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창가에서‘인권 홍보’
[조선일보 2004-04-28 19:12]
[조선일보 허윤희·사회부 기자] 파주시 파주읍 '용주골'은 업소 95개, 성(性)을 파는 여성들이 307명에 달하는 유명 사창가다. 지난 27일 밤 경찰, 소방원, 변호사, 의사, 인권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 등 70여명이 이곳에 들이닥쳤다.
성매매 특별법(3월 공포)을 알리고 인권 유린 사례를 점검하는 ‘특별 단속’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단속은 이날 아침 공식자료로 예고됐다. 당연히 상당수 업소가 문을 닫았다. 업소는 입구에 소화기를 가져다 놓았고 성매매 여성들은 “빚도 없고, 원해서 왔다”고 되풀이했다. 단속 성과는 거의 없었다.
경찰이 단속보다 홍보 행사로 준비했다는 것은 현장에 미국과 필리핀 외교관을 초청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미국대사관 직원 2명은 한국의 인권 상황을 파악하는 담당자라고 한다.
사실 ‘용주골’이 사창가로 변한 것은 6·25전쟁 직후 미군 주둔이 출발점이었다. 그렇다고 “미군이 만든 사창가를 인권 담당 미국 외교관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낯 뜨겁다. ‘용주골’을 오늘날 대형 사창가로 ‘키운’ 것은 한국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용주골이 급팽창한 것은 4~5년 전이다. 경찰은 “서울 천호동, 미아리 사창가가 단속을 받자 여성들이 용주골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도 이유의 일부일 뿐이다. 천호동, 미아리를 찾던 남자들이 무려 1시간을 차로 달려 이곳에 몰렸기 때문에 용주골이 커진 것이다.
성매매 특별법이 효과를 발휘하면 대형 사창가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용주골이 없어지면 끝나는 것인가. 술집, 안마시술소, 이발소 등 칸막이가 있는 곳이면 성(性)을 살 수 있는 ‘남성 전용 섹스 천국’이 한국이다. 몇 년 후 경찰은 인권 외교관들을 데리고 초대형 성매매 이발소에서 홍보행사를 치를지도 모를 일이다.
(파주=허윤희·사회부기자 ostinato@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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