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자로 온 외국여성 경제적 착취·인종차별 시달려”

“공연비자로 온 외국여성 경제적 착취·인종차별 시달려”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6-28 03:08 | 최종수정 2007-06-28 13:00

2007 광주세계여성평화포럼 국내외 여성학자·운동가 200여명 열띤 토론 “북한 이탈주민은 생계형 이주 노동자로 봐야”

26일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2007 광주세계여성평화포럼’의 하이라이트는 ‘다문화주의와 여성’, ‘여성의 인권과 폭력’, ‘세계 평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 등 3개 세션으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였다. 200여 명의 국내외 여성학자와 운동가들은 세계화로 인한 여성들의 국경 넘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가속화되는 빈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핫 이슈는 이주 여성들의 빈곤과 폭력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와 이주’를 주제로 발표한 김현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엔터테이너 비자(E-6)’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 여성들이 당하는 인신매매성 폭력 사례를 소개해 충격을 던졌다.

“E-6 비자를 받고 들어오는 이주 여성들은 계약 당시엔 ‘고객과 얘기하고 춤추며 술 마시는 게 너의 일’이라고 설명을 듣지만 막상 한국에 도착하면 업소 주인의 강요에 따라 섹시 댄스, 테이블 서비스, 성적 기호 충족 등 온갖 종류의 노역에 종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 실제로 러시아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했던 안피싸(28)씨는 2002년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부산 K나이트클럽으로 보내져 1년간 12군데 업소로 강제로 옮겨다니며 신체적·경제적 착취를 당했다. 인종차별도 만연하다. 필리핀 여성이 클럽에서 할당된 주스를 판매하지 못하면 ‘영어와 무릎 댄스는 잘 하지만 더럽고 느리다’는 욕을 듣고, 구 소련 여성이면 ‘공산주의 백마 또는 나타샤’라는 말을 듣는다. 김 교수는 “엔터테이너를 매춘부로 취급하는 한국인들의 태도 때문에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는 여성들을 인터뷰했다”면서 “고객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 추는 게 임무인데도 손을 옷 속에 집어넣으려 하고 줄기차게 2차를 요구하는 통에 어떤 여성은 생리를 한다며 속옷에 케첩을 묻혔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들의 노동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정부의 관리·감독 체제의 부재가 이주 여성들에 대한 강요된 성매매 현실을 방치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포럼에서는 다문화사회의 허구를 성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한국염 이주여성인권센터 소장은 “작년 4월 대통령자문회의가 결혼이민자가족의 사회통합지원정책을 발표했을 만큼 다문화가족 정책은 국정과제로 떠올랐지만, 그 주체인 여성 이민자는 매매혼과 가정폭력에 여전히 노출돼 있고, 혼혈 자녀들은 여전히 학교와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이주여성 실태보고에 따르면 12.3%가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국제혼인현황에 따르면 이혼 건수도 1년 새 3배가 늘었다. 이혼의 원인은 인신매매성 국제결혼, 문화갈등, 언어문제 순. 한 소장은 “한국은 이미 25개국 사람들이 들어와 결혼생활을 하는 다민족 다인종 사회이고 2010년엔 5쌍 중 1쌍이 국제결혼부부가 될 것이라는 현실을 인식한다면 이주 여성들을 돈에 팔려온 여성이 아니라 자기 꿈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러 온 사람들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여성에 대한 착취는 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베아테 루돌프(Rudolf)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국제법 교수는 2005년 토고의 15세 소녀 실리아댕이 프랑스의 가정노예로 착취당한 사건이 프랑스 법정에서 기각됐다가 유럽인권재판소에 의해 유죄로 번복된 사건을 소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정 노예의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 유럽인권협약에 가맹한 모든 국가가 가정 노예에 대한 실효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나오미 골든버그(Goldenberg) 캐나다 오타와대 종교학 교수는 “세계화 시대에 여성의 권리와 지위를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70년대 북미 페미니즘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거대담론 대신 일상의 이슈들만이 중요해진 현대 페미니즘이 세계 여성들의 권리를 또 한번 위기에 처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갑우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10만~40만 명으로 추정되는 북한 이탈주민들을 생계형 이주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귀순용사, 탈북자, 새터민 등의 호칭부터 햇볕정책이라는 개념 모두 남한이 절대적 우위에서 북한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고 비판한 구 교수는, “북한 이탈 주민들을 포함한 이주 노동자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문화적 배타성으로 장벽을 끊임없이 쌓는 이상 21세기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몹시 피곤하게 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