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윤락가'를 문제삼는 이유
KBS 2TV 시민 프로젝트 나와주세요
김이정민 기자
'시민들의 참여로 세상을 바꾼다'는 취지의 방송이 새롭게 선보였다. 참여형 사회개혁 프로그램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시민 프로젝트 나와주세요>, 그러나 지난 7월 30일 방송된 5회분 '초등학교 앞 윤락가, 아이들을 보호하라'는 작은 권리라도 찾겠다는 방송의 취지를 의심케 했다.
학교 앞에서 '윤락가'를 없애자는 것이 그 날의 '권리찾기'였다. 방송은 초등학교 앞에 우리의 짐작보다 얼마나 많은 '윤락가'가 있는지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유해환경이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차마 봐서는 안될 위험한 환경이라는 것과 성매매 현장에 근접해있는 아이들일수록 성매매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논리가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윤락가'가 왜 유해환경인지, 왜 이런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등 성매매 산업에 대한 분석은 빠져있었다.
방청객으로 온 한 학부모는 "아이가 집에 와서 '어떤 언니가 이상한 옷 입고 있다'고 말했다"며 유해한 윤락가의 이미지를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의 이미지로 제시했다. 여성의 성을 사는 남성들과 성매매 산업의 중간 착취고리에 대한 언급 없이 단지 붉은 조명의 윤락가만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은 성매매의 유해성이 성매매 여성의 잘못인 양 보여줬다.
방송은 또 군산화재 사건을 예로 들면서 현장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다는 '충격적' 사실을 '고발'했다. 주택가 바로 옆에서 인권유린 당하던 여성들이 불에 타 죽어 가는데, 이를 보고 아이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봐 눈을 가리며 걱정하는 꼴이다. 이들에게 군산화재 사고로 참혹하게 죽은 성매매 피해자 여성들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압권은 실제 초등학교 앞에서 성매매를 했던 여성의 증언을 듣는 대목이었다. 피해자 여성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문제는 그 신변보호의 방식이다. 커다란 모자에 위축된 자세, 그녀는 과거의 죄를 속죄하러 나온 사람처럼 그려졌다. 사회자들은 그녀가 현재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잘못된 과거를 청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성매매 되었던 여성이 죄인인가? '잘못된 과거'를 뉘우쳐야하는 사람인가? 그녀를 피해자로 생각했다면, 성매매 문제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결코 그녀를 그런 방식으로 스튜디오에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청소년 보호의 논리는 성매매 산업의 공창제 주장으로 이어졌다. 패널로 나선 이정수는 "윤락업 자체를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학교와 맞붙어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며 성매매가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를 또 한번 보여주었다. 전화를 건 시청자 역시 "성매매가 꼭 필요하다면 국가에서 정해준 장소에서 하면 되지 않겠냐"며 공창제를 거론했다. 초등학교 앞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 전개. 학교 앞 윤락가를 그냥 이사시키면 된다는 소린가?
이 날 방송은, 기존의 보수적인 청소년 보호 논리로 '윤락가'를 아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가리자는 말만큼이나,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말았다. 한국 사회는 어디에서건 쉽게 성매매 업소을 발견할 수 있을만큼 왜곡된 성의식과 여성에 대한 폭력성을 뿌리깊게 갖고 있다. 이런 문제를 간과하고 '교육환경'을 위해 '윤락가'를 초등학교 앞에서만 없애면 된다는 식의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인권을 무시했을뿐 아니라 성매매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