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 시행2년, 무엇을 남겼나> ‘미아리 텍사스촌’을 가다

<성매매특별법 시행2년, 무엇을 남겼나> ① ‘미아리 텍사스촌’을 가다

[내일신문 2006-09-18 18:33]

“9·23 사태로 완전히 망했다”

개발과 단속 찬바람에 사실상 붕괴 … 취객 발길은 여전

오는 23일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명 ‘미아리 텍사스촌’은 국내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한 때 1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일하던 곳이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2년을 앞두고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인 이곳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현장취재에 나섰다.

기자가 14일 저녁 11시가 넘은 심야에 찾은 이른바 ‘미아리텍사스촌’(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은 개발과 단속의 찬바람으로 한때의 호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부순환도로 길음램프에서 시작된 ‘미아리’는 흉물스럽게 남겨진 몇몇 건물의 유리문과 커튼만이 이곳이 성매매업소였다는 흔적을 보여줄 뿐이었다.

◆“손님 10분의 1도 안된다” = 하지만 소방도로에서부터 시작되는 중심골목은 여전히 업소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바깥마담’이라고 부르는 여성들이 골목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손님맞이를 했고 20여개의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었다.

골목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한 바깥마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 여성은 처음에 성매매는 없다고 잡아떼다가 솔직한 얘기가 오가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 여성은 “10년 넘게 여기서 일을 했지만 요새는 손님이 10분의 1도 안된다”며 “의리 때문에 남아서 일하지만 100만원 벌이도 어렵다”고 말했다. 기자가 “수입이 있다는 건 손님이 꽤 온다는 거냐”고 묻자 “알면서 뭐 물어보냐”고 되묻는다.

자신이 ‘88번지 자율정화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소개한 유 모(59)씨는 “내가 35년을 여기서 일했다”며 “9·23사태이후 망하게 됐다”고 말했다.

‘9·23사태’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 9월 23일을 지칭하는 이곳 업주들의 용어다.

유씨는 또 “좋은 시절에는 소방도가 관광버스와 택시로 꽉 찼다”며 “어차피 1~2년후면 재개발로 없어지는데 경찰이 가만 나뒀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만큼 당시 성매매특별법 시행이 가져다준 파괴력은 이곳 사람들한테 커다란 것이었다.

실제로 기자가 현장에 머무르는 1시간여 동안 술 취한 일부 남성들이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 등이 목격됐지만 유씨의 말처럼 관광버스가 와서 대기하던 시절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집결지는 사실상 붕괴됐지만 = 미아리가 경찰의 단속과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지만 이곳서 일하던 여성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바깥마담은 “그만둔 애들 단란주점서 일하면서 2차 나가고 여기와 다를 바 없다”며 “먹고살고 집에 돈 부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입장은 달랐다. 윤후의 종암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은 “여기서 일하는 여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이상이 이곳을 나가면 이런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답했다”며 “풍선효과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성매매특별법 시행이후 국내 최대규모 집창촌인 미아리 텍사촌의 경우 재개발과 단속의 집중포화로 사실상 붕괴직전에 놓여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종암서 생활안전과는 미아리 일대의 성매매 업소와 여성이 특별법 시행전보다 절반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기 전인 2002년 270여개 업소에서 1000여명의 여성이 일하다가 특별법이 시행된 직후 2004년 말 230여개 업소 700여명으로 줄었으며, 지금은 120여개 업소에서 420여명이 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서울시 등에 따르면 미아리는 크게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재개발이 진행중이며, 이 가운데 1구역은 이미 건물의 철거를 마친 상태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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