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고…줄이고…잠그고 역사속‘여성잔혹사’한눈에
세계성문화전을 통해 본 여성의 성
루브르박물관의 인증서가 있는 준예술품인 비너스상 복제본. 루브르박물관도 원본은 일반 공개를 하지 않고 원본을 복제한 조각상을 전시하고 있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여러개의 성기를 조각한 베난 청동조각
여러가지 모양의 성교모습을 표현한 도자기 (사진 맨위). 중국 북송 시대부터 시작되었던 전족. 성인 여성의 발 길이가 10cm 정도다.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여성의 성기를 ‘명기’로 만들어 남성의 성적 쾌감을 높이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다(사진 가운데). 서양의 춘화. 한, 중, 일 3개국의 춘화도 각국의 문화·환경적 특성에 따라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여의도 63빌딩 1층 이벤트홀에서 7월 6일까지 열리는 ‘세계성문화전’은 한국인이 수집한 컬렉션만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시회이다. 세계 60개국의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각종 성(性) 예술품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이색적인 전시회를 통해 여성의 성을 돌아본다.
성에 대한 이중적 관념이 여전히 튼실한 우리나라에서 성(性) 예술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이색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성이 삶의 일부인 것처럼 성 예술품도 예술의 일부이다. 독일에는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성 박물관까지 있을 정도다.
성을 낯부끄러운 무엇으로 생각하는 의식은 성을 억압한다. 그 결과,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더욱 왜곡된다. 이런 현상은 남성중심으로 이어져온 인류사 전반에 걸쳐 이뤄져 왔다. 영웅은 호색(好色)이라는 옛말에서 읽히는 남근주의는 성매매와 성폭력에서 남성들의 죄의식 대신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여성에게는 순결과 정절을 요구해왔다. 조선시대, 남편이 죽어도 재가하지 않는 여인에게 열녀문을 세워준 역사적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추론해보자. 오죽하면 열녀문까지 세워줄 수밖에 없었을까. 삶의 일부인 성을 억압하면 성은 왜곡되고 음지로 흘러들어 가기 마련이다. 열녀문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치부의 허울이 아니었을까.
‘정조대·전족’그 잔혹함이여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인증한 비너스상 복제품(원본을 이용한 1차 복제품이지만 한정된 수량과 인증서를 부여받는 준 예술품이다. 실제로 원본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도 복제본이라고 한다)을 마주보며 회랑처럼 꾸며진 전시장 입구를 지난다. 19세기 초, 밀로스 섬의 한 시골농부가 발견한 비너스상도 결국에는 남성들의 성적 환상이 낳은 결실이었을 뿐일 터다. 미인대회의 기준이 되었다는 비너스의 신체사이즈 비례란 임신과 출산, 육아와 가사를 요구받는 당대 그리스의 보통 여성의 비례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본격적인 전시공간이 시작되는 곳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중세 기사의 갑옷, 그리고 정조대다. 얇은 철 소재의 정조대는 여성이 배변만을 간신히 할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여성의 성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활동까지 억압하는 구조다. 몸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정조대가 무엇인가. 봉건 제후의 문장(文章)을 새겨 넣은 영예로운 방패와 창을 들고 기독교를 수호하자고 외친 십자군 기사들이 전장으로 향하며 아내의 정조를 ‘쇠팬티’로 막아 보자는 것 아니던가. 십자군전쟁은 무엇인가.
올인, 전부 아니면 전무, 승자는 패자의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전쟁이 아니던가.
처녀의 성이든, 유부녀의 성이든 마음대로 유린할 수 있는 권리마저 주어지던 아랍 여성 잔혹사의 절정 아니던가. 최소한의 도덕조차 틈입할 틈이 없는. 오죽했으면 당시 귀부인 중에는 정조대를 더럽히는 배설물 때문에 자살하는 귀부인들이 많았겠는가. 동물 이하의 취급 앞에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조차 보장받지 못한 그녀들은 죽음이 오히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족. 중국 북송 시대 여자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러나 작은 발을 지닌 여성들이 성적으로 남성의 쾌감을 높여준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억지로 발의 성장을 막았다. 20cm는 넘어야 할 성인 여성의 발이 10㎝도 되지 않도록 강제로 기형화시킨 것은 이기적인 남성들의 욕망이었다. 어린 소녀들이 신발 안에 발을 집어넣고 뼈가 휘고 부러지는 고통을 감당하며 흘렸을 그 눈물과 신음이 귓전에 스쳐 가는 듯하다.
남근숭배에는 국경이 없다
성 예술품들을 살펴보며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의 성과 남성의 성은 다르도록 조정되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역사의 퇴적층마다 다른 성 예술품이 담겨 있지만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권력으로서의 성은 남성에게는 쾌락만을, 여성에게는 생식이거나 배설구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계성문화전의 전시 품목 중 가장 많은 것이 남근숭배사상을 보여주는 조형물들이다. 남성 성기를 본떠 만든 조형물과 조각작품들이 만들어진 이유는 다산(多産)을 기원함이었을 터고 남아를 낳기 위함이었을 터다.
바닷가에서 만들어진 남근 조각은 파도의 손톱을 바짝 세워 어부의 목줄을 따는 음기의 바다를 다스리고 흉어를 막아 보자는 바람에서였을 테고, 사찰 주변에 만들어진 남근 조각은 득남과 부와 출세를 가져오는 길운의 바람에서였을 테다.
근대 이전 주류의 속성이란 비주류를 ‘마녀재판’함으로써 주류를 유지해 가는 동력을 얻는 권력 운용을 해왔다. 남근숭배사상은 곧 비주류이자 피지배자인 여성의 속성을 타락이나 악의 근원으로 왜곡시킴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한 상징인 것이다. 이브가 아담을 타락시킨 팜므파탈(악녀)로 여겨진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남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조형물도 있다. 그러나 그 수는 매우 적을 뿐더러 제작 목적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왜곡되어 있다. 물론 남녀의 성적 결합이 남성지배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근원적 에너지로 묘사되어 있는 조형물도 있다.
남녀의 성기가 결합되어 있는 맷돌 모양의 ‘시바링가’가 그것이다.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3세기에 만들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바링가’는 생명의 탄생과 우주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어쩌면 문명의 오염을 겪지 않은 인간 본래의 성이란 ‘시바링가’ 같은 모습의 성이 아닐까.
전시된 성 예술품을 통해서도 각 대륙과 국가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유럽은 난잡하고, 미국은 왜곡되어 있고, 아시아의 성은 절제돼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본능이라는 순수한 욕망을 담은 작품은 외설적이지 않다. 그 순수한 욕망이란 아마도 진정한 사랑을 향한 인간의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가 아닐까. 문의 : 02-562-3328
김상진 기자 ksj@iwoma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