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달랑 2채만 철거...'청량리 588은 영업중'

[현장르포] 달랑 2채만 철거...'청량리 588은 영업중'

[스포츠조선 2007-02-06 23:10]

업주들"보상전 언론플레이" 반발 … 주변 상가들도 한숨
구청측 "보상협상 진척률 약 12%…권리금 주장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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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구청측이 업소 유리문에 분무식 페인트로 철거 표시를 했지만 주변 업주들이 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덧칠해 놓았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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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누가 한다고 그래요."

 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속칭 '청량리 588'은 철거가 시작됐다는 얘기와는 달리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대신 업주들의 심한 욕설이 터져 나오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 성매매 여성들의 손짓은 여전했다.

 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 2동 588번지 청량리 역 앞에서 답십리 길 방향으로 300m 남짓 이어진 '청량리 588' 일대는 철거 분위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철거가 시작돼 어수선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 일대를 한바퀴 돌아보면서 완전히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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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작업이 시작됐다는 '청량리 588일대'는 보상 협상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구청과 토지-건물 소유주간 보상협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청량리=조병관 기자 rainmaker@>

동대문구청이 지난 2일 보상이 끝나 기습적으로 철거한 2개 업소 출입구에 적어놓았던 '철거'라는 붉은 글씨는 주변 업주들에 의해 검은색 스프레이로 지워져 있었다.

 업주들은 밤새 구청이 걸어놓았던 철거 현수막 역시 모두 떼어버렸다.

 부근에서 만난 업주 이모씨(여ㆍ62)는 "두세군데 업소만 보상이 끝나 철거를 시작했을 뿐인데 마치 온통 철거를 시작한 것처럼 난리를 쳐서 더 죽겠다"면서 "우리처럼 임대료내고 영업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때 청량리588의 업소들은 '개인택시 1대'와 '아가씨 1인'의 가치가 맞먹는다고 할 만큼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 3명만 데리고 있으면 한달 1000만원 수입은 너끈히 보장됐다는 게 이 곳 업주들의 얘기다.

 그러나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이 곳 일대는 150여개 업소에서 현재 50여개 정도만 영업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0대로 보이는 또다른 남성업주는 "기자들하고는 더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 그만 가라"며 "우리 얘기는 써주지 않고 항상 안좋은 쪽으로만 보도하지 않느냐"며 험악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입구부근에서 중심부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훤한 대낮인데도 얼굴을 유리문 사이로 내민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 "오빠 여기야, 여기. 이리 들어와"라며 손짓을 했다.

 철거 직전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주변 분위기는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청량리 588일대 주변 상가들의 반응도 앞날의 생계를 걱정하는 업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3년 동안 청량리에서 약국을 운영해왔다는 약사 구모씨(60ㆍ경기 남양주시)는 성매매 특별법에다 청량리 재개발 이야기 때문에 매상이 2년 전에 비해 70% 정도 줄었다"며 "약국을 철거해도 단골손님들 때문에 청량리에 다시 약국을 차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60대 후반의 구멍가게 주인 김모씨는 "30년간 이 곳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588전체를 다 싸잡아서 없앤다고 하니 철거대상이 아닌 가게도 다 망할 지경"이라면서 "이제는 버틸 힘도 없다"고 허탈해했다.

 동대문구청은 연말까지 588번지를 관통하는 답십리~롯데백화점 구간 226m의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78개동과 토지 89필지를 우선 철거할 예정이다. 현재 구청과 토지-건물 소유주간 보상협상이 진행중이다.

 동대문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공시지가와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보상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지지부진하다"며 "현재 협상 진척률은 약 12%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오는 28일까지 1차 협상을 벌인 뒤 이후 한달 가량 추가 협상 기간을 가질 계획"이라며 "일부 업소가 영업권과 권리금 보전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같은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청량리 자율정화위원회 박승철 위원장은 "보상 협상이 끝나면 언제든지 철거에 응해준다. 그러나 보상도 안된 상태에서 철거라는 왜곡된 언론플레이를 먼저 한다면 받아들일수 없다"며 "다음달 5일까지 구청에서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 청량리=나성률 기자 nasy@, 손창우 인턴기자 son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