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출구’를 찾아서

[한겨레] 해외 3국을 가다
성매매는 뿌리뽑을 수 있는 병폐인가, 사회의 필요악인가 성매매와 관련해 세계 각 나라는 금지·규제·허용 등 제 나라 실정에 맞는 다양한 법·제도·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성매매가 사회 구석구석 퍼져 있는 우리 나라도 지난해 말 성 구매자인 남성 및 포주의 처벌을 크게 강화하는 한편 피해여성은 적극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성매매 처벌법과 보호법을 마련했다. 여성계는 정부가 이 법을 통해 성매매 근절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법안의 국회 통과가 미뤄져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실효성에도 논란이 일고 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성매매를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는 스웨덴, 성매매 여성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는 벨기에, 최근 공창제도를 폐지한 대만 등 3개국의 성매매 방지 및 여성보호 실태를 살펴보고 시사점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① 스웨덴

‘매매’완전불법…성을 판 여성은 처벌안해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것은 여성에 대한 명백한 폭력이다.” 스웨덴에서 사회복지 서비스를 담당하는 보건사회부의 아니카 만스네러스 부국장의 이 말은 스웨덴 국민들이 성매매를 바라보는 시각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준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사회복지 제도를 갖고 있고, 의회의 여성비율이 50%에 이를 정도로 여권이 탄탄한 스웨덴은 자유분방한 유럽의 여러나라 가운데 성매매를 완전 불법화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지난 98년 6년여 에 걸친 뜨거운 사회적 논쟁 끝에, 성을 판 여성은 처벌하지 않고 남성에 대해서만 6개월 이상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유례없는 ‘성매매 구매 금지법’을 통과시켜 전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런 내용의 법 제정은 성매매 합법화가 보편화한 유럽지역에서 유일한 일이었을 뿐 아니라, 성매매 여성은 그대로 두고 남성만 처벌하기로 한 내용 때문에 입법과정에서 스웨덴 남성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처음에는 여성 법무부 장관까지 이 법의 제정에 반대했다. 공포되고 난 뒤에는 단속해야 할 경찰조차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스웨덴 내 7개 정당이 모두 이 법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의 80%가 이 법을 지지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성평등국에서 성매매·인신매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구닐라 에크베르그 정책보좌역은 이런 분위기에 대해 “스웨덴의 오랜 ‘양성평등’ 전통에 성매매가 정면으로 어긋나는 행위라는 생각에 기초한다”고 설명했다.

#밤10시 스톡홀롬 뒷골목
백화점 등 고층건물이 모여있는 스톡홀름 중심가의 한 뒷골목. 밤 10시가 넘자 인적이 뜸한 이 거리에 3~4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정해진 목적지가 없는 듯 거리를 천천히 걷다가 돌아서기도 하고 찬바람을 피해 지하철 역사 안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관광객으로 가장한 기자가 부근을 지나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왔다. 5년 전 에스토니아에서 건너왔다는 이 여성은 곧바로 ‘흥정’에 들어갔지만 나이와 거주지 등에 관해 꼬치꼬치 질문을 받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스톡홀름시 경찰국은 현재 80명 정도의 여성이 시내에서 길거리 성매매를 하고 있고, 이 가운데 하루에 10여 명 안팎의 여성만이 거리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지법이 시행된 뒤 크게 줄어든 숫자다. 시 경찰국에서는 3명의 전담반이 잠복근무 등을 통해 성매매 현장을 적발하고 있다. 성매매 여성과 접촉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두거나 현장을 급습해 남성을 붙잡기도 한다.

#포주 재산몰수·광고신문 기소
시 경찰국의 수사관 안더스 그리펜로프는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성매매 여성이 순순히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남성을 처벌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적발된 남성은 성매매 사실이 직장이나 집안에 알려질 경우 해고나 이혼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그리펜로프의 설명이다. 성매매 관련 광고·홍보를 게재한 신문이 기소된 사례도 있다. 금지법이 시행된 뒤 현재까지 단속에 걸린 남성은 대략 100~120명 정도. 알선업자나 포주 역시 적발되면 가택수색과 계좌추적을 당해 재산을 몰수당한다.

성구매 남성에 대한 처벌과는 달리,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탈성매매를 위한 지원이 이뤄진다. 스톡홀름 시내에 위치한 성매매 방지센터는 지난 98년 설립돼 현재 6명이 활동중이다. 이곳에서는 핫라인을 통한 신고·상담과 함께 산부인과·정신과 의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여성들이 성매매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시내에는 모두 3곳의 성매매 방지센터가 있고, 비슷한 활동을 하는 ‘여성의 집’도 전국적으로 183개가 운영되고 있다. 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안느 윌켄스는 “이곳을 찾는 여성의 탈성매매 성공율은 60%에 이른다”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심리적 지원이며, 이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과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경찰은 이런 성매매 여성 쉼터·엔지오·정부 관련부서와 매달 한번 이상 모임을 열고 정보를 나눈다. 또 여성 쉼터들은 전국 289개 지자체(콤뮨)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콤뮨에 설치된 직업소개소를 통해 최종적으로 이들 여성이 탈성매매를 이루도록 지원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해외원정으로 ‘도망’
스웨덴 금지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거리 성매매가 줄어든 대신 집이나 유흥업소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성매매와 인터넷 성매매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스톡홀름 경찰국은 금지법 시행 이후 길거리 성매매의 비율이 30%에서 10%로 줄고 대신 업소형태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처벌을 피해 해외로 떠나는 ‘원정 성매매’도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운수업을 하는 40대의 레오는 “주위에서 비행기를 전세내 태국으로 섹스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2년 전에는 태국에서 성 구매를 하고 돌아온 한 스웨덴 남성에 대해 태국 여성의 증언을 증거로 채택해 처벌한 사례도 생겼다.

이밖에 최근에는 인신매매를 당한 동구권 여성들이 스웨덴 남성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정부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2년 전 경찰은 인신매매 업주·포주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1천여 명의 스웨덴 남성 고객의 명단을 컴퓨터에 입력시켜 놓은 동유럽 출신의 한 포주를 적발해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국경을 넘는 이런 성매매·인신매매로 골치를 썩고 있지만, 스웨덴 정부와 경찰은 아직 금지주의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고 있다. 에크베르그 정책보좌역은 “금지법에 대해 성공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도 “이 법의 시행 후 피해여성의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가에 평가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스네러스 부국장은 “금지법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기본적으로 한 사회의 문화적 전통에 크게 영향을 받지만, 우선 남성들에게 왜 성매매가 나쁜가를 설득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스톡홀름/글·사진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200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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