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노출된 십대 여성들의 노동환경
일다 | 기사입력 2007-08-17 03:06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2년 전인데요. 다 그렇게 시작하겠지만 패스트푸드점이었거든요. 사실 그건 한 달도 못했어요. 손님들 오면 주문 받고 쓰레기 치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다리가 퉁퉁 붓는데 한 시간 내내 일해도 햄버거 하나 값 겨우 번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했거든요. 그 때 받았던 돈이 2천800원이었나.
한 달 채우니까 친구가 다른 곳을 소개해주더라고요. 친구가 하던 PC방이었는데 시급이 100원 더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걸 했어요. PC방에 앉아 있다 보면 낮에도 게임 하러 사람들이 많이 와요. 그 중에는 제가 나이 어리니까 막 대하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하루에 6시간씩 일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17살 때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왔다는 소연(19세, 가명)씨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십대 여성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노동환경은 낮은 임금뿐 아니라,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성인들의 태도로 인해 얼룩져있었다.
'아가씨'라 부르면서 추행하는 손님들
“어떤 아저씨가 자기 가게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횟집이었는데 좀 멀어서 고민했는데, 돈을 더 준대요. 그래서 다른 친구한테 PC방 알바 넘기고 거기서 일했죠. 3천200원 받았는데 밥도 잘 나오긴 했는데요. 술 마시는 아저씨들 때문에 고생했어요. 술만 마시면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횟집은 앉아서 술 마시잖아요. 저는 치마 입고 돌아다니고. '아가씨' 부르면서 다리 만지는 사람들도 있고."
18살의 정희(가명)씨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고깃집에서 일을 할 때인데요. 저희도 불판 옮기고 힘든 거 다 하거든요. 그런데 술 취한 아저씨들이 제 팔을 만지면서 '아가씨가 이렇게 힘든 일 어떻게 하나'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저씨가 용돈 줄 테니까 앉아서 이야기 들어 봐'라고 한 적도 있어요."
정희씨와 같은 나이의 미혜(가명)씨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으면 휘파람 불고 지나가는 남자들도 있어요. 그것보다 더 심한 일도 많았어요. "
그러나 일하는 십대들은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움을 청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은 손님에게 불만을 표했다가 바로 해고당할 수 있기 때문에,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미혜씨는 일하는 십대 여성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한다고 하면 금세 '너 좀 노는 아이구나?'라고 생각하나 봐요.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죠?" 그리고 조금 격앙된 목소리는 말을 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치근대는 사람이 많대요. 18살이라고 하니까, 돈이 필요하냐고 물으면서. 제 친구는 일하다가 울어버린 적도 있어요."
주민증 위조하거나 나이 속이는 경우 많아
십대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가 제한되어 있고, 나이 어린 사람을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있는 상황에서,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거나 도용해 나이를 속여 일을 구하는 십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미선(가명)씨도 나이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17살인데다가 여자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힘들어요. 택배 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거든요. 그런데 다시 알바를 구하려고 하니까 나이 보더니 그냥 다음에 보자고 이야기해요. 지금은 원래 구하던 PC방이나 패스트푸드점으로 갈까 생각 중이에요."
미선씨는 일하는 중에도 십대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한다. "일은 일대로 하는데 나이가 어리다고 트집 잡혀서 돈을 뜯기는 경우도 있고요. 여자애라고 막말하는 사람들도 있대요. 언니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우리는 어른들이 소리 지르기만 해도 조금 무섭거든요. 부모님 몰래 일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그래서 싸운다 싶으면 포기하는 애들도 많아요."
소연씨도 "차라리 나이를 속여서 일하는 것이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저는 주민등록증을 하나 주워서 그걸로 알바도 구했는데요. 친구들은 돈 주고 팔아요. 5만원 부르기도 하고 10만원 부르기도 하고. 주운 걸로 호프집에서 잠깐 일했어요. 어떤 애는 '보도방'(접대부를 알선하는 곳)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유사 성매매 업소로 빠지기 쉬운 노동시장
소연씨의 말처럼 일을 구하는 십대 여성들이 술집이나 유사 성매매 업소에 고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어디가 일자리가 있다더라, 돈을 얼마 준다더라 하는 주위 친구들의 입 소문에 의존해 일자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소연씨는 "친구들끼리 어디가 (시급을) 더 많이 주는지 말하기도 하고요. 지나가다가 들은 아르바이트 정보를 나누기도 해요. 그런데 한 번은 친구가 19 살도 일할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동영상을 찍는 사무실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성매매 일을 하는 또래를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보도방에 갔다가 하루에 버는 돈도 많으니까 점점 흘러가서, 지금은 뭘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결국 자기 몫이니까 내버려두긴 했는데, 좀 겁나기도 해요."
고등학교를 졸업해 지금은 대학에 다니고 있는 21살의 은희(가명)씨는 술집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친구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술집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일하는 것에 자괴감도 들었고요. 친구들이 물어다 주는 일자리에서 돈을 떼 먹히고 나면, 서로 어색해지기도 했고요."
안전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길
은희씨는 "일을 하려는 마음은 좋았는데, 좋은 일을 찾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경기도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희영씨는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거 이거다. 이 일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저 일에서는 이만큼 벌 수 있다, 하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 일도 필요하지만, 일하면서도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희영씨는 "학생 때의 아르바이트도 경력으로 인정해주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것을 할 수 있다면 훨씬 좋겠네요. 나중에 돌아보면 좋은 경험이 되는…"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00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십대들의 약 30%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나 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서, 혹은 미래를 위해서 십대 여성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십대 여성들은 입을 모아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노동환경에서 좀더 안전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십대 여성들의 일에 대한 욕구를 인정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요청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