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운 좋았지...여기 불나면 다 타죽어요

"운 좋았지...여기 불나면 다 타죽어요"
[오마이뉴스 2005-03-30 10:42]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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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화재사건으로 4명의 여성이 사망하자 미아리 일대는 지금 '휴업'에 들어갔다. 30일 새벽 3시 경 미아리.
ⓒ2005 박상규

30일 새벽 3시. '텍사스촌'이라 불리는 서울 미아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에는 흡사 아기 울음소리를 연상케 하는 고양이의 울음만 들려올 뿐이다.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성매매업소의 불은 모두 꺼져 있고 짙은 색깔의 커튼이 쳐져 있다. 길게 이어진 골목길은 랜턴 없이는 걸을 수 없을 만큼 캄캄하다.

미아리는 현재 애도기간 '휴업중'

여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사건을 겪은 지 3일이 지난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는 지금 '휴업'중이다. 굳게 닫힌 업소 유리마다 '임시휴업'을 알리는 종이가 붙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2005년 3월 27일 업소 화재로 인하여 저희 업소들은 2005년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고인들의 애도기간으로 임시휴업을 합니다. -운영위원회, 부녀위원회"

말 그대로 잠시 문을 닫는 '휴업'일뿐 '폐업'은 아니다. 당당하게 29일까지라는 기간도 못박아 두었다. 30일 밤부터 영업을 하겠다는 의미다. 영업을 중단하고 집결지 내에 있는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한 업주는 "애도기간이 끝나는 30일 밤부터 영업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업주는 "'정상영업'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화재사건을 겪은 27일 이후 성매매 집결지로 들어가는 모든 입구는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미줄처럼 연결된 골목길에도 2인 1조로 구성된 전경들이 랜턴을 들고 순찰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출입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성매매 집결지 골목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나갈 때까지 경찰의 '추적'을 받아야 한다.

화재 현장에 아직도 붙어 있는 '현금 7만원, 카드 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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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화재가 일어난 현장. '현금 7만원, 카드 8만원'이라 적힌 종이가 최근까지 성매매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2005 박상규

이곳을 찾는 남성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은 아니다. 가끔 술에 취한 남성들이 불꺼진 업소를 기웃거렸다. 이들은 단속을 하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에는 사람보다 고양이들이 더 많이 눈에 띤다.

여성 4명이 숨진 화재현장에는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고, 경찰 두 명이 상주하며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검게 그을린 외벽과 깨진 창문도 그대로다. 깨지지 않고 남아있는 건물 유리문에는 '현금 7만원, 카드 8만원'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이후에도 화재사건이 나기 직전까지 영업을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화재가 난 곳은 그나마 소방차와 구급차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서 그 정도 희생으로 그쳤다"고 입을 모았다. 모두 142개의 성매매 업소가 밀집돼 있는 미아리 집결지에서 작은 소형 차량이라도 통과할 수 있는 골목은 많지 않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꽉 찰 듯한 좁은 골목을 따라 성매매업소가 자리잡은 곳이 미아리다. 구청 쪽이 '미관'을 이유로 설치했다는 외벽은 오히려 성매매 집결지를 포위하는 형상이다. 뿐만 아니라 외벽 안쪽 좁은 골목길에는 포장마차들이 성매매업소와 마주보며 길게 늘어서 있다. 행정기관이 일부러 보기 싫은 것들을 외벽 안쪽에 모아둔 것 같다.

"여기 불나면 다 타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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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일대는 이렇게 좁은 골목길로 거미줄 처럼 연결돼 있다. 한 여성은 "불나면 다 타죽는다"고 말했다.
ⓒ2005 박상규

짙은 커튼 사이로 옅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한 업소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화장기 없는 두 여성이 문을 열어줬다. 한 여성은 "아저씨 오늘 같은 날은 좀 참지? 단속도 그렇지만, 사람이 죽었는데...아저씨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이들 여성이 말하는 화재에 대한 말은 무시무시했다.

"같은 동료로서 죽은 여성들 정말 안타깝죠. 솔직히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거죠. 아저씨도 눈이 있으니까 한번 보세요. 여기 불나면 이 좁은 골목길로 소방차가 들어오겠어요, 아니면 구급차가 들어오겠어요? 나 태우고 도망갈 티코도 못 들어오게 생겼구만...여기 골목에서 한 집 불나면 금방 옮겨 붙어 다 타죽어요"

주변 단속 동태를 조심스럽게 살피던 한 업주는 "성매매특별법 시행이후 일하는 여성 3분이 2가 줄고, 남자 손님은 5분의 4가 줄어 먹고살기 힘들다"며 "이번에는 사람이 4명이나 죽어 단속이 좀 오래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업주는 "이런 일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니지만 기간이 문제지 끝내 우리가 이겼다"고 '필승론'을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아리의 애도기간은 29일 밤으로 끝났고 30일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업주의 '필승론'이 재현될 지 지켜볼 일이다.

/박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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