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부터 양성평등 실천을
성차별 없앨 프로그램 개발 시급
범국민교육연대ㆍ시민의신문 공동기획 ‘교육을 바꿔 사회를 바꾸자’ ④ 양성평등 교육
작성날짜: 2004/05/24
정용인기자
범국민교육연대ㆍ시민의신문 공동기획 ‘교육을 바꿔 사회를 바꾸자’
17대총선 결과는 정치권의 변화ㆍ개혁도 요구하고 있지만 또 한편, 그동안 교육민주화투쟁에 집중해왔던 교육개혁운동 과제의 재점검도 필요하다. 물론 사립학교법 개정이나 학벌주의 극복, 교장선출제도 등 여전히 남아있는 교육현안들이 있지만 실제로 학교 교실에서 진행되는 교육내용, 즉 무엇을 가르치는가에 대한 검토와 각 분야 시민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시민의신문은 범국민교육연대와 공동으로 그렇다면 대안적인 교육과정은 어떻게 만들어져야하는지, 분야별로 8회에 걸쳐 검토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교육을 바꿔 사회를 바꾸자’
기획연재 순서
1. 현장교사ㆍ시민사회가 전문가 관료독점 교육과정을 바꾸자
2. 노동ㆍ계급 교육
3. 정치ㆍ참여민주주의 교육
4. 양성평등 교육
5. 인권ㆍ평화 교육
6. 환경ㆍ생태 교육
7. 문화민주주의 교육
8. 정리좌담
“‘수업시간 질문에 대답을 주로 못해서 앞으로 불러나갔다. (그러자 교사가) 학생의 옆으로 다가가 브레지어 끈을 튕겼다. 저항하니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줄다리기를 하는데 뒤에서 이렇게 잡는 것이라며 끌어안았다’, ‘이름표를 달지 않은 학생을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렀다.…”
바지를 입어라?
지난해 인천시 교육청이 교육부를 통해 국회에 제출한 학교현장의 성폭력 실태 사례 중 일부다. 언급된 사례는 주로 교사들이 학생, 특히 여학생에게 가하는 성폭력 사례지만 학생과 학생 사이, 또 사회인이 학생에게 가하는 성폭력실태는 심각하다. 언급된 것과 같은 명백한 ‘범죄적 폭력’사례는 아니지만 일상 속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성차별현상과 문화는 아직도 한국사회에 만연해있다. 시민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백인위원회’가 공개한 시민사회단체 가해실태의 충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교육ㆍ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어린시절부터 공식ㆍ비공식적으로 받아온 성차별적 사회문화를 일차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굳어져온 성차별적 문화와 관행이 학교현장에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고, 또 성차별과 성적 불평등 개선, 양성평등의 확립을 반영하는 기제가 교육과정에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간 여러 차례의 문제제기를 통해 많이 개선되었으나 성차별적 교과서 내용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김대유 교사(서문여중)는 “교과서의 저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도 10% 미만에 불과할 뿐 아니라 그 내용에서도 천편일률적인 전통적인 남녀상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의 ‘슬기로운 생활’의 삽화를 보면 실험을 하는 애는 남자인 반면, 여자아이는 옆에서 지켜보는 삽화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중ㆍ고등학교에서 남녀공학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학교교육과정에서 성차별 극복방안도 고민되고 있지만 대안 마련이 결코 쉽지는 않다. 조수경 교사(청운중ㆍ전교조 서울지부 여성위원장)는 “실제 지난해 여성부를 통해 여학생 ‘치마’교복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져 교복으로 바지도 입을 수 있도록 교육부에 통보된 적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여학생들 스스로 조끼 윗도리와 바지가 부자연스러워 입지 않는다는 것. 그는 “그냥 ‘바지를 입어라’고 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디자인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학생도 축구한다
남녀공학 학교에서 운동장을 남학생이 ‘독점’하는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뤄진다.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남학생들은 축구 등을 하며 뛰어놀지만 여학생들은 그냥 한 구석에서 모여 수다를 떠는 경우처럼 체육과 운동에서도 성적 불평등이 나타난다는 것. 한 학교의 경우 학생회 회의를 통해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사용할 시간을 요일별로 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월ㆍ수ㆍ금을 여학생이 사용한다면, 화ㆍ목ㆍ금을 남학생이 사용하는 식이다. 또 항상 남학생이 먼저 기재되고 여학생이 나중에 기재되는 출석부의 경우도 문제가 제기되어 해를 바꿔 순서를 바꾸는 등의 양성평등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는 “양성평등에 관한 한 어렸을 때부터 올바른 의식이 자리잡기 위한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초등학교 여학생의 경우 남학생보다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키도 크고 몸무게가 더 나가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데, 아이들의 발달특성에 맞는 양성평등 교육이 필요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과 매뉴얼이 개발되고 실천될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어 여학생도 축구를 좋아할 수도 있는데 기존의 전통적 고정적 성역할이 아니라 보다 평등하고 대안적인 남녀관계의 모색이 필요하며, 교사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함께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성적으로 불평등한 제도ㆍ관행의 개선 필요성도 지적된다. 전교조는 지난 11일 전국 초ㆍ중ㆍ고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지난 4월 진행한 생리실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그 결과 생리기간 중 많은 학생들이 극심한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냥 참는 경우가 많으며, 진통제를 복용하는 경우도 초등학생 26%, 중학생 42%, 고등학생 63%나 되는데도 무관심ㆍ무대응으로 일관해왔으며 생리통으로 등교하지 못하더라도 ‘개인적 사유로 인한 결석’으로 처리해왔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일반 직장인의 경우 생리휴가가 법률로 보장되고 있는 것과 같이 여학생의 생리로 인한 고통도 보호받아야 할 것”이라며 “생리통으로 인한 결석을 공결로 처리하는 등 여학생의 생리문제를 인권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일부 교사들에 의해 실시되고 있는 성평등 교육은 대부분 재량수업이나 CA수업의 양성평등반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 전교조 특별위원회인 여성위원회 산하의 양성평등교육분과에서 집중적으로 고민이 이뤄지고 있고, 참교육실천보고대회 등을 통해 실천사례를 모으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조 교사는 “전교조도 공교육 개편안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공교육의 이념을 살리면서도 양성평등교육을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풀뿌리 차원 결합 관건
그러나 현행 교육제도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조교사는 “실제 오랫동안 양성평등 문제를 고민해온 여성단체 등이 효과적 교육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을 것이고 같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단위학교에서 현행 제도 상 외부강사를 초빙하더라도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은 기껏 몇 만원에 불과해 바쁜 시간을 쪼개 봉사를 요구할 수도 없어 결국 학교 보건교사가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신연숙 여성의전화연합 인권국장은 “현재 지부차원에서 ‘성교육’을 주제로 학교교육을 나가는 경우는 많지만 실제 양성평등주의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실제 여성의전화연합의 주된 활동이 가정폭력과 성폭력 상담과 피해구제가 주된 부분이지만 양성평등적 시각은 제도적으로 의식을 바꿔내는 교육없이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며 학교교육과정에서 양성평등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실제 여성의전화연합이 지난해 실시한 성매매 의식조사의 경우, 양성평등의식이 높은 군집은 성매매를 94%가 반대하는 반면, 낮은 그룹에서는 60%가 성매매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
그는 “사실 교사들도 양성평등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라며 “양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여성에게 고통을 주는지 알아야하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작 문제는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당국의 고답적 태도다. 신 국장은 “5월 ‘가정폭력이 없는 달’을 맞아 학교나 제도적으로 양성평등ㆍ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교육부에 했으나 교육부 쪽에서는 ‘교육부와 가정폭력이 어떤 관련이 있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도 성교육 관련 예산은 교육부가 아니라 지자체에서 특강형식으로 마련하는 형식”이라며 “시민사회와 학교교육이 풀뿌리 차원에서 결합되기 위해선 지자체들이 양성평등과 인권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ngo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