 일겁니다. 실제로 모든 장소에는 그 장소에 깃든 자들의 이해관계, 욕망, 삶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장소에 거주한다는 건 그 곳에 묶여있는 감정과 역사를 살아내고 또 자신의 감정과 역사를 그 공간에 놓아두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집결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생각이 자꾸 복잡해지는 이유는 집결지가 구체적인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공간에 거주하는 수많은 관계와 시간의 선들을 촘촘히 헤아리는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고, 그러한 헤아림은 끝이 없기 때문이며,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야만 그 다음의 실천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겁니다.

우리는 이룸에서 발간한 자료집인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자료집,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천일야화>를 읽고 성매매 집결지, 특히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을 이행하는 국가와 자본은 재개발 대상이 되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의 역사와 욕구를 고려하지 않고 공간을 관광자원화하거나 경관을 정비하는 방식을 살펴봤습니다. 국가와 자본은 재개발 과정에서 일차원적이고 집계 가능한 이윤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되는 추상적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실제의 공간을 구성해버린다는 생각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집결지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행위자로 등장하는 정부, 토건자본, 성매매 업주, 성매매업소의 건물주, 철거 반대 사회단체들이 모두 성판매 여성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배제하고 이용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성판매 여성은 집결지 부동산 소유자가 아니고, 임대차 계약을 맺지 않았으므로 임차인으로서의 권리 역시 주장하지 못합니다. 성판매 여성은 어쩌면 집결지 공간을 가장 속속들이 파악하는 거주자이고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마주치는 이웃이지만, 그들의 이웃인 성매매 업주들은 성판매 여성을 착취하고 다른 성판매 여성은 낙인, 단속, 빚 독촉에 시달리다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버리기도 합니다. 집결지에서 생활하는 성판매 여성은 집결지라는 장소에 속해있었다는 사실만 밝혀져도 성매매특별법상 범죄자로 위치 지어질 뿐 아니라 도덕적인 낙인까지 받게 되기 때문에 그 공간에 속해있든, 그곳을 떠나든 집결지에서 경험한 것들을 쉽게 드러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성매매 집결지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 많은 곳이 청량리와 같이 이미 재개발되었고, 또 다른 곳은 재개발될 예정입니다. 집결지가 재개발되면 정부는 표를 얻고, 자본은 이윤을 얻고, 업주나 건물주는 보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판매 여성은 어떤 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그 공간에서 사라집니다. 어떤 장소를 본인의 욕구에 따라 구성할 힘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공간이 사라질 때도 본인이 응당 받아야 할 보상이나 애도의 방식을 부여받지 못한 채 그저 사라져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치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 곧 허물려버리는 벽이나 지붕, 공간 그 자체처럼요.

 

우리는 내내 질문했고, 한 질문은 다른 질문과 이어졌습니다. 성판매여성에 대한 낙인, 특히 성매매특별법을 통한 범죄화 속에서 성판매여성이 어떻게 집결지 재개발 국면의 행위자로 등장하여 본인의 욕구와 지분을 주장할 수 있을까? 성폭력 지원기관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상담 등을 통해 어떤 사람이 성폭력 피해생존자임을 확인하면 그에 대해 추가적인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성폭력피해생존자를 지원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낙인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지원체계를 집결지 재개발의 맥락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국가는 어떠한 지역을 개발대상에서 제외한 다음 그 지역에서 성매매처럼 범죄화된 행위들이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성판매자가 착취당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이를 오랫동안 묵인하였다가, 차후에 해당 지역을 재개발하는 방식으로 정치적인 지지를 얻거나 토건자본과 연합하였는데, 이러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적당한 방식은 없을까? 마치 미군 기지촌을 조장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최근 판결에서처럼 집결지를 조장한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집결지의 성매매 업주 및 건물주가 성매매를 통해 얻은 이윤을 몰수 추징할 수 있다면, 성매매 업주와 건물주를 배제하고 성판매 여성이 재개발 과정의 협상주체로 등장할 수 있다면, 집결지 재개발의 방식과 내용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러한 질문들은 집결지라는 현장과 계속하여 밀착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질문들은 기존의 재개발 국면에서 철거민 투쟁 등 사회운동 진영에서 논의되는 질문들과는 다른 특유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러한 질문들은 성매매 현장에 끝없이 머무르며 행위자들이 지닌 현재의 욕구와 미래의 전망 사이에서 무엇 하나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여성주의라는 관점으로 반성매매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성판매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고자 하는 이룸의 활동과 닮아있었다고 느껴집니다.

 

첫 공부모임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이룸이라는 장소를 심어주었고, 서로가 지고 다니던 장소를 이룸에 풀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장소에서 이룸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평소 본인이 고민하던 주제들-성별화된 빈곤, 성애화, 정당정치, 법, 철거 투쟁-을 이룸에 내려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의 성애화된 몸이 왜, 어떻게 교환할 수 있는 자원이 되는지, 성애화된 여타 노동과 성매매의 차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나 충분히 벼려지지 못했던 질문들이 이룸이라는 울타리를 만나서 좀 더 자신을 밀고나갈 기회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궁금한 게 많은 우리는 그 다음 일정, 그 다음 커리큘럼을 금방 정해버렸고, 우리가 올해를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도 정해버렸습니다. 그 다음 일정, 그 다음 커리큘럼, 한 해의 끝도 서로와 함께. 물론 장소는 이룸입니다.

공부모임을 마치자마자 저는 이룸의 다락방으로 향했습니다. 소문대로 다락 입구를 향해 사다리가 놓여있었고, 사다리의 각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팔랐습니다. 다락에 어떤 물건이 놓여있는지, 창문으로 이른 저녁 빛이 들어왔는데 그 빛이 십자모양의 창살로 나뉘면서 어떤 문양을 그려냈는지, 한 개의 다락이 총 몇 개의 구획으로 다시금 나뉠 수 있는지는 비밀로 하고 싶습니다. 딱 하나만 알려드릴게요. 이룸의 다락방에는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바닥으로 뚫려있습니다. 그 문을 열었더니 이룸 현관이 보였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셋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학교 친구이지만 졸업 하고 나서야 친해진 사람, 한 사람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무척 좋아하지만 저는 처음 보는 사람, 한 사람은 언젠가 이룸 토론회에서 인사만 나눴던 회원입니다. 제가 안녕, 하니까 셋이서 안녕, 합니다. 맥주를 사러 갈 거라면서 무슨 술을 마실 거냐고 묻습니다. 제가 맥주, 하니까 셋이서 활짝 웃습니다. 다락방 천장에 그 미소를 온전히 옮겨둔 다음, 저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이룸이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과정에서 여성주의 활동가이자 동시에 성판매자의 조력자로서 개입하면서 겪은 딜레마에 대해서 함께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우리로서 어떤 주체가 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어떤 위치에 서서 누구를 적대하고 누구와 협상하는 전선을 그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일은 어려웠지만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성매매 집결지라는 장소에 함께 속하기 때문에 알게 되는 어떤 감정과 역동들, 담론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어떤 얼굴과 신체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구체성 속에서 딜레마를 더욱 깊게 만들고 그처럼 깊은 곳을 현실로 삼아 활동을 펼치려는 힘. 저는 공부모임을 하면서 이러한 이룸의 역량과 방향성을 배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룸공부방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후기 2탄 by 소윤

 

예전부터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을 들으면 꼭 나를 두고 하는 소리 같았다. 그동안 살면서 ‘나’를 움직였던건 나 자신이 아닌 타자들, 구체적으로 나의 친구들이었는데, 이 날도 정신차려보니 친구 손에 이끌려 대방역 여성프라자에 와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4층 토론회장 입구에 들어서니 ‘화끈한 불량언니’가 만든 귀여운 수세미들이 나를 반겼다.

“도안은 됐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나는 내 맘대로. 내 맘껏 만들거야!” 화통. 화끈한 불량언니! 식당일부터 야채 판매까지 안 해 본 일 없는 거친 손으로 뭘해도 끝내주게 잘하는 재주꾼입니다.

꼼꼼하고 체계적인 토론회 자료집만큼이나 수세미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메모지에 적힌 말이 마음에 든다. 나랑 비슷하네. 나도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진짜 싫은데.

토론회가 끝난 후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친구 손에 또 한번 이끌려서 소감문을 쓰게 되었다. 남들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진짜 싫은데도 친구 따라서 소감문까지 쓰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정말 웃음이 나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토론회 들으면서 질문도 하고 필기라도 열심히 할 걸 그랬다. 어쩔 수 없다. 기억나는대로, 내가 느낀대로, 내 맘대로 쓸 수밖에.

1. ‘임파워먼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말 걸기’의 정치학

‘반성매매운동’과 ‘성노동 담론’ 간의 긴장과 갈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동안 여성주의를 공부하며 접해왔던 텍스트 중엔 성노동 당사자들의 에세이나 인터뷰도 있었고, 이론적 차원에서 두 담론간의 개념적 차이를 설명한 텍스트도 있었다. 그런데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참고문헌을 만난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솔직히 (어떻게 이제야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지)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최근 미투 운동이 이렇게 활발한데도 어째서 집결지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못했던 걸까’라는 질문도 생겼다. 집결지 여성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이야말로 ‘안전하게 생존할 권리’, ‘여성의 안전공간 보장’이라는 반성폭력 운동의 맥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내가 자료집을 읽으며 깨달은 사실은 집결지 폐쇄 투쟁 과정에서 여성들의 ‘말 하기’ 자체가 굉장히 딜레마적인 조건에 놓여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낙인찍히고 차별받았던 성매매 여성들이 집단을 이루어 무엇을 주장하는 경험 자체는 특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집단을 이루어보는 경험이 여성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는 괴로움에 이 집단은 무감각하다.(자료집 36p.)”

“성매매 여성들은 재개발/폐쇄로 인해 생존의 위기에 처하지만, 그 위기에 대해 발화할수록 집결지 이외의 장소로부터는 고립되는 이중의 억압을 겪는다. 성별화된 빈곤과 젠더폭력이 상호 교차하는 성매매의 복잡성을 담아낼, 성매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싸움 자체가 부재한다. 집결지 싸움에서 가장 쟁점이 되어야 할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는 일반적인 철거투쟁, 시민권투쟁의 언어로 표상될 수 없다. 다른 언어가 절실하다.(자료집 37p.)”

여성주의에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핵심은 미투 운동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집결지 여성들을 둘러싼 조건은 “위기에 대해 발화할 수록 집결지 이외의 장소로부터는 고립되는 이중의 억압”이 되는 것이다. 집결지를 폐쇄하면, 자립할 수 있는 자원이 없는 성매매 여성들이 당장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철거투쟁의 언어로 집결지 폐쇄 반대를 외치는 바로 그 순간, ‘집결지가 아닌 생존의 기반에 대한 상상력’ 역시 사라져 버린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은 성매매 여성들 뿐만 아니라 반성매매 인권 활동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자료집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그래, 집결지 폐쇄해야지. 그런데 집결지 폐쇄하면 여성들은 어떻게하지?”라는 질문은 집결지라는 공간 자체가 얼마나 모순이 팽배한 공간인지 보여준다. 집결지는 성매매 여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공간이면서도 성매매 여성들이 머무르고 구체적인 생활을 하는 거주 공간이기도 하다. 문제는 집결지를 계속 옮기며 임시적으로 생활하는 여성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거주공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자발적 조직화를 실천하기에 매우 열악한 조건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렇게 자발적 조직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집결지 폐쇄 반대가 운동의 목표가 되는 순간 “집결지 이외의 장소”에서 살아갈 권리를 말하지 못하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집결지가 아닌 생존의 기반에 대한 상상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작업이 절실한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임파워먼트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 가능성을 신박진영 선생님의 발표내용에서 참고하고 싶다. “여기서 계속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성매매 여성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반성매매 인권활동가들은 종종 ‘왜 여성들이 스스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개입하냐’는 질문을 듣는다고 한다. 반성매매 인권활동가들이 자꾸만 (외부에서) ‘개입’을 하니까 성매매 여성들 내부에서 ‘자율성’과 ‘자발성’에 기반한 실천이 안 되는거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검토한 딜레마적 상황(발화할 수록 고립되는 이중적 억압)을 고려했을때 ‘자율성’과 ‘자발성’의 이름으로 ‘스스로 말하기’가 가능할때까지 개입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말 걸기”를 (제3자, 혹은 외부인의) ‘개입’으로 부를게 아니라 “말 걸기”를 통해서 ‘말하기-듣기-다시 말하기’라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는 정치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말 걸기에 동참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는 것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2.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시화 기획과 여성의 몸

청량리 집결지 폐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무척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 또한 토론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부분이었다. 성매매여성들과 업주의 관계 뿐 아니라 구청 공무원들, 구청장, 경찰 그리고 용역깡패들까지 이 사건의 이해관계에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결지 폐쇄와 관련하여 ‘연대’를 하기 위해 투쟁에 함께하겠다던 조직, 단체들과의 이해관계 역시 결코 균질적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료집에 첨부되어있는 타임라인이 매우 복잡하게 느껴졌다. 집결지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이렇게 복잡한 이해관계가 폭발하는 이유가 뭘까라고 잠시 고민해보니 집결지가 ‘도시에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자료집에 따르면, “서울의 집결지들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를 따라 형성되었다”.

“집결지가 완벽히 폐쇄되고 그때까지 남은 여성이 전부 전업한다 한들 그 과정이 도시를 더욱 자본주의적, 가부장적으로 재편하는데 기여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촘촘하게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 도시만이 남는다. 성매매로 이윤을 축적해온 세력은 정작 더 거대해지고 교묘해지는 악순환이다. 서울의 집결지들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를 따라 형성되었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이 역사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면 성산업이 빈곤하고 취약한 여성들의 생존에 유일한 ‘안전망’으로 승승장구 하는 것에 개입할 수 없다.(자료집, 39쪽)”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한국 근현대사에서 서울은 ‘고속성장’의 상징이었으며, ‘서울 시장’이라는 권력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자리였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청계천 상인들을 몰아내고 청계천 복원을 강행했던 역사와 공권력을 투입해서 용산 철거민들을 제압했음에도 화재참사에 책임지지 않았던 역사가 ‘서울이 서울로 되는 경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깨끗한 도시, 관리된 도시를 만들어 온 폭력의 역사에는 언제나 ‘격리와 배제’가 핵심적인 통제전략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에 동원된 공무원, 경찰, 업주, 용역깡패들이 이런 폭력적인 세계를 만들어온 공모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에서 성구매 남성들을 비롯한 공모자들에게 ‘집결지’라는 공간은 ‘(남성들간의 이익을 교환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눈에 띄어서는 안되는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이들이 도시에서 내몰린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격리하고 배제하는 방식은 여성들의 ‘몸’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김주희(2015)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와 금융화 과정에 주목해서 “‘부채 관계(debt nexus)’라는 분석틀”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몸이 어떻게 “담보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성산업’이 하나의 거대한 수익상품 구조로 자리잡고 “성매매 여성들의 채권을 담보로 거대한 규모의 대출이 일어나는 것은 여성의 몸을 합법적으로 담보화(securitization)하며 수익을 달성하는 금융경제적 실천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즉, “금융화된 경제에서의 ‘신용의 민주화’ 이면에는 대출 시장의 말단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몸과 삶을 이윤의 원천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금융적 실천, 즉 ‘담보화’의 논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http://dspace.ewha.ac.kr/handle/2015.oak/213117)

 

3. 나이, 질병 그리고 빈곤 – 상호교차성의 관점에서

사실 여성주의를 공부할 때 가장 간과하기 쉬운 지점 중 하나가 여성들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가정하고 말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즉, 여성으로서 겪게되는 경험은 결코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가 없기 때문에 여성들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성이 어떤 위계를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스젠더-이성애자-비장애인 여성의 경험이 결코 여성들 ‘보편’의 경험이라거나 여성들을 ‘대표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을 읽어낼때도 그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와 서로 다른 위치들이 어떻게 상호교차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

토론회를 들으며 내가 가장 관심가졌던 변수들은 나이와 질병 그리고 빈곤이었는데, 성매매 여성들 중 특히나 질병에 취약하고 나이가 많은 빈곤한 여성들의 삶은 성노동 담론에서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주로 속해 있고 활동하는 공간은 캠퍼스이기 때문에 ‘건강하고 젊은 20대 중심의 대학생들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들이 더 익숙했었던 걸수도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서울에 있고, 청량리 집결지도 서울에 있는데 각자가 속해 있는 위치성에 따라 삶의 조건이 너무나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다. ‘어떤 입장이 더 올바른가’의 문제라기보단,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일반화’해서 대변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입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들과의 차이와 결코 동일해질 수 없는 이질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끝내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나에게 익숙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다.

 

토론회 후기 1탄 by 현우 보러가기

토론회 자료집 & 속기록 보러가기

 

 

활동이야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참여자 후기 1탄 by 현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과거 영국의 지주들이 경작지에서 농민을 몰아내고 양을 기른 것을 빗대어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말했다면, 한국에서는 재개발이 사람들을 집어 삼키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미명 아래 극소수의 지주와 투기자본만이 이득을 보고 대부분의 주민과 세입자는 삶의 공간을 잃은 채 이전만 못한 곳을 전전하게 되는 것이 현실의 재개발이다.

 

집결지 재개발, 그리고 생존권

 

국가의 묵인과 암묵적인 관리 속에 만들어진 성산업 집결지 역시 이런 재개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청량리 뿐만 아니라 미아리, 이태원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편 이런 집결지 재개발 현장에서는 어제까지 성산업을 운영하던 포주가 어느 순간 철거민이 되어 성판매 여성의 생존권을 주장하는가 하면 또다른 포주는 성판매 여성들에게 불법이란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몰아낸다.

 

피아의 구분이 없는 지난한 싸움 중에 성판매 여성들의 생존권은 유명무실해지고 미처 건설업자로 탈바꿈하지 못한 성산업의 착취자들은 적지 않은 보상금을 받아 다른 지역에 새 업소를 차린다. 여성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빈곤과 폭력은 새로운 건물과 각종 개발에 묻혀 비가시화된다. 자본과 권력으로 구조화된 폭력의 재생산에 비해 피착취자들의 저항은 힘에 부치기만 하다.

 

대구 자갈마당과 제2, 3의 청량리

 

실제로 모든 것을 이윤의 대상으로 삼는 자본주의에서 집결지의 여성과 공간은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수는 퇴거와 철거를 막고 생존권을 확보하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 공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적 변화와 개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대구 자갈마당의 자활사업 조례 역시 지역의 수많은 단체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대라는, 어찌 보면 비어있고 별 힘이 없어 보이는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그 공간에서 억압받고 착취받은 이들의 기억과 삶, 역사 그 자체다. 성판매 여성으로 자갈마당에서 삶을 살아가게 한 이 사회와 구조를 지켜봐온 피억압자의 기억이 역으로 그들의 생존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개입을 가능케 했다.

 

물론 청량리와 자갈마당은 다르다. 공무원과 지역 조폭이자 포주가 합심하여 수십억대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기소까지 된 것이 청량리 재개발이었다. 제2, 제3의 청량리가 될 서울 내 집결지 역시 각기 상황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현실에서 집결지 폐쇄 또는 성매매 합법화 같은 양자택일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재개발에 대한 접근만으로 또는 성산업에 대한 판단만으로 집결지 재개발을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룸의 딜레마, 자본주의의 딜레마

 

집결지 재개발에 대한 이룸의 딜레마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상품화하면서도 억압과 불평등에 고통받아야 하는 자본주의의 딜레마와 닮아 있다. 특히 상품되기를 포기하는 것이 삶의 포기와 맞닿아 있는 사회에서 상품되기 말기와 같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러한 선택이 강제되는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하듯이 집결지 재개발과 성산업 사이의 딜레마를 드러내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이번 토론회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만큼이나 문제를 명료히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이번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토론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하고 또 이어질 것이다. 그 이름이 토론회가 아닐 지라도 대부업과 성형대출의 연결고리를 폭로했던 것처럼 성산업의 문제와 재개발의 문제가 사회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저변에 깔려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짧은 토론회 시간 동안 방대한 고민을 정리해서 발제하신 별님과 복잡다단한 내용들을 함께 정리하느라 고생하신 이룸 활동가들에게 고마움과 응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이 가는 길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지혜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시에 듣는 이가 책임을 나눠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여러모로 활동력이 부족한 회원이라 매번 토론회에만 참석하게 되는 것 같지만 덕분에 항상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하게 된다는 점,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후기 아닌 후기를 마무리한다.

 

 

활동이야기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자료집 및 속기록(2018.04.12)

발간물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가 열립니다.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토론회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폐쇄 대응이 한텀 마무리된 현재, 당시에는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현장을 복원, 고발, 정리하는 자리를 가지려고 합니다.

 

현장을 가로질러 놓여있었던 성매매, 재개발, 여성운동과 정책, 집결지 업주/조폭들의 움직임과 같은 맥락들을 흝어 보고, 이룸이 대응 과정에서의 안고 있었던 딜레마, 고민, 제안을 구체화하여 다른 현장에서 다른 고민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와 또 토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잔뜩 만나고 싶어요.  많이 신청해 주세요.

 

[발제]
이룸의 현장활동으로 녹여내는 청량리 집결지 청량리4구역 재개발/폐쇄에 대한 질문들
_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토론]
1) 대구 자갈마당을 중심으로 한 여성/지역 운동의 경험에서 길어내 보는, 집결지 공간 안팎 여성주의 활동의 고민과 모색
_신박진영(대구여성인권센터)

 

2)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활동과 청량리 집결지, 어떻게 연결하여 볼 수 있을까?
_박은선(리슨투더시티)

 

 

일시  2018.4.12. 19:00-21:00

장소  서울여성플라자 4층 아트컬리지 2관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54길 18, 대방역 3번 출구)

신청  https://goo.gl/forms/ZvooJkbPtQiuFTYB3

 

 

 

문의)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이룸
02-953-6280 eloom2003@naver.com

활동

[활동한꼭지] 영화 <공동정범> 그리고 청량리 반상회 – 우리의 장소는 우리가 함께 있는 곳 _별

한국도시연구소, 반빈곤운동공간 아랫마을 초청 공동정범 상영회와 GV를 다녀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담아뒀던 글을 씁니다.
공동정범 꼭 보세요! (관객 1인의 입소문)
이룸의 청량리 반상회 응원해주세요.

_별

 

자동 대체 텍스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목격의 시간

 

작년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대응이 한창이었을때 gate 22의 이태원 상영회에 갔던적이 있었고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찾아갔다. 내가 이 공간을 둘러싼 상황을 단편적이고 납작한 몇개의 말들 외에는 이해할 역량이 없다고 느꼈다. 매일 상황은, 사건은, 장소는 쏟아져들어오는데 나는 터져나가고 넘치고 우그러졌다. 목격자라는 역할, 활동가라는 위치는 나에게 어떤 책무를 주었지만 그걸 수행할 나라는 자리는 계속해서 좁아지는 핀조명 같았고 나는 한발로 서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내 발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속에 있는 발.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목격자의 윤리에 관해서 였다. 이태원의 세 여성들을 보듯, 평택의 마마상과, 그리고 청량리의 우리들. 김일란 감독님은 질문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그 과정들을 다 겪고 나서 버티고 나서 질문들을. 질문을 부르는 질문들을. “마음을 앞지르지 않”아 시간이 필요한.

 

졸업전 학교에서 몸담았던 공간을 잃고 뒤이어 리모델링이 시작되었고 거칠게 페인트로 그림이 그려져있던 갈라진 나무문은 유리문으로 교체되었다. 여닫이였나 미닫이였나 아니면 자동문이었는지.. 그 문의 소거는 그 시기 우리들에게 퇴거를 선언하는 확실한 증거였다. 오래되고 낡았기에 바뀌어야한다. 낡고 오래되어 불이 잘 붙는 물질들 틈에서 조심조심 살아서는 안된다. 불이 난다면 소방차는 좁은 골목길에 가로막혀 제때 도착하지 못할것이다. 안전 미관 편리성 우리는 그런 가치들이 우리를 소거한다는 듯 더욱 엉망으로 살아져야 했다. 더 얼기 쉬운 곳으로 물이 배어나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청량리에서 작년 겨울부터 초여름까지 파쇄된 종이위의 글자들처럼 잘게 나뉘어 의미를 표면에 고정시킬수 없는 말로 되어갔다. 철거가 진행중인 청량리를 배회하는 일을 했다. 마지막 남은 사람에게 마지막 물품을 전해주려고. 마지막 남은 유리방 맞은편 마지막으로 고립된 여성들이 거주하는 달방 모텔에서 타로로 점을 쳤다. 카드위에 각자가 어디로 가게될지 적혀있었을까.

 

 

증언의 모순, 모순의 증언

 

그 시기 이룸은 갈등을 겪었고 소진이 왔다. 다 타고 남은 잿불로 움직였다.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공간의 사람들 – 쪽방 여성들과 제주 먼 섬의 바다에 갔다. 바닷가의 그림같이 잔디밭이 깔리고 흔들그네가 있는 숙소에서 십년전 청량리의 사진들과 그날 우리의 얼굴들을 찍은 사진들을 같이 펼쳐놓고 기억을 얘기했다. 우리의 장소는 우리가 있는 곳이야 라고 말하듯. 우리는 그 모진 곳에서 살아남았고 이렇게 만났다고 기억을 얘기했다. 아이를 낳았었고 늙었다고. 숲이 된 남일당 터의 운명과 청량리 588의 운명은 고층 타워팰리스를 향해 간다. 빈 땅을 차지하며 쇠락하는 것들. 철거와 강제퇴거 이후의 폐허, 그곳을 저도 압니다. 저도 그곳에 살았어요. 살고 걸었어요. 네개의 큰 지류로 나뉘는 길, 넷째 골목 초입의 유리방과 그 다음 길로 연결되는 여관골목, 그 입구에 서있던 큰 나무와 고양이, 택시로 메워져있는 두번째 길과, 청과시장 옆의 붉고 컴컴한 불빛, 굴다리를 끼고 올라가면 만나는 쪽방 언니들의 믹스커피. 좋은일 하느라 수고가 많네요 하는 인사.

 

현장활동가들에게 청량리 집결지 공간은 그리움이나 아쉬움 안타까움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그려져야 하기에 우리는 수렁에 빠진다. 고립된다. 여성들을 동원하는 철거투쟁에 각을 세우며 빈민/철거민/노동자화의 남성중심성에 반대했고 바뀌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들만이 피해를 보게 되는 재개발과 폐쇄 정책에 반대했기에 이룸은 계속해서 결정을 유보했고 할수 있는 일을 했고 청량리 반상회라는 소규모의 쪽방 여성 그룹만이 남았다. 그래서 우리의 장소는 이곳이다. 우리가 겪은 일로 우리는 국가에 의한 폭력을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내밀하게 알게되었고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곳, 벌어질 곳에서 함께할수 있다는 바람을 가진다. 우리가 수렁으로 빠지는것은 그 감정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이. 망루위의 감정들이 산란하듯 그 화염 이후의 감정이 화염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집결지라는 트라우마의 공간을 상실하며 여성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절대적 빈곤의 불안을 어떻게 묘사할수 있는가. 사고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트라우마는 상실될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이건 그런 이상한 주장이야? 그렇지 않다. 삶의 관점에서, 공간과 인권의 관점에서, 모순되는것은 다른 문턱을 암시한다. 우리는 여성들이 집결지에서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주장을 함께 할수 없었고 그런 운동은 없다고 여겼다. 공간의 관성이었을뿐. 그러나 여성들이 대책없이 쫓겨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며 단속의 형태로 이뤄지는 퇴거 – 퇴거로 완성되는 단속을 증오했다.

 

그러므로 딜레마, 모순을 드러내는 것까지. 그게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모순에 집요하다. 우리는 증언의 모순이 아닌 모순의 증언으로 다음의 폭력을, 재난을 다른 방식으로 견딜 것이다. 폭력의 핵심으로 더 뚫고 들어갈 것이다.

 

ⓒ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불량언니 작업장

[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①] 종로여관방화사건에 부쳐

[2018 이룸의 시대한탄 ①] 종로여관방화사건에 부쳐

20일 종로 한 여관에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화재를 일으킨 사람은 여관 밀집 지역 중 한 곳을 방문하여 성구매를 시도했고, 여관에서 거부하자 홧김에 불을 질렀다죠.

 

흔히 여관바리(여관발이)라고 불리는 성매매는 특수한 업종이라기 보단 여관이라는 공간에서의 성매매를 통칭합니다. 어떤 공간에서든 여성접대와 성구매를 바라는 한국 남성문화의 일상적인 단편 중 하나이지요. 노래방 카운터에서 여성을 불러달라 요구하고, 마사지 업소에서 유사성행위 및 성행위를 요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피의자의 행동은 원치 않는 성행위를 요구하고 억지 부리고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여타 구매자들의 보편적인 행동들과 유사합니다. 자신을 무시한 것처럼 느꼈을까요? 무엇이 그리 화가 났나.. 성구매를 거부한 게 그리 화가 날까.. 다들 하는데 나만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관과 피의자 둘 다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사안을 종결했다지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요? 성판매자를 함정단속해 온 경찰의 행태를 떠올려보면 성구매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성구매자를 단속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관바리가 성행하는 여관은 작고 허름한, 빈곤한 이들이 몸 누일 곳을 찾아가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이 곳에서 성판매를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중장년 여성으로 손님이 요청하면 여관을 방문합니다. 여관바리 성매매의 화대는 1만원~2만원 정도로 낮습니다. 그럼에도 중장년 여성의 다른 일자리에 비하면 아주 높은 시급입니다. 성구매가 일상인 한국남성문화와 빈곤한 중장년여성계급의 현실이 만난 현장이 여관바리입니다.

 

화재가 쉬이 진압되지 않은 이유로 열악한 지역 상황을 꼽습니다. 빈곤계층의 거주지역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문제입니다. 좁은 골목에 밀집해 있는 협소한 거주공간. 대부분의 집결지 쪽방촌과 근방의 여관이 그런 상황에 놓여져 있지요. 어떤 대안도 없이 이런 공간을 재개발하겠다고 밀면 빈곤한 이들은 또 다른 협소하고 안전하지 않은 쪽방으로 이동합니다. 꼭 방화사건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위험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빈곤한 이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계급 상관없이 안전하게, 인간답게 살기 위한 도시 개발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의 내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이번 사건을 이유로 낙후 지역이 대책 없이 밀리거나 여관을 타겟으로 한 단속이 강화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성구매문화의 일상화, 여성 빈곤이 문제의 원인입니다. 졸속행정으로 실적만 올리는 방책을 대안이라 말하지 않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룸은 [2018 이룸의 시대한탄]이라는 이름으로 성매매 , 여성주의 관련 사안에 대해 에휴.. 한숨이 나올 때마다  토막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첫글부터 정말.. 깊은 한숨이 나온다지요…..

활동

2017년 10월 24일 수원시 집결지 조례 제정 반대 한터 집회 참석 후기

한터 집회 후기_별

 

지난 10월 24일 광화문에서 열린 성매매 집결지 업주/여종사자 모임 한터 집회에 참석했다. 수원시에서 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는 날에 맞추어 집회가 열렸다. 청량리에서 수원으로 이동한 여성의 말에 따르면 불참시 벌금 30만원을 내야 하고 영업정지를 먹기 때문에 왔다고 했다. 최근 통과된 성북구 미아리 집결지 조례 제정 이전의 토론회에도 어김없이 한터가 와 있었다. 업주들이 토론장 문 앞까지 아가씨로 일하는 여성들과 동행을 하였고 끝나고서는 바로 인솔하여 갔다.

 

이 집회에서는 평소처럼 ‘성노동자 인정’ ‘여성가족부/여성단체 폐지’ ‘성매매 특별법 폐지’ 등의 구호가 제창되었고 특별법으로 인하여 일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한터 집회라고 해서 업주들이 나와서 요새 장사하기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터 대표가 발언하는 것 외에는 여종사자 대표가 전면에 나서며, 착석한 여성들로부터 발언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한터 집회에서 가시화되는 것은 아가씨들의 생존 보장에 대한 목소리이다. 한터의 홈페이지에는 종사자들의 복지에 대한 청사진이 걸려있다. 한터의 전신인 ‘무의탁여성상담소’ 때부터 이들은 자원없는 여성들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이러한 진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 대구 자갈마당 집결지 앞에는 노숙인 급식소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여성들의 인권과 무관하게 집결지의 지속이든 재개발 이후 보상이든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이러한 주장을 한다. 청량리 재개발 철거 투쟁 과정에서 업주들은 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고 여성단체에 문의를 하여 아가씨들의 생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책이 없다는 말을 들었음을 내세우기 위하여, 그리하여 집결지가 존재할수 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기 위하여 대책을 요구했을 뿐이다. 업주들은 이때도 예전에도 최소한의 상담소, 쉼터 등의 존재가 여성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았고 개인정보 유출 등 잘못된 소문을 퍼트렸으며 아웃리치 홍보물을 받는 경우 그 가게나 아가씨에게 패널티를 주는 등 종사자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막았다. 왜? 그 결과 지금도 여성들은 여성단체에 업소에서 겪은 폭행 등의 사건에 대한 간단한 법률상담 전화를 거는 것조차 주저한다. 대구 집결지의 경우 지난 여름부터 매월 7~9명의 여성들이 조례 대상자로 선정되어 지원금 집행이 시행되자 업주들이 대상자가 오래전에 일을 그만둔 여성이라며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지원금의 실질적인 집행이 여성들에게 미치는 파급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터는 본부가 있던 청량리였음에도 집결지가 사라져 얻게 되는 재개발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 아무런 소란을 일으키지 않은채 가볍게 철수했다. 반대로 한터에 가입되어 있지 않던 집결지들은 조례제정 등이 공론화 되면 한터 회장에게 발언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고 집결지 폐쇄 문제를 성매매 특별법 하나로 뭉뚱그려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한다. 이번 집회에서도 여종사자 대표는 우리는 일하는게 힘들며 노동자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이야기는 업주-자본가들이 만든 판의 승인을 받아 지금과 같은 방식의 집결지의 지속이라는 허용된 목적 하에서 말해질 때만 가능했다.

 

재개발에 따른 집결지 폐쇄의 과정에서 여성, 지역 등의 운동단체들은 재개발이 집결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살아온 여성들에게 미치는 타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한정된 예산과 지역 사회의 성매매에 대한 편견 속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시도에 대한 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형화된 한터 방식의 집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터 집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재개발 투쟁 과정에서 여성들의 생존의 목소리를 그녀들을 착취해온 특정 이익집단의 필요를 위하여 전유하면서 전면화된 집결지 폐쇄를 앞두고 그 안에서 살고 또 일해온 여성들의 삶에서 당장 시급하게 필요하며 가능한 대안들이 무엇이 있는지 논의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인권적인 결론이라고 믿게 만든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에서 박경신 교수가 발언을 하였다. 박경신 교수는 지난 2015년 성매매 특별법 21조 1항 위헌제청 공개변론에서 위헌측 입장으로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것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였던 사람이다. 당시 위헌 측 참고인 의견은 박경신 교수의 노르딕 모델에 대한 주장,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 식의 집결지 합법화에 대한 주장 등 완전히 상반된 의견이 뒤섞여 있었고 위헌 측 변호인은 성적자기결정권에 의한 위헌 논리를 주장하면서도 이것이 구매자나 알선자 합법화 주장과는 다르다는 위선적인 주장을 했었다. 이러한 복잡한 맥락 속에서 위헌측 입장에 동조할 수 없었던 여성단체들은 성판매여성 비범죄화를 포함한 개정법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집회 자리에서 박경신 교수는, 성평등과 성차별의 견지에서 성노동은 합법화 되어야 하며 동성애와 간통과 마찬가지로 형법으로 성매매를 다스리는 것은 자기결정권의 침해라고 발언했다. 성만큼 노동도 특별하며, 성은 금전에 의해 매개되어서는 안되는 특별한 것이 아니며,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교수인 자신도 하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우리는 단순히 성이 신성하다거나, 돈을 받고 성이 거래된다거나, 성이 상품화된다는 몇 가지 명제로만 집결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성매매가 왜, 어떻게 문제적인지, 일제시대 유곽이 도입된 이래 집결지에서 여성들이 어떤 일들을 겪어왔는지 얘기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자리에서, 이러한 배치 속에서 이러한 내용으로 발언을 하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 성매매 집결지 현장에서 복잡하게 엮어있는 이해관계와 역동이 어떻게 여성의 삶에서의 불평등과 차별을 공고하게 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무지이다. 무엇보다 위헌제청에서 한 그의 발언을 완전히 뒤집는 말이다.

 

성산업은 다변화되고 성산업에 대한 담론 역시 다변화되며 움직이고 있지만 여전히 성매매 집결지라는 장소와 집결지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논의는 풀리지 않은 숙제와 같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듯 하다. 박경신 교수의 발언에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 이룸에서 청량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 갑갑함을 털어내고자 한다.

 

 

활동이야기

별별신문 – 청량리 호외 (3) 2017.2.17

 

별별신문 (청량리 호외) 다운로드 받으세요.

 

별별신문 블로그에도 방문해보세요!

 

창간호부터 20호까지~(21호부터는 자료상자에 있어요~)
찾고 싶은 기사를 한번에! 검색 기능 지원되고~
카테고리별로 나눠져 있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별별신문 블로그 https://e-loom.org/outreach/newspaper/

별별신문

2017년 청량리 집결지 안에서, 타로를 보다 – 고진달래&지윤재

2017년 청량리 집결지 안에서, 타로를 보다-고진달래 

2017년 새해 첫 프로그램은 청량리 집결지 안 모텔에서 시작하였다.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을 앞두고 여성들과 면대면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든 만들 목적으로 고민하던 중 신년 타로를 봐주기로 했다. 여성들이 오기 편한 장소를 물색하는 일이 관건인데 X가 쳐진 빈 가게에 들어가서 하려고 했다가 조합의 강한 반대를 우려해서 포기했고, 쪽방 여성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에서 진행할까했는데 폐허가 된 그곳은 음산하여서 포기하였다. 터벅터벅 걷던 중 업소 내에 있는 모텔이 눈에 띄였고, 이 모텔이라면 여성들에게도 친숙하기 때문에 적합하다 생각해서 갑작스레 결정하게 되었다.
장소도 완료!
이날 함께 타로를 봐준 사람은 다산콜센터 지부 조합원 지윤재였고, 내가 신뢰한 그녀가 기꺼이 이날 프로그램에 타로 리더를 해주겠다고 하니,
타로 봐줄 리더도 섭외 완료!

이제 타로 프로그램 개시하는 일만 남았다!

모텔방을 예쁘게 꾸미느라 정신이 없다. 여성들이 느낄 때 편안한 분위기면 좋겠다,
우리들의 첫 인상이 나쁘지 않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다가가서 말을 텄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우린 정성스레 그 허름한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나와 윤재가 타로방에서 여성들을 기다리는 동안, 남은 이루머들은 가게를 돌면서 타로를 홍보하였다. 7명의 여성들이 순식간에 예약을 했고, 시간대에 맞춰서 여성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본 여성들도 타로를 보면서 자신이 현재 갖고 있던 궁금함을 드러내고, 그녀들과 꽤 오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재개발로 음산한 청량리에 우린 다시 발을 딛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할수 있을지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지만 타로를 매개로 여성들과 안면을 트고 재개발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들이 어떤 것들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바램을 가져본다.

10년전 처음 청량리에 발을 딛였을 때, 여성들을 만나서 그녀들의 삶을 목격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여전히 청량리 안에는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이 오늘 우리에게 한 말들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질수 있을까, 그 물음이 묵직하게 남아있는 밤이다. 왠지 모르게 조금은 슬픈 밤이다.

TAROT! 나와 그녀들을 잇다.
지윤재

타로에 흥미를 갖고 배우기 시작하지는 꽤 오래 되었다.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삶의 고단함과 무게, 여러 바쁘다는 핑계로 공부 자체에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 아직 내 스스로는 아직은 초보라고 생각 중 이룸에서 ‘언니들’을 만나 타로를 봐 줄 수 있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아직은 내 스스로 많이 부족하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이룸에서 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어떤 사명감을 갖고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것인지, 또 언니들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차에 아직은 부족한 능력은 생각지도 않고 선뜻 제의를 받아들였다.
새삼 열공을 하면서, ‘삼촌들’의 방해로 못 보게 되면 어쩌나?, 어디론가 납치되어 쇠파이프 같은 무기로 맞는 것은 아닌가?, 떨려서 타로를 못 보면 어떡할까?, 언니들이 한 명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등 끊임없는 걱정에 휩싸였다.

 

 


그녀들과 만나다.
‘언니’라고 불리는 그들은…
남들보다 조금 진한듯한 화장이 아니었다면, 왁자지껄한 시장통에도, 고급스런 백화점에도, 길거리 어디에서라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같은 모두 평범한 얼굴이었다.
진한 화장으로라도 민낯을 가려보고자 했음일까?
나름 편견이 없다고 생각한 나조차도 ‘언니들’하면 떠오르는 것은, 몸매 좋은 언니가 껌을 짝짝 씹으며, 반라상태로 지나가는 아저씨를 오빠라고 부르며, 걸쭉한 욕지거리를 내뱉는 이미지이니 말이다.
어디 비빌 언덕도 없이… 맨 몸뚱아리 하나로… 하루를 더 고단하고 치열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어가 진한 화장이 아닐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타로를 봐주면서 ‘욕이나 한 바가지 얻어먹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질문에 카드를 펼치며 그녀들의 과거와 현재를 읽어주고, 카드가 보여주는 내용을 토대로 앞날을 얘기 해 주다보니 그 어떤 누구보다도 귀여운 수다쟁이고, 나보다 더 나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었으며, 나의 얘기에 맞장구를 치며 공감을 잘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녀들의 타로를 봐 준 것이 아니라 (초짜티가 팍팍나는) 나를 봐 준 것 같다. 청량리를 떠나오면서 나는 언니들의 민낯을 살짝 본 것 같아 그녀들과 친해진 기분이 들었고, 혹시라도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진짜 타로점을 봐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활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