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재편이 가져올 ‘여성폭력’ 심각

미군기지 재편이 가져올 ‘여성폭력’ 심각

反기지운동 통해 세계화된 군사주의 맞서야

조이승미 기자
2006-12-13 05:10:24

“이제 나는 스스로를 미국의 군사주의 속에서 살아낸 생존자라고 생각한다. 미군 철수만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앨 수 있다.” (오키나와 여성 T씨/ 미군들로부터 칼로 위협당하며 윤간을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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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미군기지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지난 10일 NPO법인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인권 기금’, 일본의 ‘아시아 여성자료센터’와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공동주최로 동경에서 열렸다.

심포지엄에서는 한국, 일본, 필리핀 등 미군 주둔지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실태가 증언됐고, 세계적인 미군기지 재편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여성들이 미국의 군사주의에 대응하여 어떻게 연대하고 저항할 수 있을 것인지 논의됐다.

한국에서 ‘경제개발’로 여겨지는 미군기지

한국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사무국장은 단체가 설립된 1993년부터의 자료를 보면 미군주둔지역 여성에 대한 범죄는 성범죄, 폭력, 살인 등 흉악범죄 비율이 높으며, 잔인한 방법으로 여성이 살해 당했지만 미해결사건도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2000년 3월 의정부 고산동에서 일어난 서정만씨(당시 68세) 살해사건도 그 중 하나다. 용의자로 지목된 도미니크 테디 파오리씨는 살해사건 발생 이틀 후 한국을 떠났다. 고유경 사무국장은 이렇게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로, ‘상대가 미국인데 어떻게 해보겠느냐’ 하는 경찰과 한국정부의 무기력하고 소극적 태도와 미군의 비협조적 태도를 들었다.

고 사무국장은 미군기지가 과거 군사동맹을 상징하는 표시였다면 최근에는 경제개발의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지이전 이후 개발이 예정된 지역에서 토지 값이 급등하고, 이로 인해 기지촌 주변에서 사는 여성들은 뛰어오른 월세를 내기 위해 빚을 지는 등 생계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즉, 미군이 주둔해있던 시기에 미군을 상대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적 냉대와 폭력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던 여성들이, 기지 재편 움직임 이후 불어 닥친 개발열풍과 한국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 정부의 인권탄압과 미군확대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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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FIN(일본 이주노동자 필리핀회 모임)의 도나 베르트란 공동대표는 필리핀의 미군기지에 대해 보고했다. 도나 베르트란 대표는 먼저, 1999년 필리핀과 미국이 체결한 방문미군지위군사방문협정 VFA(Visiting Forces Agreement)와 2001년 상호지원협정 MLSA(Mutual Logistics Support Agreement)가 필리핀 헌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9.11 이후 미국이 필리핀에 대해 미국의 테러에 대한 ‘제2방위 전선’으로 규정한 이후, 필리핀에서 특히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증가하고 있으며 아로요 정권이 필리핀 주둔 미군 확대에 전면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을 근거로 활동하는 신인민군 등을 축출하려고 필리핀 내에서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로요 정권의 계산, 석유등의 자원과 무역루트 등을 확보하고자 하는 미국 측 의도가 맞아 떨어져 필리핀 주둔 미군은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도나 베르트란씨는 아로요 정권하에서 마르코스 독재정권 당시 살해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인 861명의 목사, 농민, NGO활동가들이 살해되고 있는 점을 고발하며, 이러한 사태를 멈추기 위한 시급한 과제로 “필리핀 당국과 미국의 군사방문협정VFA가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키나와 소녀 강간한 미군, 미국서도 대학생 강간

‘미군기지, 군대를 허락하지 않고 행동하는 여성들의 모임’의 다카사토 공동대표는 1995년 9월 오키나와에서 12세 소녀를 강간한 후 7년간의 복역을 마친 미군이 2001년 석방된 후 고국에 돌아갔으며, 그가 올해 8월 미국에서 22살 여대생을 강간, 교살한 후 스스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한 다카사토씨는 2005년 11월 필리핀 마닐라 북서부 수빅 전미군 기지에서 일어난 필리핀 여성 강간사건 용의자였던 3명이 오키나와 해병대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이 사건에서 전체 용의자 4명중 1명은 유죄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 중이며, 3명은 무죄로 판결됐다. 범행을 알고서도 실행허가를 내준 상사와 동료 3명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후 일본 오키나와 해병대로 복귀했다는 사실이 미 대사관을 통해 확인됐다 한다.

이 자리에는 미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여성 두 명도 참석했는데, 1992년 3명의 미군에게 칼로 위협당하며 윤간을 당했던 오키나와 여성 T씨는 수 차례에 걸친 자살기도와 10년간의 침묵을 딛고 증언에 나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현재 일본에서 24시간 강간 피해센터를 설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호주여성 A씨도 2002년 4월 요코스카 주둔 미군병사 블로크 T 딘즈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피해 직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지만, 일본경찰은 피해사실조차 제대로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를 10시간 동안 내버려 둔 채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또한 검찰은 그의 제소를 기각했다.

2006년 1월 A씨는 민사재판에서 범행가해자 미군병사의 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현재 가해자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소재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증언에 나선 A씨는 “나는 다른 여성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망간 가해자 딘즈는 미국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잠재적 범죄자다. 일본 검찰과 경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도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군사주의의 폭력에 저항하는 反기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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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군대를 허락하지 않고 행동하는 여성들의 모임’이 작성한 “일본에서 미군에 의한 여성의 성범죄 연표”에 따르면, 일본 패전 후 주일미군으로 인해 9개월의 아이, 6살 소녀 강간살해 사건 등 오키나와 전역이 무법지대가 됐다. 또한 ‘미군에 의한 폭력은 피할 수가 없다’는 패배적이고 왜곡된 인식하에, 오키나와 내 성매매 지역이 만들어져 왔다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가난한 오키나와 사회에서 달러를 벌 수 있는 노동력으로 성매매 여성들이 공급됐으며,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되기 전까지, 이들 여성들 중 매년 2~4명이 교살사체로 발견됐다고 한다.

다카사토 공동대표는 “패전 후 일본의 동경재판에서 ‘위안부’ 등 전시성폭력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아 온 것처럼, 미군의 여성에 대한 폭력은 거의 불문율이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를 누가 만들어 내고 있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며, “세계화된 군사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각 지역의 이해관계와 미군의 군사주의가 맞물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국경, 인종을 초월하여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포지엄 참가자들은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정당한 해결방식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사회정의가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월 동경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반기지 동경회의’에서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을 골자로 하는 성명서를 채택했으며, 특히 GPR(Global Posture Review 2003년 11월 발표된 미국의 ‘해외미군재배치계획’)을 기초로 한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군사전략 재편을 반대하고 반기지 네트워크를 결성하기로 한 바 있다. 2007년 3월 에콰도로에서는 ‘반기지 네트워크 설립총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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