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9일 오전 1시경 서울 종로구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일대. 성매매 호객꾼 10여 명이 길 가던 남성들을 상대로 ‘2차가 보장된 노래방이 있다’며 소리쳤다. 호객꾼이 안내한 곳은 자신들이 속칭 ‘강남 2호점’이라고 부르는 서초구의 한 노래방.》
남성 고객이 대기 중인 10여 명의 여성 중 맘에 드는 사람을 파트너로 고른 뒤 노래하며 놀다가 뜻이 맞으면 인근 숙박업소 등으로 자리를 옮겨 성매매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손님이나 아가씨 모두 성매매를 전제로 해 만나는 것이어서 ‘섹스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 A 씨는 “동료 20여 명 중 7, 8명이 집창촌 출신”이라며 “주말에는 방 20개가 가득 찬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종로구의 한 PC방. 취기가 오른 남성들이 얼굴과 신체조건 등을 골라서 성매매 여성을 선택할 수 있는 이른바 ‘인터넷 집창촌’을 뒤적거린다.
3만 원 안팎의 가입비를 내고 이들 사이트에 가입하면 남성들은 최대 100여 회의 문자메시지를 보낼 권리를 갖는다. 답신이 오는 여성과 만나 성관계를 맺으며, 화대는 통상 10만∼20만 원 선에서 흥정된다.
▽성매매특별법의 명암=23일로 시행 6개월이 되는 성매매특별법은 한국의 밤 문화를 크게 바꿨다. 특히 경찰이 성매매 피해여성을 보호한다는 법 취지에 따라 집중관리가 가능한 집창촌을 겨냥함에 따라 집창촌이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속칭 ‘588’의 한 업주는 “지난해 12월부터 우여곡절 끝에 영업을 재개했지만 월 150만 원인 건물 임대료도 내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부산의 집창촌인 속칭 ‘완월동’에서는 윤락업소 업주 이모(51) 씨가 적자에 시달리다 19일 자살하는 일도 발생했다.
경찰은 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 9월 5567명이던 집창촌 종사자가 최근 절반 이상 감소한 2736명으로 급감했고 집창촌 업소 수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성매매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구 중구 도원동의 속칭 ‘자갈마당’에서 15년간 영업을 해온 업주는 “여기 여성들이 손님을 1 대 1로 만나는 ‘주택가 업체’로 옮겨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도권 일대에서 남성휴게실, 피부숍 등의 간판을 내걸고 유사 성행위를 하던 업소나 룸살롱의 변형인 ‘섹스방’ 등이 지난 6개월 사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노래방이나 일부 카페 등이 기존 집창촌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태 영업을 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경찰의 손길이 쉽게 닿지 않는 업소들은 버젓이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 업소를 찾는 손님들은 “집창촌을 찾을 때처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어 더 좋다”라고 말했다.
▽엇갈리는 평가=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엇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성매매를 근절하거나 줄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충분한 준비 없이 섣불리 손을 댐으로써 오히려 음성적인 성문화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집창촌 업주 및 여성들의 모임인 ‘한터’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외국으로 떠난 성매매 여성들은 여권을 뺏기고 감금까지 당해 법 시행 이전보다 더 열악해졌다”고 비판했다.
집창촌 여성들이 주택가로 스며들면서 성병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허점이 생겨났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曺永淑) 사무총장은 “여성에 대해 가혹하게 이뤄지던 성적 착취 및 과도하게 팽창된 성 산업을 손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성구매 남성 등을 처벌하자 기업 등에서 접대수단으로 공공연하게 성매매를 일삼던 풍경이 사라졌다”면서 “앞으로 신종업소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열악한 시설… 말뿐인 지원… 겉도는 재활▼
“옛 동료들이 ‘재활센터에 가봐야 도움이 안 된다’며 오고 싶어 하지 않아요.”
5년째 해오던 성매매를 중단하고 지난해 서울시내의 한 ‘성매매 피해여성 재활센터’에 입소한 A 씨는 대다수 성매매 여성이 재활센터에 대해 지닌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동료 여성 B 씨는 “포주들이 이곳에 입소하면 하루 12시간 동안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입소를 가로막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성매매 피해여성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 세운 재활센터가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부는 지난해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전국 36개의 지원센터에서 교육받은 탈성매매 여성 중 4명이 창업에 성공했으며, 28명은 대학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재활센터에 입소한 성매매 여성은 지난해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전에 비해 감소했다고 경찰이 밝힌 집창촌 종사여성(2831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
그나마 경찰 단속이 느슨해진 올해부터는 재활센터로 입소하는 성매매 여성이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지방의 재활센터는 더 심각하다.
충북은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를 위한 예산을 전혀 배정치 않아 지난해 10월 여성부 및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센터는 설치되지 않았다. 올 1월 문을 연 성매매 피해상담소의 경우 지금까지 5, 6명이 상담한 것이 전부.
한 재활센터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38개의 지원시설이 있지만 시설들이 열악한데다 여성부가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마구 허가를 내줬다”면서 “지방의 한 쉼터는 산골짜기에 지어져 거의 찾는 이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처럼 성 구매 남성에 대한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발표한 성매매특별법 통계에 따르면 성 구매남성 중 49.6%가 재범 이상이었다.
동덕여대 김경애(金慶愛·여성학)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흐름은 수요를 창출하지 않는 방향”이라며 “10대 가출소녀가 성매매 종사자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 남성의 성문화를 바꾸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200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