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여성 성산업 유입, 누가 누굴 탓하나
[일다 2006-10-18 08:09]
지난 17일 KBS 9시 뉴스는 “빗나간 국제결혼”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국제결혼을 한다며 입국한 외국인 여성들이 유흥업소로 많이 빠지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며 “국제결혼이 외국인 여성의 유흥업소 종업원 공급 통로로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 실태를 보도한다”고 방송했다.
그러나 정작 방송된 내용을 보면, 유흥업소 유입수단으로 국제결혼을 악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이주여성의 유흥업소 유입 원인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방송은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설명도 진단도 하지 않은 채, ‘국제결혼을 악용하려는 이주여성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한국 성산업과 중개인 착취 문제에 눈감아
“2년 반째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중국 동포 이모씨. 중국 현지 중매업자에게 천만 원을 주고 9살 연상의 한국남성과 결혼한 이씨는 돈을 벌러 한국에 왔다고 말합니다. <녹취>이00(29세/중국 동포): 3년 동안 1년은 천만 원 드는 걸로 하고 나머지 번 돈으로만 (중국에서) 아파트 한 채는 마련할 수 있거든요.”
이씨의 말을 살펴보면, 그녀가 설사 한국남성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했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게 되는 과정에서 알선비용으로 천만 원이라는 돈을 지급해야 했으며 그것은 1년을 저당 잡힌 것과 마찬가지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뉴스는 중국 현지 중매업자들의 행태나 그들과 한국남성과의 관계, 혹은 돈 거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는다.
이어, “2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한 러시아 출신 이 여성도 입국하자마자 술집에서 일하기 위해 달아났습니다” 라는 기자의 멘트 다음에 당사자인 러시아 여성의 말이 이어진다. “나타샤(가명/ 23세/러시아인): 한국남성들이 거짓말 많이 하고 여기서 잘 산다고, 뭐 있다고 하고 근데 와 보면 아무 것도 없어요.”
기자는 나타샤가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술집에서 일하기 위해 달아났다며 비방하듯 말했지만, 막상 당사자의 얘기를 보면 한국남성들의 거짓말에 속아서 한국에 오게 되었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기자는 나타샤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이처럼 유흥업소 취직을 위해 국제결혼을 악용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라고 정리했다.
이주여성이 “달아났다”니, 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이주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조차 할 수 없는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존재라는 말인가? 가난한 여성들을 한국의 성 산업으로 끌어들이고 갈취하는 업자들과, 거짓 정보를 선전하며 국제결혼시장으로 여성들을 유인해 사기결혼을 시키는 중매업자 또는 한국남성들의 문제를 짚어야 할 보도가, 엉뚱하게도 ‘이주여성이 문제’라는 식으로 흐른 것이다.
유흥업소 취업을 위해 국제결혼을 악용하고 있다며 이주여성들을 비난하던 보도는 업주들에 대해선 “법무부가 3년 전부터 예술흥행 비자발급을 중단하자, 일부 유흥업주들이 현지 결혼 브로커를 통해 종업원을 공급 받는 것입니다.”라며 마치 상품을 공급 받고 있는 것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가 하면, 결혼브로커를 통해 여성들을 사들이고 있는 성 산업 관계자들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넘어간다.
이주여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귀 기울여야
한편, 세 번째 인터뷰의 경우 “결혼해 한동안 살다가도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유흥업소를 전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라며 중국인 이주여성의 사례를 소개한다. “<녹취>주 00(중국 동포): 이미 중국에서는 빚지고 나왔지, 어쨌든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 중국 가면 죽을 길밖에 없잖아요.”
뉴스는 “지난해 국제결혼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은 만 8천여 명,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유흥업소를 떠도는 외국인 여성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라는 말로 보도를 마무리 했다. 이주여성들이 국제결혼을 악용한다더니, 남편 학대로 뛰쳐나와 유흥업소를 전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보도하는 이 뉴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이주여성의 성 산업 유입 문제는 기본적으로 한국사회의 성매매 산업과 시스템의 문제이며, 따라서 이 문제가 국제결혼시장과 연결되어 있다면 여성들을 매매하고 있는 중개업자들의 행태와 문제점들을 파헤쳐야 할 일이다. 또한 한국에 대해 취약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왜곡된 사실을 통해 결혼한 이주여성들이 겪는 피해에 대해서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남편의 학대와 폭력과 같은 문제처럼 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인권침해 또한 간과되어선 안 된다. 여성들이 이혼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취업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이주여성의 시민권과 노동권 확보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KBS의 뉴스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주여성들의 ‘실태’에 대해 보도하고자 했다면, 적어도 이주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부터 취재를 해야 했으며, 이들 여성들을 업소에 고용하려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한국사회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보도해야 했다.
해당 뉴스의 인터넷판 기사 제목은 “결혼 비자는 유흥업소 취업증?”이다. 국제결혼을 광고하는 알선업체들의 홍보물들에 대해서 “성차별”이라며 시민사회의 항의와 비난이 거센 지금에 와서도, 공영방송이 국제결혼과 성 산업 유입을 둘러싼 뉴스를 내보내며 ‘이주여성’들을 탓하는 보도를 한다는 것이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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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