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인정 안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소외된 약자의 인권배려가 아쉽다
작성날짜: 2004/07/20
박용달기자
이 세상에서 고단하고 지칠 대로 지친 인간의 삶들, 비록 이 땅에서는 잘못되고 비뚤어진 생을 산 인생들 이라 할지라도 저 세상에 가서만큼은 차별과 편견없는 세상을 그들과 우리의 마음속에서 만이라도 만들며 살아 갈 수는 없을까?
모두들 2002년 1월 군산 시 개복 동 성 매매업소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성매매 여성 13명이 소방시설이라곤 전혀없는 골방에서 업주에 의해 도망 못가게 철저히 감금된 상태에서 꼼짝없이 처참히 불에 타죽은 사건 말이다.
그런데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전례와는 다르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5월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7부(신성기 부장판사)는 군산시 개복동 화 재로 사망한 성매매 여성 13명의 유족 24명이 성매매업주 이모 씨 부부와 감시책 박모 씨, 그리고 국가와 전라북도, 군산시 당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서 이씨부부와 박씨는, 원고들에게 1인당 1천 만원에서 1억 9천 만원씩, 총 25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설명: 2002년 1월 군산개복동 사건당시 대책위가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한국여성단체연합)
재판부는 이씨 등이 소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출입문을 자물쇠로 봉쇄해 성매매 여성들이 화재당시 탈출하지 못하게 막은 과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불법 성매매행위 및 감금사실, 그리고 소방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은 사실 을 알고도 이를 방치한 만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도 배상책임이 있다는 원고 측 주장을 기각해 버린데 있다.
군산경찰서 경찰관들이 뇌물을 받고 성매매 업소단속을 소홀히 한 것을 재판부도 인정했다. 하지만, 먼저 발생한 2000년 대명동 화재사건 이후 경찰이 성매매 여성을 상대로 심층 면담할 때에 감금행위 신고가 없었 뿐만 아니라, 화재예방은 그 자체가 경찰의 고유업무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소방법 시행령 개정 전에 영업허가를 받은 업소인 만큼, 소방단속을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 나갔다.
결국, 화재참사와 이들의 공무행위와의 인과관계를 극구 인정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중과실 치사 및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 혐위로 성매매 업주 이씨 등이 현재 수감 중인 상태이고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으면 억울한 이 사건의 원고들이 실질적으로 배상받기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릴 판이다.
한편, 같은 지역 똑같은 경우의 2000년 9월 대명동 사건의 재판부 판결문을 보자. "경찰 공무원들으로서는 위와 같은 감금 및 윤락행위를 제지하고 업주들을 체포하는 등으로, 경찰 직무집행법, 형사소송법등 관련법령의 규정에 따라, 조치를 취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 업주들로부터 뇌물을 수수하며, 위와 같은 행위를 적극적으로 방치한 것은,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시 한 바 있다.
경찰공무원들의 직무상 의무위반 행위로 인하여, 망인들이 위 업소에 감금되어 윤락을 강요받게 된데 따른,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지급의무가 있다고 판결 한 것이다.
윤락여성의 인권보호를 외면한 경찰의 직무유기에 대해 국가 배상책임이 처음으로 선고됐던 이 판결로 인해,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는 전국의 수많은 윤락여성들 의 인권침해로 인한, 국가 배상소송의 확실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 놓은 바 있다.
모든 생명은 하나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생명체에게 한 없는 자비를 배풀며 살아가야 한다. 또한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려면 개인의 절대적 비대상성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즉, 나와 너, 여자와 남자는 모두 이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런고로 사물처럼 취급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고귀한 존재들이다.
지금까지의 가부장적 사회와 문화 속에서 여자는, 항상 남자보다 약한 자 내지는 약화된 자로서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더구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유구한 전통의 성매매 여성의 사회적 위상과 관련하여,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이념 안에 담긴 남녀의 성적 대치 내지는 균형은, 전혀 실현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사회는 뿌리 깊은 암초에 걸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적으로 남자의 존재는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지만, 권력의 소유와 밀접하게 결 합되어 있다. 위계질서는 사회와 가정에서, 교회와 기업에서 빈부로 수직적으로 고 착된 질서를 만들어 내어 왔다.
오늘날 봉사하는 권력이란, 약자들에 대한 진정한 시중들기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 니다.
봉사의 삶은 오히려 인간, 민족, 문화, 이 땅, 국가질서에의 그들 강자의 우월성을 통한 책임감에서 나온다.
불법인신매매, 감금, 윤락 강요를 하는 사창가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경찰을 투입하여, 포주를 체포하고 피해여성들을 구출할 의무를 촉구한 법원의 판결이 있었건만, 또 다시 이를 되돌리는 사회가, 우리네의 숨길 수 없는 현재의 모습이다.
헌법 제9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 규정에 위반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헌법 제8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할 의무를 진다.
또한, 헌법 제26조에 의하여 보장된 손해배상 청구권을 법률로써 제한할 때는,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 등을 위한 최소한으로 그치도록 해야 한다. 손해배상 청구권을 최대한도로 보장하기위해, 어떠한 이유로도 헌법 26조 애 보장된 손해배상 청구권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정도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손해배상의 제한은 국민평등의 원칙에 적합하게 모든 피해국민에게 평등하게 제한하여야 하며, 결국 헌법 제9조 평등원칙에 반하지 않는 합리적인 이유와 범위 안에서만 할 수 있다는 취지다.
결론적으로 이 제한의 범주를 넘은 손해배상 청구권의 부인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자체의 박탈이므로, 어떠한 이유로도 헌법의 규정상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당시 참사 현장건물의 쇠창살은 밖에서도 보였고, 이들 여성들의 감금사실은 지역주민들도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당국이 그곳의 열악한 소방시설을 몰랐다고 생각할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소송진행 중 성매매 방지를 위한 유엔 엔지오(UN NGO) 국제인권단체 회원들이 이 재판을 방청하고는 경찰이 인간을 감금시켜 착취하는 극악한 인권유린 행위를 아무렇치 않게 눈감아 주는 경우는,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면서 유엔에 이 일을 알리겠다고 했다 한다.
한국 남성이 만들어 내는 현실 및 지식인 담론이 하층여성에 대한 아주 저급한 수준 혹은, 적대적 수준은 아닐까? 사회적 약자를 여전히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강자의 욕망이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자기들의 몫을 다하고 있다는 착각과 환상 속에 머물고 있는, 단단한 기득권 계층집단은 아닐까?
모든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 약자에 대해 말을 할때 중요한 것이, 알량한 그들의 지식이라기보다 그들을 향한 진지한 자세가 아닐까.
행정을 맡고 있는 공직자들의 책임성 있는 가치기준의 성립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윤리적 차원의 행정권한과 행정책임의 조화를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법조인들의 성의식과 실제사건에 맞닥뜨렸을 때의 대처행태 사이에 괴리를, 확연히 드러낸 하나의 판결이라 가볍게 보아넘길 수도 있을지 몰라도, 일부 법조인들의 양성평등사상과 현세적 기본인권 소양의 한 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니 죽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말할 수 없었다. 억울하게 운명을 달리한 그들의 유족들도, 그들이 살아있을 때나 지금이나, 떳떳하게 말할 형편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사회가,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사회다.
힘있는 이들이 보면 아무 일없는 사회였지만, 약자의 입자에서 보면 모순투성이의 분위기를 방조하거나 묵인한 공직자들, 그러한 사회를 조성토록 한 국가가 있었다.소외된 이들의 인권도, 성으로부터의 차별 없는 인권도, 확실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행복에 가까운 우리네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다. 숨진 그 여성들의 넋을 달래고 위로하기 전에, 아직은 살아 있는 이 세상의 나를 위해....
국민의 안전에 대한 철저하고도 보다 적극적인 국가책임이 담긴, 그간의 재판부 불신과 오해를 만회 할만한, 소외된 약자들의 인권의 새벽을 여는, 명쾌하고도 확실한 항소심 판단을 기다리게 된다.
박용달 (행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