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에 대한 보고서>
[연합뉴스 2007-03-20 15:15]
책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1950년 미국 시민의 아내가 된 최초의 한국 여성이 미국에 발을 디뎠다. 필시 그녀의 남편은 미군 병사였을 것이다.
이후 거의 반 세기 동안 10만 명에 가까운 한국 여성이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최근까지도 한국 여성들은 미군과 매년 지속적으로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고 있지만 이들의 존재는 '기지촌여성', '매춘부'라는 꼬리표를 단 채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원제: Beyond The Shadow of Camptown)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군인 아내(military bride)'에 대한 첫 심층 연구로 그들의 삶과 자매애, 세상의 통념에 대한 저항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인종과 민족성, 문화, 여성과 젠더, 정체성의 구성에 관심이 많은 재미교포 2세 여지연 박사(노스웨스턴대 역사학과 교수)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쓴 박사 논문을 보완한 것이다.
저자는 1993년부터 3년 동안 군인 아내의 공동체에 참여하고, 함께 교회에 출석하며 150명에 달하는 군인 아내와 그 가족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된 논문은 군인 아내들이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해왔고, 어떻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해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군인 아내 대다수는 한국과 미국 사회 양쪽 모두에서 소외당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미군과 결혼한 여성들을 기지촌과 연결시켜 생각했고, 이런 믿음 때문에 군인 아내들을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경멸했다.
미국 사회 역시 한국인 군인 아내들을 미국의 우월성과 인종적 다양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용했고, 이들에게 미국적 가치를 강요했다.
하지만 이들은 언어와 인종, 계급의 장벽 앞에서 마냥 좌절하고 피해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끼리 단결하며 운명과 사회적 편견에 당당히 맞서왔다.
국제결혼한 한국인 미군 아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단체를 결성한 이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한국 여성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지키고, 끈끈한 자매애를 체험했다.
따라서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군인 아내들은 모두 기지촌 출신이며,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버림받아 다시 성매매에 굴레에 빠진다는 식의 세간의 편견은 부당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대신에 한국인 군인 아내들이 가족과 한국인 교민 사회, 국가, 언어의 가장자리에 어정쩡하게 서 있지만 억척스레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갔다는 점에서 그들 나름의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했다고 평가한다.
여성학자 임옥희씨가 번역했다.
삼인. 432쪽. 1만8천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