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도 무섭지만 배고픈 건 더 무서워요”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8-03 03:18 | 최종수정 2007-08-03 12:00
▲ 14세 소녀 몽은 사창가에서 몸을 판다. 가난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택한 일이다. 소녀는“에이즈보다 가난이 더 무섭다”고 했고, 그 말을 하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몽에 대한 취재 및 촬영은 본인과 대모(代母)의 동의 아래 이뤄졌다. /캄보디아=김동준 PD
크로스미디어 OUR Asia2… <1> 캄보디아의 14세 매춘 소녀 몽 휴일도 없이 한달내내 일해 80달러 손에 쥐어 “그래도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 뒤질 걱정은 안해” 5살 때 에이즈로 부모 잃어… 세 동생 먹여살리려 가출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행복할 권리가 있는 고귀한 생명체입니다. 하지만 지구촌 곳곳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고 노동과 매춘과 인권침해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응석을 부리고 있을 나이에 공장에 가서 하루 1달러를 버는 아이들이 있고, 하루 종일 들판을 걸어 양동이에 물을 채워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미래를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이 맑게 웃는 날, 지구촌의 미래가 열립니다. 여기, 웃음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소녀는 비를 맞으며 대로변에 앉아 있었다. 이름은 몽(Mom)이라고 했다. 신축한 국회의사당과 호텔이 서 있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중심가에서 만난 몽은, 자기가 열네 살이라고 했다. 140㎝ 정도 되는 아이. 가냘픈 체구에 몸에 꽉 끼는 물 빠진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새벽부터 퍼붓던 열대성 소나기가 가랑비로 바뀌어 내리던 아침이었다.
무리 지어 다가온 청년들이 누군가와 흥정을 하며 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몽은 소위 창녀(娼女)다. 1993년생, 열-네-살짜리 매춘 여성이다. 멀리 국회의사당이 호텔 너머로 서 있는 이곳 볼링 지역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사창가다. 청년들 손가락질에 웃는 시늉을 해보였던 몽은 1초 만에 세상 다 산 듯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쪼그려 앉은 소녀 뒤편으로 40년 된 낡은 회색 건물들이 100여m 정도 줄지어 서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4층짜리 낡은 건물들은 주변을 둘러싼 최신식 사무용 빌딩들 사이에서 한 구역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미로처럼 얽힌 그 회색건물군(群)이 볼링이다.
스레이 몽(Mom·‘스레이’는 캄보디아 말로 ‘여성’을 뜻하는 호칭이다)은 1주일에 ‘7일’씩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이곳에서 손님을 맞는다. 하루에 몽이 받는 손님은 3~5명. 한 번에 화대로 20달러를 받지만 식비와 방값 등을 빼면 몽이 만지는 돈은 2.5달러(약 2300원) 정도다. 나머지는 포주가 챙겨간다. 한 달 내내 남자 100여 명에게 시달림당한 끝에 아이가 가져가는 돈은 80달러. 이 가운데 옷을 사는 데 쓰는 돈 20달러를 제외한 60달러는 고스란히 가족에게 보낸다. 휴일은 없다. 저축? 꿈도 못 꾼다.
프놈펜에서 자동차로 50분 거리 안동(Andong) 마을에 살던 몽은 5살 때 부모를 에이즈로 잃었다. 이후 자신을 맡아 길러준 옆집 아줌마를 대모(代母)라고 부르며 엄마처럼 따른다. 대모와 그녀의 자녀 3남매가 몽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다.
몇 달 전 소녀는 무작정 프놈펜으로 왔다. 어린 동생들의 먹을 것을 빼앗아 먹는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돈을 벌겠다고 왔지만 글도 모르고 나이도 어린 몽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다. 약 1주일 동안 몽은 메콩강가 쓰레기 더미에서 잠을 잤다. 쓰레기장은 볼링지역에서 멀지 않았다. 친구들이 볼링에 가면 굶어죽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몽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볼링으로 갔다. ‘채용’됐다. 몽은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메콩 강변에서 노숙을 할 땐 주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고 잠도 쓰레기 더미 위에서 잤다. 지금은 굶을 걱정이 없어서 좋다.” 아이가 말했다.
손님으로 가장하고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몽을 ‘출장 외출’을 시키고 몽과 함께 대모를 만나러 갔다. 포주는 출장의 대가로 현지인 브로커를 통해 130달러를 받아 챙겼다. 몽에게 얼마가 돌아갈지는 모른다. 몽의 고향 안동마을에는 지난해 캄보디아 정부가 볼링 지역 절반 정도를 철거할 때 쫓겨온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흘러나왔다. 개와 닭, 사람의 똥·오줌이 빗물과 섞여 진흙탕을 이룬 채 온 마을에 떠다니고 있었다. 집안에도 바닥에는 각종 배설물이 가득한 구정물이 고여 있었다. 주민들은 이 구정물 위 약 50㎝ 높이로 널빤지 바닥을 만들어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아이와 어른 모두 이런 구정물을 맨발로 다닌다. 신발 살 돈이 없어서다.
몽의 대모 옹 후잇(44)씨는 이 마을에서 3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옹씨는 “남편은 지난해 집에서 담근 술을 폭음한 뒤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옹씨는 하루 종일 남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1달러를 받는다. 한 달에 절반은 일거리가 없어서 강가에서 조개를 주워다 판다. 그녀는 “몽이 준 돈으로도 하루 두 끼 먹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대모는 몽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녀는 매달 날짜가 되면 볼링으로 찾아와 몽에게 돈을 받아 간다.
몽이 친동생처럼 아끼는 세 명은 한국봉사단체가 이 마을에 운영 중인 ‘희망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무료로 캄보디아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다.
임만호 교장은 “유치부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모두 139명이 다니는데 이 중 4~6학년 학생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임 교장은 “12, 13살 정도 되면 이곳 여자아이들 대부분이 부모의 암묵적 동의 하에 몸을 팔러 가기 때문에 4학년부터는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말했다.
대물림한 가난 때문에 성매매로 내몰린 아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에이즈다. 대모가 몽에게 넌지시 물었다. “몽, 네 부모들이 에이즈로 죽었다. 너도 에이즈 검사를 받아봐야 하지 않겠니?” 몽은 “왜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하냐”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두렵다. 에이즈에 걸려서 아빠 엄마처럼 죽게 될까 두렵고, 볼링에서 쫓겨나 다시 음식 쓰레기를 뒤지게 될까 두렵다. 차분하게 대모의 말을 듣고 있던 소녀 눈에서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볼링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몽에게 꿈이 뭔지 물었다. “웨이트리스가 되는 게 꿈이에요. 볼링에 오기 전에 커피숍에서 일하려고 했는데, 키가 작아서 취직을 못했거든요.” ‘꿈’을 말하는 아이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그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소녀는 볼링에서 내렸다. 한참 후 뒤돌아 보니 늘 그러하듯, 소녀는 길가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들을 도우려면
국민의 34%가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 캄보디아. 스레이 몽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가난에 쫓겨 매춘의 길로 들어선 소녀, 몽을 도와주십시오. 몽과 같은 10대 청소년들이 맑은 영혼과 지혜 그리고 건강한 몸으로 성장할 때 우리 이웃인 캄보디아의 미래도 함께 열립니다.
유엔아동기금(UNICEF·United Nations Children’s Fund)이 캄보디아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 어린이들에게 미래를 안겨주고 싶은 분은 유니세프(UNICEF)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후원 약정을 하거나 ARS 전화 한 통이면 몽과 같은 캄보디아 어린이에게 웃음을 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밝게 만들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유니세프 홈페이지: www.unicef.or.kr
문의:(02)735-2315
ARS전화:(060)70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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