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장 차별개선이 관건
성매매 여성의 생존권과 자활대책
2005-07-05 박홍주 기자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탈성매매 지원 및 자활지원정책이 실질적인 예산투입과 함께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예전처럼 보호시설 입소나 보호중심 지원이 아닌 탈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2006년 성매매 집결지의 시범적 폐쇄조치를 앞둔 시점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자활지원 정책은 다양한 입장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복잡한 문제다. 일부에선 집결지 시범사업을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하거나, 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여성부 책임으로 전가하는 비난의 소리들도 높다. 가장 대표적인 질타는 성매매 집결지의 여성들이 정부의 자활정책을 거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여성부와 일부 성매매 여성들의 대립구도는 ‘여성들의 자립과 경제적 필요성’이라는 원칙에선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여성부의 지원이 1년이라는 한시적인 것이며, 정책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자활’과 ‘경제적 자립’의 수위가 실제 여성들의 경제적 필요와 노동시장 현실과 부합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건전한(?) ‘사회복귀’의 양면성
더욱이 성매매 여성들뿐 아니라 다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도 자립을 위한 사회적 조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언제든지 성 산업으로 유입될 여지를 안고 있는 ‘잠정적이고 한시적인 탈성매매’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노동시장의 진입에서부터 고용형태, 직종, 임금수준 등 노동조건과 노동복지에 있어 여성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건전한(?) 노동시장으로의 복귀명령은 ‘일시적 전업’과 유흥접객업으로의 재유입을 번복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의 어떤 상태를 ‘자활’로 정의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성매매방지종합정책에서는 ‘탈성매매=전업=자활’을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도 하지만, 탈성매매를 해도 전업을 하기 위해선 중간과정이 필요하고, 이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다. 성 산업의 확산과 유흥접객업의 발달로 인해, 성매매 집결지 여성이 업소 일을 중단한다고 해서 곧 탈성매매로, 그리고 전업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현장의 실무자들이나 여성부 자료에 의하면, 성매매 여성의 이탈과 업소 일의 중단은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것으로, 완전한 전업이나 경제적 자립으로 연결되기보다는 업소 일을 하기 위해 다시 성 산업으로 유입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른 업종이 돈벌이가 되지 않거나,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창업에 실패해서 오히려 빚을 지게 되는 경우들이다.
노동시장은 특별한 기술이나 학력자본이 없는 여성들에게 세 가지의 ‘선택 아닌 선택’만을 강제한다. ‘최저임금 7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되는 ‘건전하지만 열악한 노동조건의 저임금 일자리’이거나, ‘단시간에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은 성 산업’으로의 활짝 열린 취업 문, 그리고 성공률이 30%에도 못 미친다는 소규모 자영업이 그것이다. 단기간 제한된 지원만으로는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끼워 넣으면, 이후 노동시장에서 도태되거나 이탈, 퇴출됐을 때 개인의 책임이나 능력, 그리고 도덕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될 수도 있다.
‘자활’은 노동시장 성차별 해결없이 불가능
성매매 여성들의 경우 성 산업으로 유입되는 통로나 계기는 연령 및 의식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막달레나의 집에서 출판한 <2004 성매매로부터의 탈주, 그리고 전업>에 의하면, 쉼터거주 여성들의 52.6%가 하위 서비스, 판매직, 16.8%가 사무직, 9.5%가 생산직에서 일해 본 적이 있으며, 일 경험이 없는 여성들도 16%나 차지한다. 취업지속기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이들의 72.2%는 1년 미만 정도의 경험밖에 없다.
노동시장 내 성별직종의 분절과 잦은 이퇴직 문제는 비단 성매매 여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4년 49%의 여성취업자 중 평균 근속년수가 2년 이하인 경우가 60%를 차지할 정도로 여성의 노동시장으로의 통합은 매우 불안정하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100:62이라는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를 성별, 고용형태별로 살펴보면 남자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여자 비정규직은 38에 불과하다.
가족구성원의 생계를 전담하고 있는 여성가구주 비중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비정규직화로 인한 고용불안정 문제는 여성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구조적인 사회적 배제의 결과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제의 전형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성매매 여성들의 일과 삶은 주로 노동권이 취약한 부문, 특히 ‘여성노동의 성애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영역(그림의 C와 D)에 위치한다.
이 영역의 일자리는 다수 여성들이 쉽게 취업할 수 있는 저임금의 저연령, 미숙련 여성들에게 적합하다는 서비스직이거나, 1980년대 이후 급속하게 성장해온 비생산적 3차 산업인 ‘유흥접객업’의 새로운 직업유형들이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특별한 기술이나 설비 없이 고수익을 보장 받는 유흥접객업이 급성장하면서 호스티스, 콜걸, 면도사, 안마사 등과 같은 새로운 ‘겸업형 성매매’가 급속히 확산됐고, 동시에 전화방, 화상대화방, 남성휴게실, 호스트바, 스포츠 마사지업소, 성인PC방, 성인 콜라텍 같은 ‘신종 풍속업소’들도 급격히 증가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의 70%는 퇴직 이후의 생계 및 의료보장까지 포함하고 있는 노동복지의 수혜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최저임금 이상의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이나 의료 및 주택지원 정책에서도 배제된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와 노동부가 주관하고 있는 자활사업의 수급자들은 어떠한가?
“미안하다. 더 좋은 일 만들어내지 못해서…”
자활지원사업은 기초생활보장과 동시에 노동능력이 있는 빈곤층에게 일을 통한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도모하는 대표적인 노동복지의 전형으로, 4년째 지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활지원사업은 현재 여성부가 성매매 여성들에게 지원하고 있는 자활정책과 거의 유사하다.
“일선 자활후견기관에게 틈새시장을 찾아내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또 실적도 좋아야 한다는 정책 지침이 문제적이죠. 여기 수급자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의 중노동으로 무릎이나 관절이 좋지 않아서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기 힘들어하는데,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육체적인 단순노동밖에 없어요. 힘들고 지친 수급자들이 ‘이 일 밖에 없냐’고 하소연할 때는 정말 미안하고 마음 아파서, ‘미안하다. 더 좋은 일을 찾아내지 못해서’이러면서 같이 울어요.” (복지부 자활지원사업 현장실무자)
자활후견기관 활동가 10여명이 거대 자본과 시장에 맞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아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젊은 고학력의 청년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노동시장의 인력수급 구조를 보더라도, 나이든 여성수급자들을 고용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2004년 12월 31일 현재 기초생활보장수급자 122만7천714명 중 근로능력이 있는 자로서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5만4천895명으로 전체의 4.4%에 불과하다. 이 중 취업알선 후 취업한 사람의 비중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소수에 불과한 취업여성들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어 건강이 악화되면 다시 수급자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한 달에 40만원 정도 버는 여성자활 수급자의 삶은, 성매매를 그만두고 생계대책이 없어 최저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기지촌의 나이든 성매매 여성들의 삶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구조적 조건이 부재한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 빈곤여성, 여성가구주, 구직자나 실망실업자, 자활수급자의 범주들은 중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은 삶의 어떤 지점에서 그 경계들을 넘나들고 있다.
노동부와 복지부의 적극적인 개입 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정책을 주 업무로 전담하고 있는 노동부와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을 주 업무로 전담하고 있는 복지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탈성매매를 원하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은 ‘노동시장의 현실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여성을 지속적으로 성 산업으로 유입시키고 있는 성차별적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문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50만원 밖에 못 버는 일자리밖에 없으니 성매매를 여타의 다른 노동과 마찬가지로 인정해버리고 이전처럼 두자고 하는 것보단, 여성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소한 삶의 질을 보장 받기 위해 더 적극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최선이 아닐까.
노동부는 야심만만한 기획, 2007년까지 직업훈련에서 취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평생직업능력개발 활성화를 추진하기 위한 ‘고용지원서비스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저임금의 열악한 일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는 그 누구의 이해관계도 충족시킬 수 없다. ‘모든 국민’에게 개인별 맞춤 고용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노동부의 정책을,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성인지적 노동정책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소수의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노동정책으로는 탈성매매 여성의 사회통합을 기대할 수 없다. 성매매를 하게 되는 다양한 원인 중에서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생계유지를 하기 위해 성 산업으로 유입되는 여성들 수를 감소시키거나 유입 자체를 차단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가? 이제는 여성구직자를 ‘취약집단’으로 간주하고 일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들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해왔던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그들을 취업하기 힘든 ‘취약집단’으로 만들어 왔던 사회적 조건과 노동시장의 차별적 장벽들을 없애는 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가는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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