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저지르고 “내가 뭘” 청소년 죄의식 죽이는 인터넷 음란물 - 경향신문

성범죄 저지르고 “내가 뭘” 청소년 죄의식 죽이는 인터넷 음란물 - 경향신문
입력: 2007년 04월 01일 22:49:11

10대 성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이 성 범죄를 저지르고도 잘못인 줄 모른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전파되는 음란물에 청소년들의 성 도덕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발생한 경기 가평 중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장본인 중 한 명인 김건우군(14·가명). 건우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말썽을 부린 적이 없었다. 건우군의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아들이 잘 크는구나”하고 생각했다.

건우는 인터넷을 통해 2년 전 우연히 포르노 동영상을 접하게 됐다. 이후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이 집에 없는 오후 시간에는 거의 포르노를 보면서 지냈다. 건우는 올 초 전학온 한 여학생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부모님을 험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건우를 포함한 6명의 친구들은 그 여학생을 혼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여학생을 학교 무용실로 불러내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여학생이니 남학생과는 다른 방법으로 겁을 주자’는 차원이었다.

경찰서에 끌려간 뒤에도 건우는 자신의 행동이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경찰이 “징역 3년을 받는 큰 범죄”라고 말하고, 아버지가 “성폭행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이라고 꾸짖었을 때에야 사안의 중대성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난 2월 경기 남양주에서 중학생 6명이 여중생을 야산에서 성폭행한 뒤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9일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광주광역시에서 중·고교생 25명이 붙잡혔다. 남양주경찰서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아이들이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아 당황했다”며 “범죄를 저지른 6명 모두 인터넷 음란물에 깊숙이 물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음란물 콘텐츠가 청소년 성 범죄를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요즘 인터넷은 성범죄를 충동질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은 “최근의 집단 성폭행이나 범행 장면의 촬영·협박은 음란물에서 도식적으로 나오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음란물 접촉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청소년위원회의 ‘2006년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고생의 과반수가 매일 음란물을 검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과)는 “음란물에 대한 차단 뿐 아니라 성적 일탈행위가 자주 발생하는 장소에 대한 선도와 예방활동도 중요하다”며 “학교, 경찰,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윤주·박영흠기자 run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