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續, 英子의 全盛時代?
시위의 세상에서 데모 한번 못해본 그네들
“이 땅의 몸 파는 이들이여, 단결하라 !”
2004.4.10
▲ 박종성/ 서원대학교 정치학 교수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사창가를 없앤다고 정부가 밝혔다. 그게 좀체 가능한 일일까. 이 참에 얘기 좀 하자. 입이나 손을 팔든, 아님 다리 품 팔든 뭔가 안 팔면 입에 풀칠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러나 정색하고 몸 파는 사람들 얘길 할라치면 모두가 찜찜해 한다. 그런 이들이야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뭘 새삼 얘기하느냐는 거다.
세상 속 후미진 곳 찬찬히 들여다보자면 답답하고 아득한 데 어디 한둘이랴. 이 두세 뼘 화면에 그것을 어찌 다 줄여 놓겠는가 마는 그러나 어느 한구석 모습도 간단치가 않다. 그렇게 몸이라도 팔아야 먹고사는 사람이 백만을 훌쩍 넘어 벌써 그 배로 육박해간들, 모두가 제 살기 바쁜 나날이고 은근슬쩍 남의 눈 피해가며 혼자서만 즐기려고들 이골 나 있는 판국이다. 뭘 어찌 팔길래 그다지도 엄청난 인구가 돈 앞에 기꺼이 엎어지는지 새삼 핏대 올리진 말기로 하자. 비분강개도 그만 두자. 그래 봤자 지금 이 시간에도 수백 수천이 사고, 수만이 팔며 ‘즐거운 괴로움’에 빠져 있을 테니까.
한 동안 근엄하던 권력은 성을 사고 파는 이들 모두를 벌함으로써 시장 규모와 유통자본을 줄이려 애썼다. 쌍벌죄를 강화하고 그에 따른 공포효과의 확산을 노리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 정도 엄포로 다잡아질 나라가 아니었다. 누르면 누른 만큼 물풍선은 엉뚱하게 부풀어올랐고, 돌아서면 다시 좌판 벌리는 원색의 질주가 문화와 역사로 자리잡은 지도 이미 오래다. 그래서 즐기고 누리려는 자들의 감각과 야합할 수 있는 곳 어디든 ‘빈 방’이 준비되고 돈이 부르면 육체는 어디든 달려갈 채비를 모두 마친 대기중의 국가가 되어 버렸다.
미성년 매매춘을 뿌리뽑겠다고 당국이 나서자, 그럼 성인 매매춘은 괜찮다는 거냐는 반론이 들끓기도 했다. 곤란해진 권력이 뒷걸음칠 때 매매춘의 사슬과 배후 폭력을 끊고 그 굴레 속에 빠진 이들을 세상 속으로 끌어들이자고 시민단체가 목소리 높인 게 얼마 전 일이다. 그 틈새로 공창제가 고개를 든다. 숨어서 가슴 졸이느니 드러내 영업할 것이며 붙잡힐 것 염려하여 가없이 망보느니 이름밝혀 등록하고 나라에 세금내 떳떳이 장사하자는 논리 말이다.
얘기가 이쯤 되자 초지일관 도덕률로 중무장한 여성계와 운동단체들은 천부당 만부당, 언어도단이라 외치며 매매춘없는 그 날까지 투쟁, 투쟁 한길로 나아가자고 줄기차게 외친다. 국가가 어디 할 일이 없어 매매춘을 합법화하겠으며 지자체가 무슨 힘이 남아돌아 몸 팔고 살을 사는 사람들 걱정까지 해야겠냐는 반론이 힘을 얻는다. 때 맞춰 젊은 국회의원들 몇 사람은 현행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성매매방지법’으로 바꾸자고 법률개정안을 국회에 내놓는다.
매매 당사자들도 문제지만 파는 자 등치고, 사는 자 꼬드기는 배후의 악마들을 그야말로 ‘조져야’ 한다는 논리가 이 법의 서슬에 묻어 있다. 하지만 성 매매를 강제하는 주위의 온갖 폭력을 단죄하고 몸 파는 당사자가 창졸간에 진 빚은 채무관계일 수 없다는 법조문 속의 ‘파격’은 억울하게 당하다 참지 못해 대든 최근의 당찬 여성들 몇 명에게만 적용될 뿐 아직은 먼 나라 얘기다.
날렵하게 살펴보자면 이 나라 매매춘사의 변천은 이랬다.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바뀐 공화국만 이번이 여덟 번째다. 자고 나면 자동차유리에 꽂혀있는 마사지 광고명함하며, 이젠 아예 전봇대 허리춤에 번호까지 내걸고 호객에 열 올리는 전화데이트 하며 온 나라가 연분홍 진달래 빛으로 범벅이 되어도 정부는 정책은커녕 되도 않는 개혁만 외쳐대고 있다.
총리실의 성매매방지기획단은 앞으로 ‘집창촌 대책을 위한 특별법’ 제정까지 추진한다는 데. 글쎄, 어디까지 진도가 나가려는지. 최고권력으로부터 각 당의 대표님들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이 대목에선 한결같이 꿩 꿔먹은 소식이다. 신 행정수도가 더 장사되고 고속전철 개통이 한층 표 얻는 주제인데 무슨 매매춘까지 신경 쓴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좀 냉정해지자. 뚜쟁이 잡아 가두고 악덕 포주와 기생 폭력 모조리 잡아넣어 다시는 그 짓 못하게 치도곤을 놓았다 치자. 형형색색 치마저고리 사이로 눈물나게 번 돈, 악독한 주인엄마 전대(錢臺)에서 고스란히 찾아주었다 치자. 나오고 싶은 자 세상 속으로 빛보여 더불어 어깨동무한다 하자. 그러면 문제는 곧 해결되는 건가. 정말 그런 건가.
‘매매춘’이란 말만 나오면 자빠지도록 흥분하는 인사들이시여. 그대는 아는가. 아무리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세상 아무 데도 없는 이들이 수만이요, 무어라 따로 할 일 없는 자 수십만이 넘는다는 사실을. 꽃꽂이 배우고 미용기술 익혀도 몸에 밴 게으름과 해뜨면 졸린 몰골이 밤만 되면 여왕벌처럼 변하는 저 거짓 같은 세월을 사는 자가 이미 헤일 수 없이 많음을.
널어놓은 팬티 한 장 마를 겨를도 없이 덮쳐오는 사내들을 지천으로 받아야 하는 이 나라 창녀들의 얼얼한 아랫도리 사정을 고매한 ‘님’들께서 알아야 얼마나들 아실리오. 표 타령으로 날이 새고 표 관리로 날이 지는 이 봄날, 약 기운 퍼지지 않으면 삼십 분도 잠들지 못하는 이 나라 꽃순이 사정을 국회의원 오빠 언니들이 어디까지 헤아려줄 가슴이 있더란 말인가. 아니 새롭게 국회의원 한번 해보겠다고 길 나선 ‘저들’ 또한 속타고 애간장 녹는 이 바닥 사정을 어디까지 알아차릴 일이겠는가.
배 터지게 받아먹고도 딴청 떠는 썩은 금빼지 보다 유혹의 대가를 성실히 지불하기로는 이 나라 창녀들이 훨씬 나은 편이다. 그래서 한결 더 지치고 끈적이는 얼굴로 구린내 나는 정치권력을 거울처럼 되비치고 ‘있는 중’ 아니겠는가. 하지만 갯벌 속 낙지 인생, 아무리 맑은 파도 만들어 밀쳐내도 뻘 밖 나갈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렇게 망가진 인생, 어차피 그네들 몫이라 몰아세우지 말자. 누가 만든 창녀촌인가. 역사가 만들고 외세가 끌어들였으니 내 탓은 아니라고? 이제는 더 더럽힐 수 없는 조국강토이니 모조리 쓸어내자고? 그러는 당신들은 화장실에서 방귀 한번 뀐 적 없이 허구 헌 날 깨끗하기만 했는가. 자초했든, 꼼짝없이 당했든 그런 인생살이 수도 없이 많은 데 그들을 ‘걸레’라 욕하며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비겁의 전형이다. 게다가 여성부장관 이하 이 땅의 윗전들은 통과된 법이 실효를 거두면 그들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까지 내다본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 그대로 죽으라고?
머리 좋고 말 잘하시는 17대 국회의원 후보님 들이시여. 야시장 구석구석, 터미널 북새통처럼 사람 모이는 데만 돌아다닐 생각 마시고 이제라도 나랏일 속속들이 고민해볼 생각이라면 사창가 뒷골목부터 샅샅이 훑어볼 일이다. 그리하여 낯뜨겁다 눈 돌리지 말고 이 나라 포주들과 이 땅의 창녀들과 밤 새워 입씨름도 해 볼일이다.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면 하는 수 없다.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 예지원이 끌탕하듯, ‘행주로 요강을 닦더라도’ 그들이 그들 대표를 뽑아 국회로 나가는 수밖에. 후보 등록은 진작에 끝난 얘기지만 18대 국회부터라도 해 볼 일이다. 여느 후보보다 깨끗하고 누구보다 할 말 많을 이 땅의 창녀들이 왜 후보를 못 내겠는가. 그리하여 철 천지 한 맺히고 얼룩진 인생사 억울함을 대변할밖에. 이제는 사라진 저 옛날 양동의 핍박받던 혼백들과 이 밤도 휘황찬란한 용주골의 눈물샘까지 모두 합쳐.
온 나라 구석구석 ‘태극기 휘날려도’ 영자의 방에서 펄럭이는 건 오직 때에 찌든 커튼 한 장뿐이다. 얼룩진 커튼이야 빨기라도 하련만, 갈가리 찢겨진 영혼의 조각들은 어느 한군데 기워 이을 데도 없다. 누구나 억울하면 모여서 피켓 들고 흩어져 소리치는 시위 만능의 세상이지만 그 흔한 데모 한번 못해보는 그네들이다. 그들은 세상 향해 말도 못하는가. 그렇담, 지하의 마르크스가 양에 안차 하더라도 길은 이제 더 없다.
“이 땅의 몸 파는 이들이여, 단결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