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사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아파트촌에 자리잡은 ‘다시 함께 쉼터’. 성매매 피해여성 수용시설인 35평짜리 아파트에는 10명의 여성들이 외부기관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외출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피부관리 일을 배우고 있는 정모(24)씨는 “미래에 대한 보장은 없지만 일단 지옥 같았던 감금 생활에서 벗어난 것 만으로도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기뻐했다.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다른 여성은 “빚을 받아내겠다며 업주들이 위치추적까지 하는 바람에 휴대폰도 사용 못하고, 일반전화기에도 발신번호 삭제 장치까지 달았다”고 말했다.

전문가 심리상담과 의료ㆍ법률지원, 직업훈련 등이 제공되고 있는 이 시설 생활은 탈 성매매 여성들에게 사회 재정착을 위한 임시 터미널에 불과하다.

권순영(39) 소장은 “선진국에서도 성매매 여성이 혼자 힘으로 다시 서기까지는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이 걸리지만 우리의 경우 6개월이나 1년이면 떠나야 한다”며 “1년이면 선불금을 둘러싼 법적 분쟁 해결이나 중ㆍ고교 검정고시 준비에도 벅찬 시간”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이곳에 들어온 2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아파트 주민들이 집 값 떨어지고 아이들 교육에도 안 좋다’고 항의하는 통에 고개도 못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두 차례나 이 곳을 찾았다는 김모(25)씨는 “사회적 여건과 환경이 우리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다른 일을 찾아 나가봤지만 막막하니까 다시 돌아오게 되고, 그런 속에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이들처럼 ‘용기 있게’ 성매매 생활을 떨치고 자활 교육을 받는 여성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피해 여성들은 홍보 부족과 정보 차단 등으로 정부가 3,000만원 이내에서 창업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재활대책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대책이라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성매매 여성들의 구조에서 자활까지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했지만 아직 체계적인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시보호시설을 나온 여성들에게 실적적으로 ‘먹고 살 방법’을 마련해줘야 할 자립지원센터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성매매 종사 여성들은 33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부가 마련한 38개 수용시설의 정원은 고작 750명에 불과하다.

업주들의 협박 때문에 익명을 요구한 한국여성단체연합 한 관계자는 “업주들의 반발은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단호한 단속을 통해 성매매 산업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고 직업여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힘과 자원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지원 변호사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성매매가 활개치는 나라가 없는 만큼 이번 기회에 업주에 대한 가중처벌을 통해 성매매 시장 규모를 대폭 줄이는 작업이 계속돼야 한다”며 “업주들도 여성들을 시위현장에 내몰 것이 아니라 업종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금형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성매매가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의 확산이 중요하다”며 “성문화ㆍ접대문화의 절대 수요자인 남성들이 성매매 여성이 내 부인, 내 여동생, 내 자식이란 인식을 갖고 잘못된 문화를 바꿔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호섭 기자 drea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