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매자 재범방지 교육장 '존스쿨'에 가다.

기사입력 2008-10-31 15:05

“기러기 아빠라” “접대 위해서”…딱 걸린 남자들
성구매자 재범방지 교육장 ‘존스쿨’에 가다

[한겨레] [뉴스 쏙]

“기러기 아빠라” “접대 상대 위해서”

안마·집창촌파…외국서 걸린 원정파

세대도 핑계도 다양한 교육생들

개교 3년 만에 4만여명 동문수학

졸업땐 항상 “다시 만나지 말자” 합창

재범률 3.4%…버릇 못고친 남성들도

세상 수많은 학교 가운데 유독 필기가 허용 안 되는 학교가 있다. 졸거나 휴대폰을 끄지 않아 경고를 여러 차례 받으면 퇴학당한다. 퇴학생은 경찰이나 검사에게 재입학 여부를 심사받아야 한다. 지각이나 조퇴를 하면? 바로 재판에 회부된다. 그야말로 ‘철의 교칙’이다. 이 학교에서 동문수학한 졸업생은 무려 4만여명. 그러나 동창회는커녕 두번 다시 서로 아는 척하지 않는다. 이 학교의 이름은 바로 ‘존스쿨’이다.

존스쿨은 미국에서 성을 구매한 혐의로 체포된 남성들이 자기 이름을 미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존’(John)이라고 둘러댄 것에서 생긴 이름으로, 성매매 사범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학교다. 한국에는 2005년 8월 도입됐다. 공식 이름은 ‘기소유예조건부 성구매자 재범 방지 교육소’. 성구매 초범들을 전과자로 만들기보다 교육 기회를 주어 왜곡된 성인식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개교 이래 3년 동안 이 학교를 거쳐간 ‘학생’은 9월 말 현재 4만2454명에 이른다. 법무부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실제 2006년 존스쿨 이수자 138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69.6%가 프로그램이 유익했다고 답했고, 성의식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존스쿨은 어떻게 교육을 할까? 수료자들은 과연 이 학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겨레> 기자가 직접 존스쿨에 다녀왔다. 개교 이래 처음으로 존스쿨이 언론에 학교 문을 열었다. 물론 학교의 양해를 얻어 기자의 신분을 숨기고 수업을 받았다.

1교시 아무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교실

10월 존스쿨 교육이 열린 16일 오전 8시50분 서울 신정동 남부보호관찰소 2층. 이날 교육대상자는 기자를 포함해 모두 25명이었다. 기자는 25번 수강생이 되어 맨 뒷자리에 배정받았다. 교실 출입문에는 좌석배치도가 붙어 있었고, 자리를 찾아가니 책상에 이름표와 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강생들은 25살부터 52살까지 다양했는데 30~40대가 많았다. 60% 정도는 안마시술소에서 성매매를 했다가 이곳에 오게 됐고, 간혹 집창촌을 찾았다가 적발된 이도 있었다. 모두들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기자도 조마조마했다. ‘취재’라고 설명해도 믿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수강생들은 한결같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야구모자를 쓴 사람도 5명이었고, 검정 점퍼를 입은 사람이 10여명이었다. 뭔가를 감추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있었다. 슬쩍 엿들으니 동남아에서 성매매를 하다 한국으로 강제송환돼 존스쿨에 입학한 친구사이였다. ‘해외유학파’ 학생이랄까.

9시 정각에 수업이 시작됐다. 한 자리만 비어 있었다. 1교시는 수강등록과 사전교육. 김명득 책임관이 출석을 부르고 서약서와 설문지를 나눠주면서 주민등록증을 걷어갔다. 신분증은 오후 6시 수업을 마친 뒤 돌려준다고 했다. 서약서에는 ‘수강생은 강의에 협조해야 하며 불응할 시 퇴장 조치 후 검사가 기소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수업시간에 필기는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며 책상 위를 비워놓으라고 경고했다. 수업시간에 업무수첩을 꺼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갑자기 뒤쪽이 소란해졌다. 지각한 23번 학생 ㅎ아무개씨가 20분 가량 늦게 도착한 것이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수업에 참여시켜 달라고 호소했지만 형평성을 이유로 귀가조처 당했다. 지각생은 담당 검사에게 재입교 날짜를 받아야 한다.

이어지는 순서는 강의 소개. 오전에는 △성범죄의 범죄성과 해악성 △성매매 피해여성의 증언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교육, 성인식 개선을 위한 사회극 수업이 이어진다고 했다. 등록을 마치자 6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기자는 얼른 지하매점에 가서 담배를 샀다. 금연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담배만큼 사람들과 말문 트기 좋은 수단이 없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 옆에 조심스레 다가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화난 듯한 표정으로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담배만 빨아댈 뿐 서로 한마디 이야기조차 나누지 않았다.

2교시 성매매 여성의 눈물을 직시하다

2교시는 서울 미아리 집창촌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재활을 돕는 김미령 자립지지공동체 대표가 강사로 나왔다. 그런데 20번이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교실을 못 찾아 헤맸다며 3분쯤 늦게 허둥지둥 들어온 20번은 1차 경고를 받았다. 다음 경고를 받으면 퇴실당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가장 무기력해 보이는 수강생이었던 20번의 얼굴이 더욱 침울해졌다.

김미령 대표는 “남성들의 잘못된 성의식이 여성들을 성매매로 몰아가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여러분들의 딸과 아내, 어머니도 성매매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생존자의 증언을 들어보자”며 한 여성을 소개했다.

‘생존자’는 자립지지공동체에서 상담원을 하는 30대 중반의 전직 성매매 여성이었다. 생존자는 집 나간 어머니를 찾아 중학 1학년 때 가출했다가 끌려간 집창촌의 악몽을 들려주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나는 성매매 업소의 착취구조와 성매매의 끔찍한 경험을 털어놓던 그는 감정이 복받친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업 뒤 제출한 소감문을 보니 생존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쓴 이들이 상당수였다.

점심시간 비로소 이야기를 나눠보니 “재수가 없어서…”

드디어 점심시간. 남부보호관찰소는 공장지대에 있어 주변에 음식점이 거의 없다. 수험생 대부분이 지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특식 요일이어서 제육볶음이 나왔는데 모두가 말없이 식사만 할 뿐이었다. 경고를 받았던 20번은 밥을 절반 가량 남겼다.

식사 뒤 1층으로 올라가 보니 옆에서 밥을 먹던 40대 중반 수강생이 보였다. 슬쩍 옆자리에 앉자 “접대차 법인카드를 썼는데 접대 상대를 위해 내가 총대를 메고 왔다”고 말을 건네왔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자 비로소 맨 앞줄에 앉아 있던 30대 초반이 다가왔다. “안마시술소에 갔다가 쪽팔리게 걸렸다”며 “회사에는 병원에 간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두 사람 모두 ‘재수 없어 걸렸다’는 불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또다른 30대는 “안 나가겠다고 버텼는데 지명수배를 하겠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경찰서에 갔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6교시 즉흥극 수업,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가다

오후 수업은 에이즈의 위험에 대한 전문가 강의로 시작됐다. 피부접촉만으로도 전염되어 콘돔으로도 못 막는 헤르페스2 같은 성병이 늘고 있다는 두려운 내용이었지만 일부 수강생들은 졸음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었다. 졸다가 경고받은 이도 나왔다. 수업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책상 위에 쓰러졌다. 과연 설문조사처럼 이들의 성인식이 바뀌기는 하는 걸까. 궁금했다.

오후 3시 시작한 6~7교시는 ‘소시오드라마’(sociodrama) 시간이었다. 소시오드라마는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 감독(의사·교사)이 극의 틀을 정해주면 연기자인 환자나 학생이 자발적으로 연기를 하는 즉흥극이다. 임상심리학 전공자인 남부보호관찰소 이태준 계장이 나왔다. 이 계장은 수강생들에게 동그랗게 앉아 달라고 했다. 24명 전체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먼저 성구매사범의 재판을 재연하기 위해 주연인 성구매자 역을 뽑자고 했다. 당연히 누구도 주연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제비뽑기를 했는데 하필이면 지각으로 경고를 받았던 20번이 걸렸다. 침울해 보이는 그가 과연 주연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판사를 맡은 성구매자가 20번 구매자에게 “왜 안마시술소에 가서 성구매를 했냐”고 추궁했다. 구매자는 “기러기 아빠라서 충동을 이기지 못해 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판사’는 구매자 아내 역을 맡은 짧은 머리의 20대 후반에게 “남편 진술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아내’는 “무조건 이혼하겠다”고 대답해 좌중을 술렁이게 했다.

이어 체포 상황을 재연했다. 자신의 역에 몰입하며 잠시 활기가 흘렀던 강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수강생 모두 체포돼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모습을 연상했을 것이다. 안마시술소를 상징하는 빨간 보자기 위에 구매자와 ‘피해자’(성매매 여성)가 마주 앉았다. 분홍색 보자기를 뒤집어쓴 두 사람을 경찰이 연행하고선 수갑 대신 보라색 보자기로 손을 묶었다.

진행자는 구매자를 유혹하는 ‘욕망’ 역을 맡았던 세 사람에게 “구매자를 절대 못 나오도록 꽉 안으라”고 주문했다. 구매자에게는 “성매매를 안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를 끊고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깡마른 20번 수강생은 3명이 만든 인간사슬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였다. 분홍색 보자기 속에서 장어처럼 퍼덕이던 그가 3분여 만에 마침내 인간사슬을 뚫고 나오자 박수가 터졌다. 보자기를 벗은 20번이 이날 처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연극이 끝난 뒤 수강생들은 다시 동그랗게 모여앉았다. 감흥이 남아 있어서인지 목소리는 상기됐고 미소를 띠는 사람도 있었다. “수업에 대해 별 기대 안 했는데 느낀 게 많았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한 명이 “오늘 수업 내용을 새겨서 다시는 이런 곳에 안 오겠다”고 말하자 웃음도 터졌다. 진행자의 제안으로 모두 일어서서 손을 맞잡고 구호를 외쳤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드디어 졸업 학교를 나서자마자 인사도 나누지 않고 헤어지다

다시 휴식시간. 흡연장소로 가니 사람들의 표정이 오전보다 한결 밝아 보였다. 최고령일 듯한 50대 남자는 “저런 걸 맨 처음에 하지 왜 마지막에 할까”라고 했다. 나중에 소감문을 보니 한 수강생은 “소시오드라마를 학교에서도 가르쳐야 한다”고 적기도 했다. 즉흥극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정리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부 수강생들은 존스쿨 수강을 조건으로 기소유예를 해주면 과연 호적에 빨간 줄이 가느냐 안 가느냐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사실 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보다 전과 기록 여부가 이들에게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수사자료는 남지만 ‘빨간 줄’은 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 8교시. 소감문을 쓰는 것으로 교육은 끝이 났다. 수강생들은 교육수료 서명을 한 뒤 주민등록증을 돌려받고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기자는 과정을 이수한 ‘동기’들이 실제 진정으로 성인식이 변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먼저 흡연장소에 나가 기다렸다. 그러나 누구도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같이 담배를 피웠던 사람들도 서로 외면하며 어둑해진 거리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법무부가 2006년에 비공식 조사한 자료를 봤다. 존스쿨 수강생 가운데 3.4%가 다시 성구매를 하다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존스쿨 수료생 재범률 5~6%보다는 낮은 수치다. 하지만 존스쿨 명예수료생인 기자에겐 아쉬웠다. 존스쿨 수료자가 다시 성구매로 적발되면 기소유예됐던 혐의까지 추가돼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동기들과의 맹세를 깨버린 대가인 셈이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사진 법무부 남부보호관찰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