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꺾인 성매매여성들의 꿈
[노컷뉴스 2007-03-26 08:14]
[수습기자의 일탈-삶의 현장을 가다 ③]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센터 체험
1. 화이트데이, 달콤한 흙과의 만남
14일 찾은 경기도의 한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센터. “안녕하세요, 선생님!!”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며 아침을 맞이하는 모습이 반갑다. 이곳에는 15명의 성매매피해여성들이 모여 자활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자 하는 존중의 언어다.
오전 10시 첫 시간은 점토로 컵 만들기. 똑같은 모양의 컵을 10개 만드는 교육이다. 능숙해질 때까지다. 이지은(39. 성매매피해여성. 가명)씨는 도자기 공예를 배운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데도 ‘선수’였다. 꼼꼼한 손놀림에 잘 빠진 컵이 뚝딱뚝딱 만들어졌다.
도자기 공예가 정적인 작업이라면 이들의 수다는 동적인 작업이다. 김시은(30.가명)씨는 이상하게 삐뚤빼뚤 만들어진다며 투덜대지만 진정혜(26, 가명)씨와 유지현(27, 가명)씨는 못들은 척 자신들 연애 상담에 바빴다.
대학 때부터 이처럼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공예 선생님은 “욕심 같아선 전문적인 도자기 수업을 해주고 싶지만 ‘선생님(피해여성을 부르는 말)’ 가운데 몸이 아픈 사람이 많아 취미 위주의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2. ‘거위의 꿈’ 너와 나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
수요일 오후마다 찾아오는 노래교실. ‘거위의 꿈’이 공동작업실에 울려버지고 있엇다.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설 수 있어요...(거위의 꿈 중)”
노랫말에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과거와 현재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들의 합창에는 그래서 코끝 찡한 울림이 느껴졌다.
합창에 이은 독창. 지금까지 배웠던 노래들을 한 명씩 돌아가며 부르는 자리라 떨릴 법도 하지만 대부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노래 지도 선생님인 한아람(21)씨가 살짝 귀띔했다.
한씨는 “선생님들이 처음에는 독창을 꺼려했지만 이제는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다”며 그간의 성과를 얘기했다. 한씨는 이어 “노래시간에 자기 목소리를 내보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듣다보면 서로 자존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모든 수업에 열의를 가질 수만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중점적으로 배웠으면 하는 것이 이곳 여성들의 조그만 바람이다.
그러나 지원센터는 주5일 교육을 받으면 노동부에서 70여만원을, 주3일 한 달에 100시간 교육을 받으면 여성가족부에서 40여만원을 받는 직장 형태이기 때문에 정해진 프로그램을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활동가들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된다. 지원센터 최미라 팀장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도자기와 퀼트 등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한정 될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또 이곳에 있는 피해여성들은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비교적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평생 직장’을 보장하는 방법을 찾고는 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3. 여성, 나를 만나다
지원센터에서의 둘째 날은 여성주의 강의로 시작했다. 강의를 듣고 있는 박정민(31. 가명)씨의 펜은 멈출 줄 몰랐다.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문제인식은 ‘여성인 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주제.
백화점 카드를 발급할 때 남편의 허락을 맡아야 상황에 무기력증을 느끼는 주부들에서부터 실컷 제사상을 차려놓고 절도 못하는 주변화된 여성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강의가 끝난 뒤 박씨는 “여성주의 교육을 통해 나부터 생각하게 됐다”며 “여태껏 살아오면서 나에게 돈을 주었기에 정당하게 성매매를 했던 남성들에 대해 이제야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원센터 막내 구점애(26, 가명)씨는 따로 떨어져 사는 남편이 보고 싶다고 운을 뗐다. 구씨는 성매매 방지법안이 시행된 지난 2004년 이후 아는 오빠를 따라 갔다가 티켓다방에서 일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곳에서 구씨가 받은 ‘혜택’이라곤 휴대전화와 의료보험밖에 없었지만 하루 15시간을 넘게 일하면서 남은 것은 700만원의 빚더미뿐이었다.
구씨는 “나는 돈 벌어주는 기계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랬던 자신을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두려울 뿐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야말로 이곳 여성들에게는 천형(天刑)임을 확인케 한 대목이었다.
오후 모임 시간. 한글을 미처 깨치지 못한 맏언니 전복희(48, 가명)씨가 한창 받아쓰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폭력과 빠듯한 살림을 피해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집을 뛰쳐나왔다는 전씨는 30년 가까이 성매매 업소를 전전하다 보니 얼마 전까지 책 속의 글씨는 그야말로 ‘종이 위의 까만 점’이었다고 고백했다. 전씨는 “많이 배우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누구한테 편지 한 장이라도 쓰고 동사무소 가서 떳떳하게 글을 쓰고 싶은 게 소망”이라고 밝혔다.
50살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전씨는 자신의 과거가 알려지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전씨는 "혹시나 예전에 성매매 업소에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 걱정 된다"며 “내가 그렇고 그랬던 사람인 것을 알면 지금 집 주인이 같이 차 한잔 하자는 말도 안 꺼냈을 것”이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부러 옅은 화장을 하고 비싼 옷을 입지 않는다는 전씨는 “그래도 지금부터가 진짜 인생인 것 같다”며 “떳떳한 여성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4. ‘거위 날다’
노동부 고용안전센터 진로팀을 통해 지난달 실시한 직업적성 결과가 나오는 셋째 날.
불량학생이라는 주홍글씨가 싫어 19살에 집을 나왔다는 김지은(30.가명)씨는 결과를 받아들였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불운했던 20대를 접고 이제는 학업에 매진하고 있는 대학 초년생인 김씨. 김씨의 꿈은 법학을 전공한 뒤 양로원을 갖는 것이었지만 돈이 없어 가고 싶었던 대학에 합격하고도 학비가 싼 대학으로 발길을 옮겨야만 했다.
정부에서는 대학등록금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받고 있는 월 40만 원의 생활비로 방값을 내고 4년의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상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지원센터 최팀장은 “실질적으로 우리 선생님들(피해여성)에게 지원을 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일반 기업체 문을 수없이 두드려본 것만 해도 수십 차례. 지난 2005년에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통해 모금을 시도하려 했지만 주위의 반응은 싸늘했다. 세상이 그들을 ‘성매매 피해여성’이 아닌 ‘성매매 종사자’로 낙인찍어 버린 것이다.
최팀장과 같은 활동가들은 성매매 방지법안이 통과되면서 성매매가 범죄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은 확대됐지만 이 법안에서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법이 아직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처벌 기능을 강화해서라도 성구매자들을 줄여나간다면 성매매 여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녹아 있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법무부가 성구매자들에 대한 보호처분으로 8시간의 수강명령을 내리는 ‘존 스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판 존 스쿨제’에 참여하는 성구매자 대부분은 “재수 없어 걸렸다”는 식으로 시간 때우기 교육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 이들로부터 성매매가 인권침해라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최 팀장은 이와 함께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지 않을까 걱정돼 버스 타는 것조차 꺼려했던 선생님들을 제발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고 호소했다.
꺾여버린 날개 탓에 모두들 다시는 날지 못할 거라 이야기하지만 그럴수록 힘찬 날갯짓을 하려는 피해 여성들.이들이 당장 바라는 것은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최소한의 ‘자존감’과 편견 없는 세상의 시선, 이 두 가지뿐이다.
CBS사회부 강인영 기자 Kangin@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