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러 갔다 성매매에 빠진 한국 학생들
[조선일보 2007-01-25 17:31]
“안냐세요~” “싸랑해요~” “여기요~”
지난해 12월 27일 밤, 필리핀 마닐라 에르미타 지역 아드리아티코 거리에 있는 한 술집. 들어서기가 무섭게 귀에 익은 한국어 인사말이 손님을 맞는다.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를 걸친 필리핀 여성들이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자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Lady(아가씨)?”라고 묻는다. ‘마마상’이라 불리며 중개인이다. 40대로 보이는 한국인 남성 두 명이 ‘바파인(bar fine)’을 내고 아가씨들과 함께 자리를 떠난다. ‘바파인’은 여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술집에 지불하거나 중개비로 내는 일종의 벌금(fine)을 말한다. 마마상의 손엔 그 댓가로 달랑 500페소(약 1만원)가 쥐어졌다.
◆ ‘성매매’ 해방구를 찾는 한국인들
필리핀은 한국인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물가도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6월까지 필리핀으로 출국한 한국인은 약 25만 8000여 명. 이 중 80.3%가 관광을 목적으로 필리핀 행 비행기를 탔다. 관광을 위해 출국하는 비율로는 태국(86.7%)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인기있는 관광국인 만큼 필리핀 유흥가의 ‘밤문화’를 즐기려는 한국 남성들도 많다. 지난해 ‘청소년을위한 내일여성센터(내일여성센터)’가 마닐라 시내 성매매 여성 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 중 83%(59명)가 한국인 남성을 고객으로 맞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필리핀이 어학연수 대상국으로 각광 받으면서, 한국 학생들의 현지 성매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한국인 유학생과 어학연수생들이 필리핀 밤문화 소비시장의 고객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내일여성센터의 조사에 응한 필리핀 여성 대부분은 17~19세 한국 남성들과 성매매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필리핀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교민 장모씨는 “근래 들어 (한국인들의 성매매 관광이) 급증한 것이 아니다. 4, 5년 전에도 한국인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장씨는 “요즘은 학생들이 더 심하다”라고 했다. 마닐라 퀘존 시티에서 KTV(한국형 룸살롱)를 운영하는 한 한국인 업주도 “열여덟 살 애들이 와서 ‘서비스 얼마나 줄 거냐’고 거들먹거린다. 영어 좀 한다고 거만하게 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성매매가 불법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 업주는 “물론 불법이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며 아가씨들이 직접 불법 라이선스를 끊어 오는데 어떡하냐”고 변명했다. 그는 “라이선스 발급에는 300페소(약 6000원)를 내는데, 나이가 어려도 900페소만 주면 경찰청에서 다 만들어 준다”고 했다.
◆ 얽혀 있는 고리
교민들의 대책 마련은 아직 미미한 상태다. 한인교회협의회(협의회) 소속 마닐라한인중앙교회 신유호 목사는 “한국에서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한 이후, 필리핀 성매매 관광이 늘었다는 소문은 있지만, 협의회 차원에서 특별히 문제 삼는 부분은 현재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 어학원들도 일부 학생들의 ‘일탈행동’에 대해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학원에는 그런 학생이 없다”, “본인 의지가 없으면 막기 힘들다”, “그런(성매매) 환경이 적은 쪽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다”, “정신무장을 강하게 해서 보내야 한다”는 식의 답변이 전부였다.
교민사회 사정에 밝은 한 교민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교민사회 안에서 성매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필리핀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면 한국인을 상대로 먹고 사는 교민들이 경제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얽혀있는 이해관계'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인다. 현지 교민 중 한 명은 "장기적으론 결국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며 "특히 청소년들의 성매매가 방치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