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토크콘서트 후기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토크콘서트 후기 (별)


 
1.

9월 23일 뭉치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당사자 말하기의 공간이었던 뭉치를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 오픈하는 자리였다. 
 
경험을 나누는 일과 그 경험을 왜곡하는 말들을 지워내는 실천이 이어져 있음을 뭉치는 증명하였다. 우리의 경험을 온전히 우리의 경험으로 되찾기 위해서는 두꺼운 겨울 솜이불을 힘차게 밟아 빨래를 하는듯한 노동이 필요했다. 네시간에 걸쳐 우리는 성매매 공간의 권력자들이 내뱉은 말들을 자근자근 씹어주었다. 그 말들을 여성들의 역사로 세워진 피착취자들의 영토로 옮겨와서는 여성들의 목소리로 되풀이하는 시간은 어두웠고 습했으나 그 사이로 반짝이듯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의 위력이 고통을 끈질기게 몰아내고 있었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자신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바꾸는 마법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말들을 들었으되 예전과 같은 자리에서 듣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 말들을 우리의 목소리로 복창했으며 그 말들이 왜 문제적인지에 관하여 토론하면서 공포와 불쾌를 다룰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이었다.  
 
얼마전 내한한 시린 라이의 북토크콘서트에서 시린 라이는 말하기보다 종종 간과되는 것은 듣기의 실천이라고 지적했다. 뭉치의 용감한 언니들이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동안 관객들은 우왕좌왕했다. 냄새나 촉감, 온도, 소리, 감정으로 남아있는 느낌들을 내 몸으로 옮겨오기까지는 버퍼링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몰이해에 다름아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개인적인 논리를 검증하고자 판단의 칼날을 들이대기도 했다. 뭉치가 이러한 외부자들의 이질성을 감내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축적된 용기와 이해를 상상해본다. 뭉치는 외상을 넘어서 성매매와 관련한 우리 공동의 경험을 만들어보고자 시도하였던 것이다. 
 

2.

한편 그날은 십일년전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날이었다. 그날 낮 보신각에는 수백여명의 전국 집결지 종사자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집결하여 집회를 열었다. 보신각 일대는 모자를 눌러쓴 언니들과 어깨 오빠들로 북적였다. 집회에서는 최근 채택된 엠네스티 성노동 전면 비범죄화 정책 초안을 근거로 삼아 "정부는 앰네스티 권고 이행하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하였다. 종사자들을 리드하는 한터 여종사자 연맹의 대표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여성가족부와 제도화된 여성운동을 향한 적의를 드러냈다. 성매매 보호법은 반성매매를 무기삼아 예산을 낭비해온 행정적 실패다, 그 예산은 종사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혜택으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불신을 체화하고 있는 여성들. 
 
어째서 이런 깊은 골이 생긴것일까. 뭉치는 이 여성들을 언급하며 여러 반응을 내비쳤다. 성노동은 있을 수 없는 말이며 성매매는 폭력, 피해라고 단언하는 이도 있었고 뭉치에 오지 않았다면 성노동 운동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이도 있었다. 성매매 특별법이 십일년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효한 현실적 딜레마를 야기하고 있음을 이날의 상반된 풍경을 통해 체감할 수 있었다. 4월 9일 성매매 처벌법 21조 1항 위헌제청 공개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앞 풍경이 그러했듯이.
 
최근 상담한 언니는 상담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전혀 전산화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가 그말을 쉬이 믿겠냐고 했다. 자신도 상담소에 전화하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이렇게 지원을 받고 보니 주위의 언니들에게 알려주고도 싶지만 쉽게 믿지는 않을거라는 얘기였다. 단속의 위협, 빨간줄의 위협, 성매매 경험이 알려질꺼라는 두려움은 그만큼 강력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언제 사회가 나를 위해 한푼이라도 쓴 적이 있었던가. 수중의 돈이 늘 최고의 안전망이었기에 차라리 당장 나에게 돈을 빌려주는 '좋은 사람'인 업소 사장님을 믿는게 더 현실적인 판단일 수 있는 것이다. 언니는 업소 사장이 탈세하기 위해 허위로 신고한 임금때문에 수백만원의 보험료와 세금을 체납하고 있고 터무니없는 결근비 때문에 카드빚을 내어 추심에 시달리고 나서야 업소 사장이 '사기'를 쳤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지만, 여전히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한다. 
 
보신각 집회현장의 여성들은 행위자 처벌법이 존속하는 한 보호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생각된다. 이 여성들은 보호인지 지원인지를 말하는 낯선 타인에게 신뢰를 보내느니 자신들을 착취해온 업주들과 연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업주만 착취하는게 아니다. 더 큰 착취는 언니들이 일을 견디게 하는 다양한 이유들을 가로질러 놓여져있다. 착취의 힘은 점점 더 비인격화되고 추상화된 자본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기에, 더이상 어디를 향해 문제제기 해야 할지조차 혼란스러운 순간이 오고 있다. 여성들은 점점 더 좋은 '사람' 조차 아닌, 보이지 않는 힘에 종속될 것이다.  이 힘에 균열을 내고 싶다. 서로의 삶에 불쑥 뛰어든 낯선 얼굴이 되고 싶다. 이 인연이 전화 몇통으로 끝날지, 10년 후까지도 이어질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성매매는 계급과 섹슈얼리티가 얽힌 현장이기에 낙인으로도, 빈곤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호법이라는 예외적인 유사 복지체계의 잠정적 유지와 처벌법이라는 낙인의 폐지라는 상황적 딜레마에 얽힌 복잡다단한 쟁점들을 어떤 현장의 지혜로 넘어갈 수 있을까. 어떤 과정을 통과할때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할 공간을 확보하고 이제껏 없었던 정치를 펼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여성들이 늘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성으로 생존하는 경험을 해야 했고 하고 있으며 하게될 여성들을 위하여, 오롯이 그녀들인 우리를 위하여 어떤 기억을 구성하며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안고, 일찍이 하루하루의 걸음으로 존재하고 실천하며 희망해온 여성들을 만나는 일은 마음을 기쁨으로 채운다.
 

3.

10월부터 함께하게 된 이루머 완두는 이룸에 오기 전에 데이트 성/폭력의 경험을 주제로 당사자/비당사자를 구분하지 않는 인터뷰 사업을 했었다고 한다. 이 ‘경이로왔던’ 순간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성매매 상담소에서 이런 말하기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함께 떠올려보았더랬다. 능수능란하게 언어를 구사할 필요가 없는 공간에서 살아온 여성들, 언어를 억압당해온 여성들이 길러온 낯선 짐승들을 풀어놓고, 이 비언어적 역량들로 세계를 파열하게 하고 싶었다. "왜 하고많은 일을 놔두고 성매매를 해요?" 라는 그놈의 '맨스플레인'을 좀 닥치게 하고 싶었다. 여성 상담소라는 임시적 공간을 잠깐 경유해갈 뿐인, 임기응변과 독고다이에 통달한 언니들과 함께 이런 ‘애송이’의 희망을 어떻게 입밖으로 꺼내볼 수나 있을런지 아득해졌다.
 
그리고 뭉치라는 단단한 닻을 다시 떠올렸다. 뭉치는 중요한 성취를 이루어내었다. 뭉치는 여성들이 자신의 필요, 자신의 욕구,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삶을 바꾸는 장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경험을 선뜻 내어놓으면서 이 경험으로 뭐라도 해보자고 제안하는 존재들이다. 이 제안에 응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여전히, 더 강하게 바란다. 이런 자리에 초대해준 뭉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