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가출, 성매매, 폭력… 넌더리나요”
[뉴스메이커 2007-04-19 17:09]
구렁텅이 벗어난 김유리양… “학교가는 친구 몹시 부러웠어요”
“한번의 판단 착오로 인생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어요.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학생 때는 무엇보다 학업에 충실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성적 호기심이 일더라도 그것은 학교를 졸업한 후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라고요.”
일요일인 지난 4월 15일 대입 검정고시를 치른 김유리양(18·가명). 올해 수능을 봐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며 밝게 웃고 있지만, 그의 기억 한편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과거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2005년 7월 유리는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됐다. 미성년의 신분으로 15차례에 걸쳐 돈을 받고 성(性)을 팔았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성을 산 남자 중 유리가 집을 기억하고 있는 두 사람은 구속됐다.
앵벌이하다 남자아이들 만나 혼숙
유리가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가출에서 비롯됐다. 모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5년, 유리는 같은 학교 친구의 꾐에 빠져 집을 나가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마침 학교생활에 흥미가 떨어진 데다 부모님의 잦은 불화도 보기 싫었다.
“가출 후에는 행인들에게 차비를 구걸하는 앵벌이를 하면서 지냈어요. 보통 하루 3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어 제가 벌어온 돈으로 친구와 둘이 먹고 살았죠. 학교도 가지 않았고요.”
그런 어느 날 찜질방에서 또래 남자아이들을 알게 됐다. 안산의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이들이었다. 유리와 유리의 친구는 그날부터 그 아이들이 기거하는 자취방에서 한 달 간 혼숙하며 지냈다. 그 기간 동안 유리는 첫 성경험을 했다. “남자애들이 일하러 가는 동안 저와 제 친구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를 했어요. 앵벌이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았어요. 성경험은 혼숙하던 한 애와 화장실에서 처음 하게 된 거예요.”
이 아이들과 헤어진 후 유리는 또 다른 가출 청소년들과 어울렸다. 다시 앵벌이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초저녁 무렵 차비를 달라며 20대 후반의 남자에게 접근했는데 그가 밥 사주고 하룻밤 편안하게 잘 수 있는 모텔까지 잡아주겠다고 했다는 것. 유리는 “모텔에 들어선 후 친구들을 불러 오겠다고 했더니 강제로 옷을 벗겼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유리에게 3만 원을 주고 돌아갔다.
그 즈음 50대 남자에게도 같은 일을 당했다. 비가 오는 늦은 밤, 그 남자는 차비를 구걸하는 유리에게 우산을 씌워 달라고 하더니 유리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협박했다는 것. 모텔까지 유리를 끌고 간 그 남자는 행위가 끝난 후 1만2000원을 주고 자리를 떴다.
유리가 본격적으로 성매매에 나선 것은 2006년 4월. 역시 앵벌이 과정에서 한 번 잠자리를 같이 하면 30만 원을 주겠다는 한 남자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던 것이다. 유리와 함께 가출한 친구 그리고 그 친구가 가출 청소년 무리에서 사귄 새 남자친구는 유리에게 “모텔에서 지내고 싶으니 성매매로 돈을 벌어오라”고 부추겼다.
“그때부터 성매매를 하기 시작했어요. 앵벌이를 하다보면 그런 요구를 하는 아저씨들이 꽤 있거든요. 모텔에 가기 전, 전 조건을 내걸었어요. 한 번 섹스하는 대가는 10만 원 이상이어야 하고 질외 사정을 해야 한다고요. 친구가 임신을 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얘기해줬거든요. 또 그날 그 모텔에서 친구들과 묵어야 하니까 숙박비까지 내달라고 했어요.”
당시 유리에게 성인남자를 상대로 한 성매매는 단지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수단에 불과했다. 남자들은 유리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유리의 친구와 그 남자친구는 유리가 성매매로 가져 온 돈으로 모텔생활을 하면서 밥도 먹고 옷도 사 입었다.
유리는 친구들의 폭력에 넌더리가 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같이 가출한 친구가 거짓말을 잘하는데 그 거짓말을 저한테 뒤집어씌우곤 했어요. 그래서 자주 어울렸던 가출한 아이들이 단체로 저를 때리는 일이 잦았어요.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원조교제한 한 아저씨에게 제가 성매매로 돈을 벌어 친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자주 폭력에 시달린다고 하니까 집에 돌아가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휴대전화를 빌려주면서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해서 엄마와 통화한 후 가출 6개월 만에 집으로 들어간 거예요.”
유리의 부모는 딸의 친구들이 또 다시 딸을 꾀어낼까봐 유리를 강원도의 친척집으로 피신시켰다. 학교는 이미 오래 전 자퇴 처리된 상태였다. 유리가 강원도에 머무는 동안 부모는 딸이 원조교제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함께 가출했던 친구가 유리의 엄마에게 말한 것이다. 한술 더 떠 유리의 친구들은 유리를 찾을 수 없게 되자 창문을 통해 유리의 집에 침입, 물건을 부수고 옷을 훔쳐갔다. 유리의 부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붙잡힌 아이들의 입을 통해 유리의 성매매 사실도 경찰에 적발됐다. 유리는 그해 8월 부산광역시 청소년종합지원센터에 내려가 1주일간 교육을 받았다. 성매매 피해 청소년 재활교육 프로그램이다. 유리는 “교육을 통해 깨달은 바가 컸다”고 말했다.
검정고시 치르고 올 수능 준비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애니어그램 검사였어요. 제가 지닌 성격과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성격을 찾는 거였는데 앞으로 좀더 나은 사람, 멋진 인생을 펼치려면 좀 독해질 필요가 있다고 나왔어요. 또 제가 정말 옳지 않은 일을 했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가출을 유도한 친구를 만난 것부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께도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드렸어요.”
유리는 “한동안 교복 입고 등하교 하는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다”고 말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엉뚱한 짓을 하다가 뒤늦게 깨달은 게 후회스럽다고도 했다. 유리에게 남녀 간의 성관계는 아름다운 게 아닌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유리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성관계는 더럽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리는 요즘 제2의 인생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출해 앵벌이를 하고 혼숙하고 원조교제를 한 시간들을 송두리째 도려내고 싶겠지만 이미 걸어온 길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집에서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준비해온 유리는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해 훗날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끝낸 후 집으로 총총히 걸어가는 유리의 뒷모습엔 어린 나이에 새겨진 깊은 상흔이 어쩔 수 없이 어른거리는 듯했다.
<글·사진|박주연 기자 jypark@kyunmghyang.com>
[커버스토리]산부인과 의사가 본 10대의 성
[뉴스메이커 2007-04-19 14:54]
“상당수 아이들에게 성은 곧 쾌락”
경기 동두천시에서 해성클리닉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박혜성 원장(43)은 최근 경험한 10대의 성이 몹시 놀랍고 충격적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요즘 10대의 성적 고민은 단순한 성적 호기심과 일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 청소년 성문제 전문가 구성애씨가 주창했던 ‘아우성’(아름다운 우리들의 성)의 의미와 카테고리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성은 인류의 생존과 종족 보호를 담보하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활동’이라는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화된 10대 성범죄의 양상, 그들이 추구하는 성생활의 놀라운 의미 변화가 어른들의 상식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 박 원장의 지적이다.
- 10대의 성, 10년 전과 비교해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지적한다면.
“현재 10대의 성 문제는 대단히 위험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는 10대의 성적 경험을 억압해야 한다는 보수적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10대 성범죄의 폭력성이 극단적으로 변하면서 10대의 성적 행동과 그 다양성이 어른들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다. 간단히 말해 성이 곧 쾌락이며, 그 쾌락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요즘 10대의 트렌드다.”
- 과거에는 성적 일탈을 극소수 문제 학생의 전유물로 인식했다.
“양상은 자못 심각하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성적 영웅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여학생과 성관계를 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풍조가 급속하게 번졌다. 이젠 모범생과 일탈생의 구분도 모호하다. 최근 내가 상담한 성폭력 범죄에는 소위 ‘모범생’이 상당수 개입했다. 이들은 성이 아름답고 소중한, 그래서 절제가 필요한 활동이라는 인식이 없다. 성을 쾌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최근 10대 성폭력 범죄의 양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내가 치료한 한 여학생의 경우는 매우 심각한 충격을 받고 정신과 치료 중이다. 그 여학생은 남학생 6명에게 무려 6차례에 걸쳐 집단 강간을 당했다.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마지막 폭력은 기억하지도 못한다. 이 여학생은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했고 이른바 ‘노는 아이들’ 곁에는 가지도 않았던 학생이다. 이 평범한 여학생이 범죄의 대상이 됐고 협박에 못 이겨 무방비 상태에서 범죄에 노출됐다. 10대 성범죄가 살인으로까지 치닫는 사례를 목도했고 산부인과 의사가 경찰 수사에 협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과거 구성애씨 등 전문가들은 10대 청소년들이 성지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10대들의 성지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
“성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모르는 10대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성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는 것이다. 대신 성생활의 구체적인 테크닉에 대한 지식은 어른 못지않다. 상당수 10대에게 성은 쾌락이므로 이 쾌락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내가 놀랄 정도로 그 방면 지식에 해박한 10대를 목격하고 있다.”
- 여학생들의 인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10대의 여성과 남성은 신체의 메커니즘이 다르다. 여학생들은 성적 호기심은 풍부하지만 성욕 그 자체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남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성적 호기심도 강하지만 성적 욕구도 왕성하다. 이런 불일치 때문에 남학생의 강제에 의한 성 범죄가 10대 청소년 사이에 횡행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학생들 역시 호감을 가진 남학생에게 성행위를 강요받더라도 그것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행위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사실상 범죄를 당했으면서도 그것이 사랑이 아닌가 오해한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하는 여학생이 많다.”
- 산부인과를 찾는 10대 여학생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나.
“대부분 부모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아온다. 그들은 남학생을 좋아하고 사귀는 것과 성행위를 하는 것의 의미 차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심지어 10대의 나이에 아이를 낳겠다고 우기는 학생도 있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인식에서보다 10대의 임신과 출산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양육과 향후 경제생활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어떤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나.
“과거처럼 성에 대한 호기심을 차단할 방법이 사실상 사라졌다. 모든 성적 지식, 성행위의 현장과 구체적인 양태가 이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인터넷 등 통신 시스템의 발달로 10대의 성적 호기심과 성행위 욕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과거의 방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성의 문제는 아이들과 모든 것을 터놓고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성의 자기 결정권, 그것에 따르는 책임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아름다운 성이 범죄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과거처럼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이를 만든다는 식의 생물학적 성교육만으론 지금 10대의 성적 혼란을 막을 수 없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할 때도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그것이 어떤 선을 넘을 때 범죄가 성립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 아이들에게도 성적 권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소위 ‘커플’이라는 것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자연스런 스킨십, 나아가 성행위까지도 용인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성을 맹목적으로 금하기보다 10대의 관점에서 성적 즐거움의 향유할 수 있는 법을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는 견해다.
“중요한 것은 자율과 책임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여건이 10대의 성적 혼란을 수용할 태세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은 습관적이고 중독성이 강하며 다른 관심을 파묻는 강렬한 힘이 있다. 이런 것에 일상적으로 노출돼서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가 없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주지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 어른들의 교육과 조언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 이유는.
“청소년 성매매 등 어른들 세계의 불결함에 대해 10대들은 잘 알고 있다. 이들이 독점하고 있는 성의 세계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10대 성문제가 심각하다면 그 해법은 단순한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다. 어른들의 도덕적 각성, 개방성,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의 성적 혼란과 그 불행한 결과를 막을 수 있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
[커버스토리]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자
[뉴스메이커 2007-04-19 14:54]
주체적 ‘성적 의사결정’ 가르쳐 평등한 성문화 만드는 건전한 성 정체성 키워줘야
성폭력, 성매매, 10대 임신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기성세대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차라리 피임교육이나 확실히 시키고 콘돔을 나눠주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성적인 경험을 일찍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회가 변하기 전에는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알기에 되도록 자녀가 일찍 성을 경험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성’을 은폐하려 했다. 청소년은 성적 욕망을 느껴서도 안 되는 존재로 취급했고 이성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이렇게 청소년은 ‘성’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고 그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어쩌다 ‘성’을 경험한 청소년은 ‘성’을 경험하지 않은 청소년과 격리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성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성’과 관련된 정보가 넘치고 있다. 굳이 찾지 않아도 유해한 ‘성’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방으로 배달되어 오는 시대다.
‘성관계 자유롭게 허용하자’와는 달라
음란물을 접하는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이메일을 사용한다는 것은 음란물을 배달하는 스팸메일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함을 의미하고 웹서핑을 시작했다면 유해한 정보가 담긴 콘텐츠를 접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또래간의 성폭력 사건도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넘치는 정보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능력을 키운다면 피해를 예방할 수도 있고 충격을 완화할 수도 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이 유해한 콘텐츠를 접했을 때 겪는 충격의 강도는 더 세기 마련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성’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상황에서 충격을 완화시키고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확고한 중심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청소년이 성적인 존재임을 인정하고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자’는 것은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세우자’는 뜻이며 ‘성관계를 자유롭게 허용하자’는 것과 다르다. 주체적인 삶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성적 주체도 마찬가지. 성인으로서의 의무는 청소년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지식과 다양한 간접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잘못된 정보, 유해한 환경에서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지니고 있다. 현명한 선택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신뢰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성인들은 청소년이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지지해야 하며 실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감싸 안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말로만 성적 권리를 주자고 할 뿐 성적인 접촉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청소년을 통제하고 대상화했던 기존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를 경험한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다르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청소년의 선택을 존중한다.
청소년이 ‘성’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는 것은 성행위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실천과 정체성, 욕망을 포함하여 성적 감정과 관계, 그리고 우리가 성적(sexual)이라고 규정하는 범주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성이란 여성과 남성들의 감정, 사상, 행동 모두를 포함한 것으로 성적인 친밀감과 육체적인 성행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는 인간관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삶의 과정이다. 따라서 성적 주체로 서기 위해선 성 정체성, 성적 감각성, 성적 친밀감, 성 건강과 생식, 성적 사회화에 대한 태도를 정립해야 한다.
성적 정체성이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인식을 포함해서 성 발달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다. 성 발달은 신체적·감정적·사회적·인지적 성장에 따라 특징이 있으며, 인간관계, 여가 생활, 교육, 직업 등에 대한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성 정체성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 몸의 느낌과 우리 몸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감정적인 애착을 표현하거나 교제를 하는 것은 친밀감의 표시이며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인 친밀감을 경험하거나 그것을 회복하는 능력이나 욕구로서 사람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친밀감을 나누는 것은 사람들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든다. 관계를 표현할 때 상대에 대한 애정과 배려, 존중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자기표현과 의사소통, 인간존중의 태도를 세워야 한다.
성문화 ‘비판적 안목’ 키울 수 있게
특히 성문화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회문화적 환경들은 개인들이 성을 배우고 표현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회 속의 성문화를 민감하게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을 폭력적으로 도구화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몸의 주인으로 행동할 수 있는 관점 및 태도를 키워야 한다. 성적 도구화란 피해가 없는 속임수로부터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가해 행위까지를 포함하여 희롱, 유혹, 파트너를 벌 주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 성적 학대, 강간과 같은 행동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며 속이기 위해 성을 이용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결국 ‘성’적 주체로 성장하는 것은 관계 맺기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는 민주적 훈련과도 상통한다. 민주적 훈련은 다양한 의견을 접하고 토론하고 교육하면서 내 세계관, 도덕관을 고려해볼 때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성’도 이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 기분으로 감각으로 판단하지 않고 심사숙고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서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즉 남녀의 신체적·심리적 차이를 이해하고 성적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성적 권리를 존중하고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차별받아서도 안 됨을 터득해가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소년은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성문화에 대한 비판적 안목과 주체적인 성적 의사결정 능력을 키움으로서 더 평등한 성문화를 만들어가는 건강한 성 정체성을 가진 성숙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자.
이현숙<청소년성문화센터 설립추진단> think21c@hanmail.net
[커버스토리]“현실적·구체적 피임교육 필요”
[뉴스메이커 2007-04-19 14:54]
최영희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장, “성교육 학교에만 의지 말고 가정서 대화 충분히”
<김재구 기자>
“오늘 인터뷰는 참 괴롭고 힘든 주제인 것 같다.”
최영희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장의 첫 마디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뭐 하고 있었나.’ 청소년 집단성폭행 사건만큼 언론들이 목소리를 높일 만한 호재가 또 있을까. 소위 ‘노나는 일’엔 여러 부처가 숟가락 들고 달려들지만, 이런 불미스런 일에 ‘악역’을 자처해야 하는 곳이 청소년위원회다. 언론들이 상투적으로 주문하는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청소년위원회는 갖고 있을까.
- 최근 사회적 충격을 던져준 청소년 집단성폭행 사건과 관련, 청소년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가능할 것 같다.
“성범죄가 사실 하나의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학교 문제, 성교육 문제, 인터넷 문제 등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여러 진단이 나오느니 만큼 대책도 한 부처가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청소년위원회는 청소년 관련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성보호법은 주로 어른들로부터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에게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재 무조건 가해 청소년을 보호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가해 청소년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3년 전에 개발했다. 하지만 시행과정이 참으로 어렵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려고 했는데, 가해 청소년을 만날 수 없는 구조다. 현재 이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경찰·검찰 쪽과 논의하고 있다.”
- 가해 청소년을 못 만나다니 무슨 말인가.
“윤간에 참여했다고 모든 아이가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구속되는 아이도 있고, 구속되지 않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간다. 전국적으로 함께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보호관찰소에 흩어져 있으니까 어렵다. 올해는 이런 문제가 있다. 경찰은 1차적으로 가해 청소년을 만난다. 검찰에 올리면 기록이 남기 때문에 훈방조치를 취하고, 그러면 검사가 교육명령을 내린다. 검·경갈등 문제도 빨리 시스템화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다. 구속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성폭력 가해자들이 일종의 인지장애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즉 내가 윤간을 했을 때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전혀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예방교육을 선행해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다. 이 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윤간의 경우 또한 이 ‘보호교육’이라는 것이 거의 효과가 없다. 싫다고 ‘노(No)’라고 말하는 것이 집단적으로, 9~10명에게 당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
- 성교육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콘돔 사용법과 같은 내용은 학부모 입장에서는 거북하지만, 또 아이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준비라는 지적도 있다.
“그 교육은 확대한다. 5월 즈음에 기존에 있는 시설을 포함해서 20개 정도 성교육시설을 만든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계별로 들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려 한다. 현실적으로 외국의 경우는 중학교부터 콘돔을 나눠준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특징이다. 태국과 필리핀의 성매매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정말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창피한 사례도 있다. 그런 성문화가 문제되는 것이다. 성교육을 나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시킬 필요가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피임교육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과감하게 그런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인터넷이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지적이 있다.
“성교육에서 인터넷 음란문화의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 YP(Youth Patrol, Yong Power)라고 스스로 지킴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사업은 매체의 범람 속에서 아이들 스스로 잘못된 것에 대해 신고할 수 있도록 힘을 키우는 것이다. 매체가 아이들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니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인터넷의 음란문화는 엉터리고, 연극이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은 하지 않는다. 그런 가치관이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 한편으로 청소년위원회의 그런 ‘시각’이 보수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과거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그런 성격이 강했다. 지금은 통합적 정책을 기조로 하고 있다. 성보호는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순결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순결을 강조하는 경우, 비순결은 문제 있다는 식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중요한데, 되도록 결혼하기 전까지는 자기가 원치 않는데도 성을 유린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잠깐의 실수가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임신하면 현실적으로 낙태하거나 입양을 보내는 것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청소년기에는 되도록 안 된다는 입장이다.”
- 그런 입장이 논란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성적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하면서 청소년들에게는 세련된 통제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맞다. 세련된 통제다. 그야말로 무책임하게 애를 갖고, 특히 남자애들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뒤로 빠지고 여자애들만 인생 망쳤다는 식으로 되는 거, 이건 어마어마한 불평등이다. 이런 불평등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여자애들이 더 큰 손해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교육적으로 중요하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제도의 변화는 사람의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킨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제도의 변화다. 여러 노력을 하는데, 걸림돌이 많다. 결국 국민이 함께 도와줘야 한다. 성범죄 문제도 어느 한 군데만 노력한다고 해서 매듭이 풀리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강력하게 옥죄는 방법만 옳은 것이 아니다. 성교육을 학교에만 맡겨놔선 안 된다. 문제가 발생한 뒤 ‘대화를 하겠다’면 너무 늦다. 성폭행을 한 번 당했을 때 바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홉 번 당할 때까지 말 못한 경우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대화와 스킨십을 시작해야 한다. 아이도 그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모님이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커버스토리]10대의 性 10대의 눈으로 봐주세요
[뉴스메이커 2007-04-19 14:54]
성문제에 대해 아이들은 “어른들은 우리를 너무 모른다”고 항변한다. 막힘 없이 섹스를 말하는 아이들. 더 이상 성은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음지의 문화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성은 얼마만한 관심사일까? 도대체 성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까? 아이들 눈높이로 그들의 성문화를 들여다보자.
“청소년 집단 성폭행 뉴스를 보면서 우리와 동떨어진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보도들을 계속 접하면서 마음 한켠에 걱정이 쌓이는 게 사실이에요. 만약 우리 아이가 안 좋은 일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이런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중학교 1, 2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을 둔 주부 전은자 씨(45)는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다가 ‘베드신’이 나오면 난감하다. 15세 등급인데도 그런 장면이 불쑥 나올 경우 아이들과 같이 있기가 민망해 그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학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집단 성폭력 사건과 같은 ‘어두운’ 사건은 꺼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아이들을 믿는다.
“한번은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소위 이름이 거명되는, 선생님들도 걱정하는 아이와 친하단 말을 들었어요. 한편으로 걱정돼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 나도 그 소문 알고 있어요. 그 애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어요. 어른들은 무조건 한 면만 보고 나쁘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하더군요.” 겉보기엔 불안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아이들도 나름대로 성숙한 판단을 한다는 생각이다.
공공장소서 거리낌없이 스킨십
인터넷 문화의 확산은 어른들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어른들이 따라잡기엔 아이들이 구축하고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는 ‘세계’가 너무 빠르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박이선씨(46)는 컴퓨터를 아이들 방에 놓지 않고, 거실에 두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팸메일이나 게임 등에서 음란메시지가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들과 논의했고, 쉽게 합의했어요. 아이들도 그런 것들이 정신건강에 별로 좋지 않고, 성에 대해 왜곡된 의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박씨의 말이다. 박씨도 TV를 보다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릴 때가 있다. 아이들도 무안한지 고개를 돌리거나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렇다고 성적 호기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여러분은 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YMCA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의 섹슈얼리티체험관. 10여분짜리 영상을 관람한 남학생들에게 강사가 던진 질문이다. 즉각 답이 튀어나온다. “섹시함“, “기분 째지는 거!”, “섹스!” 이날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미 다른 성교육 기관을 통해 ‘학습된 경험’이 있어선지 의도했던 답,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단어도 나온다. 강사가 연이어 질문한다. “방금 본 영상에서 무엇이 제일 인상적이었나요?” 학생 중 하나가 ‘개’라고 답하자 다른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부연한다. “남자가 개라는 거죠.”, “졸라 열심히 하잖아 개가.”
또 다른 학생은 ‘비키니 입은 여자’를 꼽았다. 이유는 가슴이 커서 좋다는 것. ‘왜 그런 가슴이 좋냐’는 강사의 질문에 그는 “잠자리가 행복하니까”라고 답한다. ‘몸매만 좋으면 행복할까’라는 되물음에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답한다. “당연하죠!” “허리를 막 돌리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꼬추!” “쟤는 강간도 해봤대요!”
“야메떼, 야다요!”라고 누군가 콧소리를 내자 남학생들은 배꼽 잡고 웃는다. 일본야동에 흔히 등장하는 “그만둬, 싫어!”라는 신음소리다. 강사는 순간 적응 못하는 표정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선 ‘하악하악’(편집자 주: 자위행위 또는 흥분하고 있다는 뜻으로, 신음소리를 문자로 표현한 것) 등과 함께 익숙한 하위코드다.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 설령 머릿속으로는 음흉한 생각을 하더라도 밖으로 끄집어내는 걸 가로막았던 그 ‘어떤 것’이 사라졌다. 더 이상 ‘성’은 감춰야 할, 부끄러운 음지의 문화가 아니다. 박현이 아하성문화센터 기획부장은 “집단 성폭력 사건보다 심각한 것은 청소년,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일상적 성폭력 문화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소년 놀이문화의 성폭력 코드는 뚜렷한 양상을 보인다. 실수 또는 장난인 척하면서 여학생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진다든지, 야설을 써서 돌린다든지, 속칭 ‘왕게임’을 해서 서로 사귀는 아이들을 부추겨 키스를 강요하는 등 성폭력적인 놀이가 과거보다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상대방이나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벌이는 상황들. 학교나 공공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스킨십을 연출한다든가 수학여행을 가서 남녀가 함께 자면서 생기는 ‘사건’ 따위다. 박 부장은 “성폭력 가해자들을 인터뷰해 보면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고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일단은 아이들에게 아무리 장난이나 놀이더라도 상대방이 압박과 고통을 느낀다면 그걸 폭력으로 인식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부장 등은 지난 2005년 서울지역 인문계, 실업계 고등학교 2학년과 보호관찰 및 쉼터 거주 청소년을 포함, 총 1천255명을 대상으로 ‘성경험 및 성태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58.8%의 청소년이 ‘이성친구를 사귄 적이 있거나 현재 사귀고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6명이 이성교제를 경험한 셈이다. 또 10대 남자의 22%, 10대 여자의 8.8%가 ‘이성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답했다. 지난 1월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서울시지회와 삼육대학교 에이즈예방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중학생 1.1%, 고등학생 7.5%가 성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첫 성경험 연령은 중학생 13.3세, 고등학생 15.2세로 조사됐다.
청소년 60% “이성친구 교제 경험”
가장 최근의 결과는 지난 11일 건강사회를위한보건연구회와 전교조 보건위원회가 한길리서치에 조사를 의뢰하여 발표한 자료다. 이 조사는 전국 초·중·고등학생 1천62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2007년 현재 한국사회의 청소년 성문화 실태에 대한 근사치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조사에서 ‘이성친구와 성관계를 해봤다’고 답한 비율은 3.1%이며, 놀랍게도 초등학생조차 2.5%가 성관계를 해봤다고 답했다. 성관계를 한 장소로는 친구집(25.1%), 우리집(18.4%), 여관이나 모텔(5.3%), 비디오방(3.7%) 순으로 나타나,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가정을 성관계 장소로 이용하는 추세임이 드러났다.
성경험을 한 중·고등학생의 성행동에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변혜정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는 “과거에는 공부를 잘 하는 애들, 속칭 ‘범생이’들은 성관계를 안 했지만 지금은 중·고등학교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말한다. 즉 중학생들은 여전히 성별 구별 없이 이성친구와 성관계를 갈망하고 있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 하는 축은 이전에 사귀던 이성도 정리하고 성관계를 안 한다는 것. ‘돈 들고 여자애들 비위를 맞추느니 대학 가면 좀더 좋은 애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반면 공부를 못하는 경우, 거의 성인처럼 ‘논다’. 고등학교의 경우, 학업성적에 따라 섹슈얼리티가 ‘양극화’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변 교수의 진단이다.
물론 이런 통계치나 분석은 성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통계수치상 아직 성을 경험하지 않은 80~96%에 해당하는 ‘평범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정민아양(고3·가명)은 ‘노는 애들’이 많은 경우 한 반에 2~3명까지 있고, 대개 한 학년에 대여섯 명쯤 있다고 말한다. 보통 끼리끼리 어울리는 게 대부분이지만 딱히 따로 노는 것은 아니다. 더러 성경험이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학생들 사이에는 P2P 사이트에 성인자료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포인트를 받아 더 많은 자료를 다운받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정양은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았지만, “맨날 봤던 것이라서 별로 다른 걸 못 느꼈다”고 말한다.
김서진양(고2·가명)은 최근 빈번한 청소년 또래성폭력사건을 보면 ‘가해자도 나쁘지만 피해자도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어떻게 행동했냐에 따라 가해 남학생들이 보는 시각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잘하고 다녔으면 행동이나 말이 약해 보이지 않았을 거고, 무시당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김양의 말이다.
고등학교에서는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중학교 때는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 ‘맨날 노는 애들’이 여학생 한 명을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여학생들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강제 추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냥 추행한 것이 아니라 그걸 찍어놨어요. 그게 걸려 문제가 된 거죠.”
김양이 인터넷을 사용하던 초창기에는 성인인증제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 막무가내로 음란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청소년들에게 인기 높은 ㄴ채팅 사이트의 특정 코너에 들어가면 아직도 ‘조건만남’이나 낯 뜨거운 ‘방제’를 단 채팅방이 많다. 김양은 성경험이 여성에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여자애들은 성관계를 하면 임신할까 불안해하는데 남자들은 배가 부르는 것도 아니고 알 수 없잖아요. 여자는 피가 나는데 남자는 안 나니 뭘 해도 당당한 거예요. 남자애들끼리는 여자들 몸 팔면 걸레라고 하는데, 남자들도 그렇게 하고 다니는 게 ‘걸레’라고 생각해요.” 김양은 남학생 또래 친구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용납하지 않고 꼭 반박한다고 말한다.
김양은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성 상담의 적절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선생님들은 실제로 말할 시간이 없어요. 아무래도 입시에 치중하다 보니 8교시 끝나면 선생님들도 퇴근하고, 아이들은 학원 가고…. 만약 안 좋은 일을 당하면 부모님께는 더더욱 말 못할 것 같아요. 딸이니까 많은 기대를 하고 잘 키웠을 텐데 그게 무너질까봐…. 형제나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두 학생의 이야기는 ‘학교 성교육이 실패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김미경 전교조 보건위원회 위원장은 ‘실패’의 원인을 형식적인 성교육시간 운영에서 찾는다. 성교육이 정규교과가 아닌 상태에서 재량 교육시간을 할애하는 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라는 것. 예컨대 교육부가 10시간 성교육 수업지침을 내리면, 보건교사가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관련교과 과목 교사들에게 지침자료를 나눠주고 할당하는 식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학교 성교육 정규교과 편성 안돼
교육내용도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몸과 지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보수적 경향은 아직 너무 완강해요. 예를 들어 학교에서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면, ‘왜 학교에서 그런 걸 알려주냐’는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칩니다. 사회의 보수적 가치관과 아이들의 현실이 괴리된 거죠.”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아이들의 성문화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결국 그걸 가르쳐준 어른들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어요.”
학교 밖 ‘고위험군’ 아이들을 상담하고 있는 진란영 서울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위기개입팀장은 상담사례에서 드러난 청소년 성문제는 ‘심각하다’고 밝힌다. “아직은 때가 아닌데도 실제 여관에서 아이들을 받아주는 것도 어른이고, 조건만남을 하자고 하는 것도 어른이죠. 10대 아이들에게 공식적으로는 성관계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적극적으로 돈 주고 사는 것도 어른입니다. 이중적인 사회에서 아이들은 그 모순을 느끼고 있어요.”
신체 성장속도도 과거보다 빨라졌고, 분출하는 성적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아이들로선 성을 금기하고 억압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미성년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데, 어른들은 안 된다고 하니까 막상 ‘상황’이 벌어져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진 팀장이 보기엔 최근 2~3년간 아이들의 성에 대한 생각이 크게 변했다. 성은 더 이상 ‘의미있는 어떤 관계’가 아니고 마치 ‘점심에 무슨 반찬을 먹었나’는 식으로 오락게임처럼 여긴다는 것. “예전에는 여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임신문제였어요. 예컨대 배란기 조정이나 배란일에 따른 임신 여부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테크니컬한 질문, 이를테면 체위라던가 항문섹스 같은 걸 거리낌없이 물어봐요.”
아이들의 사고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일까. 우선은 포르노물을 들 수 있다. “포르노도 보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죠. 문제는 보고 난 다음 받는 영향이에요. 게다가 포르노는 강간신화를 내포합니다. 남자들 중엔 여자가 끝까지 저항하면 강간은 일어날 수 없다고 믿거나 강간당했을 때 여자가 더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 지식은 인터넷검색엔 안 나옵니다. 그러나 포르노에서는 반복되는 신화 아닙니까.” 방송매체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지금의 기준으론 성폭력적인 상황을 연예성공담처럼 포장하는 토크쇼부터, 성관계 묘사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방송은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인 남녀의 섹스는 사랑의 한 방편이지만, 아이들의 눈엔 섹스 자체만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진 팀장은 이렇게 반문한다. “사실 어른들이 모르는 10대의 성문화가 아니라,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인 관점에서 바라보니 심각하다고 하는데, 어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든 만연한 성문화를 10대의 기준으로 다시 읽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성문화 근절이라는 목표 설정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지속적인 교육은 물론 필요하겠지만 빠르게 변하는 아이들을 어른의 기준에 맞춰 해결책을 내기란 솔직히 힘들지 않을까요.”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김세구/박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