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더 나가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에서 주최한 다섯번째 간담회 성노동, 성과 노동, 성-노동을 다녀와서_고진달래


                 

한발 더 나가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에서 주최한 다섯번째 간담회 성노동, 성과 노동, 성-노동을 다녀와서

 

_고진달래

내 위치를 다시 정의 내리다.  

성매매는 성판매 당사자들 선택 문제가 아니다. 성매매는 거대 자본과 지하 경제 안에서 움직이는 깡패 산업과,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기준와 성을 사는 사람들의 성인식 문제가 한데 어우러져 일어나는 일이다. 이 구조를 보지 않고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볼 때 성매매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은폐하게 된다고 본다.  거대한 성매매 산업은 이제  누구든 쉽게 발 들여놓을만큼 존재해있고,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곳에 가면 내 몸과 돈이 거래되니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선택하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의 고민, 우리가 바라본 성매매 현장은 어떤 것인가를 말해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차 이 현장에 있는 우리들도 이렇게 헷갈리고 어려운 문제인데, 외부에서 보는 사람들 또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지표를 잃어버릴 수 있겠다 싶었다. 보여진 것과 보여지지 않은 것들을 펼쳐 보이면서 우리 함께 고민하자고 말해보고 싶었다. 난 그것이 설혹 완성되지 않고 설 익었더라도 그 부족한 부분만큼만이라도 드러내보이는게 활동가이고 그 시작이 사회를 변화시키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여성주의자 안에서도 성매매 논쟁만큼은 뜨겁지만 빈약하다.

 

성매매 구조 역시 복잡하고 여러 층위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어느 한 관점으로 풀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룸은 성노동이냐 반성매매냐는 논쟁에 휩쓸리지 않고 성매매를 둘러싼 다양한 주제들을 연구하면서 본질을 드러내려고 했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 네이버에서 일어나는 성매매 유인 댓글들 분석, 성소수자  성매매, 사채 시장, 청량리 집결지 기록화 작업 등 성매매 산업을 굴러가게 하는 이 거대 구조를 보면서 접근하려고 했다.

뜨거운 감자인 성매매 토론은 허공을 해매는 듯한 논쟁으로 갈 길을 잃은 느낌을 받곤 했다. 활동가로 다시 복귀하면서 난, 나와 약속한 부분이 있다. 성매매 이 논쟁에 한발 더 발 담그기로, 때론 낯 붉힐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내 활동 안에서 본 이 구조에 대해서는 입을 열어야함을,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고 괴롭겠지만 용기를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NGA) 주최한 다섯번째 간담회 성노동, 성과 노동, 성-노동에 참여하였다. 성노동을 말하는 진영 역시 한계는 있다. 우리가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과 피해는 그들의 논의에는 들어있지 않다. 삭제되어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성판매 경험을 한 여성들의 경험은 일관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대학을 다니면서 자발적으로 조건 만남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누군가는 오랫동안 해온 이 일이 가장 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누군가는 교육도 받지 못하고 지지하는 가족도 없이 밥 먹는 것을 걱정해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 누군가는 집안의 폭력이 싫어 집을 나와 살면서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은 성판매 여성들 안에서도 각자의 경험과 위치와 자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누구의 말을 빌어 성노동과 성매매를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는 순간 모순을 안고 성매매 논의에 허우적대기만 할 것이다.

그 간담회에서 내가 느낀 것은, 어느 누구 하나 답을 갖고 있지 않고 우리모두  그 답을 찾기 위한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간담회 자리에는  이건가 저건가 하면서 듣고 질문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성노동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듯, 현장에서 만난 경험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고…내가 그 간담회에서 배운건 그거이다.

이론으로 매끄럽게 설명하지 못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만난 성판매 당사자 경험을, 우리가 목격한 일들을 차근히 설명해내가는 것이, 그동안 내가 배운 여성주의의 경험의 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성을 매개로 한 산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거대 산업이 되고 있고, 그 안에서 성매매의 양상 또한 집결지부터 대딸방/조건만남까지 상상을 초월하게 다양해지고 있고, 그 안에서 성판매 당사자들을 묶어놓은  (보이든/보이지 않는) 덫들을 다양하게 많아졌다. 교묘해졌다.  현실에서 접한 경험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그것이 활동가들의 몫인거 같다. 그 현실 진단이 정확하면 할수록  그에 맞는 답도 바르게 보일거라고 생각한다.

우린 어쩌면 이 문제를 급하게 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랜 역사를 안고 있는 이 성매매의 문제를 단박에 풀 묘약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가 오랜 역사를 지속해오는 동안 그 지속하게하는 속성은 교묘하게도 발전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활동가로서 난 이제,  손을 내밀고 말을 걸 시간이 온 것 같다. 한 자리에서 12년을 활동한 우리들이, 우리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자 손을 내밀고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 같다.

 
활동이야기

우리에게 판타지는 필요없다-한국의 성노동 연구자들에 대한 비판

우리에게 판타지는 필요 없다
– 한국의 성노동 연구자들에 대한 비판

 
이룸 활동가 박혜정

성매매에 관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정책 방향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 가지는 성매매를 젠더, 계급 등의 불평등에 기반한 불공정한 거래이자 착취로 보고 성산업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인데 정책적으로는 노르딕 모델(성판매자만 비범죄화하고 성구매, 성매매 알선을 처벌)을 추구하는 입장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등이 이런 정책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성매매를 다른 노동과 똑같이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으로 보고 성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해 성판매, 성구매, 성매매 알선을 모두 합법화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독일과 호주 빅토리아 주 등이 이러한 입장의 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1), 최근에 앰네스티는 ‘성노동’을 제한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한 완전 비범죄화를 주장하여 논란이 되었다.
 
여성주의 안에도 이 두 가지 흐름의 논의가 존재하는데, 필자는 지난 5월 27일,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이하 'NGA')의 주최로 열린 “성노동, 성과노동, 성-노동”이라는 제목의 간담회에 다녀왔다. 패널 중 한 명인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이하 ‘여이연’) 편집국장 사미숙은 섹스노동이 ‘쾌락생산 노동’이자 ‘예술 노동’이라고 하면서, 성노동은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구매자가 동시에 쾌락을 생산’한다고 주장하였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예술가와 같이, ‘성노동자’는 ‘쾌락을 생산하는 노동자’이며 ‘쾌락 생산의 주체’라고 하였다. 이 때 ‘성노동자’와 성구매자 사이의 쾌락의 상호 교환은 “연주자와 청중, 배우와 관객의 관계처럼 ‘반응’의 상호 교환이 이루어지며, 여타 예술 장르보다 더 즉각적이며 직접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미숙은 자신의 이런 주장이 ‘판타지’로 들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질의응답 시간에,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면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누구는 자기가 부당한 일을 당했고 피해를 입었음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자기가 피해자가 아니며 노동자이고 성매매도 하나의 일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때로는 같은 사람이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다 하기도 한다. 각각 다른 시기에. 성매매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그 곳을 버텨내야 하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곳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는 안전한 공간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피해로서 다시 보게 되는 경우들이 많음을, 나는 현장에서 여성들을 만나면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2). 나는 이 두 가지 다른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더 잘’ 들어야지 한 가지의 목소리만 선택해서 들으면 위험함을 지적했다. 사미숙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해서 들은 게 맞다”고 하면서, 현장에서 나오는 (성노동 주장의) 목소리가 그동안 삭제되어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것을 선택해서 듣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발제자의 이런 답변에 대해, 청중 중 남성동성애자단체에서 오신 분은, “누구나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당사자의 목소리를 취사해서 듣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을 하였다.
 
두 진영의 입장 차이는 성판매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가, 따라서 성산업을 축소할 것이냐 확장할 것이냐의 문제에서도 입장 차이가 발생한다. 여성주의자들과 진보 진영의 사람들이 흔히들 많이 하는 오해가, 성노동론 쪽에서 ‘성노동’이라는 용어를 주장하고 성매매의 완전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것이, 성산업의 축소라는 지향은 반성매매 진영과 같지만 방법론에서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성노동론에 대한 판타지일 뿐이다. 성노동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성매매를 두 당사자 간의 동등한 거래 행위로 본다면 성산업을 축소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에게 성매매는 그 자체로는 해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성년자 성매매나 인신매매와 같은 경우에만 공권력이 개입해야 하며 그 외의 성매매는 국가가 개입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여이연처럼 ‘성노동’을 가치중립적으로 보고 ‘쾌락을 생산하는 노동’으로 칭송한다면, 성산업을 축소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 성구매자와 성매매 알선자(포주)도 성산업에 참여하는 주체들일 뿐이며, 많은 경우 성노동자 단체에 참여한다.
 
내가 앰네스티의 성노동 정책에 대해 비판한 글에서도 밝혔듯이3), 국제적인 성노동 단체들은 업주들이 성노동 단체나 노조에 들어오는 것을 배척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 많은 업주들, 심지어는 인신매매죄로 확정형을 받은 사람들조차 성노동자 단체에 들어와 자신들을 ‘성노동자’라고 칭하며 활동한다. 이는 당연히 그들의 입장과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대표적인 성노동자 단체 중 하나인 호주의 ‘스칼렛 얼라이언스(Scarlet Alliance)’를 보자. 이 단체는 작년에 한국에도 와서 성매매 완전 비범죄화를 주장했었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보면 2010년에 호주 빅토리아주(성매매가 합법인 곳이다)의 ‘약물과 범죄 예방 위원회’가 제안한 정책안에 대한 스칼렛 얼라이언스의 입장을 싣고 있는데, 인신매매에 관련한 대부분의 정책 제안에 반대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빅토리아주에서 의도적으로 또는 부주의에 의해 인신매매 피해자의 성을 구매한 사람을 처벌하자는 제안에 대해 이들은 반대한다. 그 이유는 “성노동 활동을 경찰이 규제하면 (공권력) 부패가 생길 것이며 인신매매의 초점을 국경 간 환경의 문제(예를 들어 비자를 얻을 수 없음으로 인해 인신매매가 발생하는)로부터 최종 소비자에게로 옮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또한 성적 인신매매에 대한 공공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빅토리아주 정부가 포괄적이며 실천적인 공공 교육 및 캠페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 이유는 “성적 인신매매는 노동 인신매매의 한 주제일 뿐”이며, “인신매매에 대한 정보를 성노동으로만 한정시키면 성노동자들에게 해롭고 이 범죄로 영향받는 다른 사람들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인신매매된 여성들이 성산업을 떠나고 싶어할 때 지원해주는 탈 성매매 프로그램을 주정부가 개발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인신매매의 영향을 받은 성노동자들이 직업 훈련과 고용과 관련하여 특별한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전제는, 그들이 기술학교, 대학, 고등교육과정에 통합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이를 깎아내리기 때문”이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이다. 이들은 성매매 안의 성적 인신매매, 억압과 착취를 보지 않으려하며, 성매매에 관한 어떠한 규제도 ‘성노동자의 권리를 해친다’라는 구실로 반대한다. 이것이 결국 누구에게 이로울 것인가는 눈에 보듯 뻔한 것이다.
 
한국 여성주의는 성노동론에 대한 판타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특히 성매매를 성판매자의 성적 실천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보는 성적 자유주의의 시각은 문제가 크다. 이러한 시각은 성매매를 둘러싼 사회 구조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인 레이첼 모랜은 자신의 책에서 이러한 시각이 가진 문제를 꼬집는다. 그녀는, “성매매를 ‘성적 자기 결정’의 프레임으로 보려는 시도는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결정은 경제적인 문제였지 성적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적인 요소는 견디는 부분이었지 즐기는 부분이 아니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면, 우리 포주가 운영하는 성매매 업소는 텅 비었을 것이다.”라고 증언한다4). 그녀는 한 단골 성구매자와 지배-종속 성행위를 연기해야 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자신이 지배자 역할을 맡아 성구매 남성을 꾸짖고 때리는 행위를 했지만 그 때조차 상황에 대한 통제는 성구매자에게 있었음을 말한다. 겉으로는 성판매자가 성구매자를 지배, 유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성구매자이기 때문에 그의 욕구에 맞춰 (그것이 나의 성격과 취향에 반하더라도) 그가 욕망하는 행위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돈을 지불하는 사람과 몸을 파는 사람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권력 관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성, 인종, 경제적 계급, 섹슈얼리티의 구조적 불평등을 보지 않고 성매매는 두 당사자 간의 자발적인 거래일 뿐이라고 보는 관점은 현실에서 무기력할뿐더러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성매매를 ‘성노동’이라 칭하며 그 속의 억압과 착취를 가리고 ‘정상화’시키는 태도는 잠재적 성산업 종사자들을 만들어내고 성판매자들이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며 성산업에 종속, 적응되어 가는 것을 돕는다는 점에서 현실적 위험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성판매자들이 10대나 20대의 어린 나이에 경제적인 이유로 성매매 일을 시작하는데, 취약한 경제적, 성적 지위에 놓인 이들이 “성노동도 하나의 노동이다. 성매매 자체는 위험하거나 해롭지 않다. 성노동은 성적 실천이며 성노동자는 쾌락 생산의 주체이다.”라고 말하는 권위자들(교수, 연구자, 활동가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해보라. NGA는 페미니즘 학교 등 많은 행사와 세미나를 통해 젊은 세대들을 만나고 있고, 여이연도 각종 콜로키움과 세미나를 통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의 무중력 진공 ‘성노동’ 이론을 접하고 이에 익숙해진 이들이 ‘성노동’을 하게 된다면, 이들이 성매매 공간에서 심리적 외상을 입을 경우 오히려 자신의 피해를 인정하고 이름을 붙이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자신이 우울하고 자살 충동이 있는 것은 성매매 때문이 아니라 원래 있던 기질이나 다른 이유 탓으로 돌리게 되기 쉽고, 업주나 성구매자로부터 당한 부당한 대우도 ‘재수 없어 생긴 일’로 치부되기 쉽다. 실제로 우리가 만나고 있는 여성들 중, 성매매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가장 심한 소외와 통제의 공간이라고 알려진 집결지에서 일하는 분들조차 자신의 만성적인 질병과 우울증, 자살 충동을 성매매와 연관시키지 못한다. ‘나는 원래 아픈 사람’으로 여기거나 ‘직업병’처럼 으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하물며 ‘성노동은 좋은 노동’이라는 논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논리를 되풀이해서 듣게 되는 경우에, 이 분은 자신의 상처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자신의 상처와 성매매의 연관성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에, 계속해서 피해의 공간의 남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성매매 자체가 성판매자에게 해롭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현장에서 일하는 성판매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은 언뜻 모순적인 일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우리들은 상담소를 운영하며 10년 넘게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상담하고 지원해 왔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성매매 일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성매매는 폭력이다, 탈성매매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웃리치(현장에 들어가 당사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로 만나는 현장의 여성들 앞에서 ‘성매매’라는 단어도 가급적 쓰지 않는다. 그분들이 현장에 남아있기로 한 판단을 존중하는 동시에, 현장에서 일하면서 부당한 일이나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요청하실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고 서로간의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 성매매에서 언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결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매매 일을 계속 하고 싶다’라고 하는 이야기와 ‘성매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야기가 서로 배치되는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매매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다음 날 탈 성매매 하셔서 업주를 고소하는 경우도 있고, 지원을 받아 빚으로부터 벗어났지만 다시 성매매 공간으로 돌아가시는 분도 있다. 각자가 자신의 역사가 있고 자기만의 세계와 자기만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현장에서 계속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우리가 경험한 현장을 우리의 언어로 사회에 전달할 뿐이다. 우리가 들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경험한 성매매 현장은 성노동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장밋빛이 아니었다. 그것을 장밋빛으로 포장하는 것은 나의 경험과,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많은 당사자들을 배신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판타지는 필요 없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판타지가 아니기에.
 

 
1) 성노동론자들은 성매매 비범죄화와 합법화가 다르다면서, 관련 규제의 유무를 그 차이로 든다. 그러면서 성매매와 관련하여 어떠한 규제도 두지 않는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합법화와 비범죄화의 차이는 없다. 규제가 없는 산업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당을 하나 열어도 식품위생법과 그 시행령, 시행규칙 등 다양한 규제를 따라야 한다. 하물며 사람의 몸을 파는데 안전, 위생 등과 관련하여 규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규제가 없는 비범죄화란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2) 나는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에 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일다, 2006년 http://ildaro.com/sub_read.html?uid=3376§ion=sc1

3) https://e-loom.org/?p=884/논평성명서

4) 레이첼 모랜(Rachel Moran), 『Paid For』, 2015, p.74
 

활동이야기

[8월 칼럼]똑바로 나를 보라 2 후기_별

똑바로 나를 보라 2 후기 (별)
 
 
 
1. 똑바로 나를 보라 2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에서 각본, 연출, 연기한 『똑바로 나를 보라2』 가 변방연극제에서 상영되었다. 장맛비가 내리던 7월 25일 미아리예술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갔다.
 
스스로를 ‘주체적이고 전문적인 성서비스 노동자’로 명명하는 주인공 나용자는 대학원을 다니며 작가를 지망하고 있다. 그녀는 마사지 업소에서의 성노동 경험을 토대로 자전적인 글 ‘똑바로 나를 보라’ 를 출판한다. 이 책의 출판 기념회는 그녀가 대결하고자 하는 노동운동, 여성운동, 철학을 의인화한 사상가들과 미지의 독자들, 그리고 그녀 자신이 각축하는 장이 된다. 이것이 연극의 무대 상황이다.
 
나용자가 무대에서 무엇보다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주체성이다. 그녀는 억압과 착취, 폭력과 피해, 도덕의 언어가 지긋지긋하다. 그녀는 인신매매나 감금, 구타를 당하지 않았고 성폭력을 당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성과 사랑을 타락시키지도 않았다. 현대인들이 노동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노동할 뿐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불법적인 존재여야만 하는가? 이것이 그녀의 문제의식이다
 
불법. 법의 금지와 처벌은 무엇보다 그녀의 주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성노동은 강도, 사기, 폭행, 살인과는 다르다. 당연히 사회를 향한 그녀의 요구사항은 성매매 합법화가 된다. 관객이 무대 위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분명 이러한 논리이다.
 
나용자의 증언은 가치가 있다. 기존 운동의 언어에 내재한 낙인을 가격하며 나용자를 불법적 존재로 명명하는 법의 무의식과 금기를 불편하게 한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젠더로서의 여성에게 부과한 성과 노동의 경계를 재고하게 한다. 폭력과 트라우마로 일축되어온 성적 경험이 개인 삶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도록 한다.
 
그러나 나용자의 증언에는 누락된 것이 있다. 그녀가 성노동 현장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다. 이쪽과 저쪽세계, 성노동 현장과 그것을 감추어야만 하는 공간으로 이분된 삶을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그녀 그리고 우리가 우리앞에 놓여진 이 경험으로 왜,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나누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이다. 이러한 정치적 경험론이 결여된 채로 ‘주체적 전문적 성서비스 노동’이라는 한 줄 요약이 선언될 때 관객은 왜, 어떻게 그 경험에 찬성하거나 반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남겨진다.
 
연극은 이런 상태를 사용하여 성노동에 대한 자신의 주체적인 정의를 관객들에게 밀어 부친다. 그러므로 연극은 형식상 찬반토론이지만 사실상 관객이 나용자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연극에서 가능한 공동의 귀결은 이러한 성격의 것에 국한된다.
 
한 사람의 생애 전반을 추동하는 행위성의 해석은 운동의 결을 만드는 핵심적인 작업이다. 행위성은 곧 권력의 장이고 모순-법칙이라는 아이러니로만 움직인다. 이 아이러니를 단순화하며 획득한 말끔한 주체성은 공허하다. 연극은 껍질을 다 까고 자그마해진 주체성을 자신의 해방을 위한 제1과제라고 여겨지는 합법적 노동자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남김없이 써버린다. 연극은 나용자를 비인간에서 인간으로 도약하게 하기 위하여, 법의 테두리 안으로 진입하여 시민권을 얻게 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노동자 정체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정체성과 노동의 속성. 이것은 이것대로 얘깃거리가 있다.
 

2.

『서비스 이코노미』에서 이진경은 국내 성노동을 젠더화, 섹슈얼리티화, 프롤레타리아화된 서비스 노동의 네 가지 전범ㅡ군대 노동, 국내 매춘, 군대 매춘, 이주 노동ㅡ 중 하나의 유형으로 분석한다. 인류의 성적, 인종적 위계는 특정한 노동 양태로 현상되며, 다시 이러한 노동의 양식은 곧 위계화된 특정 집단을 위해 구성된다는 것이 이 책의 논리이다. 이진경은 이 노동들을 가리켜 죽음정치적 노동이라고 한다. 살기 위해서는 이 노동을 해야 하며 이 노동을 하는 한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배제하는 포함’, ‘생명권력의 구성적 차원으로서의 죽음정치적 노동’의 원리다.
 
이 책에서는 줄리아 오코넬 데이비슨을 인용, 성노동이 ‘인위적인 저임금 경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했으며 빈곤 여성의 대안적 복지체계로 기능했다’고 쓰고 있다. 성별화된 정치경제체제를 통해 가족을 부양하는 모성,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성을 재생산하는 것과 성노동을 선택하는 행위성은 연결되어 있으며 가부장제 자본주의는 근대화 과정에서 이 노동, 이 집단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영자’를 ‘능동적인 동시에 수동적인 행위자’로, ‘일련의 상해와 폭력의 힘들에 의해 변형되는 동시에 그 힘들을 변화시키는 존재’로 간주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용자를 떠올린다. 오롯이 주체적으로 노동자이고자 하는 나용자는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임금노동자로서 적합할 것이나 시스템에 진입하기 위하여 시스템 자체를 승인해버림으로써 저항의 입지를 좁히는 자가당착의 과제를 안고 있다. 성노동의 낙인을 완화하면서도 가부장적, 자본주의적, 죽음정치적 노동에 저항할 수 있는 위치성을 길러내기 위해서 어떤 방식이 가능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다.
 
성노동 운동의 언어가 노동운동, 여성운동, 인권운동이 축적해온 억압, 폭력, 윤리의 언어를 적대하고 비껴가면서 확보하고자 하는 담론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관계를 배제하는 주체성만으로 획득된 노동자 정체성으로 권리의 언어를 어떻게 뒷받침 할지 연극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최근 국제 엠네스티 대의원 총회에서는 성노동 전면 비범죄화 정책이 통과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성매매 처벌법 21조 1항 위헌 제청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엠네스티의 정책은 사법 및  경찰력을 대상으로 짜여져 있을 뿐, 성매매 업소의 고용이나 성구매 과정에서의 폭력에 관련된 정책은 담고 있지 않다.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권리와 맞닿아 있다. 처벌법이 사라진다면 보호법이 사라질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면 열악한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완충작용을 해줄 수 있는 다른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상들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3.

파국과 폭력의 시대에 우리가 인간이기 위하여 가능한 것들을 상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노동자 당사자의 주체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별화된 노동, 젠더, 성 자체와 길항하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식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공동의 운동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만큼 관객들의 여러 후기들을 모아 똑바로 나를 보라 3 가 탄생한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지 궁금하다!

활동이야기

2013 월간 성판매여성비범죄화 12월호(폐간호)

축 폐간

 

폐간사

 

그동안 알듯 모를듯, 은은하게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해볼만한건 다 해봤고, 아이디어는 떨어졌고, 하는 우리도 재미없고,

우리 모두는 안녕하지도 못하는 데다가

성비련이 뭐라고 내년까지 할 것도 아닌듯 하여 우린 망해버릴랍니다.

 

 

 

<정기구독자의 한마디>

 

저기후원금 안 피료해요나중에 술이라도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이면 뭐하나표지 이미지가 당췌 뜨질 않는다이것도 하나의 메타포인가.

 

비 비겁하.

범 범죄자라 내모는 그대들이

죄 죄를 누구에게 묻고 있는지

화 화두를 이렇게 던지고 싶다.

 

비 비난의 대상이

범 범죄자라 이야기 되는 사람이

죄 죄를 물어도 되는 사람일까

화 화를 내도 되는 사람일까

 

비 비릿하다.

범 범죄자 취급이

죄 죄지은 것이 무엇인지

화 화딱지가 난다.

 

비 비밀이냐?

범 범죄자를 밝히는게

죄 죄는 그대들이 지고,

화 화두엔 여성들만 있네

 

비 비장하게 쏘아 붙이겠다.

범 범죄자가 누구인지 따져물어야겠다.

  죄지은 놈은 없고죄인인 성매매여성만 있네

화 화가 머리 끝까지 터져봐야 정신을 차릴래나

 

잘 받아보고 있어요여성비범죄화 생각하면서 저도 4행시 몇개 적어봐요. ^^ 한메일에서는 파일이 잘 안열려서 아쉽습니다여성비범죄화를 기대합니다.

성매매한게 자랑인줄 아는 여자드림

 

짱이요.!!

 

시간이 지날수록 표지에서 간지가 우러나오는것 같아요

 

그놈의 섹스섹스섹스 시발

 

마지막호에 싣다니요월간 비범죄화 지속 출판(!)을 바라는 1. "

방금 뮤직비디오 봤어요대박^^b

 

그래서 학술대회 장소가 어딘가여제 눈이 삐꾸먹었나… 나 시력 1,5맞는데일반 독자는 못가여?

 

다음 메일에서 보이지가 않아요 TT

 

월간 비범죄화 정기구독 신청 http://goo.gl/KkFik

[신설]정기구독자의 한마디 http://goo.gl/bq9BsV


성비련 블로그 http://blog.naver.com/monthly2013

성비련 트위터 @monthly2013

활동이야기

2013 월간 성판매여성비범죄화 11월(제7호)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EBC 라디오 <신지영의 뉴스룸>'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저작권은 EBC에 있습니다.

 

 

방송: EBC FM 신지영의 뉴스룸 (06:05~07:55)

진행신지영

대담해당지역 주민구청관계자

 

 

서울 동대문구의 거리에 흥미로운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성판매자는 범죄자가 아니다!’, ‘성매매는 자본주의가부장제젠더권력의 문제다.’ 라는 내용의 현수막인데요누가 이런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는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이 문장들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알려지기로는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이 주장하는 바와 같다고 합니다성판매여성비범죄화라는 단어익숙하지 않은데요오늘은 이 현수막을 직접 본 주민동대문구에 오래사셨다고 합니다김경진 님과 전화연결을 해보죠.

 

 

신지영김경진님 안녕하세요.

 

 

김경진네 안녕하세요.

 

 

신지영그러니까 이 현수막을 직접 보신거예요정확하게 어디에서 보신거지요?

 

 

김경진제가 본 건 동대문구 버스라인 쭉 따라서 학교시장 뭐 그런 쪽이었습니다.

 

 

신지영아 이게 지금 한두개가 아닌가보죠?

 

 

김경진예 이게 뭐 한두개가 아니고 하여튼 여기저기 사람 많은 데에 엄청 많이 있어요.

 

 

신지영지금 이 현수막이 뭐가 문제인거죠?

 

 

김경진성판매자라는게 이게 몸파는 걸 얘기하는건데 이런 얘기를 이렇게 동네에다가어르신도 있고 애들도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렇게 걸어놓으니까 문제죠 이게대체 애들이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남사스럽습니다아주.

 

 

신지영성매매 얘기가 붙은 게 남사스럽다고요?

 

 

김경진그거 뭐 잘난 거라고 그렇게 대놓고 현수막을 거냐 이거죠.

 

 

신지영그렇다면 김경진님 생각은 이 현수막 빨리 철거해야 된다는 입장이신 거예요.

 

 

김경진당연하지요빨리 내려야됩니다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요 우리 주민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신지영그러면 성판매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이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시는 건가요?

 

 

김경진성매매가 이제 범죄적으로 처벌할 일인가 아닌가는 계속 말이 많지요. 범죄가 아니라고 볼수도 있는데 지금 어쨌든 불법으로 되어있지 않습니까무엇보다저는 이런 공공장소에 거는 현수막의 내용으로는 좀 선정적이라는 거지요이건 지자체가 막아야 한다고 봅니다아이들도 다 보고 다니는 학교 시장 이런데다가 이게 있으면 되겠습니까.

 

 

신지영조금 더 정확하게 짚어보면은요이 현수막의 문구는 성을 파는 사람 그러니까 주로 성매매 여성을 이르는 말일텐데요성판매자는 범죄자가 아니다 라는 거예요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구분하는.

 

 

김경진그것도 좀 이상한 거지요성매매하는 여자가 불쌍한 경우도 있겠지만 요즘은 다 자발적으로 한다는데 그걸 법적으로 강력하게 단속하고 처벌해서 못하게 해야할 시대 아닙니까누구는 처벌하고 누구는 안 하고 그러면 안 되는 얘기지요남녀가 평등한데 여자들만 벌을 안 받는 건 그거는 역차별이지요. 둘 다 불법을 저질렀는데 여자만 범죄자 아니라는 건 말이 안 되죠.

 

 

신지영남녀가 평등해야 된다알겠습니다이 현수막 문구 중에 성매매는 자본주의가부장제젠더권력의 문제이다가 있습니다이건 어떤가요이 문장은 남사스럽다거나 아이들 보기 좀 그렇다 하는 것과는 거리가 좀 있지 않습니까?

 

 

김경진> … 성매매는 참 문제가 많은 거지요그러니까 없애야지 이걸 범죄가 아니라고 하면 더 기승부리지 않겠어요어떤 내용이건 성매매를 권장하는 것 같은 이런 현수막은 걸려서는 안 됩니다학교 가까운 대로변에도 걸려 있어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데요당장 내려야 합니다이미 민원신고도 했고요.

 

 

신지영민원 신고를 넣으셨나요?

 

 

김경진서명운동도 받을 예정입니다오늘 보고 문제를 느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현수막도 없애고 동네에 유흥업소 그런 것들도 싹 없애도록 항의할 계획입니다.

 

 

신지영큰 계획을 짜고 계신 것 같습니다앞으로 더 논쟁이 거세지겠네요오늘 연결 고맙습니다.

 

 

김경진네 감사합니다

활동이야기

2013 월간 비범죄화 10월호(제 6호)

월간 비범죄화 2013년 10월호(제6호)

 

성판매여성비범죄화 학술대회

 

 

일시 2013. 10. 6() 12:30-20:00

 

 

[등록]   12:30 

 

[개회사] 13:00 

 

[주제발표 1] 13:10 – 14:30 

 

주제1 명명의 정치학그래봐야 미끄러지는 이름들

 

 

발표 1) 이 지긋지긋한 논란, ‘거시기로 종식시키다 (김박순자한국에와서여성우월주의로변질된패미니즘연구회)

성노동이냐 성매매냐 담론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이 넓은 성매매 스펙트럼 안에서 

성매매성노동 꼴랑 요 정도로 각 명명이 가지는 한계와 함정을 비켜나가는 것이 가능한가.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냥 거시기라 불러야할 때이다.

 

 

 

발표 2) 호세 꾸엘보 에스뺘뇰을 샷으로 시키는 것과 병으로 시키는 것 사이의 차이가 불러일으키는 은유학적 주체 (이김순자,연고대)

안주와 주류와 비주류로 명명된 존재들의 의미화 방식이 주체일 때 우리가 갇힐 수 있는 딜레마의 정치학.

 

 

 

[휴식] 14:30 – 14:50

 

 

[주제발표 2] 14:50 – 16:10

 

 

주제 2  제도화 – 통제와 허가의 딜레마

 

발표 3) 금지합법비범죄화– 이 모든 것을 넘어서다 (박이순자낙성대)

각 국가마다 성매매를 둘러싼 다양한 방식의 사법 제도가 존재하며 이는 조금씩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이 넓은 성매매 스펙트럼 안에서 금지합법비범죄화 꼴랑 요 정도로 제도가

가지는 한계와 함정을 비켜나가는 것이 가능한가.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피로써 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이다.

 

 

발표 4) 체크남방과 민무늬남방이 교차하며 재현하는 이미지 시대의 정치·경제학 (박박순자첨성대)

남방의 존재들이 반복하는 이미지를 들여다봄으로써 제도로 인한 통제와 허가를 초월한 

디아스포라적 대안을 발견하다.

 

 

[휴식] 16:10 – 16:30 

 

[자유토론] 16:30 – 18:30

1. 업주와 구매자는 처벌하면서 성판매여성만 처벌안하겠다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주장하기

2. 일하는 공간의 안전노동자의 행위성을 드러내면서 성별화된 산업구조를 비판하고 착취하는 자들을 엿먹이기

3. 노동권을 주장하면서 노동 극복하기– 한계와 전망

4. 성매매논쟁의 비당사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당사자중심주의를 경계하며

 

 

만찬 및 네트워크 18:30 – 20:00 

 

 

주최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성비련)

곰팡이와싸우는세입자연대남성연대반대하는남성모임도우미안쓰는노래방협회딸자식이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목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일안돕는딸년모임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인연합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여가부하는일별로맘에안드는여성주의자모임유흥업소서바이벌가이드 '화톡', 한국에와서여성우월주의로변질된패미니즘연구회 (우리 졸라 많지?)

 

 

주관 성비련, 세계여성젠더초월학회

 

 

후원 여성미래창조과학부

 

 

 

월간 비범죄화 정기구독 신청 http://goo.gl/KkFik

[신설]정기구독자의 한마디 http://goo.gl/bq9BsV


성비련 블로그 http://blog.naver.com/monthly2013

성비련 트위터 @monthly2013

활동이야기

2013 월간 비범죄화 9월호(제 5호)

 

 

월간 비범죄화 2013년 9월(제5호)

 

1st digital single

성판매여성의 비범죄화를 노래하다

성비련(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

release 13.08.30

 

수록곡

01. intro (feat. 남위준)

02. 비범죄가(非犯罪歌)

03. 비범죄가(radio-mix)

04. 비범죄가(room 대기실 ver)

05. 비범죄가(inst)

 

<판매여성범죄화추진합>

 

 

월간 非犯罪化 – 9월호

 

비범죄가 악보집 수록

비범죄가 뮤직비디오(클릭)

 

제작   성비련(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

곰팡이와싸우는세입자연대,

남성연대반대하는남성모임,

도우미안쓰는노래방협회,

딸자식이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

목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

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

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일안돕는딸년모임,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

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

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

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인연합,

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

여가부하는일별로맘에안드는여성주의자모임,

유흥업소서바이벌가이드 '화톡',

한국에와서여성우월주의로변질된패미니즘연구회

(우리 졸라 많지?)

 

기획    성비련(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

 

연출    성비련(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

 

음악     Touch Kim & Dry Lee & 각하

 

출연   성판매여성비범죄화를 바라는 명랑시민단,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 비밀요원들 1,2,3,4

 

월간 비범죄화 정기구독 신청 http://goo.gl/KkFik

[신설]정기구독자의 한마디 http://goo.gl/bq9BsV

 

성비련 트위터 @monthly2013

월간비범죄화 블로그 http://blog.naver.com/monthly2013

활동이야기

물음표, 궁금, 그리고??? ㅡ 절대강좌 6강 후기

절대강좌 대단원의 막을 장식한 한채윤님의 강의!
차별과 피해 말고 낙인을 비롯해, 아무도 더이상 건드리지 않는 것들을 짚어보면 좋겠다며,,
많은 화두들을 던져주셨네요,,

강의를 들은 OOO 님이 후기를  보내오셨어요~(이루머가 적은 게 아님미다,,ㅋ)

6강 6/24(월)은
공포의 정치 거부하기 : 성소수자/성판매 여성의 차별경험의 공통점과 삶의 권리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님의 강의였습니다.

이제 OOO님의 쌈박한 후기 소개합니다~^^

모두가 물어봤다.
“강의 어땠어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좋았어요.”
대답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덧붙여서 조금 더 말했다.
“저의 좋았다는 의미는 저가 강의를 들으면서 몇개의 물음표가 제 머리속에 떠올랐냐는 의미에요.”
그제서야 사람들은 조금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강의를 들으면서 손바닥만한 페이퍼에 앞뒤로 4장 정도 빼곡히 질문만 적었다.
채윤씨에게 질문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나에게도 질문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또 함께 듣는 사람들의 의견도 궁금했다.
아쉽지만 나의 물음표들은 모두에게 공유되지는 않았다.
 
글쓴이는 동성애자 인권 운동을 하고, 또 HIV/AIDS 인권 운동을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성노동(이라고 나는 쓴다.)을 하는 피해자(라는 말이 아직도 입에 잘 붙지는 않지만.)들을
동성애자 혹은 HIV/AIDS 감염인과 오버랩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강의에 물음표가 많아졌다.
 
성매매도 성노동도 성판매도 어떤 용어를 사용하던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왜 사람들은 단지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나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짓는 걸까?
이것이 우리가 동성애자를 ‘다른’ 사람으로 구분짓는 것과 어느 지점이 다른 걸까?

————————————————————————————-
마지막 후기가,, 후속모임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 하네요~^^
후속모임 첫 만남의 날은 7월 15일 월요일 저녁 7시 입니다.(장소 추후 공지 예정)

활동이야기

2013 월간 비범죄화 6월호(제 3 호)

월간 비범죄화 2013년 6월호(제 3 호)

 

본지단독취재

"성판매여성 비범죄화가 퍼져나가고 있다"

그 현장을 취재하다!

 

집중탐구

페미니즘, 왜 유독 한국에 와서 여성우월주의로 변질되는가

 


성판매여성 비범죄화!!

"성산업…. 부셔버릴거야!!"

 

 

<판매여성범죄화추진합>

 

 

 

 

월간 非犯罪化 – 6월호

 

성판매여성 비범죄화가 퍼져나가고 있는 그 현장을 취재하다!!!

 

성판매여성비범죄화 전파.창궐단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성비련)

곰팡이와싸우는세입자연대남성연대반대하는남성모임도우미안쓰는노래방협회딸자식이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목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일안돕는딸년모임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인연합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여가부하는일별로맘에안드는여성주의자모임유흥업소서바이벌가이드 '화톡', 한국에와서여성우월주의로변질된패미니즘연구회 (우리 졸라 많지?) 




월간 비범죄화 정기구독 메일링 신청 http://goo.gl/KkFik 
성비련 블로그 
http://blog.naver.com/monthly2013

활동이야기

젠더를 넘어선 언어로 이태원 속 트랜스젠더의 삶을 만나다 – 절대강좌 5강 후기

루인님의 강의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백만불짜리 강의^^
성매매 논의에서 보다 확장해서 생각할 것들을 확실히 보여주셨어요,,

강의를 들은 차차님이 후기를  보내오셨어요~

5강 6/17(월)은
특정하게 소비되는 젠더의 지위 : TG 여성의 성판매 경험에서 드러나는 성매매의 공통된 함의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루인님의 강의였습니다.

이제 차차님의 후기 시작합니다~

<젠더를 넘어선 언어로 이태원 속 트랜스젠더의 삶을 만나다>
 
 
후기를 쓰기 까지 많이 머뭇거리게 됐던 것 같다.
‘특정한 상황’이 내 몸에 체화되지 않은 만큼 몸이 반응하기 까지(후기를 쓰기까지)생각을 한다고 누군가가 그러던데,
내 상태가 딱 그랬던 가보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내 몸 안의 기억들과 언어들은 뒤죽박죽 재배치되고 경합하기 일쑤였으니.
 
내가 요즘 주로 몸담고 있는 공간이 성폭력 상담 기관인데,
오히려 성별화된 구도의 서사들(주로 여성피해자, 남성가해자)을 접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안에서 젠더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활동으로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젠더 그 자체가 비대칭적이라는 것을 무수히 확인하고,
피해/가해자 가운데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있고,
피해자 중에 성판매 여성이 있는 경우 이런 식으로 상담소로 접수된 사건 중 하나로 인식하기도 했었다.
성별화된 피해/가해자 구도와 그 역할이 오히려 성폭력 통념이나 국가의 성폭력 안보정치에 공모하며
성역할을 강화하는데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가 항상 내 화두지만
고민만 무성히 쌓아가고 있는 요즘이었다.
또한 우연한 기회에 섹슈얼리티 교육을 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트랜스젠더=하리수’라고 인식되는 것을 깨뜨리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생각할 때에도,
그저 하리수씨와 같은 MTF 트랜스여성이나 FTM 트랜스 남성 등 특정 존재의 가시화나 자신의 젠더 표현이나 실천을
어느 정도 상대화해보는 작업을 해도 항상 트랜스젠더는 수술이라는 의료조치와 연결된 설명이 잘 안되면서
타자화 된다는 점에 답답함도 있었다.
 
이외에도 내 나름대로 트랜스젠더라는 명명과 관련한 다양한 혼란과 답답함이 있었는데,
루인님의 강의는 트랜스젠더라는 개념-구체적인 특정 사건과 함께 작동하는-을 통해
젠더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의 축을 다양하고 섬세하게 세우기에 좋은 자극이 되었다.
트랜스젠더나 성판매/성매매라고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언어 개념은 개념을 발화하는 사람에 따라
이를 명명하는 과정 속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개념의 담지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나 또한 루인님이 강의 초반에 언급하셨던 것처럼 ‘트랜스젠더, 성매매에 대해서 모른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전에 이태원의 한 클럽에 우연히 갈 일이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트랜스젠더 언니들을 만났다.
(“호르몬이나 맞아. 이년아”라고 서로 농담을 던지며 공연 준비를 하는 언니들의 모습을 보며 함께 웃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이태원에 처음 갔었고, 거리 곳곳 검은색 바탕에 트랜스젠더라는 글씨만 새겨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태원이니까 가능했을 것 이라는 어렴풋한 추측을 했지만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영업이,
그 안에서 트랜스젠더 언니들의 삶이 이어져왔는지 궁금증만 가지고 있던터였다.
 
이 경험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루인님의 강의에서 이태원이라는 지역/공간을 중심으로
과거부터 트랜스젠더 여성에 초점을 맞춰 ‘특정하게 인식, 기록, 소비된’ 긴 역사적 재현물을 통하여
‘고민의 초석’을 마련해주셨다는 생각 때문이다.
루인님은 이에 앞서 '트랜스젠더라는 명명이 미국에서는 젠더 규범에 맞지 않는 사람으로 해석되는데에 비해
한국에서는 의료조치를 하는 사람으로 유통되어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젠더 자체, 여성 범주 자체를 재사유할 토대로 성매매를 논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존재라고 인식된다는 점,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떠올리는 지역이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업소라는 점’
그럼에도 ‘성매매 논의에서 트랜스젠더는 사실상 없다’는 현실을 지적해주셨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루인님은 이태원에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트랜스젠더의 어떤 삶의흔적이 있는지 다양한 재현물을 통해서 추적한 결과를 전달해주셨다.
 

이 외에도 루인님은 소중한 고민지점들을 많이 던져주셨는데,
이 지면에 담아내지 못한 데에 아쉬움과 강의 내용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루인님의 강의 자체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태원이라는 공간 속 국가/정부의 젠더 관리 기획,
그 안의 트랜스젠더/비트랜스젠더의 삶, 그들의 성판매/성노동에서 읽히는 사회적 구조와 다양한 의미 등
다양한 길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복잡하고 섬세하게 푹 빠져들어 만나는 여행을 하고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강의는 성매매 안에서 트랜스젠더의 삶과 언어가 부재했던 그간의 이유에 대하여,
소위 한국적 의미에서 트랜스젠더라고 인식되는 존재의 삶과 물리적 거리보다
내 스스로 인식적인 심적인 거리가 있는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젠더를 넘어선 언어로 이태원 속 트랜스젠더의 삶을 만나게해주신
루인님의 훌륭한 강의에 비해 허접한 후기라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감사를 전한다.
 

활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