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인 나, 성매매 양지화를 바란다

“아줌마인 나, 성매매 양지화를 바란다”

[한겨레] [기고] 유럽거주 한국 중년여성이 성매매양성화를 바라는 이유
9월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이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집회,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부와 여성단체에서는 성매매불법화와 처벌에 이어 탈성매매 여성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지만, 사회 일부에서는 이 법안의 실효성을 의심하며 자유시장경제체제에 어긋나는 정책집행으로 부작용만 부를 것이라며 반대를 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 논의와 관련해 한 필자의 기고가 <인터넷한겨레>에 도착했다. 필자는 우리 사회와 다른 기준으로 성매매 문제를 다뤄온 유럽사회에서 오래 살아온 한국계 유럽인이다. 필자의 부탁에 따라 익명으로, 기고를 소개한다.(편집자)

지구상에 손쉬운 피임방법이 활용되기 시작한지 반세기가 지났다. 이제는 성교와 임신이 자동적으로 연관지어지지 않으며, 섹스는 인간에게 주어진 쾌락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성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이 이제는 부도덕한 일이 아니다. 양갓집 규수들과 부인네들과 대화해 보아도 그렇고 그녀들이 읽는 잡지를 보아도 그렇다. 이제는 성의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기혼남녀들이나 애인이 있는 사람들은 일정한 파트너와 섹스를 한다. 인생의 동반자가 없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섹스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이때는 장래에 대한 약속이 섹스의 바탕이 되는 게 아니라 호감에 의해서, 분위기에 취해서, 또는 서로 간의 필요에 의해서 섹스가 이루어진다. 이때 선물이 오가기도 하고, 지켜지거나 지켜지지 않을 어떤 약속이 오갈 수도 있다. (사업적인 계산이 포함되는 뇌물성, 상납성 섹스가 존재할 수도 있는데, 만약에 두 성인남녀가 자발적으로 한 행위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본인들 이외에는 아무도 이를 통제할 수가 없다.

본인에게조차도 이것이 단순한 호감인지 사업적 계산이 들어간 제스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경우도 있을 것이다. ) 물론 섹스 자체만으로 서로 충분히 공평하게 주고 받았다고 믿음으로써 그 외의 보상을 경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확실하게 돈을 주고 받는 것이 허황된 약속을 주고 받는 것보다 더 공평하다고 믿어서 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반자 있는 기혼자가 다른 섹스파트너 찾는 것은 ’사기죄’
섹스의 즐거움을 인정하는 것과 정해진 파트너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인생의 동반자가 있는 사람이 그 동반자 몰래 다른 섹스파트너를 찾아다니는 것은 사기에 속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미혼의 성인 남녀가 만나서 섹스를 즐김에 있어서 위에 열거한 방법 중에 어떤 형태를 선택하던, 사회에서 어떤 게 더 옳고 어떤 게 더 그르다고 결정할 도덕적 잣대가 전혀 없다.

이 세상에 성인 미혼남녀가 존재하는 한, 이런 이유에서 나에게는 성매매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근거가 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기필코 듣게되는 말이 있다. '너는 네 딸이 그런 일을 하면 좋겠느냐?' 아마도 성노동자들이나 업주들, 그리고 단골손님들도 싫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이 직업이 비천해서가 아니라 이 직업환경이 열악해서이다.

성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단히 낮다. 그런 이유에서 내 딸 뿐 아니라 어떤 여성들이라도 어려서의 꿈이 성노동자였던 싶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의 성노동자들도 막다른 골목에서 시작하였을 것이다.

성매매의 직업적 특성은 ’비천함’보다 ’열악함’이 문제
그러나 누구나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고 해서 이 직업이 부도덕한 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에는 어떤 논리도 성립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부도덕한 직업이란 남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마약사범, 도둑, 사기꾼들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기 때문에 몸을 밑천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다고 남의 등을 쳐먹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죄송스러울 만큼 정상적인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또한 성노동자만 남성의 성욕을 이용해서 돈 버는 것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여성의 육체를 밑천으로 남성의 눈을 즐겁게 하는 직업이 무수히 많다. 여성성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성노동자에게서만 요구하면 불공평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성노동자들의 숫자가 지금보다는 현저히 줄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그녀들의 안위를 위해서 그렇다. 이 직업은 육체적으로 고되고 위험한 직업이다. 게다가 어디가서 떳떳하게 직업으로 내세울 수도 없을 만큼 사회적 위상도 낮을뿐더러 젊은 한 때만 일할 수 있으므로 노후보장도 없는, 즉 여러 모로 보아 수지가 맞지 않는 직업군에 속한다. 본인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고 그런 이유에서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전업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성노동자들의 숫자는 법으로 막는다고 해서 줄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옛날에 거지들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서 사라진 뒤안길에는 차마 말 못할 인권의 유린이 있었다. 지금은 우리네 형편이 피면서 살기가 좋아지니까 거지의 수가 점차로 줄어든 것이지 그때 강력하게 금지해서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다른 길이 있는데 자발적으로 구걸을 선택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여성 복지정책 높아져야 성매매여성 줄어든다

성노동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전반적인 생활이 안정되어야만 새로 이 길로 들어서는 여성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이미 성매매를 하고 있는 여성들의 숫자도 줄어든다. 그러나 국가가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전업사업에 투자한다고 해도 그들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성매매를 포기하지 않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붇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잘 살고 돈을 복지정책에 더 많이 쓰는 여러 선진국에서도 없애고 싶지만 없애지 못한 것이 매춘이다. 국가가 눈에 보이는 탈성매매 여성의 숫자에 집중하는 동안 음성적으로 스며드는 새로운 성매매 여성의 숫자는 통제할 길이 없다.

성노동자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물론 전반적인 여성복지정책이다. 그와 동시에 현재의 성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전업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전업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토양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성노동이라는 직업이 사회의 악이라는 인식과 범죄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서 하나의 온전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토양이다. 조금만 형편이 핀다면 좀 더 나은 직종을 찾아가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진 공통된 욕구이다. 나는 성노동자들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회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좀 더 조건이 좋은 직업을 택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공장에서 노동하던 사람이 돈이 모이면 가게를 내고 싶어하듯. 그러기 위해선 성노동자들이 합법적인 환경에서 정직한 업주들과 공생하여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탈성매매 주체는 성매매여성 자신이어야
나는 탈성매매의 주체가 국가나 사회의 한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 떠밀려 할 수 없이 전업을 하는 게 아니라, 옛 직업을 계속할 수도 있고 전업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유의지에 의해서 내린 결정만이 장기적으로 효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행여 이들의 인권이 존중된다면 이 직업이 더욱 성행할까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고한다. 이들의 인권이 존중된다고 해서 이들에게 남이 갖지 않은 특혜가 주어진다는 망상, 그럼으로 인해서 이 직업이 상당히 매력있는, 모든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부상하리라는 망상은 버리시라. 이들의 인권은 이들이 어차피 누렸어야하 는 인간의 기본권이며 여태까지 부당하게 박탈되었던 것 뿐이다. 100년 후의 사회는 어떨지 몰라도 현재의 우리 사회에는 직업의 귀천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약자의 인권이 조금 정상화되었다고 해서 그 직업이 갑자기 각광받는 직업으로 뜨지는 않는다.

이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은 이들을 범죄의 마수에서 구하는 일이다. 나는 지금 성매매업계가 전부 범죄의 소굴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성매매라는 직종은 음지화되어 있다는 이유에서 이 세상 어디서나 범죄의 손을 타기가 쉬운 분야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성매매업계에는 국제적인 인신매매단이 판을 치고 있다. 그 이유는 성매매가 어느 사회에서나 음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성노동자들에게 항상 약점이 있게 마련이므로, 범죄조직에서 이를 이용하기가 손쉽다. 1920년 대에 미국의 금주법이 미국의 마피아 조직을 살찌워준 것을 보라.

현실에 맞지 않는 법은 국민의 약점이 늘어나는 것을 조장하여 국민을 범죄조직의 협박에 노출시킨다. 어느 나라에서나 불법체류자의 노동조건이 불법적으로 열악한 것을 보라.

성매매 음성화가 포주-인신매매 등 착취구조 낳아
성노동자들의 입장을 떳떳하게 만들어준다면 이들이 일부 악덕포주들이나 인신매매단의 횡포에 굽힐 이유가 없어진다. 신고하면 본인도 범법자의 취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성노동자들은 불법에 대항하여 싸울 힘이 없다. 그러나 성노동자들이 법을 어긴 자라는 약점에서 해방됨으로써 이들의 인권이 법적으로 보장된다면, 이들은 자진해서 악덕포주를 고발하고 성매매업계의 범죄를 뿌리뽑을 것이다.

성매매의 도덕성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어떻던 간에,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성노동자의 숫자를 실지로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이다.

성노동자들의 인권을 법으로 보장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길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회, 성매매 근절의 의지가 강한 사회라도 이를 대신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성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시위를 하고, 시민단체와 협의를 하고, 정부와 합의를 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의견과는 달리 나는 이를 여성부에서 성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방법론에 있어서는 나와 다르지만 여성부의 관심을 나는 개인적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성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로 이익투쟁해야
성노동자의 인권이 신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나는 각 관계자 여러분께 다음과 같은 부탁을 드리고 싶다.

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미래와 이익을 위해 철저히 자신들의 목소리로서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부를 비롯한 대다수의 국민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성노동자들은 제 앞가림을 할 능력이 없어서 남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이 이런 의혹을 계속해서 가질 때에 이들은 성노동자들을 동등한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못하게 되고, 성노동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기 보다는 그들을 대신하여 결정을 하려고 들 것이다.

여성부는 대화함에 있어서 성노동자들의 자질과 진실성을 인정하여야 한다. 현장의 주인인 이들만이 자신들에게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남의 사주를 받아서가 아니가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사실을 믿어주어야 한다. 여성부는 정책의 실현을 위해서 성노동자들과 권력다툼을 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여성부는 자부의 명예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녕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실천해 보여야 한다.

여성부는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존재함을 보여줘야
국민은 여성부가 얼마나 깨끗한 사회를 만들었는가 하는, 눈에 보이는 업적을 기대할 게 아니라, 얼마나 여성부가 여성의 인권을 중요시했는가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더욱 크게 쳐줘야 한다.

업주들, 유흥업계에 기반을 둔 상인들, 성매매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남성단체 등 다른 이익단체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주장이 성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다른 이익단체들이 성노동 여성들의 치마폭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이 여성들을 꼬드긴다는 인상을 국민이 받는다면 이는 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있어서 극약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성노동자들의 지위향상과 안정된 생활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고, 성노동자들이 여성부와 합의하여 어떤 길이던 더 나은 길로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면 축하는 못해줄지언정 어리석다느니 배신이라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탈성매매 여성의 성공적 직업전환이 전체 성노동자 인권신장의 열쇠
정부의 도움으로 전업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여성분들에게는 함께 투쟁하던 동료를 배신했다는 죄의식을 절대로 가지지 말도록 나는 당부하고 싶다. 전업의 기회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옛 직업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원하는 시기에 직업을 바꿀 권리가 있다. 성노동자 개개인이 잘 되어야 성노동자들의 인권도 신장된다. 나 하나가 잘 된다면 이것이 본보기가 되어 앞으로 다른 동료들에게도 꼭 같은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는 사명감을 갖기 바란다.

지극히 평범한 재능을 타고난 나는, 고아원에서 만나서 자수성가한 부모 밑에서 학업의 행운을 얻어 편안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다른 환경에서 더 잘 나갔을 수도 있지만 또 불우한 환경에서라면 성노동의 길을 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다. 여성부도 그렇고 성노동자들도 그렇고 대화와 신뢰를 통하여 역사적인 이 기회를 잘 활용하기를 기원한다. 단 한 치의 발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